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얼 26일의 군사작전
1.
4월 26일이야, 강정은 이 날을 잊지 못해.
벌써 12년 전이야. 2007년 4월 26일
국책사업 장소가 20일 만에 결정되었다면 믿겠어?
그 곳이 강정이야.
저녁 7시 30분, 마을 주민 87명만 모인 가운데 비공개 회의가 열리고 있었어. 음습한, 천인공노할 음모가 마을 주민 대다수가 알아챌 새도 없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었어.
회의록도 없이 투표 아닌 ‘박수’로 진행된 가운데 마을의 가장 큰 일이 일어나고 있었어. ‘평화의 섬’ 아닌 ‘군사기지의 섬’ 제주 재앙의 첫 발이 내딛어지고 있었어.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유치 찬성”
언론이 도배되었고
정작 주인인 대부분의 강정마을 주민들은 나중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해군의 사주를 받은 당시 마을회장 윤태정과 유지들을 비롯한 소수가 마을을 어떻게 해군에 바쳤는지 알게 되었어.
그리고 6월 초 그 잘난 ’고시’가 있었지.
4월에서 6월로 숨가쁘게 모든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어.
그렇게 기막힌 일이 또 있을까.
하루 아침에 끈끈한 공동체를 파괴하며 해군은 그렇게 들어왔어.
“제주에 해군은 그렇게 들어왔어”
강정마을 주민들은 그 것을 “군사작전” 같았다고 해.
2.
10년 후 바로 그 날, 또 다른 군사작전이
제주 아닌 육지의 성주에서 일어나리리라고 예상한 이가 있을까?
여기는 소성리야. ‘소야’
강정이 물빛이 아름답게 흐르는 곳이라면
소성리는 별빛이 아름답게 흐르는 곳이야.
새벽에 할머니, 할아버지, 지킴이들의 통곡을 뚫고
사드 레이다와 사드 발사대 2기 (총 6기 중)가 들어왔어.
때는 황교안 대행체제때야.
적폐의 상징은 파면되고 감옥으로 들어가고
새 정권은 아직 생기지 않은
여명이 아직 오지 않은
칠흙 같은 밤.
여기에는 어떤 적법성도, 민주주의도 없었어.
미군들은 사드를 몰고 오며 통곡하는 이들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어.
준비된 기지가 있었냐고?
미군이 정식으로 사드 부지 사업 계획서를 제출한 것은 올해 2 월이야.
그 말은 그들은 집도 준비 안되었는데 이삿짐 부터 옮겨놓았다는 거야.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이삿짐부터 낼름 옮겼다는 거지.
영토에 깃발 꽂듯이 말야.
이런 황당한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이것은 명약관화하게 군사작전이기 때문이야.
더 정확히는 도둑질이고 강도질이라 해야겠지.
3.
그러고 보니
1986년 4월 26일에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고 있었어.
체르노빌 참사라고 들어봤어?
인류는 세 번의 큰 원자력 발전소 참사를 겪었다고 해.
1979년 3월 28일 일어난 미국 쓰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86년 4월 26일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에 있었다고 해
반응로가 폭팔한 것은 깊은 밤 오전 1시 24분이었다 해.
사고가 일어난 시점에 순환펌프 기사 발레리 호뎀추크는 폭발로 인해 즉사하였어.
자동제어시스템 기술자인 블라디미르 샤셰노크는 전신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후송되어 사고 당일 사망하였어.
발전소 직원 중 물리학자 이반 오를로프를 포함한 3명이 폭발과 그로 인한 과다한 방사선 노출로 사망하였어.
그 것은 시작에 불과했지. 32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피해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3월에 비자림로에서 ‘체르노빌의 춤’을 춘 적이 있어. 강정의 테라가 그 춤을 소개해주었지.
사고가 일어난 인근의 나무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이 둥글게 기도하듯 춤을 춘 것이 기원이라고 해.
이제 우리는 그 체르노빌의 춤을 비자림로에서 추고 있어. 33년 후 우리는 또 다른 참사를 맞는 숲을 마주하고 있었던 거야. 나무들이, 숲이 잘려지고 파괴되고 있지. 공군기지를 위한, 핵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을 위한? 또다른 군사작전을 위한?
그리고 어제 강정에 장갑차가 미사 중 지나갔다지? 그 날로부터 12년이 되는 날 하루 전이었어. 군사작전은 계속 벌어지고 있어.
오늘은 4월 26일이야.
(글: 성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