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님이 삭제했던 글..
자료실에 다시 올릴수 있으면
올려 주시면 고맙겠슴다. 다운 받아서 다시 찬찬히 읽어 보게
말이져. 님은 저를 분발시키고 있어여 ㅋㅋㅋ
우리...함 만날날이 있겠져?
--------------------- [원본 메세지] ---------------------
이 글을 올린 것이 8월 18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3주후에 또 다시 유대 기독교 문화권이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것도 범인임을 증명하지 못한 미국에 의해서 말입니다. 저는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고 다시 한번 유대 기독교의 이분법이 인류에 얼마나 큰 페악을 가져다 주고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구의 많은 언론들은 라덴이 첨단기기를 동원하여 통신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라덴은 전기가 전혀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사막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라덴이 이메일과 전화로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미국의 말이 맞을까요?
저는 몇 달전에 팔레스타인의 과격파 고급 간부가 휴대폰으로 통화하다가 미사일에 맞아 죽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날아왔느냐 하면 인공위성에서 그 간부의 휴대폰 신호를 잡아서 그 위치를 탐지하여 미사일 발사하는 곳에 알려줬다고 합니다. 현대의 과학은 이렇게 발전해 있습니다. 이걸 모르는 라덴이 아닙니다. 따라서 실제로는 그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지시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그는 이번 사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미국은 라덴을 죽일 작정으로 처음부터 그에게 혐의를 두고 표적수사를 하면서 증거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미국 수사당국에 따르면 3일만에 36000건의 증거를 찾았다고 하는데 이는 60명의 조직원이 매일 한통식 통화한다면 꼬박 3년이 걸리는 통화량입니다. 어떻게 해서 사건 발생 전에는 하나도 모르다가 3일만에 그 많은 증거를 다 찾을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막상 라덴이 결부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전혀 제시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서구 언론과 그것을 아무 여과없이 보도하는 우리 나라의 조중동과 같은 언론보도는 제가 보기에는 별로 믿을 게 못됩니다. 대부분 믿지 맙시다. 오비원 케노비가 루크 스카이워크에게 기계를 끄고 너의 감각을 믿어라고 하듯이 우리도 문자에 의존하지 말고 각자의 느낌에 따라 세상을 바라봅시다. - 그렇다고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기댈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자신의 느낌만 믿으면 안되겠죠. 루크는 기계 이상의 능력을 보유했으니까요. -
말이 빗나갔는데 유대 기독교는 그 본질이 선과 악, 신과 악마, 천당과 지옥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로 짜여져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인 사무엘 헌팅턴 같은 사람이 문명의 충돌과 같은 책을 쓴 겁니다. 뭐 그렇다고 그 책이 대단하다는 건 아닙니다. 사실은 배운 게 그거니까 그런 류의 유치한 책 밖에 못 쓴 겁니다.
그러나 동양사상은 유대 기독교의 유치한 이분법을 훨씬 능가하는 심오하고 위대합니다. 위의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의미에서 유대 기독교의 틀을 벗어난 심오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주로 독일계나 아랍계의 악당을 등장시켜 놓고 거기에 대항해 싸우는 정의의 용사로 유대계 출신 배우 - 아놀드 슈와츠네거 같은 - 를 등장시켜 선이 악을 때려눕히는 유치한 영화를 양산해 온 헐리우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분간은 폭력 액션물을 안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갈런지...
언브레이커블에는 상극과 상생, 선과 악, 빛과 어둠의 절묘한 배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우리 삶에 더 가깝습니다. 아무쪼록 그 영화를 통해서 상극과 상생, 선천과 후천, 삶과 죽음이 어떻게 어우러져서 우주를 둥글어가게 하는지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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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상념을 하게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세상을 잡아돌리는 힘의 근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힘의 근원이라기보다는 세상을 가득 덮고 있는 대기중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어서 사람들을 웃게도, 울게도, 기뻐날뛰게도, 절망에 젖게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일견 세상은 이 조그마한 몸뚱이 하나 헤쳐나가기도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따라서 이 걍팍한 세상에 묻혀져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교를 갖기도 하고 특정한 사상에 몰두하기도 함으로써 고된 삶에서 평안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서양인들은 신과 악마라는 정반대되는 두 구조물을 설정해놓고 이 편 아니면 저편에 기댐으로써 마음을 위안하고자 하였습니다. 물론 전형적인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선이면 선, 악이면 악이라고 해서 칼로 무우베듯이 선악을 완전히 구분하는 경향이 주류였습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지금도 니편, 내편 갈라놓고 일을 벌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마치 유대인과 서구자본주의가 작당해서 자신들은 신의 편, 아랍과 이슬람 그리고 중국은 악마의 편에 서 있는 자들로 규정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헐리우드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은 탄압을 받은 착한 민족, 독일과 아랍인들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테러를 일삼은 잔인하고 악랄한 민족이라는 이분법을 심어주기 위해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을 만들어 전세계로 수출하였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그들의 전략은 굉장히 많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현대사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분쟁과 살상의 배후에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유대기독교 문화권이 일으킨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세계지배를 공고히 하기위해서... - 기독교가 난리와 갈등의 온상인 것은 역사가 증명해줍니다. -
그런데 얼마전에 본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영화는 기존의 선악 이분법적인 구도와는 달라서 사뭇 신선했습니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던이라고 하는 대학미식축구장에서 security guide일을 하고 있는 한 사람과, 만화를 그리는 엘라이자라고 하는 또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전자인 데이비드는 한때는 잘나가던 미식축구 선수였으며 어떻게 된 운명을 타고 났는지 아무리 위험한 사고를 만나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는 불가사의한 인물입니다. 대형호텔 화재 사고에서도, 무슨 폭발사고에서도, 기차 전복사고에서도 거의 모든 승객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은 어떠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살아돌아옵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픈 적 한 번 없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슬럼가에서 태어난 흑인인 엘라이자는 단백질이 제대로 합성되지 않는 치명적인 질병을 선천적으로 앓고 있었기 때문에 뼈가 대단히 약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부딪쳐도 뼈가 부러지고 다칩니다. 그래서 거의 평생동안 깁스를 하고 지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엘라이자는 자신의 그러한 운명을 한탄하다가 어느날 문뜩 자신처럼 뼈가 잘 부러지는 운명을 타고 났다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런데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건 너무나 잘 다치기 때문에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아들이 안쓰러워서 어머니가 영웅과 악당이 나오는 만화책을 선물로 준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습니다. -
그래서 기차 전복사고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데이비드에 대한 기사를 보고 데이비드와 연락해서 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만남에서 데이비드가 부숴지지 않는 몸을 가졌으며 또한 악한 사람을 알아보는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데이비드를 영웅과 동일시하게 됩니다. 자신과 같이 약한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슈퍼맨과 같은 영웅과 말입니다. 그래서 엘라이자는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데이비드을 혼란스럽게 합니다.당신은 여느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당신은 슈퍼맨과 같은 운명을 타고 난 영웅이야.
사실 두 사람 사이의 첫 대면에서 엘라이자는 데이비드가 아침에 깨어날 때마다 슬픈 상념에 젖어 든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엘라이자는 그 이유가 데이비드는 본래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운명을 타고 났는데 현재는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자꾸 데이비드에게 깨우쳐 줍니다.
처음에는 이를 귀찮게 여기던 데이비드였지만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는 비범한 힘이 잠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고 마침낸 악당을 없애는 슈퍼면으로서의 첫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그것이 신문에 나게 되고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고 집에 돌아온 날 여느 때와는 다른 기분이 된 자신을 발견한 데이비드는 비로소 엘라이자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 데이비드는 엘라이자를 친구로 여기고 엘라이자의 만화 전시회에 가게 됩니다. 거기서 데이비드는 엘라이지와 단 둘이 이야기 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엘라이자가 말합니다. 악당을 때려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웅의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여주면서 이제 시작했구먼. 응.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어떻든가? 슬픔이 사라졌어. 그것 축하할 일이네. 악수나 하세. 엘라이자와 악수를 하게 된 데이비드는 일련의 영상을 보고 소스라치듯 놀랍니다. 본래 그 사람과 접촉하거나 그 사람이 쓰던 물건에 손을 대기만 해도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 이를 사이코메트리라고 그럽니까? - 의 소유자인 데이비드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자신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모든 대형참사를 일으킨 범인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엘라이자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게 된 데이비드에게 엘라이자는 태연하게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운 게 뭔지 아나? 그건 자신이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모를 때라네. 그런 절망감을 느껴보았는가? 나는 이제야 내가 왜 태어났는지 하는 나의 정체성을 발견했다네. 자네와 나는 만화에 나오는 영웅과 악당의 구도와 공통점이 있다네. 만화를 보면 영웅과 악당이 나오네. 두 사람은 하는 일이 항상 반대지만 두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는 또 친구라네. 마치 자네와 나처람 말일세.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데이비드는 경찰에 엘라이자가 그 많은 참사의 범인임을 신고하게 되고 엘라이자는 정신병동에 수감되는 걸로 영화가 끝납니다.
줄거리를 대충은 이해하시겠죠? 그런데 이 영화는 건 선과 악, 영웅과 악당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갖추었으면서도 우리네 모듬살이에 대해서 많은 의미있는 가르침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툭하면 뼈가 부러지는 약한 몸을 갖고 태어난 아이. 어떠한 경우에도 손톱하나 다치지 않는 불가사의한 몸을 갖고 태어난 아이. 전자의 아이는 자라면서 내가 왜 이세상에 태어났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즉 어떠한 경우에도 상처를 입거나 다치지 않는 몸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서 고의로 수많은 폭발사고를 일으키는 악역을 맡게 됩니다.
그러한 고된 노력 끝에? 마침내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깨우쳐 주려고 노력합니다. 반대로 우리의 영웅은 기이하게도 악역을 맡은 이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 두 사람은 영웅이 마침내 자신의 본래의 사명을 깨닫는 후에 조우하게 됩니다. 이제 서로가 서로의 정체성을 알게 된 거죠. 물론 영웅은 자신 앞에 있는 앉아 있는 사람이 악역을 맡은 인물인지는 까맣게 모르는 채로 말이죠.
참 기묘하지 않습니까? 만일 모두가 선하다면 선한 것이 무언지를 모르게 될 겁니다. 악한 사람이 나와야 그 악인으로 인해서 비로소 사람들은 선이 뭔지를 깨치게 되겠죠. 반대로 말하면 선이라는 것도 악이 먼저 있음으로써 비로소 빛나게 됩니다. 마치 상생이라는 것도 먼저 상극이 있어야 되고, 진법이라는 것도 난법이 먼저 나와야 되듯이, 그리고 빛도 어둠이 있어야만 그 존재가치가 드러나게 되듯이 말입니다.
이리 보면 극은 단순히 남을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 생을 도와주는 의미에서의 극이다 하는 증산도의 우주관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사실 이 양자는 메비우스의 띠와 같습니다. 어디가 선이고 어디가 악인지 그 누가 판정할까요? 엄밀히 말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즉 절대악과 절대선을 판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군인이 전장에 나가서 상대방 군인을 쏴죽이면 우군에게는 영웅이 되지만, 적군에게는 원수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흔히 우리들 상제님 일꾼은 증산도의 진리는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제님의 진리도 다른 종교인들이 보면 웬수와 같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한 사람이 행한 일이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악이 되듯이 말입니다. 선과 악은 칼로 무우자르듯이 자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돌아오면 비록 썩은 칼이라도 무우를 잘라야 되겠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건진다는 대의명분은 둘째치고라도 나의 꿈, 나의 희망이 무산되어 버리니까요.
그렇게 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을 절대적으로 행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선만 행하고 살았다고 한들 그것도 자기의 기준입니다. 이 세상은 뉴에이지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저 사랑으로만 돌아가고 - 물론 궁극적으로 보면 옳은 말입니다 - 죄와 벌은 없고 선과 악도 없고 하는 그러한 속편한 세상이 아닙니다. 그건 어린 아이때나 가질법한 그러한 좀 유치한 생각입니다.
저는 우리는 이세상에 연극을 한바탕 하기 위해서 내려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공이라는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해서 이 60억 인류, 우주간의 전 신명은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 물론 세세한 부분은 그때마다 수정되겠지만 -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온 우주의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배우이자 관객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도 연극을 보러가면 참으로 열과 성을 다해 연기하는 사람과 그저그런 사람을 구별해냅니다. 그래서 전자에게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후자에게는 야유를 보냅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라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없는 무대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되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단상도 결국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연극 한편을 하더라도 조명, 배우, 각본, 소품, 관객, 배우, 연출자 등등의 많은 요소가 필요하듯이 자신이 잘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도 그것은 자신이 한 때 맡은 역할일 뿐이라는 겁니다. 결국 연극과 같이 다른 보이지 않는 무수한 사람의 조력이 없으면 결국 자신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말이 주절주절 길어졌는데 거두절미하고 결론은 그겁니다. 필자도 후천 오만년이 끝난 후에는 - 그 때까지 신명으로나 살아 있을지,후천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장담못하지만 -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만 하여튼 광막한 시공을 무대로 벌이는 연극무대에 올라온 것이니만큼 자신이 맡은 극성을 최선을 다해서 조종하는 것이 천지에 생명을 받고 난 인간의 사명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 음극과 양극이라는 두 극성이 우주에 있다면 나는 양극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 사람은 자신이 양극의 측면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음극의 측면(악역)을 맡을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그저 그때그때 주어진 역에 따라 무대 위에 오를 뿐 전체의 각본은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참으로 오묘한가 봅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엘라이자와 데이비드는 다른 각도에서 보는 한 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주를 잡아돌리는 큰 기운인 상극과 상생이 한 몸이듯이...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상극은 싫고 상생이 좋다, 선은 좋은데 악은 싫다 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우주라고 하는 이 큰 교향악단이 내는 화음에 조화를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네 개의 커다란 계절이 있는데 봄이 되면 봄의 화음에, 여름에는 여름의 화음에, 가을이 되면 가을의 화음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큰 지혜일 겁니다. 왜냐하면 항상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