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병창에 새벽잠이 웃다
황정현
하루의 일상이 판소리 울림으로 열린다. 나의 눈자위에 진하게 매달린 단잠을 깨우는 아내의 노래가 잠귀를 조금씩 흔든다. 가야금의 가늘고 여린 뚱땅소리와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새벽잠의 맥을 끊는 하루가 신기하기도 하고 야릇하기도 하다. 노고지리 우짖는 소리 들으며 잠을 깨는 것이나, 가야금 병창에 눈을 뜨는 각성이 상쾌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침 햇살이 가야금 병창의 율동에 흔들리는 듯 하는 거실은 만화방창의 소리 꽃이 피어 늴리리 춤사위가 가득하다.
처음 가야금의 소리가 들렸던 날을 기억한다. 희붐한 새벽녘, 가늘게 사랑가의 한 대목이 가야금 소리에 맞추어 꿈결인 양 들렸다. 분명 귀청을 울리는 소리는 있는데, 이게 꿈을 꾸는 속인지 바깥잠의 여음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늦잠이 버릇이 되어 잠의 혼몽으로부터 완전한 각성에 쉽게 이르지 못하였다. 아내는 습관적으로 나를 깨우곤 했는데, 이제 깨우는 방식이 달라졌다. 가야금 병창의 낮은 가락은 늦잠을 조금씩 간질이다 귀청을 울리는 시냇물처럼 단잠의 새벽을 적셨다. 양양한 새벽의 창이 나의 자명종으로 등장하여 즐거움이 살갑기도 하고 의뭉스럽기도 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늦잠투정이 심했다. 초 중등의 학교생활에 지각없이 통과했던 통신표의 기록이 없다. 늦잠이 병적인 증세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늦잠의 태생적 생활 패턴이 인생의 중요한 덕목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의 속담 편에서 보면, 나는 이미 실격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더구나 농촌 삶의 틀 속에 배어있는 새벽의 기상 마당에 치지도외置之度外의 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에 살아남아 밥을 축낼 기회도 없을 뻔했다. 부모님의 이해심 깊은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음악 세계에 수많은 소리의 진동이 퍼질 때마다 항상 듣기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이, 취향, 성격, 분위기에 따라, 혹은 나라별 문화적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의 경청의식과 태도가 달라진다. 대체로 세계적 작곡가가 지은 고전음악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거의 공감대를 이루고 있음을 본다. 그럼에도 팝송에 열광하는 세대에게 판소리에도 그에 상응하는 열정적 감상의식을 갖도록 할 수는 없다. 과문한 탓인지 젊은 세대들이 판소리에 몰입하는 모습이 있음을 들어본 일이 별로 없다.
젊은 시절, 팝송과 흘러간 노래에 도취하여 감상은 물론 익히고 배워 흥얼거리는 노래 몇 개쯤 있다. 이제 60대 후반을 넘기고 70대에 이른 지금은 대금산조의 가슴에이는 가락을 좋아하고, 가야금병창의 소리에 귀를 여는 습관이 들게 되었다. 이로써 아내의 가야금병창은 살가운 바람처럼 온몸의 청각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다. 가야금소리의 진동이 누워있는 바닥을 흔들고 몽마夢魔를 창밖으로 내쫓아 눈두덩에 매달린 잠이 달아나면, 나는 빙긋이 웃음 띤 채 앉아서 한동안 병창의 흥취에 젖는다. 참 화평하고 느긋하며 인생여정의 꽃가마를 탄 소리꾼의 남편으로 행복한 울림을 즐긴다. 가야금 현에서 튕겨 나오는 부드럽거나 날카로운 소리는 목소리와 어울려 화평천지의 소리제국을 만들고 나만의 제왕의 뜨락을 산책하는 듯싶었다. 어떤 소리의 층위에 있던 거칠고, 서투르며, 실수투성이 병창이 차츰 다듬어지고, 걸쭉하게 세련미를 더해갔다. 솜씨가 익어가는 몇 년 동안의 배움이 쌓이면, 어느 곳에선가 드러내놓고 발표하고픈 충동과 자리 마련의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직접적 동기마련은 가르치는 교수의 격려와 자신감 심어주기에 달려있다. 힘들게 익히고 외웠던 병창의 흥취와 발성 욕구가 병합하여 청중들 앞에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은근슬쩍 나서보고 싶을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홀로 무대에 나서는 담대함은 없어서인지, 같이 공부하던 동기 예인들과 함께 출연하기로 뜻을 모았다. 함께 모여 연습하고 다듬고, 소리 가락을 맞추는 과정이 되풀이 되었다. 틀리고 어색한 풍경의 결이 곱게 다듬어져 점차 자신감 있는 소리 창으로 바뀌었고, 제법 흥취어린 어깨춤까지 자연스런 모양새로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나의 단잠의 자명종이 된 아련한 뚱땅소리가 확실히 익숙해질 무렵에, 아내는 더욱 치열한 연습에 돌입하여 발표무대에 선 것이다. 무대가 돌연 확대되고 청중이 불어나며 편안한 미풍이 아닌 폭풍전야의 긴장이 풍기는 발표장이었다. 아내는 실수와 잘못된 가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만반의 연습을 거듭했다. 그 결과 홀로 출연하는 무대가 아니라 다섯이 출연하게 된 탓인지 모르지만, 한결 안정된 자세로 실수 없이 가야금병창을 끝내게 되어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발표를 끝낸 후 아내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일시에 몰려든 피곤함을 호소하더니, 일찍부터 잠이 들었다. 그 이튿날 가야금 연주시의 자신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바둑의 복기처럼 연주 복기의 말을 꺼냈다. 연주 중에 두 번 틀린 가사와 가야금 연주를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생각나지 않은 가사와 가야금 연주는 다행이도 같이 공연했던 다른 동기들의 합주 과정에 묻혀서 지났다고 했다. 어떤 그림이나 문학작품이 완전한 구도를 갖춤이 없듯 무대 공연인들 완벽한 끝내기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말로 위로 했다.
아내는 발표 후에도 가야금 병창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사와 가락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매일 나의 새벽잠은 숙련된 가야금 병창으로 야릇한 웃음을 당기며 깨어남의 현에 오른다.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가야금 병창도 갈수록 좋아지는 내가 혹시 팔불출의 대열에 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한들 태평천지를 이루는 소리에 나의 장쾌한 하루를 여는 맛이 무슨 부끄러움이 되겠는가. 나의 새벽잠은 아내의 가야금 병창 연주가 들릴 때마다, 아늑한 웃음의 파동을 안겨주며 잠기운 밖으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