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이 앞으로 볼 수 없게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큰 병원 여러 곳을 다녔지만, 병원마다 모두 같은 진단 결과가 나왔다. 엄마는 그 후로 내 스마트폰 글자도 더 크게 바꾸고 문자메시지도 음성문자로 바꿔주셨다. 조금씩 눈이 흐려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볼 수 없으면 더 잘 듣고 잘 느낀다고 들었는데 나는 더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안 느껴지고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내 눈이 밝은 낮에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희미하게라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엄마와 아빠가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못 봐서 속상하다. 원래 외출할 때는 엄마나 아빠가 운전하는 차로 다녔다. 하지만 엄마는 이제 내가 스스로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팔에 팔짱을 끼고 많은 곳을 걸어 다녔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계단이 많은 곳, 버스 타는 연습도 해봤다. “세인아, 오늘은 혼자서 점자도서관 가볼래?” “엄마 나 아직 혼자서는 무서워.” “너 그동안 연습 많이 했으니까 혼자서 잘 다녀올 수 있을 거야. 안전 음성 안내 도우미 서비스 신청할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엄마는 멋대로 나 혼자 점자도서관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띵똥 음성문자가 왔다. 〈이제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용기 내 보세요. 지금 바로! 보라보라 버스를 타러 오세요!〉 ‘무슨 안전 음성 안내 도우미 문자가 이래? 지금 바로 버스 타러 오라고?’ 음성 문자를 듣자마자 흰 지팡이를 뽑아 세우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조금 두려웠지만 지금 안 나가면 버스를 놓칠 것 같아 서둘렀다. 나는 나와서 지팡이로 툭툭 두드리며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손으로 더듬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학생 안 탈 거야?”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사람이 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 층 눌러주세요. 제가 안 보여서요. 부탁드립니다.” 엄마가 혼자 다니다가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지팡이로 두드리며 더듬어 계단을 조심히 내려와 밖으로 나갔다. 여러 번 연습했던 길이었지만 처음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었다. 평소에는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엄마가 알려주셨는데, 이제는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기억을 더듬고 지팡이로 더듬으며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용기와 어른스러움을 장착하고 물어봤다. “실례합니다. 제가 잘 안 보여서요. 보라보라 버스가 오면 알려주시겠어요?” “보라보라 버스는 노선표에 없어요. 이만 저는 제가 탈 버스가 와서 갈게요. 미안해요.” ‘보라보라 버스를 어떻게 타지? 오는 버스마다 물어봐야 하나?’ 그때 저 멀리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보라보라 보라보라.’ 소리와 함께 정류장 앞에 버스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보라보라 버스가 정류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안전하게 승차해 주십시오.” 버스에서 소리가 들려 생각보다 쉽게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어 안심되었다. 지팡이를 접고 버스 손잡이를 잡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 순간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얇은 막이 걷히는 듯 밝아지면서 갑자기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버스 기사님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셨다. 자리도 안내해 주셨다. “아저씨 갑자기 막 보여요!” “당연하죠. 이 버스는 보라보라 버스니까요.” 문득 엄마 아빠도 이 버스를 탔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지만, 엄마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스마트폰을 꺼내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 후,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딸 잘 가고 있어? 혼자 무섭지 않지?” “응, 하나도 안 무서워. 버스를 타니까 앞이 보이는 거야.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전화해 봤어.” 보고 싶다는 얘기에 엄마는 활짝 웃었다. 엄마의 미소는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아빠랑도 영상 통화를 했다. 아빠는 내가 보고 있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는 얘기에 통화하는 내내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날 웃게 했다. 그때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다. 나보다 언니 같아 보이는 사람이 올라탔다. 그 언니도 나처럼 버스를 타더니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기사 아저씨를 보고 나도 보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보라보라 버스에 오신 걸 환영해요. 자리에 앉아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말도 안 돼!” 풉,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 언니는 버스 안을 둘러보다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리고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나를 보는 눈빛이 꼭 나를 아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옆에 앉은 언니는 스마트폰을 꺼내 한참 동안 거울처럼 얼굴을 비춰 보았다. 나도 따라서 카메라로 얼굴도 비춰보고 전에 찍은 사진들도 보았다. “믿을 수 없네요. 다시 보라보라 버스를 타다니요.” “전에도 타본 적 있어요?” “처음 혼자 외출하던 날 보라보라 버스를 탔어요. 잊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타게 됐네요.” 이 언니는 보라보라 버스가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나도 또 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또 탈 수 있어요?” “모르겠어요. 십 년 만에 오늘 갑자기 보라보라 버스를 타러 오라는 음성 문자를 듣고 왔거든요.” 조금 후 언니는 부모님께 전화했다. 아까 내가 했던 거처럼 보고 싶다고 했다. 언니의 부모님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언니가 즐거운 듯 웃으면서 통화를 마쳤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언니는 시력이 언제부터 안 좋았을까? “언니는 언제부터 안 보였어요?” 그 언니는 대답은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이 나를 보길래 내가 실수했나? 싶었다. “미안해요.” “아니에요. 학생 얼굴을 보고 나 어렸을 때가 생각이 났어요.” 조금 후 언니가 대답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도 일 학년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언니도 그랬구나. “언니는 언제가 힘들었어요?” “시력을 잃었을 때요. 그리고 수술을 받고 애꾸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요.” 나랑 똑같구나. 내가 시력을 잃기 전 사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수술 후 한 쪽 눈을 가리는 가림치료를 받았는데 한 할아버지가 “자 애꾸가?”하면서 지나갔다. 그때 엄마는 그 할아버지와 큰 소리로 싸웠다. 아이한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래서 애꾸라는 말이 나쁜 말인 걸 알고 속이 상했다. “안 보이는 건 지금도 불편하고 적응이 안 되긴 해요. 늘 보고 싶고 궁금해요.” 눈이 안 보이고서는 처음에 정말 힘들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그런데 이 언니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니 조금 두렵다. 내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아요. 볼 수는 없지만, 안 보고도 할 수 있는 게 점점 많아질 거예요.” 언니는 내가 아직 겪지 않은 앞으로 생길 어려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마음을 다친다거나 스스로 해 낼 수 없을 때의 좌절감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잘 넘길 수 있는지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볼 수 없는 만큼 조금 느리겠지만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되는 것도 있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막연하기만 했던 볼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은 조금 줄었다. “언니 좋은 얘기 많이 해줘서 고마워요. 지금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저도 꿈만 같아요. 꿈이라면 깨기 싫어요.” 그때 점자도서관에 도착했다는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점자도서관입니다. 내리실 분 내리세요.” “저는 이번에 내려요.” “안녕히 가세요. 지금처럼 늘 씩씩하세요! 세인 어린이.” 나는 천천히 일어나 내리는 문 앞으로 갔다. 정말 내리기 싫었지만 내렸다. ‘그런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문이 열리자 다시 앞이 흐려졌다. 지팡이를 뽑아 세우고 계단을 천천히 내렸다. 음성 안내 문자 소리가 들렸다. 〈보라보라 버스에서 미래의 나를 만났습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나를 만났다고? 언니가 해준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나를 위해 해준 이야기였다. 이제는 두렵고 우울해도 좌절하지 않을 것 같다.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디뎠다. 화창한 날이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푸른 하늘과 솔솔 불어오는 따뜻한 공기가 참 좋은 날이었다. 꽃향기마저 날아와 콧속으로 퍼졌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심사평> 2024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아동문학 부문에는 동시 325편과 동화 61편이 접수됐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을 마주하며 동시와 동화에서 한 작품만 뽑아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많았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을 살펴보면 동화와 동시 모두 반려동물 이야기가 많았으며 다문화 이야기와 환경 이야기도 많았다. 수필을 연상케 하는 어린 시절 이야기도 눈에 띄었다. 아동문학에서 가장 큰 미학은 의인화를 비롯한 환상성인데, 동시에서는 아쉽게도 눈에 띄게 돋보이는 작품이 없었고 동화에서는 〈벵갈고무나무〉와 〈보라보라 버스〉가 끝까지 눈길을 잡았다.
〈벵갈고무나무〉는 다문화 이야기로 한국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 태어난 지우가 주인공이다. 지우가 태어나자 아빠의 삼촌인 스님이 벵갈고무나무를 선물한다. 베트남에서는 벵갈고무나무를 심으면 오래 살고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엄마는 지우와 함께 벵갈고무나무를 키우며 행복을 꿈꾼다. 그러다 지우 아빠가 공사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엄마는 아빠의 유해와 함께 지우와 벵갈고무나무를 스님에게 맡기고 베트남으로 떠난다. 절에 남겨진 지우는 아빠의 무덤가에 심겨진 벵갈고무나무 옆에서 강아지 햇님이와 놀면서 엄마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엄마는 오지 않고 햇님이 역시 병을 앓아 지우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꿈속에 아빠가 나타나고, 약수를 떠다 먹이라고 알려준다. 햇님이 살아나고 엄마도 돌아온다.
〈벵갈고무나무〉는 “오래 살고 부자가 된다”라는 베트남에서 전해오는 벵갈고무나무의 속설을 상징으로 한 가정 안에서 다문화 이야기와 반려동물 이야기를 엮어 끌어가는 힘 있는 작품이었으나 단락을 만들지 않고 문장마다 행을 나눈 점, 문장부호 사용의 오류 등 문장에서 허점을 드러내 아쉬웠다.
〈보라보라 버스〉는 시력을 잃어가는 아이의 이야기다. 의사로부터 앞으로 볼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은 주인공은 잃어가는 시력을 받아들이며 엄마의 도움으로 생활하다가 용기를 내어 혼자 외출을 시도한다. 엄마는 앞을 못 보는 아이를 위해 ‘안전 음성 안내 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한다.
안전음성안내 도우미의 안내를 받으며 혼자 지팡이에 의지해 점자도서관을 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우선 간결하고 적확한 문장이 돋보였다. 음성안내 도우미의 문자로 보라보라 버스에 오르자 “앞을 가리고 있던 얇은 막이 걷히는 듯 밝아지면서 갑자기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환상 공간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버스에 오르자 희미했던 앞이 밝아지고 운전기사를 비롯하여 모든 게 확실하게 보이는 공간, 엄마 아빠의 따뜻한 미소가 그리웠던 주인공은 엄마 아빠에게 전화하고, 언니 같아 보이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로부터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듣고,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삶에 용기를 낸다. 버스에서 내리자 음성안내 서비스는 “<보라보라 버스에서 미래의 나를 만났습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라고 한다. 버스에서 만난 언니가 내게 해준 이야기들은 결국 앞을 못 보는 미래의 ‘나’가 두려움에 떠는 지금의 ‘나’에게 해준 이야기임을 깨닫고 자신감을 갖는다.
단순한 플롯이었지만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과 어린이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환상 공간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미래의 나도 만나고, 어두운 현실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설정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당선작으로 한 작품을 뽑아야 하는 아쉬움을 안고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보라보라 버스〉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도전자들께는 격려와 함께 계속 도전할 것을 당부드리며 당선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노경수
<당선소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몸살로 앓아누워있던 중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믿을 수 없게도 갑자기 몸이 다 나은 듯했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당선되는 상상만 해봤는데 정말로 당선이 되었다니요. 신이 났습니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열심히 썼지만, 아직 부족함을 알기에 당선 소식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세계를 더 이해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아이들이 무엇을 더 즐거워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겠습니다. 조금 더 깊이 있는 동화를 쓰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 봅니다. 꿈꾸고 상상하며 어린이의 세계로 다가가 아이들의 마음을 노래해 주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엄마, 언제나 옆에서 응원하고 토닥여주는 여봉씨, 도전하는 모습이 멋지다며 매일 엄마 최고라고 얘기해주는 딸, 글 쓸 때마다 읽어주던 내 동생 쭈~ 모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동화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해주신 임정진 선생님, 아낌없는 조언과 격려해 주신 김응현 선생님, 준비기간 함께한 글 벗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린이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한국불교 신문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