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장미가 담장 너머로 늘어져 있어요 겹겹인 꽃송이들 귓바퀴 하나씩 달고 있죠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듯 겉면에서 뒷면으로 향기가 맴돌아요 그러다 오월을 알아버리는 일 따위, 오롱조롱한 환상이 되죠 그래요 담 밖의 소리를 색으로 들을게요 향기는 그늘로 가져가요 들으려고 하는 것만 듣는 장미여서 오늘도 지저귀고 있네요 붉은 꽃잎들이 하도 흐드러져 바람도 흘러넘치죠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들의 행렬, 한차례 이어지고 있어요 그러다 오월이 가둔 집착으로 사라져갈 거에요 시간이 지고 넝쿨이 풀어지는 틈에도 말은 들려요 장미가 귀를 닮은 건 갖다 대는 코를 듣기 위해서죠 그래요 듣기만 할게요, 가까이 오진 마세요 가시가 어느 순간 손등을 긁을지 몰라요 둥근 말을 더 들을 수 있게 더 휘늘어져가요 지나치면서 스치는 센스를 보여 줘요 장미는 아름답지만 말이 많은 건 사실이잖아요
〈경북방송/김조민이 만난 오늘의 시〉2023.03.28.
이비인후과는 귀 코 목에 관련된 질환에 대한 전문 진료과를 뜻한다. 장미 꽃송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여러 개의 꽃이 다발처럼 모인 모양이 귀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장미는 우리의 눈길을 꽃잎으로 듣는 게 아닐까.
또 장미의 꽃말이 ‘질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장미는 오월이 가둔 집착으로 진찰될 수도 있다. 오월의 거리를 지날 때 담벼락에서 종종 보게 되는 장미가 내 눈빛을 소리로 듣고 말해준다. 가시가 어느 순간 손등을 긁을지 모른다고. 나는 그 수다가 왠지 싱그럽다고 적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