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88〉
■ 우리나라 꽃들에겐 (김명수, 1945~)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 1983년 시집 <하급반 교과서> (창작과 비평사)
*이번 주부터는 본래의 봄 기온을 회복했으나 여전히 봄 같지 않은 요즘입니다. 이렇게 날씨는 심술궂게 흐리고 썰렁해도 마당에는 새싹이 뾰족 돋아나고 나무마다 물이 올라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걸 보면 참 신통방통합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부터는 다시 흐려지고 봄비가 다시 내리고 있으니… 바깥 날씨는 싸늘해도 이제 곧 온갖 봄꽃들이 서로 다투며 예쁘게 피어날 것입니다. 따사로운 봄날에 주변을 살펴보면, 같은 듯 다른 수많은 종류의 들풀과 나무들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존재라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었으며, 이런 이름 중에는 매우 생소하면서도 재미있게 들리는 것들이 제법 많더군요.
이 詩에서는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주변의 흔하면서 홀대받는 이름을 지닌 꽃과 나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이 詩에서 인용된 꽃들은 설운 이름을 지녔고 나무들은 아픈 이름을 가졌으며, 이름처럼 그 모습 자체도 보잘 것 없고 온전치 못하며 작고 연약한 데다 소외받는 존재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연약하고 하찮은 것 같아도 이들이 일제히 새싹 돋고 피어나면 새봄을 오게 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걸음 나아가 이 詩에서 말하는 꽃과 나무들은, 나약하고 소외된 민중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통과 서러움을 안고 살아온 민중들이, 이 詩의 꽃들과 나무들이 바람을 견디고 모진 산비탈에 뿌리내리듯, 억압과 괴로움을 이겨내고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시대가 오기를 소망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