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2월 5일,
서울에 갈려고 준비중인데 전화가 걸려왔다.
울음섞인 여자아이의 목청은 다급했고, 의지할곳없는 두 여자애들이
불쌍타싶어 서울행을 일단 접구서 그들이 사는 아파트에 가봤다.
후배 진영이는 술에 만취되어 팔다리가 풀린체 엎드려 누워있었고,
아직 덜 자란 이쁜 강아지 두 마리는 술에찌든 후배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12세. 10세된 두 여자아이는 아빠를 외치며 어찌 할 수없이
울고만 있었다.
언젠가 이 까페에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는 후배에관한 글을 게시한적
있는데, 바로 그 후배가 그날도 과음으로 정신을 잃구서 쓰러지기에
이르렀고, 놀란 두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것도 잊은체 아빠가 깨어나
기만을 기다리며 울고있는중에 백수에게 전화를 한것이다.
피까지 토해낸 그의 모습에 다급함을 느끼고는 병원의 구급차를 불
렀다. 그사이 난 후배를 업구서 아파트를 내려왔다.
응급실에 뉘어놓고서 의사와 잠깐의 대화가 있었는데, 절망적이지 않
을수가 없었다. 정확한 검사과정이 있어야 확실한 소견을 말 할 수있
다는 의사는 비공개를 전제로 <간경화>를 예상하는게 아닌가...
일단 보호자신분이기에 후배의 입원수속을 밟았고, 얼마후 의식을 되
찾기에 그나마 다행이다싶어 서울갈 경비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는 하
루동안만 고생하고 있으라는 당부를 남긴체 서울행을 감행했다.
원래는 2박 3일간의 서울여정이었으나, 하룻밤을 보내고나니 도무지
그녀석이 걱정되어 서둘러 내려오고야 말았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입원시킨 병원으로 달려갔다.
내려오는중에도 여러차레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해도 받지않기에 좀
불안한 생각도 했으나, 정밀검사중, 혹은 치료중일거라는 희망으로
나의 불안을 포장하구선 병원까지 왔으나, 그녀석은 입원한날 밤에
스스로 링겔주사를 뽑고서 병원을 나가버린 것이다.
집에라도 갔을까하는 마음으로 그의 아파트에 갔지만, 두 애들만이
집을 지키고있었고, 오히려 아이들은 나의 보호하에 병원에서 치료
받고있는줄로 알고있었다.
참으로 암담했다. 일단 두 아이들과 강아지 두 마리를 우리집으로 옮
기고서 대책을 세워보기로 하고는...
우선 그의 형제들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부터 소용없는 일이란걸 잘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없어 전화를 했는데, 예상처럼 모두 냉담했다.
4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놈을 누구도 불쌍히 여기는자 없었다.
대학다닐적부터 술로 주사가 심했고, 세차레의 요양시설에 가두어지
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놈은 철저히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기에 이르른
것이다.
더우기 남편을 믿고서 열심히 살아보려했던 와이프마져 토끼같은 딸
둘을 남겨놓은체 가출해버린 것이다.
유일한 보호자는 백수일수밖에 없는데,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서울에
다녀오는 사이에 없어졌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경찰서에 찾아가 그의 실종사실을 알리고는 어디서든 전화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중, 4일째인 오늘 정오쯤..
드디어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서의 특성상 112라는 번호가 혼합되었
기에 백수는 그 전화가 경찰서의 전화라는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익산의 원광대학 부속병원 응급실
에 있다고했다.
택시를 주어타고는 그곳에 가보니 의식을 잃은체 링거를 꼽고는 침대
에 누워있는게 아닌가.
담당의사에게 보호자임을 알렸더니,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을거라는
상황을 얘기하는 거였다.
익산역 광장의 구석진곳에서 쓰러진체 신음하고있는 이놈을 누군가가
발견하고는 파출소에 신고했고, 실종자신고명단에 같은 이름이 나오
기에 김제경찰서로 연락이되어 백수에게까지 알려진 사건의 전말이다.
체내의 알콜기를 빼낸후 검사에 임하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백수
는 잠시 집에 와있다.
어린 그의 딸들은 아빠를 찾았다는 소식에 마냥 좋아라한다.
평소에 큰아빠라 호칭하며 백수를 잘 따르는 아이들인데, 오늘따라 이
아이들이 왜 이리도 가엾게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한 생명이 꺼져가고있음을 보고있다.
그토록 낭만적이고 꿈이 야물졌던 미술학도인 그에게 간경화라는 병이
엄습했다니, 진정코 예삿일만은 아닌것같다.
점차 백수의 마음은 슬픔으로 뒤엉키고있다.
검사가 끝나고 제정신을 찾으면, 곧바로 시설로 이동할 계획을 세워놓
긴 했는데, 엄격한 규율이 전제되는 그 특수한곳에 강제로 들여보내야
하는 나의 아픔은 얼마나 될련지,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두 애들은 종이를 접어서 비행기. 배를 만들며 재미나게 놀고있다.
아이들이 좀 더 클때까지만이라도 이놈이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데...
특수시설에 보내기전에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될까하고는 다시 서울에
살고있는 그의 맡형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결과는 냉담할 뿐이었다.
오히려 막내동생땜에 필요없이 헛고생하지말라는 충고만 있을뿐이다.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담배 한 개비 물어보았다.
술에 찌들어 세상을 등질 위기에처한 후배는 그렇다치더라도 저 어린
두 딸은 과연 어찌된단 말인가...
백수는 그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을 힘껏 되살려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에겐 용기를주고, 그놈에겐 희망을 갖게하고...
이럴때 신의 도움이 있어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