參禪(참선)수행자를 위한 가르침
佛法(불법)의 말을 하는 남은 누구일까? 直下(직하)에 옳게 이른다면 가히 分段生死(분단생사)를 超脫(초탈)하리니, 百千竿頭(백천간두)에 나아가 闊步(활보)하여 大丈夫(대장부)의 事業(사업)을 마치리라.,
惟政(유정)수행자는 능히 깨쳤느냐, 못 깨쳤느냐? 못 깨쳤거든 급히 精神(정신)을 차려 眞實(진실)한 공부를 하여 法(법)다이 參究(참구)하여 크게 깨치는 문에 들어옴을 삼을 지니라.
소위 參究(참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불법을 말하는데 어찌하여 타인의 일인가, 또한 그 타인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는 것만 들어서 빛을 돌이켜 스스로 돌아 볼 것이니라.
반드시 마음을 너무 急(급)하게 쓰지 말지니, 躁急(조급)하게 쓰면 色心(색심)[육체와 識心(식심]이 움직여 병이 나리라. 너무 늘어지게 하지 말지니, 늘어진 즉 話頭(화두)를 잊어버리고 昏沈(혼침)과 雜念(잡념)에 들어갈 것이다.
妙(묘)하기는 그 마음을 잘 씀에 있나니 眞正(진정)한 信心(신심)은 발하여 온갖 세간 마음을 다 버리고 惺惺(성성) 하고 密密(밀밀)하게 話頭(화두)를 잡아서 들어가면 坐中(좌중)에서 得力(득력)하기가 가장 쉬우리니, 처음 앉을 때에 정신을 차려 몸을 쭉 펴고 단정히 하고 등을 굽히지 말라. 머리를 우뚝 세우고 눈시울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눈은 보통으로 뜨리니 눈동자가 움직이지 아니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고요 해지리니 고요하게 한 뒤에 定(정)에 들게 된다.
定(정)가운데 또 모름지기 話頭(화두)가 뚜렷이 나타나야 하나니, 定(정)을 貪(탐)하여서 화두를 잊으면 안 되느니라. 話頭(화두)를 잊으면 空(공)에 떨어져 도리어 定(정)의 迷(미)함을 입어서 옳지 않으리라. 定(정) 가운데 힘을 얻기는 쉬우나, 반드시 惺惺(성성)하여 昧(매)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문득 일체 좋고 굿은 경계가 나타날 때가 있거든 일어나는 곳에 대하여 전혀 干與(간여)하지 말지니라. 話頭(화두)가 분명하면 瞬息間(순식간)에 境界(경계)가 自然(자연)히 깨끗해지니라.
定(정)에서 일어날 때도 천천히 몸을 움직여서 定力(정력)을 保護(보호)하여 지켜야 하리니,
動用中(동용중)에도 화두를 편안히 지녀서 의심을 잡으면 힘을 쓰지 하지 아니하여도 綿綿(면면)하고 密密(밀밀)하야 間斷(간단)이 없을ㄸ에는 공부가 점점 한 조각을 이루어서 가을에 흐르는 물과 같이 맑고 깨끗한 것과 같아서 비록 바람이 불어도 모두 맑은 물결뿐이니라.
이런 때에 이르려면 큰 깨달음이 가까우리니, 문득 마음을 가져 깨치기를 기다리지 말지니라.
남에게 穿鑿(천착)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며, 모름지기 思量(사량)하고 오직 話頭(화두)만 관할지니라. 만약 다른 公案(공안)에 疑心(의심)이 있거나 또 經典(경전)상에 의심이 있거든 다 모아서 [觀(관)하고 보는 이는 누구인가.] 라고 하는 곳을 가져다가 볼지니라.
뭇 의심이 다그쳐서 폭발할 때에 댓돌 맞듯 해서 [아!]하는 소리에 바른 눈이 열려 밝아지면,
문득 능히 집에 이른 말과 機緣(기연)에 맞는 말과 화살촉이 서로 맞닿은 듯한 말을 이르며,
차별기연을 알아 전에 있던 일체 의심ㅇ과 막힌 것이 얼음 녹듯하여 남음이 없으리라.
법마다 원만히 통달하여 堂(당)애 오라 사자후를 하고 그대에게 말하노니! 부디 작은 깨달음에 만족하지 말고 다시 용맹정진하고 눈 밝는 스승을 찾아서 다시 인가를 받아라.
큰 스승은 그대에게 指示(지시)하여 進步入室(진보입실)하여 了徹大事(요철대사)케 하리라.
*아미타삼부경에는 있는 話頭(화두)는 一輪(일륜)삼매. 月輪(월륜)삼매 風輪(풍륜)삼매 火輪(화륜)삼매 水輪(수륜)삼매 日相觀(일상관) 一念觀(일념관)등이 있다.
分段生死(분단생사): 六道(육도) 輪廻(윤회)하는 凡夫(범부)들이 生死(생사) 分段(분단)은 分限(분한).刑段(형단)이란 뜻. 범부는 자기 業因(업인)을 따라서 身體(신체)에 크고 작으며 가늘고 굵은 형단이 있고 목숨이 길고 짧은 分限(분한).으로 分分段段으로 生死(생사)하므로 분단생사라 한다. 그 상대어는 變易(변역)生死(생사)이다.
竿頭闊步(간두활보):배척간두 에 머무르면 이것은 向上(향상)의 죽은 자가 되므로 다시 이 竿頭(간두)에서 一步(일보)나아가서 全身(전신)을 던져야만 十方(시방)世界(세계)에 全身(전신)을 나투어 縱橫自在(종힝자재)하는 妙用(묘용)을 行(행)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理无涯(이무애)에 그치지 아니하고 事事无涯(사사무애)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묘주선원장 묘원 태허대선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