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일민 저서인 "흐르는물처럼"중 고 김재성님이 기록한
팔봉산등반 기행문을 다시 우리 카페에 올림니다.
(팔봉산 전경)
오라 팔봉산으로, 가자 팔봉산으로 -김재성
초청일시:2002년 10월 12일
초청대상:인고56회 카페회원및 산악회회원
초청자:카페주인 일민 이헌기회장, 홍성준 사무총장
오라 팔봉산으로, 가자 팔봉산으로
"나도야간다, 나도야간다. 꿈을따라 희망을 따라........."
유명 인기가수 김수철이 부른 노래가사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따라 나도, 오늘은 특별한 국토순례기를 기록하기위해 팔봉산으로 가련다.
상서로운 땅 "서산"이낳은 인고56회 카페주인인 일민 이헌기회장과 홍성준 사무총장이 카페회원과 산악회원들을 자신들의
고향에 있는 팔봉산으로 특별 초청하였다. 사유는 오직 하나, 팔봉산의 정기를 나누어 갖고 가을의 정취를 함께 맛 보자는 자상한 배려 때문이다.
서산은 일찍부터 중국과 연락이 잦아 대륙문화 수입의 선진적 역할을 하였다. 백제 조상미술의 선진 지역으로서, 이것이 옹진 또는 사비로 전해졌고, 다시 신라에 전해 졌으며, 일본에 건너가 사는 아스카시대의 조선 미술의 제1차적인 영향을 미친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의 세곡을 인천으로 운송하는 조운선의 중요한 루트였다.
따라서 서산은 인천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인천 시민의 35%가 충청향우들이며 이중 대다수는 서산, 당진 향우들이다.
망아지는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당시 서산, 당진은 서울과의 육로교통이 수월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인천과의 해상교통은 인근 대산항과 구도항을 이용하여 왕래가 잦아, 인천으로의 유입이 많았으며, 특히 인천에는 이곳 유학생들이 많았다.
이곳 팔봉면 양길리 출생인 일민 이헌기박사는 옛적 삼정승 육조판서 반열에 있는 노동부장관직에 올랐으며 예조판서에 해당 될터이고, 6.25전란중 황해도 옹진에서 이곳 서산으로 피난온 민봉기동문은 서산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천고등학교로 유학을 와 또한 56회로 졸업했으며, 현직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의정 단상에 올랐으니 이 또한 보통일인가?
그외 구정회, 이강대,조재헌,지용택 한창수등 서산, 당진 출신 동문들이다. 마침 동행한 이종득동문이 한마디 거든다. 그도역시 서산 부석면 출신이다.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여사가 서산 초등학교 출신이고, 해병대 제2사단장 김기남소장이 또한 팔봉출신, 인기연예인 박주아, 인기 코메디안 이영자 또한 이곳 출신이란다. 참으로 다양(!)하다. 이 모두가 팔봉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태어난 인물들 아니겠는가? 2002년 10월 12일(토) 남행길 여정에 오른 모두 36명(서울25명,인천11명) 의 정겨운 얼굴들은 초청자 일민의 차내 인사말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오늘, 즉 1897년 10월 12일 흥선 대원군의 셌째 아들이 고종으로 등극하면서 이씨조선 최초의 황제라 만방에 고하여 황제 즉위식을 거행 하였으니, 그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역사적 고증을 듣는다. 그리고 여행의 또 한 멋은 그 지역의 토속 음식을 맛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오늘은 서산의 명물 박속 낙지탕을 선 보이겠다고 하여 큰 박수를 받는다.
사당역을 출발한지 1시간 30분 만인 10시 정각, 해미 톨게이트를 통과 서산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질펀한 너른 황금들녘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해미 평야라고 한다. 한다리 김씨 세거지 입구를 지나 서산시내로 들어서니 키가 50cm박에 안되는 코스코스 행렬이 도로 좌우에서 낯선 여행객을 반겨 맞아준다. 보통의 코스모스와는 또 다른 수종이라고 한다.
차창 오른편으로 팔봉산의 험준한 봉우라가 질펀한 평야에서 우뚝 솟아 연연히 이어져 있다. 낮은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만치 않을 것같은 인상이 든다. 마침 도로옆길을 오르던 경운기가 곡식을 잔뜩 싣고 논뚝에 빠져 애를 태우고 있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지켜본 정석궁 산악회 회장과 일행들이 우르르 내려가 힘껏 밀어올려 도로로 오르게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좋은 일을 했으니 산행은 무사 하리라.
시간은 10시 40분, 드디어 팔봉산 초입 주차장에 도착 하였다. 간단한 음료수를 준비하고 산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팔봉산으로 올라 갈 볼꺼나!
팔봉산은 산의 형세가 병풍처럼 펼쳐 있고 9개 마을을 품에 안은 듯 정기 있게 솟아 있으며 여덟개의 산봉우리가 줄지어 있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산세가 수려하며 맑은공기와 탁 트인 주변 환경이 절경으로 휴식을 포함, 3시간 정도의 등산 코스로 적합하나, 오늘 우리의 등반은 제 3봉인 주봉을 오르고 하산하는 것으로 산행계획을 세워 시간을 단축했다.
워낙 강원도 홍천에 있는 팔봉산이 유명해서 이곳 팔봉산은 앞에 "서산 팔봉산"임을 밝혀야 한다. 또한 이 곳은 9개의 봉우리였는데 제일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끼워주지 않는다고 화가나서 태안의 백호산으로 떨어져 나갔다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10시 45분, 일행은 팔봉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보통 1천m 내외의 산을 오르는 산우들인지라 362m의 팔봉산 산행을 얕잡아 보기 쉽지만, 서산 평야에 우뚝 솟아오른 팔봉산은 서해바다의 해수면부터 시작되는 표고로서 362m이기에 보통 4~500m 고지대에서 시작되는 일반 산행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깍아지른듯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주봉 3봉을 올려다보면서, 지난 두륜산 가련봉 등반에 비견되는 만만치 않음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산행이 시작되는 입구로부터 울울 창창히 곧게 뻗은 소나무 숲길 사이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오르는 산행객의 발거름은 한결 가볍기만 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면서 그 간에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우들의 면면은 정겹기만 하다. 1945년 일제 치하에서 해방을 맞아 독립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전, 6.25를 초등학교 졸업반때 맞아야 했던 아픔의 세대들은 35~39년생의 5년 터울로 동급생이 되었다.
해방과 함께 초등학교 1학년으로 갓 입학한 우리는 "가 갸 거 겨"와 "ㄱ ㄴ"의 우리말, 우리글을 배워온 한글세대로서 갖는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칭 "대한민국 1기생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동기생들의 활약은 그 어느동창생들 보다 유별 나다. 민주화의 눈길을 뜨고 조국 근대화 산업의 한 축을 맡은 4.19세대이기에 우리의 자부심은 대단 하다.
산행시작 얼마 후 약수터에서 흐르는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1봉과 2,3봉으로 갈라지는 능선에 오른다. 모두 함께 모여 기념 촬영을 한후, 일부는 1봉을 등반 후 하산키로 하고 또 다른 산우들은 정상을 오르기 위하여 오른쪽 주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2봉을 오르면서 중간 중간 잘 다듬어진 철제 난간과 계단을 오르면서 가쁜 숨을 토 해낸다. 눈을 들어 서쪽을 바라보니 황금 들녘 너머 서해안의 섬들이 보이는듯 하나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아 시야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날씨기가 좋은 날이면 멀리 인천 앞 바다으 섬들까지 한 눈에 들어 온다고 한다.
한숨을 돌리며 계속 오르니, 암벽 사이로 동굴 입구가 나타난다. 입구 오른쪽 암벽에는 팔봉 로타리클럽에서 세운 나무 현판이 잘 다듬어져 걸려 있고 "정상까지 61m, 동굴 입구(길이 12m)"라고 씌어져 있다. 동굴 안으로 들어 서니 철제 사다리가 나타나며 상부는 사람 몸 하나 겨우 빠져 나갈수 있는 통로에 영롱한 아침 햇살이 비쳐 내리고 있다.
2봉을 지나 암벽사이로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몇번, 드디어 우리는 3봉 정상에 섰다. 시간이 11시 40분,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시간상 거리로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정상비 제단에서 전하진 등반대장을 위시한 몇몇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드리고, 모두는 각자 바위에 걸터 앉아서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눈을 들어 동남쪽 방향을 바라보니 4.5.6.7.8봉이 연연히 아름다운 능선의 모습으로 이어져 다가 온다. 언제 보아도, 어디서 보아도 우리의 산하는 정말 아름답다. 그래서 산자수명한 금수강산이라 하지 않았던가?
정상에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하산길을 재촉 한다. 오르는 길이 직벽으로 험해서 하산길은 반대편 등산로를 택했다. 혹시 내려가는 길도 어렵지 않겠나 염려 했지만, 이게 웬일! 완만한 경사로가 산허리를 돌며 이어져 있어 룰루랄라 콧 노래 부르며 편안히 내려 오기를 한 30분쯤, 우리는 1봉과 2,3봉의 갈림길 능선에 다시 도착 했다. 전에 우리가 올랏던 직벽의 등반이 어려운 산행객들은 하산 등산로를 이용하면 손쉽게 3봉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12시 40분, 일행 모두는 주차장에 모였다. 일찍 1봉을 다녀온 친구들은 더덕무침, 새우구이를 안주삼아 동동주 파티가 한창이다. 그래 좋은 세월! 마음껏 드시고 즐겨 보시게나!
자, 이제는 초청자인 일민 생가 방문이다. 이곳으로부터 10 여분 상거에 있는 일민 생가는 1봉 산자락 끝에 호젓이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 2구, 머리가 하얀 노인께서 우리를 반겨 맞아주신다. 젊은이들은 모두 서울, 안산등 대처로 나가 있고 이렇게 우리 시골은 노인들만이 남아 지키고 있다. 앞으로가 큰 일이란다. 누가 우리의 농촌을 지킬 것 인가?
앞뜰에는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마당 연못에는 연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연못 속 에는 붕어와 메기가 노니닐고 있을 터 이고 , 연못 바닥에는 미꾸라지들이 제 세상인듯 바닥을 헤집고 있겠지! 감나무, 대추나무가 휘들아 서있는 뒤편 자락에는 고추, 마늘, 생강 양배추가 저마다 빛갈을 달리하는 시골 풍경은 내 어릴 적 고향을 보는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안마당에 들어서니 마당 가운데 차려 있는 교자상에는 찐감자, 옥수수,밤, 대추등이 수북히 쌓여 있고, 무공해 콩으로 만든 두붓모와 풋김치가 맛깔 스럽게 입맛을 돋운다. 또한 맥주는 산행에 메말랐던 입 안을 시원하게 적셔 준다.
한편에서는 이 곳 특용작믈인 생강을 사느라 분주하다. 비닐 봉지 하나 가득히가 일금 2천원, 그것 한 봉지면 족히 몇년간 김장의 생강 걱정은 없을 것이다. 빈 내 손을본 한상근 동문이 넌지시 한 봉지를 건넨다. 한편 임영선 산악회 총무는 살림꾼답게 고구마 줄기 말린 것 한 부대를 거금 1만원에 사서 봉다리 봉다리 담아 차내에서 나누어주고..... 그래, 고맙네! 친구야~!
한바탕 북새통을 치르는 동안 몇몇은 뒤동산에 뫼신 일민 부친 묘소를 찾아 참배한 후 마을 앞길을 따라 동구 밖을 나선다.
자, 이제는 기다리던 본격 식도락의 시간, 이제는 기다리던 본격 식도락의 시간, 버스에 승차한 후 10여분 거리에 있는 구도항 포구에 다달으니 마침 썰물때라 갯벌의 모습이 길게 나타나 있고, 포구 옆에 늘어서 있는 식당으로 안내 되엇다.
냄비 육수에 박을 잘게 썰어 바지락과함께 펄펄 끓인 후, 포구 앞 갯벌에서 잡은 산 낙지를 넣어 샤브 샤브로 먹는 또 다른 먹거리로 후참은 밀가루 수제비, 칼국수 등을 넣어 먹는 별미 식이다.
싱싱한 산 낙지는 힘이 어찌나 센지 유리그릇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억지로 떼어내어 펄펄 긇는 육수에 넣으니 곧바로 축 느러진다. 낙지는 바닷물개, 표범들의 좋은 먹이로 생을 마감 하면서 왕성한 정력제로 성가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옆에서 시중드는 이쁜 아줌마가가 한마디 한다. "오늘 ㅇㅇㅇ들 다 죽었다" 라는 조크가 싫지만은 않은듯 하다.
연체동물인 낙지는 쓰러지는 황소도 일어나게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타우린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탁월한 강정작용과 냉감증 치료에 효능이 밝혀져 마시는 약과 주사제로도 개발되어 있다 한다.
그러나 식도락도 좋지만, 익은 낙지 머리에서 검정물을 토해내는 아픔을 그 누가 알까? 이렇게 생 목숨 끊으며 희희 낙락하고 있으니 천당 가기는 다 틀린 모양 아닌가벼!
시원한 가을바람 부는 갯벌 포구에서 식탁은 풍성하고, 이쁜 아줌마의 농익은 재담따라 마음은 허공을 나는데, 안면도 꽃박람회 공식 소주라는 "선양새찬" 소주잔 높이들고 건배하는 우리 윤사 박연배 동문의 선창따라 "대한민국 짝! 짝!"으로 화답하며 오찬장은 화기애애하게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은 오후 3시 20분, 다음 행선지는 상왕산에있는 고색창연한 개심사이다. 차내에서는 흥건한 모습의 "전영덕 부회장이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의 노래를 정겹게 부른다. 구불 구불 시골길을 달려 8부능선에 잘 다듬어진 개심사 돌계단을 오르니 마당 한 끝에는 아주 오래된 백일홍 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생긴 나무라 한다. 정말 잘 생겼다.
서산시운산면 신행리 11의 5에 위치한 개심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에 감국사가 창건 하였는데 이조 성종 14년에 재건된 자그마한 암자로서 "다포계"형식의 목조 건물로 귀중한 자료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5시가 지나면서 산사에는 어둑 어둑함이 깃든다. 자 이제는 귀로에 오르자.
일행은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 만남의 장소인 충청남도 홍보관 휴계소에 잠시 들러 휴식과 간단한 쇼핑을 한다. 농.수.축산물과 기타 특산물이 잘 전시된 "파머스 마켓"은 잘 짜여져 있어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고 항다. 서산의 특산물 어리굴젓과 자하젓이 좋다는 말에 짐꾸러미가 허나 더 늘어난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모든 일정이 마감이 되고 일행을 태운 초이스관광 버스 애마는 저녁 8시 20분, 장장 12시간의 여행이다.
그러나 12시간 동안 우리는 팔봉산의 정기를 마음껏 들여 마셧고, 낙지 연포탕으로 회춘을 하였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 인가? 5년은 더 젊어졌다는 차내 정석궁 산악회장의 인사말 따라 박수로 화답하면서, 마지막으로 팔봉산으로 우리를 초청해준 이헌기회장과 고향의 이모 저모를 자세하게 안내해준 홍성준 사무총장에게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정다운 인사로 아듀한다.
감사 합니다.
첫댓글 재성이형 ! 팔봉산 기행문을 읽으면서 인형의 솜씨가 정말 멋있구려.. 몇년만 더 우리 곁에 있어 주었더라면 주옥같은 글 솜씨 손맛을 보았을텐데......아쉬운 생각이 납니다.
글만 남아있네.
홍대감 어찌이글을 다 오렸나? 수고 감사......김재성 형 그립네요.
감상문 쓰라고해서 밤새워 작업 했네요 ㄱ정말 김재성이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