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김윤재
늘 대하는 사람들이지만 어느날 문득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서는 것은 눈만 끔뻑이고 나면 저만치 가있는
세월탓이리라.
한 잔의 차를 준비해놓고 전화를 하는 친구, 가끔 오셔서
거실을 그득하게 해주셨다 가시는 시아버님, 우리집
대문앞까지 쓸어주시는 옆집 아저씨, 그냥 지나치기에는
소중한 분들인데 나는 그동안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병원에 누워 있을때는 몸만 건강해지면 모두를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다
잊고 살아가는 인생.
언제나 새로운 날처럼 살기를 다시한번 기도하며 나의
마음에 좋은 사람들을 채워본다.
1.
외벽타기보다 어렵다는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괜찮아요. 아무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막내동서 마음은 모시결 보다 곱다.
시댁에 가면 할 일이 없어도 일거리를 찾아하는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헤아리는 동서, 조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무릎이 까져도 미안하고 동서 얼굴이 조금만 까칠해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나의 작은 마음일 뿐이다.
지난 일요일 여름이면 하얀 모시옷만 입으시는 아버님 중이
적삼을 손질했다. 동서가 해놓은 풀을 먹고 나무토막처럼
말라있는 것에 물을 뿌리고 다리미를 대니 쩍 달라 붙는게
아닌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있는 나를 보며 “그냥 두세요.
쉽지 않아요.” 동서는 웃으며 말한다.
정말 그랬다. 이리저리 결이 밀리며 불의 온도에 따라
까실거리는 촉감이 살아난다.
지난 여름 아버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옷에 구김이 가고
때가 묻어 “동서는 무엇을 하길래 아버님옷이 저래”라는
생각을 했었다. 스위치만 누르면 세탁이 되어 나오는 것밖에
모르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모시는 물을 뿌리고 애벌손질을 한 후 손으로 결을 펴가며
다림질을 해야 하고 아버님의 까다로우신 성품에는 어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나보다 훤히 알고 있는 나의 막내동서
홍아. 그녀를 시골에 두고 돌아오는 맏며느리는 언제나
뒷덜미가 오그라든다.
2.
감나무에 찾아온 이름모를 새 한마리. 참새보다 조금
크고 갈색과 노란 털을 입은 새는 날아 다니며 빠르기가
보통이 아니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면 어느사이 포로롱 날아가 버린다.
참새보다 고운 소리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텅빈 집에
홀로 있는 나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우리집을 떠나지 말고 자주 날아오라며 한줌의 쌀을 뿌려
놓고 학교에 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한다.
3.
묻어나는 그리움을 함께 하고 싶은 당신께!
“영원한 소녀로 머물러 있을 당신 삶은 지난 여름 우리앞에
있었던 이슬처럼 맑고 빛날 것입니다.”
곱게 포장된 책속에 적혀있는 메모를 보는 내 마음은
콩새마냥 가슴이 뛴다. 내가 게으름을 피우려 할 때마다
어찌 알고 책을 사서 보내주는 은희씨의 마음은 아침이슬보다
영롱하다.
내게 무슨 복인지...
선물포장도 언제나 남다르다. 한지마 마로 곱게 포장을
하여 보내주는 그 마음은 분홍빛 갑사저고리.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상자가 손반위에서 나를 보며 웃는다.
4.
목관 악기중에서도 플롯을 연상시키는 형님에게서는 늘
지혜의 향기가 묻어난다.
세수를 막 끝낸 비누향기처럼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
때로는 풀잎에서 나는 싱그러움으로 가슴을 편안하게 한다.
비오는 날에는 요한스트라우스의 왈츠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눈이라도 내려 내 마음이 들떠 있으면 베토벤의
운명으로 눌러주신다..
늘 같은 방법으로 커피를 끓여드리는데도 “오늘은 왜
이렇게 커피맛이 좋지?"하며 나를 기쁘게 해주시는 멋있는
마음. 아이들 교육이나 경제문제를 이야기하시면 형님을
국회로 보내드리고 싶다.
하루도 뵙지 못하면 허전한 형님. 그 분을 뵐때마다 나는
형님의 향기를 조금씩 훔쳐 바른다.
5.
최전방에서 군종 노릇을 하던 모습이 대견하던 청년.
무더운 여름날 면희를 간 내게 몇천원 타는 월급으로 먹을
것을 사오며 기뻐하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아들처럼 걱정을 하여주고 기타를
키며 불러주는 찬양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르게 자란 청년, 무슨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며 정직한 사람, 나이에 맞지 않게 속이 깊은 젊은이.
그를 보면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인표를 만나는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6.
비오는 날 신발에 흙을 묻혀 그대로 신발장에 넣어
두었는데 어느날 신으려고 보니 깨끗이 닦여 있다. 평소에
나지 않던 광까지 나는 것을 보니 소희가 한일이 분명하다.
“누가 내 구두 닦았니?”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씩 웃고
만다.
어쩌다 몸이 피곤하여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것도
못보고 잠을 자면 도시락을 씻어놓고 나의 이마를 살며시
만져보고 나간다.
일년에 몇번씩 부리는 성격은 나를 닮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지아버지를 빼어 닮은 소희. 그 앞에서 나는 늘
부족한 어미임을 느낀다.
7.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가저 볼 수 있을까.
싸리비를 들고 살금살금 잠자리를 쫓다가 넘어졌던 애.
무릎이 아팠을 텐데도 얼른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던 아이. 얼굴이 빨갛게 익으면 몇마리의 잠자리를 내앞에
내밀었다. “싫어”하고 돌아서면 “너 주려고 잡았는데..” 하며
멋적은 듯이 얼굴을 문지르면 땟국물이 얼굴에 줄을 그었다.
가을 소풍을 갔을 때 다가와 건네준 삶은 계란을 먹지도 않고
나무뒤에 숨겨 두었던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난번 동창회 모임에 그가 나왔다.
산꼭대기 높은 곳에서 햇살을 받고 자라는 나무도 등은
굽을 수있고, 산골짜기 낮은 곳에서 자란 나무도 가슴을 펴고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듯이 그는 어려운
환경을 잘 견뎌내고 의젓한 중년의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어린시절 땟국물 흐르던 얼굴엔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번번히 거절하게 되는데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다.
"미안해”라고.
8.
여름날 우물가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의해 목욕을 해야만 한다. 펌프물로 퍼올린
차가운 물줄기가 몸에 닿을 때면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언니가 먼저 목욕을 하는 동안 추위를
느끼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샘가에 앉아 있었던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다.
목욕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커다란 그릇에 수박 화채를
만들어 주셨다. 까만 씨가 둥둥 떠 있으면 그것을 골라 내는
동안 언니는 맛나게 먹어 치우곤 했다. 그래도 몇 개 먹은
씨앗이 뱃속에서 자란다는 언니의 놀림을 받으며 밤새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던 여름밤. 한번도 언니보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언니의 속임수에 매번
골탕을 당했지만 그래도 그리운 그시절.
그랬던 언니는 지금도 내 울타리밖을 서성이며 나의 생활을
지켜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지켜주셨던 것처럼.... 나는
지금도 언니 하고 생각만 하여도 괜스리 눈물샘이
뜨거워진다.
9.
밤새 심한 비바람이 불어 뜰에 심어 놓은 고추 가지가 부러
졌을 거라는 생각을하고 나와보니 의젓하게 서있다. 나를
보며 씽긋 웃기라도 하듯 싱싱한 모습을 들여다보다 나는
깜짝 놀란다. 어저께도 없던 고추대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끈을 찾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10.
멀리서 뒷짐지고 서 있다가 내가 넘어지려 하면 달려와
붙잡아 주시는 스님. 내가 짜준 털조끼가 너무나 고급스럽고
아까워 노스님께 드렸다며 미안해 하신다.
세상 만물은 나의 소유될 수 없으니 욕심부리지 말고
살아가지시며 등을 다독거려 주실 때 나는 공평한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인다. 나의 눈빛만 보아도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집어 내실때 나는 든든한 산속에 안겨있는
편안함을 맛본다.
옷과 화장품은 나의 겉사람을 치장해주지만 스님의 말씀은
나의 속내를 바르게 잡아주며 좀더 멀리 인생을 바라보게
하는 내친구 은봉스님.
가을이 깊어 갑니다.
1988.
첫댓글 멀리서 뒷짐지고 서 있다가 내가 넘어지려 하면 달려와
붙잡아 주시는 스님. 내가 짜준 털조끼가 너무나 고급스럽고
아까워 노스님께 드렸다며 미안해 하신다.
세상 만물은 나의 소유될 수 없으니 욕심부리지 말고
살아가지시며 등을 다독거려 주실 때 나는 공평한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인다. 나의 눈빛만 보아도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집어 내실때 나는 든든한 산속에 안겨있는
편안함을 맛본다.
옷과 화장품은 나의 겉사람을 치장해주지만 스님의 말씀은
나의 속내를 바르게 잡아주며 좀더 멀리 인생을 바라보게
하는 내친구 은봉스님.
가을이 깊어 갑니다.
한 잔의 차를 준비해 놓고 전화를 하는 친구, 가끔 오셔서 거실을 그득하게 해주셨다 가시는 시아버님, 우리 집 대문 앞까지 쓸어주시는 옆집 아저씨, 그냥 지나치기에는 소중한 분들인데 나는 그동안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몸만 건강해지면 모두를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다 잊고 살아가는 인생.
언제나 새로운 날처럼 살기를 다시 한번 기도하며 나의 마음에 좋은 사람들을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