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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 강 동쪽에 자리 잡은 지파들
신 3:12-22
12 그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 아르논 골짜기 곁의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고
13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였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부르더니
14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까지의 아르곱 온 지방을 점령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이 바산을 오늘날까지 하봇야일이라 불러오느니라)
15 내가 마길에게 길르앗을 주었고
16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길르앗에서부터 아르논 골짜기까지 주었으되 그 골짜기의 중앙으로 지역을 정하였으니 곧 암몬 자손의 지역 얍복 강까지며
17 또는 아라바와 요단과 그 지역이요 긴네렛에서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 비스가 산기슭에 이르기까지의 동쪽 지역이니라
18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19 너희에게 가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
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쪽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21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신 3:12-22 / [요단강 동쪽 땅의 분배] 그때에 우리는 요단강 동쪽에 있는 두 왕의 나라를 빼앗았으며 나는 아르논 강변의 아로엘 성읍에서부터 북쪽으로 펼쳐진 지역과 길르앗 산지의 절반과 그곳의 성읍들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13) 길르앗 산지의 나머지 절반과 옥이 다스리던 바산의 전지역, 곧 아르곱 전지역은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바산은 라파 거인족의 땅이라고도 불렸다. 14) 므낫세 지파의 야일이 ㄱ) 그술 족속과 마아가 족속의 국경선에 이르기까지 아르곱 전지역을 차지하고 그 바산의 전지역을 자기의 이름을 따라 `야일의 천막촌들'이라는 뜻으로 하봇야일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지역은 오늘날에도 그렇게 불린다.) (ㄱ. 그술과 마아가 족속은 둘 다 아람 족속이다) 15) 길르앗 지역은 내가 므낫세 지파의 마길 집안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16) 거기서부터 남쪽으로 아르논강까지의 전지역은 내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주었는데 아르논강의 중앙에서 북쪽으로 얍복강에 이르는 곳을 암몬 족속과의 경계선으로 정해 주었습니다. 17) ㄴ) 긴네렛 호수와 요단 사해 사이의 요단강이 서쪽 경계선이 되고 요단강 끝에서 동쪽으로 ㄷ) 비스가산의 산기슭이 시작되는 곳에서 동쪽으로 암몬 족속의 경계선에 이르는 곳이 갓과 르우벤 두 지파의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ㄴ. 갈릴리 호수. ㄷ. 느보산) 18) 그때에 내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렇게 명령하였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용사들은 무장을 하고 다른 지파들의 맨 앞에 서서 요단강을 건너가십시오. 싸울 수 있는 남자는 모두 나서야 합니다. 19) 오직 여인들과 어린아이들과 가축들만 내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나누어 준 성읍들에 머무르십시오. 여러분에게 가축이 많다는 것은 나도 압니다. 20)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형제인 다른 지파들에게도 요단강의 서편에 땅을 주어 여러분처럼 편히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도 다시 내가 나누어 준 이 땅으로 건너와서 각자 자신의 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21) 그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는 이렇게 명령하였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하신 일을 네가 직접 다 보았다. 네가 이제 이 백성을 이끌고 들어갈 요단강의 건너편에서도 그 땅의 모든 왕들에게 여호와께서 그와 똑같이 하실 것이다. 22)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 땅을 분배받지만, 가나안 정복을 위해 선봉에 서라는 모세의 명령을 듣습니다.
요단 동편 땅 분배(12-17) 이스라엘이 약속받은 땅은 요단 서편입니다. 그러나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물리친 후 두 지파 반인 르우벤, 갓, 므낫세가 분배받습니다. 정복한 땅 가운데 남부지역은 목축하기에 좋은 땅으로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차지합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에게 심히 많은 가축이 있었기에 그들이 모세에게 이 땅을 요구했습니다(민 32:1-5). 요단 동편의 땅 중에 북쪽의 반은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했습니다. 이곳은 바산의 중심인 아르곱 온 지방이 포함되며, 정복되기 전까지는 르바임의 땅으로 불렸습니다. 모세가 이 땅을 므낫세 반 지파에게 준 이유가 있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바산 왕 옥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야일은 이 땅을 하봇야일 곧 야일의 고을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또한 므낫세 지파의 족장 마길도 아모리인을 쫒아내는데 공을 세워 모세로부터 그 땅을 얻었습니다(민 32:39-40). 믿음으로 충성하는 자는 그에 따른 상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의 명령(18-20) 두 지파 반이 먼저 요단 동편을 분배받으므로 자칫 이스라엘의 단합이 깨질 수 있었습니다.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에 남아있다면, 요단 서편을 정복해야 할 아홉 지파 반은 힘이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모세는 두 지파 반에게 명령합니다. 요단 동편에 처자와 가축을 머무르게 하되 남자들은 모두 무장한 채 선봉에 서고, 가나안을 완전 정복한 후에 복귀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다른 지파들을 형제라고 칭하며 공동체 의식을 고조시킵니다. 거룩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은 보상보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두 지파 반은 모세의 명령대로 선봉에 서서 그들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복귀합니다(수 22:1-6).
두려워하지 말라(21-22)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자신의 퇴장을 위한 준비로 보입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 정복을 이끌 것입니다. 모세는 요단 동편 아모리의 두 왕의 멸망 사례가 앞으로 요단 서편 가나안 족속의 멸망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당신은 무슨 일을 할 때 보상을 먼저 생각합니까 아니면 책임을 먼저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할 때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다가 경제적으로 조금 윤택해지면 거기에 안주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잊게 됩니다. 이렇게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며 계속해서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설 교 >
하나님의 싸움에 선봉이 되라
신 3:12-22 / 코너스톤장로교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요단 서편에 있는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이스라에 백성은 요단 동편에 있는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모세는 이 땅을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줍니다. 이 지파들이 모세에게 요단 동편의 땅을 달라고 직접 요청했던 것인데, 그 이유는 요단 동편 땅이 목축하기에 좋은 땅이었고, 이 지파는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을 차지하게 되고, 나머지 아홉지파 반이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처럼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요단 동편의 좋은 땅을 받았으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장하여 아직 기업을 얻지 못한 나머지 아홉지파 반 사람들을 위하여 선봉에 서서 싸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18절 입니다. “(신 3:18) 그 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하나님은 요단 동편을 차지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의 공동체로서 앞으로 요단 서편을 정복해야 하는 이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먼저 기업을 받은 지파들이 다른 지파들이 차지해야 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선봉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하나되는 것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20절 말씀을 한 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지파들이 안식을 얻은 것과 같이, 그들의 형제들도 안식을 얻도록 솔선수범하여 힘쓰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변 이웃들을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나 혼자 하나님 믿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된 안식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만 편안하면 그만’이란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형제들의 필요나 고통을 외면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돌볼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들을 섬기며 나눠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두 지파 반 사람들은 이스라엘 다른 형제 지파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기업을 얻을 때까지 돕고, 그 일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천국 기업을 차지한 자들 입니다. 우리들도 먼저 기업을 차지한 자들로서, 아직 천국 기업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천국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택하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의 기업을 얻게 도와줄 책임이 있습니다. 요단 동편 땅을 먼저 기업으로 차지한 두 지파 반이 가나안 정복에 선봉에 선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먼저 차지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일에 선봉에 서야 합니다.
먼저 기업을 얻은 자의 사명
신 3:12-22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족속에 속한 두 나라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줄 것이니 이제 그들과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다.
그 전에 이스라엘의 형제인 에돔과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에게 주신 모암과 암몬의 땅은 이스라엘에게 주지 않았고 오직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의 땅은 손도 대지 말라고 명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에돔 모압 그리고 암몬의 땅을 지날 때는 우회해서 지났지만 하나님이 차지하라고 허락하신 두 나라인 헤스본과 바산은 그들과 싸워서 승리하여 차지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요단 동편에서 이 두 나라를 그들에게 주신 이유는 천하 만민으로 그들을 두려워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신 2: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제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의 두 나라를 차지하고 모세를 통하여 그 땅을 분배 받는다.
아르논 골짜기 곁의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의 절반고 그 성읍들을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다(12절).
길르앗의 남은 땅과 바산 왕 옥의 나라였던 아르곱 온 지방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다(13절).
원래 바산을 옛날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불렀는데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까지 아르곱 지방을 다 점령해서 자기의 이름으로 이 바산을 그 당시까지 하봇야일이라고 불렀다(14절).
한편 모세는 므낫세의 아들인 마길, 곧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요단 동편의 위쪽 지방을 주었고 르우벤과 갓 자손에게는 아래쪽 지방을 분배하였다(15-17절).
이처럼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먼저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분배 받았다(18a).
그로 인하여 모세는 이처럼 먼저 기업을 분배 받은 지파에게 명령하였다(18b).
하나님께서 너희 지파들에게 요단 동편을 먼저 기업으로 주셨으므로 너희 군인들은 무장을 하고 너희 형제들이 요단 서편에서 기업을 차지할 때까지 먼저 앞장서서 들어가서 그 땅을 점령할 것이다(18절).
물론 너희들에게 가축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너희의 가족들과 가축은 이곳 요단 동편의 너희 기업에 머무르되 너희는 먼저 앞장서서 요단 서편으로 가서 그 땅을 점령하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안식을 주심과 같이 너희 형제들에게도 안식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 일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 너희에게 주신 기업인 이곳 요단 동편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해서 그의 마음을 담대하도록 격려하였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ㅇ에게 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않느냐?
이제 요단을 건너 들어가는 서쪽의 땅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과 대적하여 싸워라.
그러면 네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의 반 지파는 생각지도 못하게 요단 동편에서 풍성한 목초지를 기업으로 얻게 되었다.
그들은 이 목초지가 필요했는데 이는 그들에게 가축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들은 다른 형제 지파에 비해서 먼저 기업을 분배 받았다.
그것으로 그들은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마음도 훨씬 가벼웠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너희들이 비록 이곳에서 먼저 기업을 받았지만, 대신 너희 장정들은 무장을 하고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앞서 요단을 건너 서쪽의 땅을 점령하여 그 땅을 다 차지한 다음에 너희들에게 준 이 기업을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 때 이들은 병행 본문인 민수기 32:17절 이하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민 32:17-19)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신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해석 된다.
구약의 전쟁사는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약의 모형과 그림자이며 신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 실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에 하나님의 아들로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태어나셨다(요 5:26).
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창세전에 언약을 맺으셨는데 사람을 만들어서 그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는 창세전 언약이었다(딛 1:2).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시기로 이미 창세전에 작정되셨다(벧전 1:20).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정확하게 이 세상에 오셨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잇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창세전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사셨다(요 15:10).
그런데 그 아들이 거기에 머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고자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계명에 복종하신 것이다.
영생은 아들 안의 생명이며 또한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는 영적인 실재이다.
아담의 범죄로 시작된 우리 인간은 불의하여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죽을 아니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운명에 처하여 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약속(딛 1:2)인 영생을 주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하나님의 때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으며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지금은 하나니 우편에 계시면서 여전히 죄를 먹고 마시는 당신의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하시며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누리도록 하기 위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셨지만 거기에 머무시지 않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영생의 존재요, 그 나라의 주인이셨지만, 세상 곧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신 것이다.
그로 인하여 당신의 자리인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이런 우리 주님과 함께 나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그에 연합할 때 비로소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나아가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영광을 얻는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받는 기업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형제들이 기업을 받기까지 먼저 앞장서서 무장하고 요단을 건너 서쪽으로 들어가 싸운다.
나는 구약을 읽을 때 그저 재미있고 신나는 옛날 이야기처럼 읽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왜 하나님은 이렇게 잔인하실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나는 성경을 읽을 줄도 몰랐고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반응하는 무지의 소치였던 것이다.
그저 나의 지식과 감각적 짜릿함을 만족시켜 주는데 그쳤을 뿐이다.
이런 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 주님께서 복음으로 찾아오셨다.
그 복음을 알고 나니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내 마음과 뜻대로 성경을 보고 많이 읽은 것으로 만족하던 그 때는 이제 지나갔다.
오직 성경이 증거하는 참 복음을 나도 증거하기 위하여 지금 이곳 몽골에 있다.
내가 얻은 구원 곧 영생을 누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기쁘기에 이 기쁨을 아직 기업을 얻지 못한 형제들과 나누고자 영적 전쟁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이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영생을 얻기까지 나를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에서 우리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그가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 복음을 깨닫고 나서는 참된 영생의 사람이 되었나이다.
그는 먼저 기업을 얻은 자로서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기의 형제 곧 동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기를 원하되 심지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형제들이 구원 얻기를 원하였나이다.
오늘 이 종을 그렇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나를 주님께 드립니다.
육신적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지만, 그러나 이 복음을 전하여 형제를 살리는 일에 앞장 서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권면하였던 것처럼 두려워 떨지 않게 하소서.
사람을 두려워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주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오늘이 바로 그 날이 되게 하시어 지금 말씀으로 주님과 함께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아버지의 시간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습의 효과
신명기 3:12-22 / 조약돌묵상
오늘 본문은 모세가 요단 동편 땅인 길르앗 산지와 그 성읍들 그리고 바산지역과 그 성읍들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한 것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그 세 지파들은 먼저 땅을 차지하는 대가로 이스라엘의 선봉이 되어 싸워야 하고 전쟁이 끝나서야 돌아 올 수 있습니다. 모세는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웁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요단 동편 땅의 분배, 요단 동편 지파의 경계, 세 지파의 의무, 여호수아의 소명 등입니다.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고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였던…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 본격적으로 가나안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에 모세가 세 지파에게 우선적으로 땅을 분배한 것을 말합니다. 므낫세 지파의 아들들은 마길, 야일, 노바 등으로, 이들은 길르앗의 아모리 족속과 그리고 바산 왕 옥과 싸울 때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모세는 그 공을 인정해 마길에게는 길르앗의 절반 땅을, 야일에게는 바산의 땅을 분할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를 기념해 야일은 바산의 땅을 자기이름을 따 ‘하봇야일’(야일의 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부터 므낫세 지파는 양분되어, 반 지파는 동편 땅인 길르앗 산지와 바산의 땅에 그리고 나머지 반 지파는 요단 서편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요단 동편에 걸쳐있는 시혼 왕국을 포함한 길르앗 산지는 매우 넓은 땅입니다. 그래서 그 땅의 절반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분배된 것입니다. 민수기에 따르면 세 지파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길르앗 산지는 고원지대이지만 땅이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목축업을 하는 이스라엘로서는 당연히 탐이 나는 땅입니다. 특별히 르으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는 가축 떼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더구나 이 지파들은 행군 시 같은 진에 속한 관계로 쉽게 뜻이 모아졌습니다. 먼저 그 땅들을 찜 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모세와 제사장과 회중대표들을 찾아갔습니다.
당연히 모세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매우 이기적인 것으로, 가나안 전쟁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이스라엘 12지파간의 결속과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키고 아울러 사기저하를 불러올 것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원해서 다음과 같이 선서했습니다. ‘우리 가족들과 가축들을 여기에 남겨 놓겠습니다. 대신 우리가 모든 전쟁에서 선봉을 서겠습니다. 이 모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식구들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모세는 쾌히 승낙했습니다. 어차피 그 땅은 어느 누군가가 관리해야 하고, 이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는데 그 땅을 지키느라고 군사들을 낭비할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선봉은 누구나 서기를 원하는 자리가 아니지요. 일석 삼조! 지도자는 조직과 조직원의 이익과 목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사람들과 바산의 거주민은 실은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 애굽의 그늘에서 나 온지 불과 40년 밖에 되지 않는 민족입니다. 이에 비하여 바산국은?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 가기도 전에 이미 그 땅에 거주하였던 족속입니다. 국력으로 비교가 되겠습니까? 전술이나 무기로 상대가 되겠습니까? 이런 군대가 공격을 해 온 것입니다. 바산왕 옥은 모든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와서 에드레이에서 이스라엘과 한 판 전쟁을 벌였습니다. 에드레이는 바산 왕국의 두 번째 수도로 홈 그라운드입니다. 결과는 불 보듯 훤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 시혼과 전쟁을 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서진해야 하는데, 북진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예습을 하게 되면 공부가 쉬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듯이 확실하게 정복전쟁을 예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전의 헤스본 왕 시혼으로는 안됩니다. 한 번 더 연습해야 미련한 이스라엘이 알아 들을 것 같아서 입니다. 두 번째 예습대상이 바로 바산의 거인 왕 옥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듯한 전쟁, 그만 바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골리앗과 소년 다윗의 싸움, 그만 골리앗이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이없게도 바산 왕국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서진이 아니라 북진을 시키신 하나님의 그런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골란고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67년 6월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신명기 3장, 본문의 배경 바산국의 자리입니다. 모세는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부릅니다. 헤스본 왕과 바산의 왕의 최후가 있고 나서의 일입니다. ‘이 두 왕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너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다. 이제 주님께서는 네가 치르는 모든 전쟁에도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너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다.
멘토는 멘티가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입니다. 두 왕의 사건은 멘토인 모세가 멘티인 여호수아에게 실전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그것도 시청각으로 말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전초전은 바로 그것 때문에 한 것입니다. 바산왕 옥의 최후를 여호수아는 어떤 시각으로 목도하였을까요? 이제 가나안에 들어갈 동반자는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님입니다. ‘주님과 함께 떠나라! 나는 여기까지이다.’ 멘토의 역할은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리고 무덤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꼭 잡아야 할 손은 주님의 손입니다. 그 손의 도움이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여 그들로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자 예습을 두 번이나 시켰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이모저모 인도하실 것입니다.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은혜와 긍휼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보았거니와
신 3:12-22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보았거니와
요단강 동편 땅에서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나안을 향해 오면서, 이스라엘 친척 지파들과는 전쟁을 하지 않음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땅이 아니면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요. 반대로 시혼 왕과 옥 왕과의 전쟁을 하게 됨으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하나님의 은혜로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단강 동편의 땅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에 차지할 수 있는 땅입니다.
오늘 본문 13절 하바절부터 14절을 보면 므낫세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바산이라는 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가 차지한 바산 이라는 땅은 원래 르바임의 땅이었다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르바임은 이전에 2:11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거인, 장대한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이죠. 므낫세 지파가 차지한 바산 이라는 땅도 원래는 거인들의 땅이었는데,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된 것이죠.
또한 그 땅을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야일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어서, 하봇야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됩니다. 하봇은 ~의 땅이라는 뜻으로 하봇야일은 야일의 땅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14절에 오늘날까지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 ‘오늘날까지’라는 말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성경이 시대를 거쳐 가면서 이스라엘 후손들이 오늘날로 말하면 각주처럼 설명을 부가적으로 적은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데요. 분명한 것은 이것이 언제 붙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봇야일이라는 지명은 신명기 후에 여호수아를 지나서 사사기 10장에서 사사 야일에 이야기에도 등장하고요. 더 후에는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에, 솔로몬이 열두 지방 관장을 임명하는데, 그 때에 벤게벨이라는 사람이 이 하봇야일지방의 관장이었다는 언급이 열왕기상 4장에 등장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요단 동편을 점령하는 것은 그때의 당장의 일이었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그저 그 시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그 땅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그치지 않으셨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당장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은혜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미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과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을 계획하신 그 완벽하신 계획과 전능하신 능력을 우리가 믿기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오늘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게 하실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실현될 구원의 완성과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인 것이죠.
이렇게 지나가듯 적혀있는 작은 지명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과 그 후에 이 땅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끊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들인 것이죠.
그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18절에서 모세가 재차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요단강 동편을 차지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받은 지파들에게 요단강을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차지하게 될 때에 선봉에 서서 정복 전쟁을 이끌어가라고 모세가 명령합니다.
그 후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지금까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전에 말씀 드렸듯이, 요단 동편에서 헤브론 왕 시온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의 승리는 앞으로 있을 가나안 땅의 전쟁에서의 승리와 정복에 대한 확신을 주는 사건이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성취하면서, 그것이 비록 미래의 일이라도, 이스라엘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다 알 수 없고, 미래의 일을 볼 수 없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 하신 것을 통하여 미래의 일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400년을 노예로 살다가 40년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으며 살았어도, 가나안을 전쟁을 통해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매일 세상 유혹과 죄와의 영적 전쟁의 순간입니다. 그 삶이 때로 버겁고 힘겨워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의 약속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오늘의 삶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며, 이 땅에서의 오늘의 삶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것들에 소망을 두시며, 그 약속을 신뢰함으로 하루를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공동체 사명이 곧 나의 사명입니다
신명기 3:12-22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왜 요단 동편 땅을 요구했나요?
최고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데 당장의 편리와 이익 때문에 그보다 못한 선택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요단 동편의 길르앗 땅은 본래 하나님이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이 아닙니다. 훗날 이곳도 ‘확장된 약속의 땅’ 범위에 포함되긴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원래 약속의 땅은 요단 서편이었습니다. 요단 동편은 넓은 목초지를 이루고 있었기에 가축이 많은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가 그 땅을 탐냈습니다(19절; 민 32:1). 그들은 다른 지파와 협상 끝에 요단 동편 길르앗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약속이 땅이 아닌 땅을 얻은 지파들의 미래는 순탄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이방 민족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장 좋은 선물을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장 좋은 선물을 받기 위해 공동체와 내가 인내할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물이 얼마나 좋은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이 땅의 자원과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아직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땅의 자원과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자원과 능력을 받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원과 능력은 이 땅의 자원과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강력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자원과 능력을 받아 쓸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 14:14)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시선을 우리 냉장고 안에만, 우리 은행 어카운트 안에만,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만 두지 말고 예수님께 두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이미 이 땅에 임하여 시작되었고,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면서 그 나라의 자원과 능력을 받아 쓸 수 있습니다. 믿고 구하십시오.
요단 동편을 먼저 기업으로 받은 지판들은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행동했나요?
언약 백성은 공동체 전체의 사명을 이루기까지 합력해야 합니다. 비옥한 요단 동편 땅을 먼저 분배받은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그 땅에 안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질책에 그들은 약속의 땅 정복 전쟁에서 위험한 선봉대 역할을 맡겠노라 자청했습니다(민 32장). 그리고 모든 정복 전쟁이 끝난 후에 요단 동편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전체 공동체를 위해 책임감 있게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것은 정복 전쟁의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흩어진 마음과 이기적인 행동으로는 약속의 땅 전체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항상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언약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 혼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머리, 나의 주님, 나의 왕이 형제자매들이 나의 한 몸 된 지체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나와 형제자매들이 공동운명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몸 된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표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지체된 형제자매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것은 곧 몸으로 연결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며, 섬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으로 섬기는 일은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을 돕는 일인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의 자원과 능력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자원과 능력으로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이루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지체들로서 주님의 말씀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게 해 주세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은 태도를 버리고 서로를 생각하며 돌볼 수 있는 마음을 힘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