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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주최한 문예대전에 내려고 쓴 글인데 친구들이 재밌다고 해서 올려봐요. 아직 학생이라 좀 미숙할 수도 있지만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pocalypse-Z
2036년 5월 12일. 3주 후면 여름이다. 그 전에 다시 마트에서 식량을 가져와야 한다. Z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좋은 소식일까?
2036년 5월 15일. 못 보던 Z가 나타났다. 전에 사라졌었던 Z들과 같이 나타난 것을 보면 또 희생자가 생긴 것 같다.식량이 떨어져간다. 내일은 마트에 가야겠다.
2036년 5월 16일. 위험했다. 식량 공수에 실패했다. 역시 새로운 길을 찾기는 무리인 것 같다. 저녁에 Z두 마리가 마당까지 들어왔었다.
2036년 5월 17일. 다시 일기를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식량이 전부 떨어졌다. 오늘도 식량을 가져오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13시 56분. 16시 이전까지는 집에 돌아와야 한다. 가장 필요한건 물. 다음은 통조림이다. 나는 천안 시내 거의 없는, 어쩌면 유일할 수도 있는 생존자다. 지난 2개월간 살며, 한 사람의 생존자도 만나지 못했다. 14시 15분. 순조롭다. 아직까지는 Z를 보지 못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들에게 걸리지 않으려면 냄새를 지워야한다. 그들은 피 냄새에 가장 민감하다. 반대로 향수와 같은 인공합성물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몸에 향수를 뿌린다. 이제 5분정도만 강변을 따라가면 마트에 도착한다.
앞쪽에 Z 세 놈이 보인다. 제기랄. 세 놈이 다가 아닐 것이다. 향수를 다시 몸에 뿌린다. 조금이라도 사람 냄새가 나면 끝이다. 한번 외출할 때마다 최소 한 병 이상 쓰는 것 같다. 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한 병에 몇 십만원 짜리 명품을.
14시 27분. Z 세 마리 때문에 우회하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옛 백화점 지하에 마트가 있다. 1층은 비교적 안전하다. 넘쳐나는 향수가 냄새를 가려준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식량을 챙기려면 좀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즉석식품 코너. 바닥에 엎드려있는 시체. 마트에 올 때마다 만난다. 이제 곧 썩어서 없어질 것 같다. 2개월 전에는 그래도 봐줄만 했는데. 옆쪽에는 마실 것들이 진열되어 있다. 탄산음료 하나로 목을 축이고 물을 챙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먹을 것을 챙길 수 있다.
젠장. Z다. 그것도 네 마리나 몰려있다. 돌아갈까. 안 된다. 식량을 챙겨야 한다. 냄새는 향수로 지우면 되고, 소리만 안 나게 조심하면 된다. 걷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다 보니 Z의 걸음걸이와 비슷하게 걸을 수밖에 없다. 괴물에게서 살아남으려면 괴물을 닮아야 한다는 건가. 웃기지마. 절대 저들처럼은 되지 않는다. 최대한 조심히 통조림을 챙긴다. 중간 중간에 전투식량. 최고의 비상식량이다. 유통기한도 길고, 통조림보다 맛있고, 한 봉지로 한 끼가 가능하다. 어디서든 물만 있으면 된다. 아, 이건 단점인가. 퍽. 망했다. 가방이 진열대에 부딪히며 소리가 났다. 이제 조심이고 뭐고 없다. 도망쳐야 된다. 어짜피 소리는 Z들이 낼 것이다. 옆 건물의 주차장.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 비상용으로 로프를 설치해둔 곳이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욕 나오네. 인근 Z는 전부 모인 것 같다. 적어도 50마리 정도는 되 보이는데. 생존자의 유일한 어드밴티지. 달리기는 내가 훨씬 빠르다. 주차장 3층까지 가서 로프를 잡는다. 몸에 묶을 시간은 없다. 그냥 뛰어내린다. 뛰자. 젠장. 장갑도 끼고 있었는데 손이 다 까졌다. 피가 안난게 차라리 다행이다. 이 와중에 Z 몇 마리가 나를 잡겠다고 뛰어내린다. 미친놈들. 어짜피 뼈가 다 부서져서 걷지도 못할텐데. 겨우 살았다. 계속 이렇게 스릴 넘치게 살아야 되나. 현재시각 15시 03분. 집까진 30분 정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16시 이후부터는 그들의 시간이다. 부디 내일도 무사하기를. 아멘.
2036년 6월 2일. 스물 두 번째 생일이다. 글을 쓸 시간도 부족하지만 계속 이러다간 머리가 녹슬어버릴 것 같아서 계속 글을 쓰기로 한다.
지난 1개월 여간 내가 본 생존자는 총 세 명. 그러나 이제는 세 마리의 Z일 뿐이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토대로 조금 더 멀리까지 조사를 해 보기로 했다. Z는 온 감각을 청각과 후각에 의지한다. 시각은 거의 없다. 통각 역시 마찬가지. Z는 머리를 파괴해야만 죽일 수 있다.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오후 1시에서 1시 반 사이에 전력이 공급된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매일 같은 시간에 전기를 공급하는 걸까. 아침 7시부터 10분간은 물도 나온다. 때때로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 시간차가 난다는 건 사람일 수도 있다. 군인용 가방에 전투식량, 생수, 통조림을 최대한 챙겨서 천안시 발전소까지 가 보기로 했다. 발전소까지 대략 3~4일 하지만 한번도 가지 않았던 길이라 불안하다. 변수는 언제나 Z. 지긋지긋하다.
2036년 6월 3일 새벽 5시 정각. 놈들의 활동이 사그러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지도를 통해 본 결과 발전소까지는 최소 3일. 하지만 식량은 7일치를 준비했다. 하루 두 끼씩 먹으면 열흘도 버틸 수 있다. 하루에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부터 16시 까지. 늦어도 17시 까지는 임시숙소를 찾아야 한다. 여행길에 Z만 만나지 않는다면 좋을텐데. 저번과 같은 경험은 사절이다.
5시 20분. 시내에 도착했다. 역시 Z는 없다. 혹여나 만나더라도 해가 떠 있는 한 도망칠 수 있다. 놈들은 햇빛이 있을 때는 굼뜨다.
5시 33분. Z 다섯 마리를 발견했다. 총기를 사용하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소리를 듣고 놈들이 더 몰려오면 죽음이다. 칼을 사용할까? 아니다, 접근전은 놈들을 이길 수 없다. 역시 우회하는게 좋겠다.
6시 01분.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설마 음식 냄새를 맡고 따라오진 않겠지만 혹시 몰라 향수를 뿌렸다.
15시 42분. 임시로 찾아낸 숙소에 갇혀있다. 태양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이다. 아무래도 변종이 있는 것 같다. 일반적인 Z가 낮에 그렇게 빠를 수는 없다. 그래도 도망치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발전소방향으로 온 것 같다. 아까 그 Z가 문을 계속 두드리지만 단단히 잠겨있어 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내일 움직일 수 있다.
6월 4일 06시. 비상계단으로 내려와 발전소로 향한다. 남은 시간은 대략 2~3일 정도.
6시 30분. 지도를 확인해보니 발전소까지는 16km정도 왔지만 어제 그 Z를 피하느라 서쪽으로 조금 멀어진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지체될 듯. 게다가 지금부터는 전혀 모르는 길이다. 더 조심해야 한다. 여차하면 총을 사용할지도 모르겠다. 피식. 수능 망치고 홧김에 군대를 일찍 가버린 게 도움이 될 줄이야. 9시. Z 네 마리를 죽였다. 놈들이 먼저 날 발견하고 달려들어 어쩔 수 없었다. 벌써 다른 녀석들이 총소리를 듣고 몰려들고 있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남은 거리 30여 km. 충분히 갈 수 있다.
6월 6일. 오늘은 현충일이다. 생존이고 뭐고 다 끝내버리고 싶다. 그냥 저놈들 속으로 뛰어들든지 총을 사용하든 마음만 먹으면 편해질 텐데. 지금은 발전소 내부다. 생존자? 그딴 건 한 명도 없었다. 망할 시체들만 돌아다니고 있길래 화가 나서 전부 쏴 죽여 버렸다. 발전소는 방음이라 상관없다. 이런 곳에서 죽으면 잡아먹히지는 않으려나. 머리가 어지럽다. 일단 자고 나머지는 내일 생각하기로 하자.
6월 7일. 전기가 공급되는 이유를 알아냈다. 전력이 비상발전으로 전환되어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전기를 보내주고 있었다. 덤으로 비상발전기 앞에서 생존자가 남긴 포스트잇 하나도 발견했다. ‘5월 29일. 생존자 세 명. 발전기를 비상발전으로 돌리고 발전소를 탈출한다. 만약 살아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서쪽에 있는 수도원으로 오기를. -이지훈-’ 발전소에도 꽤 많은 양의 식량이 남은 것으로 보아 처음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발전소 안에는 총도 몇 자루 있던데 Z를 죽일 생각은 하지 못한걸까? 일단 집으로 돌아가 몇 가지 물건을 챙기고 수도원으로 출발해야겠다. 생존자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만일에 대비해 집에 들러야 한다.
6월 11일. 집 상태가 나쁘지 않다. 헤진 울타리만 몇 군데 고쳤다. 수도원에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과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생존자들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일단 다시 발전소까지 갔다가 서쪽으로 이동해 수도원으로 가야겠다. 한번이라도 가본 길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12시 08분. 한번 가본 길이라 훨씬 익숙하다.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Z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행동 범위가 따로 존재하는 듯하다. 마치 동물들의 영역 같은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짐승은 죽이지 않는다.
6월 13일. 발전소에 다시 돌아왔다. 새로 생긴 Z는 없다. 발전소에서 음식을 더 챙긴 후 비상용으로 권총을 두 자루 더 챙겨 수도원으로 출발한다. 수도원 까지는 서쪽으로 2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수도원이 큰 저수지를 끼고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둘레를 빙 돌아야 한다. 업성 저수지는 2020년 이후 천안시에 상수를 공급해주는 저수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D-day이후, 저수지 근처는 가히 Z들의 소굴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6월 14일 05시. 발전소부터 수도원 까지는 거의 뻥 뚫린 대로다. 장점이라면 Z들이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 단점이라면 내가 그들을 발견한 순간 난 이미 그들의 표적이라는 것.
10시 13분.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Z 두 마리가 쫓아오는 것을 따돌리다 길에서 벗어난 것 같다. 근처의 높은 건물에라도 올라가서 저수지가 보이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17시 41분. 높은 건물을 찾긴 했는데 뭔가 불안하다. 공주대학교 건물. 충분히 높아 보이기는 하는데 문제는 너무 넓다. 그만큼 Z가 있을 확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곧 날이 저물고 그들의 시간이 찾아온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건물 안에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겠다. 딱 봐도 학교 부지 안에 Z 들이 많다. D-day 에도 학교에 있던 학생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대부분이 학생들. 간간히 보이는 어른들은 교수였겠지. 대학교 건물에는 들어가는 문이 꽤 많다. 설마 그 많은 문 전부에 Z 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17시 50분. 예상대로다. 학교 중앙현관 쪽에는 Z가 없었다. 2층에는 숨을만한 곳이 없다. 3층으로 올라가 빈 과학실에 숨어야겠다. 3층 과학실은 총 4개가 있다. 생물실, 화학실, 물리실험실, 지구과학실. 하지만 생물실과 지구과학실은 잠겨있었다. 남은 건 화학실과 물리실험실. 그런데 물리실험실을 지나는 순간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설마 Z가 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곳도 안전하지 못하다. 물리실험실 위쪽 창문으로 안쪽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종이로 창문이 덮여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확인할 필요는 없다. 이곳엔 널린게 빈방이다. 그때,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뭔가 이상하다. Z들은 저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문을 열고 실험실 안을 확인한다. 맙소사. 사람이다. 이곳 학생인 듯 바닥에서 잠들어있다. D-day이후 3개월 하고 2일. 약 90여일 만에 처음 본 살아있는 사람이다.
6월 15일 05시 00분. 평소 습관처럼 이 시간에 눈이 떠진다. 아직 학생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험실 내부를 살펴보니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눈에 훤하다. 씻는 것은커녕 먹는 것조차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다. 참. 씻는 건 나도 요 며칠 동안 못했구나. 일어나면 일단 밥부터 먹여야겠다.
08시 19분. 드디어 학생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 하기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5분 쯤 지났을까 진정된 듯 하여 손을 놔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울먹이기 시작한다. 울지 말라고 몇 번을 달래서야 겨우 그쳤다. 이름은 김혜진. 그녀 말로는 D-day는 보지도 못했단다. D+1에 평소처럼 기숙사에서 일어나 학교에 가는데 운동장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쫓아 오길래 이곳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리고 통신이 끊기기 전까지 핸드폰으로 지금 사태를 알아차린 것 같다. 음식은 밤늦게 학교 매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게 더 위험한데.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수도원으로 가야한다. 그녀에게 같이 갈 것인지 물어봤다. 잠시 고민하더니 같이 가겠다고 했다. 혼자서 이곳에 남느니 산전수전 다 겪은 나와 함께 가는게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9시 정각. 그녀도 준비를 끝마치고 함께 수도원으로 향한다. 그녀에게 물어보니 업성저수지는 의외로 학교에서 가깝다고 한다. 옥상에 올라가서 보니 남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저수지가 보였다. 생존자도 만나고 수도원도 머지않았다. 행운이 겹친다. 수도원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 텐데.
18시 58분. 하룻밤 묵을 장소를 구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Z 한 마리를 쏴 죽였다. 불안해하는 그녀를 위해 세 시간 정도 보초를 서다가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나도 잠들었다. 내일 드디어 수도원에 도착한다.
6월 16일 08시. 곧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11시 34분. 저수지에 도착했다. 흐릿하지만 육안으로 저수지 반대편의 수도원을 볼 수 있다. 부디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저수지 둘레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13시 25분. 저수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 지금 Z들에게 쫓기고 있다. 그녀와 대화하다 주변 정찰을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다. 지금 그녀는 어디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도망치는 와중에 헤어졌는데 제발 내가 발견할 때 까지 어디 잘 숨어있어야 할텐데.
13시 48분. 이제 안전해진 것 같다. 놈들을 따돌린지 5분이 지났지만 더 이상 뒤쫓는 놈이 없다. 그제서야 다시 그녀 생각이 났다. 남자인 나조차 놈들을 따돌릴 때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과연 놈들을 따돌려 본 경험도 없는 그녀가 안전할 수 있을까. 만난 지 하루만에 다시 생존자와 이별했다. 만약 내가 그녀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애초에 안전한 집을 떠나서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안전할 수 있었을까. 공주대학교 입구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이걸 예상했던 것일까. 그녀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15시 08분. 수도원에 거의 다 왔다. 오는 길에 한시간정도 주변을 샅샅이 돌아봤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단 하나의 증거도 찾을 수 없었기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수도원으로 왔다. 나보다 먼저 그녀가 수도원에 도착했을 수도 있다는 쓸데없는 희망을...
15시 47분. 수도원 입구에 도착했다. 비록 놈들이 개떼같이 몰려있는 게 문제지만 어짜피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해가 떨어지려면 아직 두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다. 탕. 놈들이 돌아본다. 탕. 놈들에게 발견됐다. 탕. 놈들이 이쪽으로 몰려든다. 탕. 탕. 탕. 놈들이 다가오기 직전까지 최대한 많은 놈들을 제거한다.
17시 59분. 수도원에 들어간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 문고리조차 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가 죽인 건 인간이 아니라 그저 짐승일 뿐이라고. 마지막에 내 앞에서 죽은 젊은 여성의 모습에 자꾸만 그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죽을 때는 이놈들도 사람과 다를게 없었다. 더 살고 싶어 발악하는 모습. 아마 이 죄책감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18시 02분. 수도원 안은 조용하다. 너무나도.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찾아야한다. 그렇기에 묵묵히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다. 탕.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설마 내부에도 Z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생존자들이 위험하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짜내 총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간다. 소리의 근원지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방.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 하나와 그 남자에게 총을 들이밀고 있는 혜진의 모습.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살아있었네?”
나를 본 그녀의 첫마디였다.
“놈들한테 물려 죽을줄 알았는데”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과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의 교차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뭐 어짜피 곧 죽게 될 테지만”
“..... 무슨.....”
탕. 총소리? 그녀가 들고 있는 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누구를? 뒤에 Z라도?
털썩. 몸에 힘이 빠진다. 나? 왜? 그녀가 왜 나를 쏜 거지? 이해할 수 없다. 내 기억속의 그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Z의 목소리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던 작고 연약한 존재였다.
“그러게 집에서 꼼짝 말고 있었으면 좀 좋아? 왜 쓸데없이 밖으로 나돌아 다녀서 귀찮게 하는거야?”
나는 그녀에게 내 이전 삶에 대해 말해준 기억이 없다. 그녀는 어떻게 내 집에 대해 알고있는 것일까.
“그거 알아? 이 바이러스는 말이야, 공기를 타고 퍼져서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감염율이 100%야. 근데 그쪽은 좀 곤란한 사람이라 말이야....”
100%는 말이 안된다. 내가 본 사람만 몇 명인데. 비록 머지않아 Z로 변하긴 했지만.
“못 믿는듯한데 저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으면 바로 활동을 시작해. 그게 저녀석들에게 물려서 죽든, 아니면 자연스레 죽든.”
그래서 감염율이 100%라고 한 것인가.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거지?
“몇 가지 더 알려주자면, 천안시 밖은 멀쩡해.”
그게 무슨... 분명 바이러스는 전국에 퍼졌다고 했다. 그녀가 뭔가 잘못 알고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건 우리 회사에서 새로운 무기를 테스트 하는 실...”
“쓸데없는 말이 많다. 그러라고 준 시간이 아닐텐데?”
남자 목소리? 누구지?
“아, 미안해요 지훈씨. 그래도 하룻동안 꽤 잘 해준 남자라서요.”
지훈? 수도원에 남겨진 포스트잇의 주인공이다. 설마 그것도 생존자들을 처리하기 위한 미끼였던 건가?
“빨리 처리해라. 5분남았다.”
“윗분들이 조바심이 났나봐. 오늘이 실험 마지막 날이거든. 하루지만 잘 대해준 보상으로 아예 죽여줄게. 최소한 저놈들처럼은 되지 않게.”
언젠가 이 삶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발전소에서 생존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 그래도 이렇게 끝날 줄이야. 허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죽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테니까.
탕.
한발의 총성과 함께 남자의 눈이 감겼다.
“2036년 6월 16일. 마지막 생존자 처치 후 결과보고. 바이러스 유포 3개월 후 생존자 3000명 미만. 생존자 전원 강제 사살. 감염율 100.......99.9998% 사망률 100% 백신 보유자 수 1명. 백신 보유자 처리 완료. 바이러스 Apocalypse-Z 실험 종료.”
Apocalypse-Z -끝-
이상인데.... 한번에 끝까지 전부 올려서 다음 글을 언제 올릴지 모르겠어요.... 한달뒤엔 또 시험이라... 그래도 지금 구상중에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써서 올릴게요~
ps.아마 다음 작은 연재가 될듯 합니다...
첫댓글 우와 이거 일기 형식을 좀더 풀어 쓰고 내용 보강하면 진짜 재밌을 것 같네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시간에 쫓겨 쓴 글이라 ㅠㅠ 지금은 다음 작 쓰는 중이라 시간이 없네요... 나중에 시간 내서 꼭 다시 쓸게요 ㅎ
잼게 보고갑니다 ㅎ 시험 잘보세요! ㅋ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