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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18. 큐티
느헤미야 1:1 ~ 11
느헤미야의 기도
※ 1차 2차 포로 귀환 이후에 예루살렘의 성전은 세워졌으나 아직 예루살렘의 성벽은 재건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에스라의 개혁운동으로 포로 귀환 세대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갖추어 가고는 있었지만 그 반대에 직면하고, 믿음의 돌파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페르시아 황제의 술맡은 관원으로서 높은 지위에 있던 느헤미야는 분연히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자천하여 가서 에스라의 개혁 운동을 잇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단시일에 합력하여 이루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렇게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서 감당한 사람은 성경 전체에서 그 유래를 찾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일을 감당할 따름이고, 궁극적으로 그 일을 완성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포로 귀환 이후의 개혁운동의 방향을 재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B.C. 445년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관찰 :
1) 느헤미야의 사정
- 1절a.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a. “하가랴”(חֲכַליָה, 하카랴)는 이스라엘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던 이름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지는 하가랴의 족보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b. “느헤미야”(נְחֶמיָה, 네흐엠야)는 포로기 전후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위로’라는 의미로 느헤미야의 축약형이 바로 ‘나훔’입니다.
c. 느헤미야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성경이 느헤미야가 스스로 자신에 의해서 씌여진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 말씀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진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것에 순종하여 말씀을 기록한 것임을 전제해야 합니다.
- 1절b.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a.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은 B.C. 445년을 가리킵니다. “기슬르월”은 태양력으로는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b. 이 때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있던 수산궁에 있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의 페르시아 황제들은 대개 겨울에는 ‘바벨론’에서,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통치를 했고, 봄과 가을에 ‘수산궁’으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c. 느헤미야는 고국의 급박한 상황을 접했지만 아닥사스다 왕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의 재가를 받은 뒤에야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가 허락을 받고 떠났던 때가 ‘니산월’(2:1), 곧 B.C. 444년 3, 4월에 해당하는 때가 되었던 이유입니다.
2) 예루살렘의 사정
- 2절.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a. “하나니”(חֲנָנִי, 하나니)는 느헤미야의 동생으로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느헤미야를 돕는 관리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셨다’는 의미를 갖는 이름이고, 형과 함께 유대 민족의 종교개혁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b. 느헤미야는 비록 페르시아에서 고급 관리로서 평안하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지만 언제나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이 예루살렘에서 돌아오자 그곳의 형편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 3절.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a. 하나니의 보고는 느헤미야의 마음을 참담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1차, 2차 귀환한 유대 백성들이 돌아간 예루살렘에서 온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도리어 그 지방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벽은 불에 탄채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b. 하나니의 보고는 그가 2차 포로 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무리중에 속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부흥운동에 제동이 걸리자 형 느헤미야에게 그 일을 보고하고, 뒷일을 상의하기 위해서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c. 예루살렘 성벽은 B.C. 586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불탔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세운 방벽들이 에스라 4:7 ~ 24에 기록된 바와 같이 르훔과 심새의 훼방으로 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d.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 사이의 12년의 공백 기간 동안 몇 차례 성벽의 재건이 시도되었지만 그 때마다 훼방을 받아 포로 귀환한 백성들이 낙담하고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3) 느헤미야의 기도의 시작
- 4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a.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니의 보고를 듣고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그리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b.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 곧 모든 나라와 민족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형편이 하나님이 힘이 없으시기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5절.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a.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크다’는 의미가 인격에 적용이 되면 그 인격의 존귀성과 다른 사물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b.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영향력이 만물에 미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그 영향력이 미치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과 자신의 민족이 말씀을 순복하는 것을 통해서 언약되었음을 분명히 직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라는 혈통적 정당성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속한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느헤미야에게 있어서는 우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바라보고 있는 관점과 상통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c. 포로시기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혈통적 선민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중요한 믿음으로 세워지게 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d. 느헤미야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근거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 기도는 다니엘 9장에서 나오는 기도와 그 내용과 형태가 유사합니다. 즉, 믿음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페르시아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온전히 이어지고 있고, 그것은 예레미야의 가르침이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에게, 그리고 스룹바엘과 호세아에게, 또한 에스라와 느헤미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4) 조상들의 죄에 대한 회개
- 6절.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a.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의 종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자들임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으로 연결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b. 느헤미야가 “주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닥사스다 왕이 바벨론에서 수산궁으로 돌아오기까지 대략 4개월여 동안 지속된 것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주님께 간구하고 또 간구했던 것입니다.
c. 느헤미야의 자복은 에스라가 자복한 것과 같은 성격의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말씀에 불순종한 조상들의 죄가 바로 자신의 죄로 동일시하는 회개입니다. 느헤미야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절함으로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집의 죄악을 회개하고자 하고 있고, 그 간구를 하나님께서 긍휼히여겨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7절.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a. 느헤미야가 간절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b.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혈통에서 말미암거나 먹고 입는 것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부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 8절.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a. 느헤미야는 레위기 26:27 ~45과 신명기 30:1 ~ 5의 말씀을 해석적으로 인용하여 기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b. 하나님은 그 이후에도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열국에 이스라엘을 흩으실 것을 예언하셨고, 그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
- 9절.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a. 하나님이 흩으실 것을 예언하셨을 뿐만이 아니라 회복하실 것도 예언해 주셨습니다. 레위기 26:27 ~ 45과 신명기 29:14 ~ 30:10의 말씀을 축약하여 인용하는 느헤미야는 바로 그것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가 주님 앞에서 범죄하여 소망이 없지만, 붙잡을 수 있는 소망이 또한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b. 흩어진 이들을 모으신 하나님이 그 모여진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주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벌을 받아 열국에 흩어진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회복된 이들이 주님의 은혜로 바르게 세워지는 것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셔야 하는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 10절.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a.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종들”이 되고, “주의 백성”이 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능력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코 자신들의 잘남이나 혈통적인 어떠한 근거도 주님 앞에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지를 바르게 견지하고 있습니다.
- 11절a.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a. 느헤미야는 자신과 또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자신에게 찾아온 하나니 일행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느헤미야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을 실행하고자 계획하고 있고, 그것을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b. 느헤미야는 최소한 두 가지의 난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닥사스다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청하는 예루살렘 총독으로 가게 되는 것에 대한 바램이 왕의 귀에 좋게 들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c. 페르시아의 황후라 할지라도 부르심이 없는 중에 황제 앞에 가게 되면 죽임을 당하는 것이 페르시아의 법도였습니다. 페르시아 황궁 내의 암투와 술수와 암살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황제 앞에서 황제의 다스림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을 이루는 것은 비록 자신이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을지라도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며, 그 일들이 형통하게 될 것을 주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11절b.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a. 느헤미야의 기도의 응답으로 그가 술 맡은 관원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 그의 직위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b. 페르시아 황제의 술 관원이라는 것은 지금의 비서실장 정도되는 직분이었습니다. 권모와 술수와 암살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황궁에서 술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기고 있다는 정도의 신임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술이라는 것은 언제나 마실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술 관원은 황제가 있을 때는 언제나 동행해야하고 그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여야 했던 것입니다.
c.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러한 자신의 직분을 믿고 일하고자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실력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신실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가르침 :
1)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페르시아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앙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다니엘과 그 세력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수산궁에 머무르는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었고, 참으로 바른 믿음의 자세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누구보다 이스라엘의 족보에 능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사람이 되었던 것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자신의 정통성이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 믿음을 온전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2) 느헤미야는 언제나 예루살렘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동생 하나니를 2차 포로 귀환의 때에 예루살렘으로 보냈고, 그곳에서의 개혁운동의 결과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니가 오기 전에도 긍정적이지 못한 소식을 들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니를 통해서 애통한 소식이 분명하게 전달되게 되자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모종의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3)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페르시아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그가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자 했다면 그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가 자신의 삶의 목표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조상들의 죄악에 대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회복을 기대하며 자신의 한 몸을 하나님께 내어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그 스스로의 결정이라기 보다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는 은혜의 결단이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4)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걸고 행동으로 믿음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자신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으로 세워놓으신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지혜이고,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4개월에 걸친 간절히 기도와 더불어 구체적인 행동을 위해서 움직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동생 하나니와 더불어 장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성벽을 재건하고 사람들을 동원할 것인지를 충분히 의논하고 준비를 해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자신의 생각은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믿음의 본을 보여준 것입니다.
적용 :
1) 느헤미야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너무나 풍요로운 이 신종 박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헤미야의 본을 눈여겨 보면서 따라가야 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2) 느헤미야는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범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참으로 구속사적인 믿음이었고, 그의 실천은 개혁주의적인 실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신뢰하는 가운데 자신의 최선을 감당하고자 한 것입니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제로 해서 도전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