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6. 가파른 오르막 없어도 광부들 고단함 느껴지는 길
기자명 유주현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3.30. 지면 18면
탄광 속 남편 무사안전 기원 도롱이연못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최초 개발 1177 갱
그 시절 광부 가족 절박함 가득 삶의 터전
우리나라 가장 높은 곳 조성 하이원 하늘길
화절령~함백산소공원 15.7㎞ 5시간 소요
4길이 과거와 미래의 만남의 길이라면 5길은 광부와 광부가족들의 애틋한 사랑의 길이다. 특히 이 길은 한국 산업 근대화에 크게 이바지한 산업전사들의 삶이 그대로 노정돼 있다. 구름이 펼쳐진 고원길도, 석탄을 실어 나르던 높은 길도 모두 석탄을 실은 트럭이 운행을 멈춘 후에 얻은 이름이다. 운탄고도는 이름만 들으면 꽤 낭만적이지만 석탄을 캐던 그 시절은 절박함이 가득했던 삶의 터전이었다.
■ 운탄고도 5길= 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
4길의 종착지점이자 5길의 시작인 화절령(花折嶺)은 사북에서 영월군 상동으로 통하는 험한 준령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진달래꽃이 만발해 절경을 이루던 곳으로, 봄에는 여인네들이 각처에서 모여들어 진달래꽃을 꺾었다고 해 ‘꽃꺼끼재’라고도 부른다. 5길은 석탄산업이 활황을 누리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로다. 사북읍과 고한읍은 지금은 폐광지역이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석탄산업을 주도하던 지역이었다. 지역이 넓지 않아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에 땅이 부족, 산비탈에 판잣집이나 다름없는 집들이 지어졌다.
옛날 탄광촌 시절에는 이웃집과 합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야만 할 정도로 주거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나 광부가족들의 교육열은 그 어느 곳보다 높았다. 대부분 아이들을 대도시로 유학보냈다고 한다. 폐광이후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 하이원스키장 등이 들어섰다. 화절령 근처 도롱이 연못에 얽힌 이야기는 마음을 짠하게 한다. 광부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게 도롱이 연못이라면 뒤이어 마주치게 되는 1177갱은 동원탄좌의 광부들이 막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며 도롱뇽을 발견하면 무사고의 표시로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우리 아빠 굴속에서 나올 때쯤 되면/우리 엄마 앉았다 일어섰다/ 가만있지를 못합니다/…/해 저물어 저만큼 캄캄한 굴속에서/ 새까만 얼굴의 광부 아저씨들이 나오면/…/ 우리 엄마 나를 꼭 껴안고 길게 한숨을 쉽니다”
(화절령에 조성된 김남주 시인의 ‘검은 눈물’ 시)
이 곳에는 하이원리조트가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 트레킹 코스인 하늘길도 조성돼 있다. 도롱이연못을 조금지나면 민영탄광으로 최대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인 1177갱도가 있다. 고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된 의미있는 갱도다. 이 갱이 개발되면서 화절령 주변에 약 10곳의 군소탄광이 생겨났고, 채탄된 석탄은 트럭으로 인근 함백역으로 운송됐다. 이때 만들어진 길이 지금의 운탄고도다. 당시 탄광을 개발하면서 나온 침출수를 정화시켜주는 시설도 존재한다.
함백산소공원 만항재로 이동하는 길은 평온하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험한 바윗길은 없다. 점점 정암풍력발전단지가 위치한 만항재로 접어들수록 풍력발전기의 위용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고한읍 일원 해발 1400m 고지대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는 2.3㎽급 풍력발전기 14기로 총 32.2㎽의 발전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운탄고도 5길의 종착지점인 함백산소공원이 지척임을 미리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운탄고도 5길은 화절령에서 출발, 도롱이연못~1177갱~운탄고도쉼터~하이원CC갈림길~약수터~만항재~함백산소공원까지 15.70㎞ 구간으로, 소요시간만 5시간15분이다.
■ 5길 주변의 명소들
△ 도롱이 연못
1970년대 탄광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이다. 이곳에는 도롱뇽이 서식하고 있다. 화절령 일대에서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연못에 살고 있던 도롱뇽에게 오고 가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일찍 위험을 감지한 도롱뇽이 사라지면 연못의 물이 얼마 후 땅속으로 들어갈 테고, 그러면 갱도가 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광부의 아내들은 생각했다. 그 기도들이 모이고 모여 도롱이 연못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연못은 고라니, 산토끼,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샘터이고 특히 봄철에는 도롱뇽이 알을 낳는 곳이기도 하다. 연못 주변의 낙엽송 숲에서 피어나는 야생화들은 그 시절 광부의 아내들을 닮아 수수하기 이를 데 없다.
△ 하늘길
하이원리조트 일대에 조성되어 있는 트레킹 코스다.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 길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자 일상생활의 필수품과도 같은 석탄을 캐내 기차역까지 실어 나르던 운반도로와 백운산 주변의 산책로를 다시 잘 탐사해 나이든 어른과 아이들도 함께 걷기 좋게 정비한 길이다. 해발 1200m 고원에 위치한 천혜의 자연 생태환경과 이제는 잊혀가는 옛 탄광의 자취를 느린 걸음 속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하이원 하늘길은 봄부터 가을까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350종의 야생화가 능선의 트레킹 코스를 따라 군락지어 피어나는 천상의 야생화 화원으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반긴다.
△ 1177갱 입구
1177갱은 민영탄광으로 최대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로 고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된 의미있는 갱도이다. 이 갱이 개발되면서 화절령 주변에 약 10여곳의 군소탄광이 생겨났으며 채탄된 석탄은 트럭으로 인근 함백역까지 운송됐다. 이때 만들어진 길이 지금의 운탄고도다. 2015년 12월 강원랜드에서는 이 길이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체험교육장으로 활용되길 기대하며 산림청의 협조를 얻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이 갱의 일부를 원형 복원했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7. 막장의 땀·눈물 스민 땅, 야생화 뒤덮인 천상의 화원으로
기자명 유주현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4.06. 지면 20면
7. 운탄고도 1330 길 만항재
정선 고한읍 함백산 자락 위치한 만항재
운탄고도 통해 석탄 나르던 트럭 이동로
1962년 국토건설단 부랑아 등 강제 징집
고원 산길 40㎞ 삽·곡괭이로 길 만들어
애환 서린 야생화 군락 봄·여름 환상적
매년 8월 숲 속 힐링체험 등 야생화축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소원을 빌었던 곳이 있다. 바로 정선 고한읍 고한리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만항재가 그 곳이다. 해발고도 1330m 로, 한국에서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고려말 또는 조선초 개풍군 광덕면에 위치한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서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 만항재로 불리고 있다. ‘운탄고도 1330’은 바로 만항재의 높이로, 이주 주민의 역사와 탄광지역 주민들의 삶의 노정이 깃든 장소이자 운탄고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 운탄고도의 시발점 ‘만항재’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으로 불린다. 봄부터 여름까지 다양한 야생화가 만항재를 뒤덮기 때문이다. 해발고도가 높아 야생화가 늦게 꽃을 피우지만 화려함은 그 어떤 야생화 군락지보다 빼어나다. 고원 함백산야생화축제위원회는 해마다 8월 중에 야생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함백산 산신제를 시작으로 숲속 힐링체험, 정암사 산사음악회, 자장율사 순례길 탐방, 고한 골목길정원박람회 등 만항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만항재는 생태산업유산 탐방로인 광부의 길과 새비재길, 즉 운탄고도의 시작점이다. 만항재를 시작으로 혜선사~하이원CC~화절령 사거리~새비재~타임캡슐공원~안경다리마을~함백역~자미원역~민둥산역~사북읍~고한읍~정암사~삼탄아트마인~만항야생화마을을 거쳐 다시 만항재로 이어진다. 이 구간은 운탄고도를 통해 석탄을 나르던 트럭의 이동로이다. 석탄산업이 활황세일 당시 트럭은 하루 삼교대로 캐낸 석탄을 싣고 동쪽 만항재에서 올라와 정암산, 백운산, 두이봉, 질운산 산허리를 지나 새비재에 이르러서야 함백역으로 향했다. 이 도로는 하루에도 수백 대의 트럭이 오가며 검은 먼지를 날리던 길이었다.
운탄고도에 얽힌 이야기는 낭만적이지만 만들어진 과정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운탄고도는 1962년 국토건설본부를 개편해 발족한 국토건설단에서 개설했다. 국토건설단은 불량배나 부랑아들을 강제 징집해 군대식 편제와 규율 아래 노역을 시키는 형식으로 운영됐다. 운탄고도는 그 시절에 조성됐다. 정선지역에 산재해 있는 300여개의 탄광에서 역까지 석탄을 실어 날라야 하는데 산중에 제대로 된 길이 없었다.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평균 해발고도 1100m의 고원 산길 40㎞가 넘는 구간을 2000여명이 삽과 곡괭이 만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로 만들었다. 또한 1948년부터 2004년까지 정선의 88개 석탄광과 지하 막장에서 목숨 걸고 일했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도 운탄고도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지난 시절 국토건설단의 땀과 눈물 위로 검은 먼지를 날리며 트럭들이 오갔던 운탄고도는 구름이 머무는 아름다운 길, 사람들이 찾아와 쉼을 얻는 치유의 길, 과거의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넘었던 고난의 길이었다는 것을 운탄고도는 기억할 것이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향기를 뿜어 낼 때마다. 신동읍 새비재에서 고한읍 만항재까지 24㎞의 운탄고도는 자전거 여행자들의 힐링 코스로도 주목받고 있다.
운탄고도 만항재 주변 명소들
△ 함백산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소도동에 걸친 높이 1573m의 산이다. 금대봉(1418m)과 대덕산(1307m)으로 둘러싸여 있다. 1993년 환경부가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함백산은 황지의 진산으로 알려진 산이다. 야생화 군락지로 유명하며, 정상에 서면 백두대간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 동해바다 해돋이도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주목 군락이 형성돼 있다.
△ 정암사
신라시대의 천년고찰이다. 신라의 고승인 자장율사가 태백산에 석남원을 세운 뒤 그곳에서 입적했는데, 마지막 생애를 보낸 태백산의 석남원이 지금의 정암사다. 자장율사가 절을 다 짓고 난 뒤에 자신이 갖고 있던 주장자(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이 주장자가 다시 살아나 큰 나무로 자라 지금 정암사 적멸보궁 앞에 서 있는 주목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경내에는 국보 제332호인 수마노탑이 있다. 높이 9m. 석탑은 정암사 적멸보궁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평평한 대지를 만들고 석탑을 세웠다. 벽돌처럼 돌을 다듬어 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 삼탄아트마인
1962년 고한읍에 설립된 삼척탄좌는 국내에서 가장 큰 민영탄광으로 유명했다. 1988년 석탄산업합리화법이 제정되고 2001년 삼척탄좌는 폐광했다. 삼척탄좌가 문을 닫은 자리에 2011년 들어선 것이 대한민국 문화예술광산 1호인 정선삼탄아트마인이다. 삼척탄좌를 의미하는 삼탄과 예술을 의미하는 아트, 그리고 광산을 의미하는 마인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이곳에는 과거 탄부들이 석탄을 캐던 탄광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또한 삼척탄좌로 사용됐던 장소들을 활용해 예술전시장을 꾸몄다.
△ 마을호텔 18번가
고한읍 고한리에 들어선 우리나라 최초의 마을호텔이다. 호텔 주인은 마을주민이다. 기존 호텔이 고층 건물 안에 객실과 레스토랑, 편의시설 등이 층별로 자리한다면, 고한 18번가 마을호텔은 마을골목이 호텔의 로비이다. 골목은 지역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고 주민들이 LED야생화를 만들어 배치해 마치 동화 속 같다. 객실은 마을의 빈 가게를 개조해 꾸몄다. 더블침대와 싱글침대를 갖춘 꽃방, 싱글침대를 갖춘 빛방, 온돌방인 별방으로 이뤄져 있다.
운탄고도5길 [꽃꺼끼재~함백산 소공원(만항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