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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한 남자/그 남자
(한 여자 이야기)
"너가 왠일로 이런 비싼 레스토랑에서 쏜대? 항상 내 돈만 뜯어먹던 얘가."
"이 자식아, 그래서 불만이냐?! 먹지마 먹지마!"
"아악! 잘못했어!"
내 앞에서 스테이크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이 녀석은 8년지기 친구이다.
그리고 안타깝게 이 녀석을 짝사랑 중이다.
이 녀석을 언제 만났었더라..
[ 8년 전 ]
내가 아주 푸릇푸릇한 고2때 그 녀석을 처음 만났다.
그 땐, 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인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주영아, 미안한데 이 프린트물 좀 옆에 7반에 반장한테 갖다줄래?"
"네."
국어시간. 하필 맨 앞자리에 앉은 내가 선생님의 심부름꾼으로 지목되었다.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수업 시간에 심부름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리고 나는 느긋히 7반으로 이동했다.
'똑똑'
"들어와라."
"죄송합니다. 국어선생님께서 7반 반장한테 프린트물을 받아오라고 하셔서요."
"그으래?"
하필이면 이번 시간 7반은 장난끼가 아주 많은 영어선생님의 수업이었다.
영어선생님은 갑자기 장난끼가 다분한 웃음을 짓었다.
그 땐, 난 영어선생님께서 또 장난끼가 발동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린트물을 받아가는 대신 넌 나의 수업을 중단시켰으니까 노래 한 곡하고 가라."
"네?"
"노래해! 노래해!"
7반 아이들은 갑자기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더니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나보고 노래를 하라고 소리쳤다.
나는 특별히 음치, 박치도 아니였지만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맨 뒷자리에 있던 녀석이 일어난더니 프린트를 팔랑팔랑 흔들며 나에게 소리쳤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너가 원한 이 프린트를 주지 않을 거야."
"우오오오오!!"
영어선생님과 형제인가? 할 정도로 장난끼가 다분해 보이던 그 녀석이 말했다.
그러자 7반 아이들은 더욱 더 환호를 지르며 소리쳤다.
그 때, 나는 그 녀석이 7반의 반장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국어선생님께 돌아가 이 상황을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일러바치는 쪼잔한 사람이 되고싶지는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나라오너라 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나는 동요인 "나비야"를 아주 짧게 불렀다.
그러자 7반 아이들과 영어선생님은 내가 노래를 다 부를 때까지 어벙하게 있다가 내가 다 부르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가 비웃음으로 들리지는 않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프린트물을 가지러 7반 반장인 그 녀석 앞으로 갔다.
"자, 이제 프린트를 줘."
"그래. 자!"
7반 반장인 그 녀석은 순순히 프린트물을 주었고, 나는 영어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그제야 7반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반에 들어가자 국어선생님한테서 왜이리 늦었냐며 한소리를 들었다.
-
국어시간이 끝나자 나는 하늘을 떠다닐 듯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집에 갈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이 자유라서 집에 갈 사람은 가고 남아서 공부할 사람은 남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친구들이 오늘도 역시 시내에서 놀자고 했지만 노는 것보단 집에서 쉬는 것이 훨씬 좋아하는 나는 친구들의 말을 거절했다.
친구들이 시내에 놀러가는 바람에 나는 집에 혼자가게 되었다.
"안녕!"
"그래, 안녕."
혼자서 집에 가던 중 7반 반장인 그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녀석이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이 없던터라 나는 조금도 안녕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녀석을 무시하고 다시 길을 걷는데 그 녀석도 나와 같은 방향인지 나를 따라오면서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난 7반 반장인 최 소원이야."
"... 이름을 꼭 알려줘야하니? 난 널 잘 몰라."
"그럼 이제부터 친구하자! 됐지?"
"아니. 난 별로 너와 친구하고 싶지 않아."
"왜? 나는 너랑 친구하고 싶어."
"왜?"
"넌 목소리도 이쁜데다가 노래도 잘부르잖아. 난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그 녀석.. 아니 최 소원의 눈 깜짝 않는 칭찬에 내 볼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난 다시 나의 마이페이스를 되찾았다.
그리고 내가 단호하게 최 소원에게 말했다.
"거짓말 치지마. 난 네가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게 수상해."
"지금 내 진심을 짓밟은 거야?"
최 소원은 어린사슴 눈망을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자 왠지 미안한 마음이 개미의 손톱만큼은 들었기에 싱긋웃며 최 소원에게 말했다.
"응. 짓밟는 거야."
"헐. 너무해!"
"싫어. 난 당근할꺼야."
나의 대답에 최 소원은 잠깐이지만 썩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개의치않았다.
나의 집에 다와가는 데 최 소원은 아직도 나의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하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따라올 셈이야?"
"널 따라간 게 아니라 나도 내 집에 가는 것 뿐이야!"
"네 집이 어딘데?"
"여기!!"
최 소원은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녀석이 당황한 표정을.
게다가 최 소원이 가르킨 그 곳은 다름아닌 내 집이였다.
"그으래? 그럼 들어가봐."
"어.. 어?"
"들어가보라고. 네 집이라며."
"다, 당연히 들어갈거야!"
당황했는지 최 소원은 나에게 소리치며 나의 집에 들어갈려고 했다.
오랜만에 나는 재미를 준 그 녀석이 고마웠기에 그 녀석을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여기 내 집이야, 병신아."
나의 말에 최 소원은 아까처럼 어벙하게 있었고, 그 틈을 타 나는 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 밖에서 최 소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쪽팔려!!!!"
-
다음 날이 되자 나는 최 소원이 나를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지만
친구도 아닌 내가 구지 찾아갈 이유가 없기에 점심시간이 될 동안 나는 최 소원을 보지 못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들 옆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밥을 먹을 때면 밥 먹는 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밥을 때는 친구들과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알기에 나에게 불평하지는 않았다.
이제 막 밥을 다 먹어가는 데 누군가가 나의 급식판을 톡톡 쳤다.
앞을 보니 최 소원이 싱긋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이 주영!"
나의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 지 최 소원은 내 이름을 안 것이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최 소원의 표정에 나도 싱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어제 일을 까먹었나봐? 거짓말쟁이씨."
내 말에 최 소원은 잠깐 표정이 굳었지만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너는 혼자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왕따인가봐?"
나는 심각해졌다.
최 소원이 눈 병신 인지 아닌지에 대해 굉장한 혼란이 왔다.
쟤는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이 안 보이는 건가?
게다가 어젠 나와 친구가 되고싶다며 쫓아다닌 얘가 갑자기 시비를 거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빠왔다.
"넌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이 안보이나 보지?"
"후후 거짓말 하지 마렴. 쟤네들이 네 친구라면 적어도 너와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지 않았을까?"
"... 얘들아, 가자."
"그래!"
내 친구들은 나 빼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나와 최 소원을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리고 자꾸만 나를 왕따라고 의심하는 최 소원을 위해 나는 내 친구들을 데리고 급식판을 들고 일어섰고,
최 소원은 진짜로 내가 왕따가 아닌 것을 이제야 알았는지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주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뒤돌아 최 소원을 보며 메롱을 날려주고는 친구들과 화기애애 급식실에서 나갔다.
"주영아, 네 앞에 최 소원이 왜 왔었던거야?"
"글쎄? 그런데 네가 최 소원을 어떻게 알아?"
"우리 학교에 다니면서 최 소원 정도는 알아야 해. 걔 밴드부 보컬이잖아."
친구의 말에 나는 최 소원이 나에게 "넌 목소리도 이쁜데다가 노래도 잘부르잖아. 난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했던 말이 기억이 났고,
밴드부 보컬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생각에 나의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그리고 최 소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기에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걔 왕따야?"
"미쳤어? 최 소원이 왕따면, 우린 찐따야!"
"그래?"
그런데 왜 그런 얘가 왜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지 아주 많이 궁금했다.
혹시 나를 좋아하나?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었기에 그냥 나중에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더니 나에게 물었다.
"혹시 최 소원한테 관심있어?"
".. 너 밥 먹었으니까 이제 약 먹어야겠다."
"우씨! 최 소원 인기많아. 건들지 않는 게 좋아."
"내가 물 떠다줄까? 아무래도 너 심각한 것 같애."
나와 내 친구들은 이렇게 장난을 치며 교실로 돌아갔다.
훗날 내가 최 소원을 건들게 될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은 오늘도 역시 시내로 놀러가는 바람에 오늘도 나는 혼자서 집에 가게 되었다.
오늘은 최 소원이 안보이길래 이제 최 소원이 포기했군아 싶었는데
나의 집이 가까워질수록 최 소원이 우리 집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더욱 선명해져왔다.
"뭐야, 최 소원."
"안녕! 오늘도 친구할려고 왔지롱."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최 소원을 보며 왠지 모르게 어린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최 소원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을 건냈다.
"왜 나랑 친구가 되고 싶은건데?"
"말했잖아! 나는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좋다고."
"거짓말. 너는 친구들이 많은데 구지 나와 친구가 되겠다는 이유가 뭐냐고"
"사실은 저번 일요일에 어떤 할아버지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본 네가 그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걸 봤어.
난 그 모습을 보고 아주 큰 정신충격을 받았지. 이런 흉흉한 사회에 아직도 너같은 사람이 있군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친구가 되고싶었어. 나도 너처럼 빛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최 소원의 말에 나는 아주 큰 쑥쓰러움을 느꼈고,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최 소원이 아주 굉장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이유라면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있었다.
"이제 나랑 친구할꺼지?"
최 소원이 아주 불쌍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최 소원의 개새끼 같았고, 그런 최 소원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 병신아."
최 소원과 나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기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최 소원과 나는 자주 붙어다녔고, 대학교에선 나와 최 소원이 연인으로 소문이 나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최 소원과 친구가 된 것을 후회한 일이 있었다.
"주영아, 오늘 나랑 얘기 좀 하자."
최 소원과 집에 갈려는 데 친하지는 않지만 그냥 아는 선배였던 소리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차마 선배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어서 최 소원보고는 먼저 집에 가라고 했다.
"최 소원, 오늘은 혼자 가."
"혼자 가는 거 외로운데. 알았어!"
최 소원은 나와 친구가 되고 몇 일이 안되서 나와 같은 동네로 이사왔다.
그래서 항상 같이 집에 가는 거 였는데 그 모습을 본 우리 학교 사람이 나와 최 소원을 연인이라고 소문을 낸 것이였다.
나와 최 소원이 인사를 하자 소리 선배가 미간을 찌푸린 것을 보았지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최 소원이 가자 소리 선배와 나는 근처 놀이터로 향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주영아, 너 소원이랑 사귀니?"
"아뇨. 친구예요."
"그럼 나 소원이 좀 소개시켜줄래?"
"네?"
"너 소원이랑 친구라며. 나 소원이 좀 소개시켜달라고."
"안되는데요."
고등학생 때도 그랬다.
내가 최 소원과 친구라는 소문이 나자 여자아이들이 갑자기 나와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왔지만
결국 모두 최 소원을 소개시켜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가 소개를 안 시켜준 것도 아니였다.
내가 소개를 시켜줬는 데도 최 소원과 그 여자아이는 잘 되지않았고, 그 여자아이는 그게 내 탓이라며 짜증과 신경질을 냈다.
그래서 내가 최 소원에게 짜증을 낸 적도 있었지만 최 소원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만나보라고 해서 만난거지. 사귀는 건 내 마음이잖아. 왜 나한테 짜증을 내?"
하며 말하는 최 소원이 얄밉긴 했지만 옳은 말인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여자아이들이 아무리 소개시켜달라고 해도 나는 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최 소원한테 사귀자고 말해. 나한테 소개시켜달라고 하지말고."
그러자 최 소원 때문에 나에게 달라붙었던 아이들이 모두들 알아서 떨어졌다.
하지만 가끔은 그 아이들의 눈초리에 시달려야 한 적도 많았다.
차라리 소개시켜서 욕 먹는 것 보단 이렇게 눈초리만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항상 말한다.
"최 소원이랑 사귀고 싶으면 선배가 최 소원한테 고백하세요."
라고 말이다.
그러자 소리 선배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너 지금 선배한테 까부는 거냐?"
"아뇨. 그냥 말하는 건데요?"
"하? 이 기집애 골 때리네. 소개 시켜달라면 잔말 말고 소개 시켜 줄 것이지."
"손가락 치우시죠? 기분 나쁘네요."
"그래? 그럼.. "
'짝!'
소리 선배는 손가락을 내 이마에서 치우더니 손바닥으로 내 뺨을 쳤다.
뺨을 치더니 소리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기분 안 나쁘지? 기분 나빠? 그럼 너도 쳐."
내 주먹이 꽉 지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차마 때릴 순 없었다.
고작 선배라는 이유로 말이다.
"못 치겠어? 그럼 너가 좀 더 맞을래?"
소리 선배가 그러면서 나를 더 때렸다.
주로 뺨을 때렸지만 내 머리카락을 쥐흔드는 것도 잊어주지 않고 흔들어주었다.
소리 선배는 때리는 것도 지쳤는 지 구두를 신고있던 발로 내 다리를 한 대차더니 자기 갈 길을 갔다.
아프기는 오질라게 아팠지만 울지는 않았다.
놀이터에 있는 그네에 앉아 부운 뺨이 가라앉을 동안 산발이 된 머리와 옷을 정리했다.
정리하고 있을 때 땅바닥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비춰졌다.
위를 올려다보니 최 소원이 나를 꽤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내게 물었다.
".. 왜 그 꼴이냐?"
"왜 내가 이 꼴인 것 같냐?"
"설마 또 나 때문이냐?"
"그래. 병신아. 너 때문이다."
"하아.. 미안."
난 아무렇지 않았지만 최 소원은 꽤나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네를 타고 있는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산발이 된 내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 때 갑자기 내 심장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최 소원의 얼굴이 내 얼굴과 가깝다는 것을 느끼고 최 소원을 밀어냈다.
"됐어. 내 머리 내가 정리할께. 그보다 나 좀 엎어주라."
".. 너 무거운 거 알고있지?"
"나 너 때문에 맞은 거 알고 있지?"
내 말에 최 소원은 아무 말 못하고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나는 최 소원의 등에 폴짝 뛰어서 업혔고, 집에 가는 도중 나는 최 소원에게 한 번 고백하기로 했다.
"최 소원. 나랑 사귈래?"
"뭐.. 뭐?"
"나랑 사귀자고. 어처피 학교에 소문도 다 난 마당에."
"너 맞더니 정신까지 이상해져버렸냐?"
".. 이 자식이!"
"아악!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거다. 이 자식아!! 됐어. 너랑 안사귄다. 소문이 났으니까 사귀자고 한거지. 누가 너 좋아서 고백한 건 줄 아냐?!"
최 소원은 나의 고백을 무참히 무시해버렸다.
그래서 결국 나도 나의 고백을 부정했고, 투닥투닥거리다가 나의 집에 도착한 최 소원은 나를 집 앞에 내려다주었다.
고등학생 때 보다 훨씬 남자다워진 최 소원을 보며 시간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뭔 생각을 그리해. 얼른 들어가."
"오냐. 최 소원아, 너도 잘가라"
"응."
우린 그렇게 해어졌고, 그 다음 날 나는 최 소원이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내가 고백한 것 때문에 그런 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최 소원이 군대에서 돌아오면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로 대할 것이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잘 모르겠지만 대학생활을 끝내고 이제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늦은 밤이지만 출출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편의점에 갈려고 집에서 나섰다.
집에서 나오자 한 남자가 눈 앞에 서 있었고, 나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최 소원이라고 말이다.
"최.. 소원."
"오랜만이야!"
최 소원은 나를 보며 팔을 활짝 벌렸고, 그런 최 소원의 모습에 나는 주먹을 쥐고 그 녀석의 복부를 쳤다.
"컥! 이 주영! 너무해!!"
"나 무 싫댔지. 당근한다니까."
이번에도 역시 최 소원은 썩은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곧바로 해맑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보고싶었어!!"
"나도다. 이 자식아. 말도없이 군대가버리니까 좋디? 앞으로 친구한테 말도없이 가버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
"응? 응!"
우린 이렇게 다시 만났다.
[8년 후]
아무리 감출려고 해도 자꾸만 최 소원을 좋아하는 마음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고,
결국 나는 마지막 고백을 하려고 레스토랑에 최 소원을 부르는 거였다.
"뭔 생각을 그리 해?"
"너 처음 만났을 때."
"아, 그 때! 우리 고등학생때 진짜 재밌었는데! 헤헤.. 그치?"
"최 소원."
"응?"
"나 너 좋아해."
"어.. 어?"
"나 너 좋아한다고. 너랑 사귀고 싶다고 말하는거야."
"하지만 너랑 나는 친구잖아."
".. 그래. 친구지. 알았다. 이 자식아, 아주 못을 박는구만!"
너와 나 사이는 친구라며 못을 박아버리는 최 소원 때문에 울어버릴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나는 장난을 치며 최 소원의 머리를 헝크렀다.
최 소원은 내가 장난을 치자 이제서야 긴장을 풀고 웃으며 나와 같이 장난을 쳤다.
"잘 먹었다! 곧바로 집에 갈꺼지?"
"아니. 나 면접보러 가야돼."
"알았어! 면접 잘 봐"
"오냐."
최 소원은 뒤돌아서 다시 한 번 뒤안돌아보고 집으로 곧장 갔다.
그리고 최 소원이 안 보일 때 쯤이 되자 눈에서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수근댔지만 나는 울면서 술집으로 향했다.
- ( 한 남자 이야기 )
"아저씨, 소주 한 병 더요!!"
"아가씨, 이제 우리 문 닫아야하니까 나가줘."
"싫어요!! 저 아직 더 마셔도 된단 말이예요!! 더 주세요오!"
"많이 취했네. 서원아, 미안한데 이 아가씨 좀 업어라."
"아, 젠장. 네."
"업긴 뭘 업어! 나 잘 걸을 수 있다고!! 잘 봐!"
술집에서 알바하고 있는 나는 이제 겨우 집에 가겠군아. 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여자가 안나갈려고 우겨댔다.
잘 걸을 수 있다며 씩씩하게 걷던 여자는 결국 비틀비틀 대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요?"
"아프잖아!! 아파.. 엉엉엉엉"
그 여자는 하필이면 돌이 박혀있는 곳에 넘어졌는지 무릎이 찢어져서 피가 나고있었다.
자기가 넘어져 놓고선 아프다고 징징대는 여자때문에 그 주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젠장. 사장님, 이 여자 어떻해요?"
"휴대폰 찾아서 아무한테나 전화해봐. 난 바빠서. 수고해라 서원아. 아, 돈은 받아놔, 38000원!"
칠렐레 팔렐레한사장님은 무책임하게 나에게 이 여자를 맡겨놓고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젠장젠장젠장. 결국 나는 이 여자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일단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이 여자가 먹은 값 38000원을 꺼낼려고 했는데 이 여자 지갑엔 돈 한 푼도 없었다.
... 젠장. 돈도 없으면서 왜 술집에 와서 술을 쳐마시고 안주를 쳐먹고 날리야!
이번엔 휴대폰을 꺼냈다.
...젠장. 이번에는 휴대폰 잠금장치가 걸려있었다.
"저기요. 여기서 자면 얼어뒤지거든요? 일단 그 쪽 집에 갑시다."
"업어줘!"
울다가 어느 샌가 울음을 멈추고 졸고있던 그 여자에게 말했더니 그 여잔 아주 뻔뻔하게도 나의 등에 업힐려고 폴짝폴짝 뛰었다.
결국 일단 돈은 받아내야하기에 업어주긴 했다.
"그 쪽 집 어디예요?"
"음.. 몰라! 헤헤헤.."
"..하아."
그래. 나오는 것은 내 등에 업혀있는 여자의 돈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휴대폰 잠금장치도 아닌 내 한숨이었다.
일단 내일 아침 정신차린 여자한테 돈 받아내는 게 더 쉽겠다고 생각한 나는 내 집으로 데리고 갔다.
"추워!!"
"그러게 누가 얇은 옷 입고 밤까지 돌아다니래요?"
"우씨.. 잔소리쟁이. 넌 앞으로 잔소리쟁이야!"
"하아.. 내가 왜 당신한테 잔소리쟁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있잖아, 잔소리쟁이야. 나한테 거짓말쟁이가 있었는데 거짓말쟁이가 나보고 친구래! 그래서 슬프다."
이 여자, 남자한테 차인거군.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아무 말없이 내 등에 그냥 기대어있기만 했다.
추운 지 자꾸 그 여자는 자신의 머리를 내 등에 부비적부비적거렸다.
"저기요. 저 등 간지럽거든요?"
"하지만 추운걸?"
"내 집 다 와가니까 그만 좀 부비적거려요!"
"왜 네 집에가? 내 집에 가야지!"
"그 쪽 집 모른다면서요!!"
"알아!!"
"에이씨.. 다 왔어요!! 그냥 자고 가요!"
나는 비밀번호를 삑삑누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눈을 부릅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내 등에 업힌 여자를 보더니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여잔 누구냐?"
".. 술 취한 여자요."
"그래? 아쉽군아. 네 방에 눕혀놓으렴."
.. 그 아쉽다는 표정과 그 말은 뭐야!! 정말 엄마 맞아?!
일단 엄마 말대로 그 여자를 내 침대에 눕혀놓았다.
"따뜻하다. 헤에.. 나 조금만 잘테니까 깨워줘야돼! 알았지?"
".. 알았어요."
그 여자는 금방 잠이 들었고, 나는 거실로 나와 엄마와 마주앉았다.
엄마는 한참동안 나를 주시하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네 애인이냐?"
"아니. 그냥 알바하고 있는 곳에 술 취한 여자."
"꽤 귀엽던데. 후후.. 예비 며느리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거 나보고 들으라고 한 말이지?"
"그래!!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알바를 하고 연애를 안하고 있어?! 아무튼 넌 오늘 바닥에서 자고."
.. 나 아직 26살 밖에 안됐어. 엄마.
엄마는 그런 나의 표정을 무시하고는 안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도 내 방에 들어가서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피곤한 하루 때문인지 잠을 깊게 들었다.
"저기요!!"
젠장.. 자고 있는데. 누가 깨우고 난리야!!
"저기요!! 일어나봐요!!"
".. 으억!!"
눈 앞에 있는 여자 때문에 깜짝놀라 벌떡 일어나버렸다.
아, 맞다. 저 여자 술 취해가지고 내 집에 업혀왔지.
"저기.. 여기 어디예요?"
"내 집."
"아, 그렇군요. 안녕히계세요."
... 뭐지. 저 당당함을 넘쳐흘러 뻔뻔함은?
나는 내 방에서 나갈려는 그 여자를 잡았다.
"왜요?"
"어제 기억나요?"
"아, 네! 그 쪽에 저 술 취해가지고 업어가지고 왔잖아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여자는 정말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제정신이라면 왜 자신을 자신의 집에 안데려갔냐고 난리를 쳤을텐데.
"그럼 어제 술값 38000원 주고 가셔야죠."
"죄송한데, 제가 돈이 없거든요? 제가 집에 가서 얼른 돈가지고 그 술집으로 가서 갚으면 안될까요?"
"제가 그 쪽을 어떻게 믿어요?"
"제 핸드폰 드릴께요! 지갑엔 아무것도 없거든요!"
".. 하아. 알았어요."
이렇게 나와 그 여잔 합의를 하고 그 여잔 집으로 갈려고하는데 엄마가 나오더니 그 여자를 잡았다.
또 엄마 무슨 짓을 꾸밀려고..
"밥 먹고 가요. 아가씨."
"아, 그래도 될까요? 감사해요. 나중에 제가 밥 한 번 쏘겠습니다!"
.. 솔직히 말해봐. 당신 제정신 아니지?
아버지, 엄마, 내 동생까지 있는 식탁에 그 여잔 잘도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정말 맛있네요!"
"고마워요. 아가씨. 아가씨는 이름이 뭐예요?"
"이 주영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6살이고요. 마케팅 취업준비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요? 우리 아들은 박 서원이라고 하고 나이 26살, 수의사 준비하고 있어요. 호호"
"오, 수의사요?! 저 동물 되게 좋아하는데. 나중에 밥 한 번 쏠께요!"
저 여자.. 아니 이 주영은 밥 한 번 안쏴서 환장한 귀신이 들러붙었나..
그리고 자기소개는 왜하는 건데?! 엄마도 왜 남의 프로필을 읽어주고 난리야!
"누나, 우리 형 좋아해요?"
"풉!! 헉, 미안해요!!"
...젠장. 동생의 말에 이 주영은 입에 있던 이물질을 내 얼굴에 발사했고,
이 주영은 나의 화난 표정에 울상을 지으며 미안하다며 말했다.
"박 수환, 입 다물고 밥 먹어."
"응."
내 얼굴에 붙은 이물질을 본 박 수원은 아무 대꾸없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자 이 주영은 자신이 설겆이를 하고 간다며 엄마한테 쉬라며 말했다.
그런 이 주영의 모습에 엄마는 더욱 더 이 주영한테 빠진 것 같았다.
"호홍. 저런 며느리가 있어야 집에 활기가 넘치는데."
"그거 또 나한테 들으라고 한 말이야?"
"잘 알아들었으면. 잘 꼬셔봐!"
..젠장. 이 주영이란 여자가 나쁘지는 않지만 저 여자 좋아하는 남자있는 것 같던데.
그리고 이 주영은 설겆이를 다 한건지 우리 가족 앞에 서더니 인사를 했다.
"저, 이제 갈께요! 안녕히계세요!"
"그래요. 나중에 또 놀러와요!"
"하하.."
이 주영은 엄마의 말에 어색하게 웃더니 인사를 바르게 하고는 집에서 나갔다.
그제야 우리 집은 활기가 잦아졌다.
"당신은 예비 며느리 어때요?"
"괜찮아. 예의 바르고."
"... 엄마!! 아버지!!"
그런 나의 흥분한 모습에 엄마와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박 수원의 목소리.
"와, 그 누나가 예비 형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날 박 수환은 나에게 오질라게 맞았다.
-
"후우.. 집에 가면 엄마, 아빠가 외박했다고 잔소리 퍼붙겠네.."
나는 궁시렁궁시렁거리면서 집 앞까지 걸어갔다.
바닥만 보면서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위를 보니 최 소원이 나를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보면 자기가 차인 사람으로 보겠네.
"외박했어?"
"오냐, 어제 면접에서 떨어져가지고 술 좀 마셨더니.. 친구네 집에서 잤어."
"거짓말."
"앙?"
"아냐. 얼른 들어가봐. 너희 부모님께서 기다리셔."
"분위기 많이 어둡냐?"
"응. 잘 들어가"
"그래, 고맙다."
나는 최 소원을 밀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쟤 오늘 따라 어두워 보이지? 어젯 밤에 무슨 일 있었나?
곧 나는 최 소원의 걱정할 틈없이 나의 걱정을 해야했다.
빗자루를 들고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말이다.
나는 엄마, 아빠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엄마, 아빠는 날 이해해주면서 돈 38000원을 쥐어주고 돈 갚고 오라고 했다.
"저기요, 저 어제 돈 외상해서요."
"어제 그 아가씨군. 38000원 가지고 왔어?"
"네! 여기. 그런데.. 그 서원이라는 사람 왔어요?"
"음.. 아직. 올 시간이 다 됐는데."
'딸랑!'
그 때,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서원이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 남자에게 소리쳤다.
"저 돈 갚왔어요! 핸드폰 주세요!"
"자, 여기... 하기 전에! 너 나한테 빚 졌잖아."
"하하.. 설마 그것도 갚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맞는데? 왜 아니라고 생각한거지?"
그 남자는 핸드폰을 나에게 줄려하다가 갑자기 휙 뺏더니 다시 도로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저 남자가 미쳤나.. 겨우 집에서 한 밤자고! 밥 한 끼 얻어먹은 거 가지고!! 쪼잔하게 시리..
"우리 엄마가 그 쪽 좋아하는 거 같은데. 밥 한 번 쏘죠?"
".. 저 레즈 아닌데요?"
"그 뜻 말고요!! 아씨.."
아니!! 그럼 또 뭐?!!
나는 서원이라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헤에.. 자세히보니 이 남자 꽤나 고등학생 때 여자애들 울렸었을 법하군.
"저랑 사귈래요?"
"저 좋아하는 사람있는데요?"
"그 사람은 당신 안좋아하잖아요."
"하하, 아주 비수를 꽂는 군요. 그렇긴 하죠."
"그럼 사귀면서 우리 둘이 좋아하는 사이가 될 지 어떻게 알아요? 나도 당신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사귀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도록 하죠."
"음, 그래요. 그렇게 하죠. 그 쪽 전화번호 뭐예요?"
"... 그 쪽 핸드폰에 저장해놨어요. 어젠 몰랐는데 비밀번호가 0000이 뭐예요. 좀 바꿔요."
"뭐, 그러도록 하죠."
그렇게 난 그 남자와 헤어졌고, 그 남자가 저장해놨다는 말에 얼른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만지다보니 낮선 글자가 들어왔다.
뭐야, "사랑하는 사람이 될 사람"
난 그 단어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이젠 안 아프겠지? 하는 기대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비밀번호 0613으로 해요. 내 생일이니까. 그 쪽 생일 안 알려줘도 돼요. 어제 신분증 봤거든요.]
알고보니 이 남자 아주 뻔뻔한 사람이었구만.
"응? 최 소원!!"
"어디갔다와?"
집에 가다 근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삐그덕삐그덕 거리고 있는 최 소원의 모습이 눈 앞에 보였다.
나는 최 소원 옆 그네에 앉아 대답해주었다.
"어제 술집에서 돈 안 갚고 왔거든. 그거 돈 갚고 왔어."
"그래? 있잖아, 주영아."
"응? 아! 나부터 말해도 돼? 나 할 말 있는데."
"뭔데?"
"나 남자친구 생겼어! 너한테 제일 처음으로 말하고 싶었어!"
".. 왜?"
"내가 너 좋아한댔잖아. 그런데 이렇게 너한테 처음으로 말해야지. 널 조금이라도 잊지."
"그래? 축하해! 하하.. 나보다 먼저 연인이 되다니. 이거 배신감 드는 데?"
"병신아, 너도 얼른 여자친구 사궈! 옛날부터 여자 소개시켜줘도 맨날 팅기더니.."
"하하.. 뭐, 나 이제 들어갈께."
"응? 응. 잘들어가!"
최 소원은 어깨를 축 쳐지면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먼저 연인이 된 게 그렇게 배신감 드나?
그리고 나도 집으로 들어갔고,
나와 소원이가 있던 놀이터에는 두 그네만 삐그덕삐그덕 거리며 남아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마주보고 앉아있고,
그 때, 난 최 소원을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앞으로 박 서원을 사랑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 그 남자 이야기 )
[ 8년 전 ]
"소개팅 할래?"
주영과 어렵게 친구가 되고 우린 며칠이 안돼서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요즘 주영이 소개팅을 안하겠냐고 자주 묻는다.
소개팅을 안하겠다고도 하고 하겠다고 하고는 그 상대방을 차고 온다.
왜냐하면 아직 난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아니. 안 할래."
"오냐."
주영은 내 머리카락을 헝크르며 다시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주영이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다 내 눈에 안보이자 그제서야 눈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헝크러진 내 머리카락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 데 옆에서 나와 주영이 대화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내 친구인, 현철이 내게 물었다,
"기분 안나쁘냐?"
"뭐가?"
"걔가 너 머리 헝크른거. 너 항상 네 머리 헝클러지는 거 싫어하잖냐."
"내가 그랬나?"
내 대답에 현철은 나를 게심스레 쳐다보더니 또 다시 내게 물었다.
"너 걔 좋아하냐?"
"뭔소리야. 주영인 내 친구야."
"그래? 아님 말고."
내 대답에 현철은 재미없다는 듯 말을 끝냈다.
뭐야, 싱거운 녀석. 내가 주영을 좋아할리가 없잖아.
그 때, 난 현철의 말을 조금만 더 귀 귀울이고 생각해봤어야 했었다.
그러면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시간이 흘러 우린 고3이 되었다.
"어이, 소원! 너 어디 대학교 갈거냐?"
"음, 몰라. 너는?"
"난 B대학교 경영학과 들어갈려고. 너도 빨리 진로를 정해야지."
"B대학교? 거기 경쟁률 세지 않아?"
"응. 하지만 난 자신있거든. 아무튼 오늘 밥 맛있게 먹었다. 다음엔 내가 한 턱 쏘마."
"어? 응."
오랜만에 주영과 나와서 저녁밥을 사먹는데, 대학교에 대한 대화로 흘러버렸다.
주영의 말에 나는 집에 가서 B대학교에 관한 모든 것들을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현재 내 머리와 성적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였다.
하지만 나는 주영과 함께 대학교에 간다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에만 매달렸고.
결국 나는 주영과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가게 되었다.
어느 날이였다.
"주영아, 오늘 나랑 얘기 좀 하자."
같은 과의 여자선배가 왠일인지 나와 함께 집에 가려던 주영을 붙잡았다.
주영은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더니 내게 말했다.
"최 소원, 오늘은 혼자 가."
"혼자 가는 거 외로운데. 알았어!"
항상 주영과 함께 집에 가다보니 주영과 함께 하는 것은 일상이 되버린 나였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주영이 왠일로 나보고 혼자가라고 하더니 알고보니 나를 좋아하던 여자가 주영을 해코지하려던 것이였다.
불안한 마음을 갖고 주영의 말대로 혼자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도 불안한 마음은 멈추지 않자 나는 결국 집에서 뛰쳐나와 주영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놀이터에 누군가가 그네에 앉아있었다.
형상을 보니 딱 주영이였다.
주영은 헝크러진 머리와 옷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에 나는 화가 난 표정으로 주영 앞에 섰다.
왜 화가 났는 지 몰랐다. 그저 친구라서 그렇겠지? 라고 항상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 왜 그 꼴이냐?"
"왜 내가 이 꼴인 것 같냐?"
"설마 또 나 때문이냐?"
"그래. 병신아. 너 때문이다."
"하아.. 미안."
나는 항상 미안했고, 주영은 항상 괜찮아야 했다.
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미안한 마음에 주영의 앞에 무릎꿇고 앉아 주영의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정리해주는 데 주영이 갑자기 내 얼굴을 밀치더니 말했다.
"됐어. 내 머리 내가 정리할께. 그보다 나 좀 엎어주라."
".. 너 무거운 거 알고있지?"
"나 너 때문에 맞은 거 알고 있지?"
주영의 말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가만히 있는 데 주영이 또 다시 말했다.
그것도 아주 내 가슴을 떨리게 하는 말을 말이다.
"최 소원. 나랑 사귈래?"
"뭐.. 뭐?"
"나랑 사귀자고. 어처피 학교에 소문도 다 난 마당에."
"너 맞더니 정신까지 이상해져버렸냐?"
".. 이 자식이!"
"아악!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거다. 이 자식아!! 됐어. 너랑 안사귄다. 소문이 났으니까 사귀자고 한거지. 누가 너 좋아서 고백한 건 줄 아냐?!"
주영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가슴이 떨리는 것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만일 주영과 사귀다가 헤어지면 친구라는 관계도 끊어질 생각에 두려웠던 것이다.
주영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집으로 왔는 데 군대 입대 영장이 날라왔다.
나는 두려움에 나에게 고백한 주영에게서 도망친 것이였다.
"최.. 소원."
"오랜만이야!"
입대 후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제대 후 나는 주영에게 제일 먼저 만났다.
내게 안기라고 팔을 발렸지만 안타깝게도 주영은 날 보자마자 복부를 쳤다.
이 주영, 이 녀석.. 힘이 어째 더 늘은 것 같지?
"컥! 이 주영! 너무해!!"
"나 무 싫댔지. 당근한다니까."
그 놈의 썰렁개그는 여전하군.
주영은 그제서야 해맑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보고싶었어!!"
"나도다. 이 자식아. 말도없이 군대가버리니까 좋디? 앞으로 친구한테 말도없이 가버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
"응? 응!"
친구라.. 난 앞으로 친구 안할껀데.
8년만 기다려라, 이 주영. 내가 멋지게 프로포즈하마!
우린 이렇게 다시 만났다.
[8년 후]
"뭔 생각을 그리 해?"
"너 처음 만났을 때."
"아, 그 때! 우리 고등학생때 진짜 재밌었는데! 헤헤.. 그치?"
"최 소원."
"응?"
"나 너 좋아해."
"어.. 어?"
"나 너 좋아한다고. 너랑 사귀고 싶다고 말하는거야."
"하지만 너랑 나는 친구잖아."
".. 그래. 친구지. 알았다. 이 자식아, 아주 못을 박는구만!"
그 후, 제대한 기념으로 주영이 한 턱 쏜 날이였다.
또 다시 내게 고백을 하는 주영을 보며 나는 안타깝지만 다시 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울 듯한 표정을 짓는 주영을 보며 가슴 아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였다.
"잘 먹었다! 곧바로 집에 갈꺼지?"
"아니. 나 면접보러 가야돼."
"알았어! 면접 잘 봐"
"오냐."
오늘이 주영의 면접 날이였던가?
주영이 면접을 보며 가고 나는 얼른 프로프즈할 준비를 하러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 때, 한 번만 더 뒤돌아 봤으면 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 날 밤, 주영의 부모님께서 주영이 지금 나의 집에 있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술에 취해있는 주영과 주영을 엎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그 남자를 한 대 패줬어야 했는데, 나는 그럴 용기가 나지않았다.
나는 주영과 친구관계 밖에 되지않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 장면을 본 후 나는 주영이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후우.. 집에 가면 엄마, 아빠가 외박했다고 잔소리 퍼붙겠네.."
아침 9시가 되서야 주영이 궁시렁궁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땅바닥을 보며 걷는 주영은 나를 보지 못하고 나와 부딪혔다.
내가 주영에게 먼저 물었다.
"외박했어?"
"오냐, 어제 면접에서 떨어져가지고 술 좀 마셨더니.. 친구네 집에서 잤어."
"거짓말."
"앙?"
"아냐. 얼른 들어가봐. 너희 부모님께서 기다리셔."
"분위기 많이 어둡냐?"
"응. 잘 들어가"
"그래, 고맙다."
주영이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 취업 준비를 하려 하는데.
도통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창문 넘어 주영의 집을 바라보다 주영이 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영을 따라 나가려했지만 이미 내가 집에서 나왔을 땐 주영이 없었고, 나는 주영이 올 때 동안 놀이터 그네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보름달이 환하게 떴는데, 주영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응? 최 소원!!"
"어디갔다와?"
주영이 지금 왔는 지 날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주영에게 물었다.
"어제 술집에서 돈 안 갚고 왔거든. 그거 돈 갚고 왔어."
"그래? 있잖아, 주영아."
"응? 아! 나부터 말해도 돼? 나 할 말 있는데."
"뭔데?"
"나 남자친구 생겼어! 너한테 제일 처음으로 말하고 싶었어!"
".. 왜?"
"내가 너 좋아한댔잖아. 그런데 이렇게 너한테 처음으로 말해야지. 널 조금이라도 잊지."
"그래? 축하해! 하하.. 나보다 먼저 연인이 되다니. 이거 배신감 드는 데?"
"병신아, 너도 얼른 여자친구 사궈! 옛날부터 여자 소개시켜줘도 맨날 팅기더니.."
"하하.. 뭐, 나 이제 들어갈께."
"응? 응. 잘들어가!"
주영이 집에 들어갈 때까지 뒷모습을 보다 보니 문득 생각 난 것이 나는 주영에게 병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것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나 정말 병신이네.
잡을 껄 그랬어. 좋아하는 거 빨리 알아챌 껄. 고백 받아줄 껄. 더 일찍 고백할 껄.
난 모든 것이 주영보다 느렸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 주영의 기분을 몇 배나 더 느껴야했다.
그 때, 난 주영을 잡는 것을, 사랑하는 감정을 빨리 알아채는 것을, 고백을 받아주는 것을, 더 일찍 고백하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주영을 사랑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 한 남자 이야기 그 후 )
"여기예요!"
오늘 첫데이트로 이 주영과 영화를 보기로 했다.
원래 여자는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온다더니 이 주영에게만은 아니였나보다.
언제온건지 팝콘과 음료수까지 다 사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빨리 왔어요? 원래 남자가 먼저 와서 기다리는 건데."
"에이, 요즘 남자여자 구별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그것보다 액션코미디로 영화표 끊어났는 데 괜찮죠?"
"아, 네. 뭐."
..원래 여자는 로맨스 좋아하지 않았던가?
남자 여자 구별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님 정말 이 주영이 특이한건지 헷갈릴 정도로 그녀는 특이했다.
"와, 이제 영화 시작한다! 이 팝콘 서원씨 다 먹어요. 전 영화볼 때 팝콘 안먹어요."
이래서야 팝콘 동시에 집다가 손이 맞대어 설래는 순간 따위는 바랄 수 없잖아!
이 주영은 정말로 영화보면서 한 번도 팝콘에 손을 대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당연히 영화 안보고 계속 이 주영만 쳐다봤으니까.
그런데 이 주영은 눈치없이 한 번도 눈 안마주치더라.
"영화 잘 봤어요. 다음엔 정말로 제가 쏠께요."
"영화말고 저녁 밥 사줄래요?"
"제가 맛있는 곳 아는데, 그 곳으로 가죠."
그녀와 저녁 밥을 먹으러 가다 고등학교 밴드가 노래부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주영은 그 모습을 보더니 내 손을 잡고는 그 곳으로 이끌고 갔다.
"노래 잘부른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도 고등학교 때 밴드부를 했어요."
이 주영이 밴드에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차마 나는 대답할 수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녀석은 얼굴도 괜찮고, 키도 크고, 노래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또또 아무튼 인기가 많았는데."
"수상하게 아주 평범한 나한테 친구 하자고 하는 거예요."
"아니예요, 주영씨 평범하지 않아요. 되게 이뻐요."
"농담하지 말아요. 나도 눈 있어요. 아무튼, 괜히 인기많은 녀석이랑 얽혀서 귀찮아지고 싶지 않아서 친구하자는 그 녀석을 거절했어요."
"그런데도 그 녀석은 계속 친구하자고 따라다녔죠. 결국 전 그 녀석을 받아줬고 우린 친구가 되었어요."
이 주영의 이야기는 마치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던 동화이야기 같이 흥미롭게 들려왔다.
단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녀의 목소리가 많이 구슬프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 녀석 때문에 온갖 수모를 겪고 나서도 그 녀석이 좋아진거예요."
"난 그 녀석에게 고백했어요."
"..그랬더니요?"
"알고있으면서. 차였잖아요. 몇 년을 가슴 아프다가 당신을 만났어요."
"이거 참, 좋아하는 여자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네?"
"그 쪽이요. 첫 눈에 반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얘기 나한테 하지 말아요. 질투나니까."
"아, 방금 오글거린거 당신도 알고 있죠?"
"나도 아니까 말하지마요. 지금 무지 쪽팔리니까."
그렇게 우린 그 날 보름달처럼 꽉 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 주영을 사랑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첫댓글 안타깝네요ㅜㅜ 주영이가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소원이랑 잘됄수 있었을텐데
버스는 떠나기 전에 타야하죠.... ㅠ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