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남주여 그러나 나의 벗을 넘어 민족의 아들이여 민주 전사여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고
그대의 가쁜 숨결에 속삭여댔지만
아픈 다리 이끌며
가로질러 산을 넘고 물 건너 허허로이 저세상 입구로 먼저 가버린 친구여
남도엔 때아닌 폭설이 들판을 덮어
짚북더미 속에서 마늘 싹들은 파릇파릇 시퍼런 눈을 뜨는데
우리는 그대의 죄 없이 맑은 눈을 덮어
기어이 고향 마을로 돌려보내야 한단 말인가
한때는 영어 단어장 한 손에 들고 소와 함께 소의 웃음을 천진스럽게 웃던 남주의 마을
자라서는 그대를 간첩이라 하여 내쫒고 전사라 하여 내치던
분단 속의 엄혹한 분단의 마을, 광주의 마을
그대에게 난생 처음으로 꽃다발을 걸어주던 마을
아니 평생 농민 어머니의 마을 아버지의 마을
그대가 일생을 걸고 해방시키고자 했던 계급의 마을에
이제 관을 내리고 우리 목메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어여 가게 남주
삭풍에 가지 부러지고 귀 씻겨나간 채로 뒤돌아보지 말고 어여 가게 남주
가다가 들판 만나면 거기 개울가에서
낯익은 아이들과 함께 염소 뿔 싸움도 시키고
사나운 파도 만나면 어기여차 넘어주며
거기 뱃전에 아기를 업고 서성이는 아낙에게도
눈물 글썽이며 이 세상 안부도 전해주고,
오늘은 햇빛 밝고 이 세상에 바람 부는 날
자네 알지, 자네가 9년 만에 옥에서 나와 맨처음 고개 떨구고 섰던 망월동 언덕
수많은 민주 영령들이 언덕빼기 아래까지 달려나오며 햇빛 속에 하얀 고사리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이지?
어여 가게 남주
이 세상 일일랑 이제 남은 자들의 몫
자넨 일생을 제국주의의 억압자들과 사력을 다해 싸웠고
이제 역사 속에 가 아기 손으로 새로 태어나야 할 때
세상은 자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고
자네는 한번도 그 짐을 등에서 내린 적 없었는데
이제는 그 짐일랑 우리에게 내려놓고 편안히 가게
가로질러 산을 넘고 물 건너 표표히 먼저 간 친구
깨꽃이 환하게 피면 우리에게 다시 오게나
송화 가루 온 산천에 펄펄 날리면
눈 속의 샛붉은 매화처럼 다시 오게나
해방둥이 그대의 삶은 이 땅 반세기의 역사 그 자체
분단의 철조망과 제국의 사슬이 걷힐 날 반드시 있으리
자본에 의해 자본이 패퇴되는 날 반드시 있으리
그때 다시 이 세상에 오게나 아픈 다리 바로 딛고 감은 눈 새로 뜨며
그 잔잔한 소년의 미소로.
벗이여 남주여 나의 벗을 넘어 민주주의의 참다운 전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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