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3·3·3 공부법'과 목민심서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돼 처음 머무른 곳은 주막집 뒷방이었다.
서학을 신봉한 ‘대역죄인’을 모두가 꺼렸다.
다산은 그 누추한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각(思)과 용모(貌), 말(言), 행동(動) 네 가지를 반듯하게 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그곳에서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
다산은 人一能之면 己百之오 人十能之면 己千之라
君子之學 不爲則已 爲則必要其成
秉心確, 三勤戒, 三讀法踝, 骨三穿
다른 사람이 한 번에 그 일을 해내면 백 번에 해낼 것이며, 人一能之면 己百之오
다른 사람이 열 번을 하여 그 일을 해 내면 천 번에 해 낼 것이다. 人十能之면 己千之라
군자의 학문은 안하면 안했지 君子之學 不爲則已
한번 하면 반드시 끝장을 본다. 爲則必要其成(끝장 내기 공부)
공부하는 방법은 秉心確(마음을 확고히 다잡는 것이다)이고,
공부는 三勤戒를(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가르쳤다
己千의 情神으로 踝骨三穿이 되도록 공부에 전념하여야 한다.
어느 날 공놀이하던 동네 아이들 가운데 한 더벅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열다섯 살 황상(아명은 산석), 고을 아전의 아들이었다.
소년은 곧 주막집‘골방 교실(사의제)’의 첫 제자가 됐다.
1주일 뒤 다산이 문학과 역사를 배우라고 하자 소년은 쭈뼛거리며
황상은 勉學文을 받고
‘내게는 세가지 병통이 있다.
첫째는 너무 둔한[鈍둔] 것이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힌[滯체] 것이며,
셋째는 미욱하여 답답한[戛알] 것입니다.'
“저는 둔하고, 막혔고, 미련해서 안 됩니다”고 사양을 했다.
이에 다산이 말했다.
병심확·삼근계·삼독법, 과골삼천
황상은 勉學文을 받고 공부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공부하는 방법은 秉心確으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에게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결점이다.
한 번 보기만 해도 척척 외우지만 깊은 뜻을 음미할 줄 모르는 것이요.
둘째는 글쓰는 재주가 좋은 결점이다.
어떤 주제건 빠른 시간 내에 작문하지만 부지불식간 경박해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결점이다.
한 마디만 들어도 금세 귀를 알아 듣지 만
여러 번 새기지 않으므로 깊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둔한데도 파고들면 구멍이 넓어지고,
막힌 것을 틔우면 소통이 커지고,
어리숙한 것을 연마하면 빛이 난다.”
공부는 三勤戒로
공부하는 사람은 三勤戒를(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지켜라.
그리고 세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파고드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틔우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연마는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근면은 마음가짐을 확고히 다잡는데 있다.
다산의‘삼근계(三勤戒)’다.
황상은 이 가르침을 기둥 삼아 평생 학문에 매진했다.
독서법은 삼독이다
‘정독하고, 초서하고, 메모하는’ 세 가지가 다산의 ‘삼독법’이었다.
다산은 책을 읽을 때도 뜻을 새겨 가며 깊이 읽는 정독(精讀)을 중시했다.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글의 의미와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옮겨 쓰는 초서(抄書)도 귀하게 생각했다.
이를 항아리에 담아뒀다 하나씩 꺼내 읽곤 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낀 점,
깨달은 것들을 기록(메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독하고, 초서하고, 메모하는’ 세 가지가 다산의 ‘삼독법’이었다.
500여 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거처를 옮겨 다니던 다산은 지금의 다산초당에 자리 잡은 뒤에도
자신의 공부법을 그대로 실천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느라 복사뼈(骨)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났다.
‘과골삼천(骨三穿)’의 명예로운 흉터였다.
앉을 수가 없자 선 채로 책을 읽었다.
공자가 책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독서에 매진했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보다 더했다.
내 인생의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공부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주는 것이다
제목을 '心書'라고 붙인 까닭은
秉心確(음미, 경박을 금함, 깊이 새심, 마음을 다잡는다)
三勤戒(파고들고, 틔우고, 연마하고 勤 부지런하게)’와
三讀法(精讀, 抄書, 記錄 늘 책을 읽는다)’ ‘踝骨三穿’을 한 데 아울러
‘다산의 3·3·3 공부법’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렵겠지만,
책 읽고 글 쓰는 공부의 등불로 삼기에는 제격은 ‘삼독법’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천천히 뜻을 새기고,
내용을 뽑아 옮기며, 생각을 메모하는 습관도 익힐 수 있다.
부지런함이야 ‘삼근계’를 따르지 못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라)
진득하기는 ‘과골삼천’에 이르지 못하지만,
미욱함을 넘어서는 데는 큰 도움이 되겠다.
2018년은 다산이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완성한 지 200년 되는 해다.
48권 분량의 이 책에서 그는 관리들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지방 수령에게 꼭 필요한 지침을 제시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임지를 따라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수령과 암행어사를 지내면서 민생의 궁핍상을 직접 보았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책 제목에 심서(心書)라는 말을 쓴 것은
‘목민 할 마음이 있으나 (유배 중이어서) 직접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붙인 것’
“군자의 학(學)은 절반이 수신(修身)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牧民)인데 요즘 지방관들은 사익 추구에 정신이 없다”
다산의 질타가 지금도 생생하다.
學은 修身이다. 知言이다. 篤行이다. 논어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고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맹자
참고, 기다리고, 견디어야 이루어진다
‘너 자신을 알아라’ 소크라테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천재는 그냥 천재가 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그냥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인생사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에디슨
연암 박지원의 '무릎이 썩는 독서'
복숭아뼈 닳도록 공부한 다산 (踝骨三穿)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 날 정도로 앉아서 책을 읽었다는 뜻)
붓 천 자루 털 빠지게 쓴 추사 (磨穿十硏)
졸음이 올 때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하여 성공에 이룬 소진 (蘇秦刺股)
조선 중기 대사헌을 지낸 양연(梁淵)은 젊은 시절 책을 멀리하다 불혹(40세)에야
공부를 시작했다.
‘대가(大家)가 되기 전엔 절대 손을 펴지 않겠다’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조갑천장(爪甲穿掌)’
조선 효종 때 김득신은 조선의 대표적 만학도로 회갑이 다 된 59세 때 과거에 급제했다.
그는 80세로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산의 형제들(정익현 이복, 정약전(학초, 소실생 학무(學武), 학승(學乘),
정약종, 정약용(학연, 학유), 서자 정약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