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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히메유리(1987 요나조 노부코) 10
제8장 치루의 인생 여정 (추억의 장)
나미노우에구(波上宮)는 동중국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바로 서쪽에 "쓰지(辻)라는 유곽이 있었다. 나는 가끔 그곳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어른과 함께였고, 일행 어른도 그곳을 지날 때는 잰걸음으로 걸었기 때문에 나는 쓰지의 거리를 자세히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내 기억에는 쓰지가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쓰지에는 작은 건물이 여러 개 늘어서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건물들은 처마가 계속 이어져 있었다. 건물은 모두 비슷하여 콘크리트를 깐 현관이 있었고, 안에는 폭이 넓은 계단이 있어 그 계단을 올라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계단 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큰 목욕탕에서 들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들 사이의 좁은 뒷길은 늘 습기가 있고 김이 서리고 습한 냄새가 났다. 물소리에 섞여 사람들 목소리도 들렸다. 그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칠게 들렸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일하는,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목소리로 생각되었다.
나는 "유녀(女郎)"라고 불리는 여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의아했다. 어디에도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저분하고 살풍경한 입구, 거친 목소리와 물소리, 그 이면에는 뭔가 아름답고 멋진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아름다운 광경은 눈에 띈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유곽에 대해 무언가를 보고 듣는 것은 일종의 금기가 되어 있었지만, 그런 어른들의 생각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내에서는 유녀의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옅은 화장을 하고 눈썹을 곱게 그리고 부풀린 머리를 위로 감아 올려, 오키나와풍으로 묶어, 굵은 은비녀를 꽂고 있었다.
축제 때는 오키나와 특유의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입었다. 노란색 바탕에 커다란 파란색과 검은색 무늬를 넣은, 빈가타(紅型:오키나와전통염색법)기모노는 그녀들을 눈부시게 빛나게 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검은색이나 파란색 바탕에 흰색 무늬가 들어간 간소한 기모노를 입고 다녔다. 일반 여자들과 달리 오비(帯:띠)를 가슴 가까이 높게 매고 있었다.
그런 띠 묶는 법이 그녀들로 하여금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마른 몸매로, 젊어 보이게 했다. 이들은 흰 버선을 신고 두꺼운 샌들이나 옻칠한 나막신을 신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을 비켜 서서 그녀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유녀들을 정말 아름다운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친구들과 나미노우에(波の上)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유녀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나미노우에구(波上宮)에 참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밤과자를 손수레 에서 사서 비둘기에게 주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상체를 약간 비스듬히 기울이며 땅위에 쪼그려 앉은 모습은 매우 품위 있어 보였다. 회색 비둘기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과자를 쪼았다.
비둘기가 과자를 물 때마다 그녀는 하얀 이빨을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직 열 살도 안 된 아이였지만 그녀가 미인이라는 것은 알았다. 여러 어른이 멈춰 서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얼굴색이 너무 하얘." 나는 얼굴색이 하얀 것을 자랑하는 하루코(晴子)에게 속삭였다. "너보다 훨씬 하얘."
유녀는 내 속삭임이 들렸는지 고개를 들어 힐끗 우리를 보았다. 그러나 곧 다시 눈을 내리깔고 비둘기 먹이를 계속 주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쳐다봐서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했다. 왜 미소를 계속 짓는 것일까. 볼이 빨갛고 눈을 들지 않는 것은 부끄러움 때문일까.
그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비둘기조차 눈치채지 못할 것 같은 공허한 눈빛이었다. 나는 "치루"라는 이름의 유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치루는 오키나와 방언으로 원래의 의미는 츠루(鶴)이다.
치루는 북쪽 구니가미(国頭)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첫째 아이었다. 아버지는 숯을 굽는 일로 고생하며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부지런히 일을 했다.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고구마밭으로 나가 하루 종일 일했다. 돼지가 두 마리 있었고 그 뒷바라지는 치루가 했다. 여덟 살 때 치루는 벌써 한 사람 몫의 일꾼으로 집안일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아직 일어나기 전에 고구마를 삶기 위해 불을 지폈다.
그러고는 1km나 떨어져 있는 마을 우물까지 물을 길으러 갔다. 장작불 지피는 일은 아침의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에 좋아했지만, 물을 길러 가는 일은 싫었다.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양 어깨의 지게봉에 매달고, 동상에 걸리고, 피도 흐르는 발로 걷는 것은 무척 괴로웠다. 치루가 여덟 살 때 숯가마로 일하러 가는 길에 아버지가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다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게다가 운 나쁘게 가슴도 아파 마침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일가족은 일손을 잃었고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다리를 다친 직후 돼지를 한 마리 팔았다. 그리고 또 나머지 한 마리를 처분할지 여부가 큰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남은 돼지를 처분할 수는 없었다. 오키나와 농가에서 돼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에서 소중한 존재였다.돼지를 파는 것보다 딸을 파는 편이 나았다.
어느 여름 오후 나하에서 뚱뚱한 중년 여자가 찾아왔다. 그 여자는 보자기 꾸러미와 기름종이 우산을 들고 있었다. 부모님이 그 손님과 이야기하는 동안 치루는 동생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곧 어머니가 치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치루는 집으로 들어가 나하에서 온 여자 손님과 대면했다.
손님은 치루를 보고 바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일 또 올게" 라며 그 여자 손님은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치루는 학교를 쉬었다. 여자 손님이 다시 와서 이불 위에 일어나 앉아 있는 아버지와 상의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치루를 옆방으로 불러 노란색 기모노를 입히고 보라색 오비를 둘리고 두꺼운 소리(샌들)를 신겼다.
치루는 무슨 일인지 의아해했지만 평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기모노와 오비는 여자손님의 보자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멋진 것을 아직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손을 대는 것도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보라색 오비를 딸에게 감아 주면서 "치루야, 이제 하얀 쌀밥을 많이 먹을 수 있어." 라고 말했다.
여자손님은 치루를 데리고 나섰다. 치루의 아버지는 병 때문에 집안에 그대로 있었지만, 어머니는 무너져 가는 울타리까지 배웅하러 나왔다. 울타리 옆에 서서, 딸이 붉은 부용이 핀 담 너머 길따라 사라지는 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치루와 여자가 산골집에서 마을에 도착한 것은 점심 조금 전이었다. 산길의 이슬은 이미 마르고 길에는 먼지가 일고 있었다. 땅도 초목도 열기를 띠고 있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 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은 조용했다. 치루와 여자는 계속 걸었다. 치루는 짚신만 신다가 난생 처음 소리라는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걷기가 불편했다. 기름종이로 만든 양산 냄새가 강렬해 현기증이 났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며 치루는 고개를 들어 여자의 얼굴을 보았지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치루는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탔다. 치루가 난생 처음 타본 기차이자 마지막으로 타본 기차이기도 하였다. 기차는 해질녘에 나하에 도착했다.
처음 2~3년, 치루는 쓰지의 유곽에 살면서 허드레 일을 하는 한편, 유녀가 되기 전의 훈련을 받게 되었다. 훈련이 몇 년 계속됐는지, 처음 손님을 받은 게 언제인지는 분명치 않다.
치루는 열여섯 살 때 한 손님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치루의 운명이 정해졌다. 손님의 이름은 도나키(渡名喜)라고 했다.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쉰 살의 남자였다. 턱수염은 말끔히 깎고 있었는데, 모양 좋은 곧은 코 밑에는 작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치루는 그 손님이 나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몰랐다.
치루는 또 도나키에게는 세 명의 아내가 있는지도 몰랐다. 세 번째 아내는 결핵을 앓아 이미 이 세상에 없었지만, 첫째와 둘째 아내는 아직 건재했다. 도나키는 치루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치루와 관계를 한 후 일주일 만에 결혼을 하였다. 첫째 부인은 치루를 보고는 눈꼬리를 치켜 세웠다.
정처(正妻)는 정식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과시하고 있었다. 세상의 이목 때문에, 유녀 출신 여자와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은 체면에 관계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의 뜻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집의 규칙은 모두 남편 한 사람이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처에게는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열 살 된 여자아이였다. 도나키에게는 남자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치루를 집에 들인 것은 남자아이를 낳게 하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었다. 정처는 남자처럼 어깨가 크고 근육질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몸집은 컸지만 목소리는 작았다. 시종일관 기침을 하고 있었고, 누런빛이 도는 피부가 이미 병에 걸렸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둘째 아내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절 근처의 도나키가 지어 세를 주고 있는 집 중 하나에 살고 있었다. 사업가적 재능의 소유자로 곳곳에 산재한 도나키 집안의 셋집을 관리하고 있었다.
치루는 이층 구조의 별채에서 살았다. 안채에는 정처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별채 살이는 치루에게는 다행이었다. 두 여자를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치루는 별채를 나와 안채에 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안채의 방 하나에 두 개의 불단이 있는데, 하나는 남자의 조상, 또 하나는 여자의 조상의 것임을 알았다.
정처는 매일 아침 그 불단 앞에 밥이 든 밥그릇을 두 개씩 올리고 향을 피우며 절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정처 이외의 사람이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치루는 알고 있었고, 어두컴컴한 방이 징그러워서 그곳에 접근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치루는 또한 어둡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안쪽 방도 피하고 있었다.
안쪽 방 중 일부는 헛간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나프탈린이나 기름종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밖의 방은 비어 두고, 병실로 배정되어 있었다. 도나키 집안의 조상은 이곳에서 병의 치료를 받거나 임종하기도 했다. 치루는 그 런 사연이 있는 방이 정처 관리에 맡겨져 있는 것에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이유가 없었다.
남편은 대개 부재중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당시 오키나와에서는 어디나 그렇지만 점포 같은 것은 없었지만 도나키가 둘째 아내에게 뭔가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치루는 거의 외톨이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식사를 할 때만 별채를 나와 안채로 갔다. 식사 자리는 부엌 옆의 작은 안방이었지만 그곳에는 음식은 얼마든지 있었고 냄비나 솥에서 마음껏 그릇에 담을 수 있었다. 사용하는 밥그릇과 접시에도 초승달이 세 개 마주한 도나 키 집안의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었다.
고독한 치루에게 타인의 친절은 기뻤다.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나이 든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의 일은 찻물을 끓이는 솥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주인의 커다란 네모난 담뱃불용 화로에 불씨가 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치루는 그 허리 굽은 할머니가 짚신 끄는 소리를 내면서 토방을 들락거리는 것을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치루를 볼 때마다 하나밖에 없는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또 남자 하인 중에 몸집이 크고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짧게 깎은 머리를 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을 마츠(松)라고 했다. 마츠는 치루를 친근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치루는 마츠의 이러한 눈길을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치루는 남자가 쳐다보는 것에 익숙해 있었고 마츠가 쳐다봐도 별로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츠는 일하는 틈틈이 별채에 가까운 채소밭으로 나왔다. 그때 치루는 채소밭으로 나가 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마츠는 도나키 집안에 대해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
"주인님은 마음씨가 착한 분입니다"라고 마츠는 자기말에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저는 밥도 먹을 수 없는 처지였는데 주인님께서 거두어 주셨습니다.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을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
마츠는 머뭇거리며 자신이 아쿠히토(阿久仁) 섬 태생이라고 고백했다. 츠루는 그 사실을 이빨 빠진 노녀로부터 듣어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쿠히토 출신의 사람들을 멀리하였다. 아쿠히토 사람들이 소나 말을 도축하는 백정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인 것 같았다.
마츠는 도나키 집안 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은 폐결핵이었다. 셋째 아내는 그 병으로 죽었고, 정처 또한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폐병에 걸리는 것은 공기가 나쁜 방에서 기거하기 때문이라고 마츠는 말했다. "당신도 조심하세요. 결코 안쪽 방에는 접근하지 말아요"고 마츠는 치루에게 충고했다.
남편이 집에 머물 때면, 치루는 사연이 있는 어두운 방도, 무서운 정처의 눈길도 잠시 잊었다. 저녁 식사 후 남편은 인근 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뒤 통풍이 잘 되는 별채 2층으로 차를 나르게 했다. 둘이서 맥주를 즐기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여름도 끝나가고 있었지만 별채 근처에 있는 나무에 핀 꽃은 지금이 한창이었다.
밤이면 달콤한 꽃 냄새가 물씬 풍겨와 콧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맑은 밤공기를 타고 이즈미자키바시(泉崎橋) 다리 건너 이시죠(石門)거리로부터 연극의 북소리가 들려왔다. 치루는 샤미센을 타거나 커다란 나팔이 달린 축음기를 틀어 남편을 즐겁게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대화는 그다지 하지 않지만 도나키는 치루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치루의 장점 중 하나였다. 치루의 수줍은 모습을 보먼 도나키는 마음이 온화해진다. 수치심 같은 소녀스러운 감정은 다른 두 아내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바라는 것은 남자아이를 낳는 것 뿐이었다.
겨울이 되어 바람이 불면, 도나키는 추위를 막기 위해 장지문과 덧문을 굳게 닫았다. 도나키는 젊은 아내와, 같은 비단 솜옷을 입고 도자기 화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했다. 화로에 손을 얹고 잠시 세속에서 벗어나 지내는 시간을 도나키는 즐겼다. 때때로 두 사람의 손이 닿았다.
치루는 남편의 굵고 짧은 손가락의 각진 손톱과, 자신의 예쁘게 뾰족한 길쭉한 손톱을 비교하며 재미있어했다. 유녀 시절 치루는 손금 보는 법을 손님으로부터 배운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치루는 남편의 손금을 보겠다고 말했다.
"손 좀 보여줘요"라고 치루는 남편의 손을 잡고 검지로 생명선을 따라가며 말했다. "당신은 89세까지 수를 할 손금입니다." "89세? 왜 89인가. 아흔 살이면 딱 좋잖아." 도나키는 웃으며 치루를 놀렸다.
"왜냐하면 손금에 그렇게 써 있는걸요." 치루도 웃으며 대답했다. "너의 손도 좀 내어봐"라며 그는 치루의 오른손을 잡고 분홍색으로 빛나는 손바닥을 위로 하여, 손바닥의 생명선을 조사하는 흉내를 냈다. "나는 88세까지 살 거예요" 라며. 치루는 손을 움츠리며 미소를 지었다
"88인가. 내가 일 년 더 산다는 것인가. 그건 불공평하다. 그런데 왜 너는 그렇게 겸손하니?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걸 넌 알고 있을 턴데." 치루는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나키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했다.
"너는 아직 어리다. 나는 이제 중늙은이다. 내가 죽은 뒤 너는 몇 년이고 몇 년이고 살아야 한다. 치루는 남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도 진지해졌다. "당신이 없어지면 나는 살 수 없어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나키는 화로 위에서 손을 뻗어 치루의 얼굴을 자신의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치루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치루, 너도 나도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거야."
치루가 도나키 가문에 온 지 2년이 지났다. 정처의 병은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오후가 되면 열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했다. 도나키에 대해서도 불평하는 일이 많아졌다. 희귀한 약초를 구하기도 하고, 점을 보기도 했다.
도나키는 그녀의 욕심을 무엇이든 들어주었지만 가능한 한 그녀를 멀리하고 있었다. 피할수록 그녀는 집요해졌고 때로는 격노했다. 도나키가 치루의 별채로 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눈에 불을 켰다.
"두고 봐. 그 유곽 출신도 도나키 집안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 여자도 분명 피를 토하고 죽을 게 틀림없어." 그날 치루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남편에게 고했다. 도나키는 대를 이은 기쁨에 넘쳐 맥주가 든 컵을 들고 치루에게도 건배하자고 권했다. 하지만 치루는 응하지 않았다.
“좀 몸이 안 좋아서요”라며 거절했다. "알았어, 알았어, 임신한 몸이니까 무리하지 마"라고 감싸듯하며 치루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다. "치루, 뒷밭 쪽으로 나가 햇볕을 잘 쬐어라.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거야" 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치루는 깨끗한 공기와 태양을 찾아 뒷밭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말동무 마츠가 있었다. 마츠는 밭을 손질하면서 그곳에 심어져 있는 뽕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치루는 자신의 고향에 있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기도 했다. 유녀가 되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 여덟 살 때였고, 그 이후로 가족들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편지가 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치루에 대해 미안해 했던 것일까. 치루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던 것이다. 치루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정처의 치루에 대한 반감이 눈에 띄게 심해졌다.
어느 날 이빨 빠진 노파가 치루에게 주기 위해 부엌 선반에서 임산부 구미에 맞는 먹거리를 꺼내는 것을 목격하고 화가 난 정처는 옆에 있던 한 자나 되는 긴 말린 가다랑어를 손에 들더니 힘껏 노파의 허리를 후려쳤다. 치루는 별채 2층으로 도망쳐 도나키가 돌아오는 다음날까지 숨어 있었다. 그녀에게는 정처가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해 태풍이 몰아친 뒤 마츠가 우물에 떨어진 독사을 건져 올리는 것을 도나키 일가가 모여 보고 있은 적이 있었다. 왜 뱀이 우물 속으로 떨어졌는지 분명치 않지만 아마 바람에 날려와 빠진 것 같았다. 마츠는 대나무로 짠 납작한 바구니를 우물에 내려놓고 독사를 건져 올렸다. 구경꾼들은 독사를 보고 겁에 질린 나머지 멀리 비켜갔다.
"이놈은 수컷입니다. 아마 근처에 암컷이 있을 거예요.” 마츠는 뱀의 머리를 긴 막대기로 누르며 말했다. 모두는 그 근처에 독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목을 움츠렸다. 치루는 새파랗게 질렸다. 그런데 정처는 마츠의 말을 듣고 비정상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츠야, 암컷도 잡아서 산 채로 가져다 줘.” “하기는 해보겠지만 산 채로 잡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독사는 보통 뱀과는 다르니까요.” 정처는 독사 포획이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인 줄을 알고 았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산 채로 잡와, 산 채로..." 라고 명령하면서 기모노에 입을 대고 강하게 기침을 했다.
그날 밤 치루는 조산을 했다. 치루는 가쁜 숨을 쉬며 신음하더니 기침이 나면서 더 힘들어졌다. 그녀는 숨쉬기 편하도록 일어켜 달라고 했다. 정처는 치루를 별채에서 안채 안쪽 방으로 옮기게 하고 산부인과 의사와 산파를 불러주었다. 마츠는 도나키를 찾으러 나갔다.
도나키는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월말 월세 수입을 계산하던 중이었다. 도나키는 서둘러 돌아와 치루가 자고 있는 옆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불단이 있는 방으로 아침 식사를 가져오게 하고 의사와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저애는 이제 죽겠구나"라고 의사에게 물었다. 도나키는 화가 난 듯 청동제 담뱃대의 꼭지를 커다란 담배재떨이 쟁반에 두드려 재를 떨어뜨렸다. “글쎄요. 더 이상 나을 가망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난산으로 죽던지, 아니면 폐가 망가지거나 할 것이 분명합니다. 임신이 폐의 병을 가장 나쁘게 한 것 같습니다. 치루 같은 여자는 아이를 갖지 말았어야 했는데."
치루의 신음소리가 방 두 개 너머로 들려왔다. 도나키는 담뱃대에 담배를 다시 채웠다. "치루는 좋은 애다. 하지만 나는 아이도 갖고 싶다" 고 도나키는 한숨을 쉬었다. "그건 알겠지만 여자나 아이 중 하나로 정하지 않으면 둘 다 살 수 없게 돼요" "아이는 사내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 도나키가의 대를 이을 수 있다" 고 도나키는 중얼거렸다.
"빨리 둘 중 하나로 결정하세요. 엄마의 목숨인가, 아니면 아이인가. 시간이 없어요.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둘 다 끝입니다." "조만간 산모가 폐병으로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 아이를 살려줘. 남자든 아니든 아이에게도 태어날 권리가 있다. 만약 남자가 태어난다면 언젠가 큰 일을 해줄지도 모른다.” 의사는 도나키의 말을 따랐다. 치루는 죽었다. 태어난 아이는 남자였다. 그가 나의 아버지였다. ᅳ72P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