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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시조는 보통 꿈으로 천명(天命)을 받는다. 고려 태조 왕건의 부친 왕륭(王隆)은 꿈에 미인을 만나 배필이 되기로 약속했는데, 훗날 송악에서 영안성(永安城)으로 가는 길에 꿈에서 보았던 여인을 만나 혼인했다. 그녀가 온 곳을 몰랐으므로 몽부인(夢夫人)으로 불렀다고 '고려사'는 전하는데, 왕건은 바로 몽부인의 아들이다. 이성계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꿈에 신인(神人)이 금자〔金尺〕를 가지고 내려와서, "이 자를 가지고 나라를 바르게 할 사람이 공(公)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태조실록'이 전하는 것도 천명에 관한 꿈이다.
'사기(史記)' 고조(高祖)본기는 한 고조 유방(劉邦)의 모친 유오(劉�:속음 온)가 큰 연못가에서 잠깐 잠들었을 때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교룡(蛟龍)이 유오의 몸 위에 올라가는 것을 남편 태공(太公)이 목도했는데, 그 후 유방을 낳았다고 전하고 있다. 유방의 부친이 용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얼굴이 용안(龍顔)이었다 한다. '사기정의(史記正義)'는 주(周)나라 문왕(文王)도 용안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때론 과거 급제도 현몽(現夢)한다. 고려 말 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처음 이름은 인저(仁�)였다. 그는 최충이 설립한 명문 사학 문헌공도(文憲公徒) 출신이었으나 국자감시에 세 번 낙방했다. 그 후 꿈 속에서 28수(宿) 별자리 중 문운(文運)을 담당하는 규성(奎星) 노인이 장원급제 하리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급제했으므로 '규성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규보(奎報)라고 개명(改名)했던 것이다. 천민 출신으로 고려 무신정권의 최고 통치자가 된 이의민은 두 형과 함께 고향 경주에서 횡포를 부리다가 두 형은 옥에 갇혀 죽었으나 그는 살아남았다.
서울을 지키는 경군(京軍)에 편입된 이의민은 아내를 데리고 개경으로 올라온 첫날 성문에서 대궐까지 걸쳐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사다리가 그의 출세를 예견해주는 길몽이었다. 베이징올림픽 메달리스트와 감독들이 꾼 꿈들이 화제다. 꿈은 인간의 영성(靈性)이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고도의 정신적 영역으로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