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집사람의 고향이 정읍시 이평이다. 친인척들이 아직 기거하고 있고 선산도 있다. 처가에서 매년 봄에 빙문행사를 치루는데, 나도 참여했다.
행사를 마치고,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인 이평, 덕천, 고부, 영원 일대를 둘러 봤다. 정읍은 근대민중이 출현한 고장이다.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저항한 형태로 그 실체를 드러냈지만,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 본 민중이 드디어 사회혁명의 첫발을 디딘 곳이 정읍이다. 한반도에 수천년간 면면히 살아 온 민중의 한과 열망이 민중의식을 자각하고 사회변동의 힘으로 전환시킨 사건이 정읍 이평에서 시작됐다.
지금의 정읍시 이평면사무소앞 사거리 말목장터는 동학농민혁명의 최초 집결지이고, 사발통문 거사계획이 실현된 현장이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의 지휘아래 수천의 민중이 고부관아를 점령한 고부농민봉기(1894년 1월 10일)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말목장터는 고부 봉기와 무장기포, 백산대회로 이어지는 동학농민혁명의 출발지가 되었다.

애초에 1박을 하며 변산반도 일대까지 관광하기로 했는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서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서울로 급히 올라 왔다. 부안댐에서 청정공기를 실컷 쐬고, 새만금을 달려 서천의 홍원항에 들렀다. 짠내가 코를 후벼 팠다. 회와 매운탕을 곁들여 한잔 하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5월 18일
예정대로라면, 정읍에서 광주로 이동해야 했는데, 어그러졌으므로 급히 학규마을 교통편에 편승했다. 이틀간 약을 끊었더니 봄철이면 겪는 꽃가루알레르기가 다시 도져 매우 신경 쓰인다. 기흥휴게소에 도착해 엘레느님께서 정성껏 준비한 웰빙음식을 배불리 먹고 뜻뜻한 원두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조금은 덜했다.
5월의 신록은 눈에 담아도 담아도 끝없이 펼쳐져 있고, 산하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 났다. 한창 농번기라 모내기를 마친 데에도 꽤 되었다. 보이는 천사님, 무진장님, 엘레느님, 시나(미디어윌)님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며 한참 달리다 보니 벌써 광주다.
점심 무렵이라 엘레느님의 안내를 받아 방앗간 보양탕집으로 갔다. 울산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한 보물님도 합류했다. 원래 방앗간을 식당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라 운치도 있었지만 오리 보양탕 전문식당답게 맛도 일품이었다. 오리보양탕을 맛있게 먹고 나서 국립 5.18민주묘지로 출발하기전, 동갑네끼리 기념했다.

5.18 광주 민주항쟁하면, 살육당한 시민들이 떠올려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가려져 있을 때지만, TV에 나오는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서슬은 시퍼렇게 감지됐다. 기숙사에는 전국 각지, 각급 계층 출신들이 모두 모여 있으므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우리들끼리 하는 얘기로는 전두환을 새로운 권력자로 지목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해가 바뀌고 얼마후 언론이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그후 어느날 아침 광주출신 기숙사 룸메이트가 전화를 받고 와서 부들부들 떨며, 누나가 계엄군에 의해 난자당해 죽었다며 울부짖었다. 광주민주항쟁의 처절한 실상을 당시는 잘 몰랐으나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불안감이 밀려 왔었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군사독재 정권의 연장이 계속될 거란 판단을 했다.


국립 5.18 민주묘지의 참배를 마치고, 구례의 천은사(http://www.choneunsa.org/)로 향했다. 굽이굽이 산길이 주는 깨끗한 공기와 산골 풍광을 만끽하며 도착한 지리산 천은사는 손학규 대표님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개인적으로는 구례를 20년만에 찾아 왔다.
천은사(泉隱寺)는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절은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펼쳐지고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다.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때 덕운 조사(德雲祖師)가 창건하여 이름을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 후에 지눌(知訥)이 고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1775(영조 51)년에 다시 지었다.
절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

보물 제 1340호 천은사 괘불. 괘불은 기우제, 영산제, 예수제, 수륙제 등 사찰에 대중이 많이 모이는 큰 집회 때 야외에 모셔지는 거대한 불화이다. 평소에는 법당 뒷편의 괘불함에 보관되며, 사용시에는 옥외의 괘불대에 걸려진다. 이러한 괘불의 조성은 불교국가 일반에 보편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와 서역 등 몇몇 국가에서만 유행하였다. 지금까지 조사된 우리 나라의 괘불은 1600년대에서부터 1900년대에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70여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영남지역의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주지인 성문 스님께서 천은사를 방문한 "손학규와 함께 하는 사람들" 60여명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셨다. 그리고, 특별히 배려하여 천은사의 야생 차밭에서 채취한 작설을 발효시켜 만든 감로차를 내 주셨다. 마침 구례를 순회하던 양순조 최고위원도 합류하여 즐거운 담소시간을 가졌다. 한잔 마시고 괘불(모사본)과 함께 기념촬영했다.

천은사에는 적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천은사를 흐르는 계류가 선원 앞을 가로지르고 있다. 선방은 스님들이 반야의 보검을 가는 참선수행처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일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선원으로 들어가는 운수교 앞에서 적송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편해진다.

선원내에 들어섰다.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지만, 손 대표님의 지지자들한테는 오늘만큼은 개방되었다. 서래당은 손 대표님께서 휴식을 취한 곳인데, 서산대사 청허당 휴정스님의 계송이 현판에 새겨져 있다.
西來這一曲
千古沒人知
韻出靑霄外
風雲作子期
서래(西來)의 이 한 곡조 천고에 아는 이 없네.
그 가락은 푸른 하늘 밖으로 나가버리지만,
바람과 구름은 그 울림에 맞춰 적절히 화답한다네.
나도 한 수 읊어본다.
"님께서 머물며 심신을 비우고 새로 나신
지리산 천은사 서래당 앞에 서니,
시공은 투명하게 스쳐간다.
무수한 인연을 한 눈에 담는다.
깨달음으로 말끔히 비우고 새로 난다는 뜻을 알겠다."
귀경길은 비가 쏟아지고, 교통체증이 심했다. 온종일 차를 운행하느라 고생이 많은 '보이는천사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광주의 나병수님도 귀경길에 유용하게 사용하라고 10만원을 쾌척해 주셨다. 감사드린다.
첫댓글 ㅎㅎ
민주, 정의, 화합의 정신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천은사의 상생의 일깨움을 마음에 기대껏 나즈막하게 담아 쓴다!
대단하신 필력입니다. 기억력도 살아 있으시공..ㅎㅎ생생 뉴스 감사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을 어느 햇볕좋은 날과 그날만 있었음..사진 속 풍광보니 그곳이 또 다시 그립습니다.향기가 은은하였던...천은사 뒷뜰
제단에 헌화를 하는데 맨마지막만 남았습니다. 공식행사를 할 때도 사진을 찍을때만 되면 각자도생이다! ㅎㅎ
아직 자신이 품은 일들이 마득하지 않은 것인지! 또는 부끄러운 일인지!
어제까지 해서 한 공사를 또 마무리 하였기에 같이 못하였습니다.
광주에 갔다가 선친 묘소가 있는 화순에 들릴 계획이었으나...
22일에 함께 하기로 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비파님 처가가 정읍이군요. 제 어머니 생가가 정읍 산외면 공덕 입니다. 광주에 함께 했어야 했는데 집안 결혼식을 빠질 수 없어 참여를 못했습니다. 망월동과 천은사 를 다녀온 기억이 새록합니다. 광주 근교를 지나면 망월동을 홀로 들려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