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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真白き富士の根 緑の江の島 새하얀 후지산 봉우리 푸르른 에노시마
仰ぎみるも 今は涙 우러러봐도 지금은 눈물
帰らぬ十二の 雄々しきみ魂に 돌아올 수 없는 열두명 늠름한 영혼에
捧げまつる 胸と心 받들어 모시는 마음과 마음
2。
ボートは沈みぬ 千尋(ひろ)の海原(うなばら)
보트는 가라앉지 않는 천길 넓은 바다
風も波も 小さき腕に 바람도 물결도 작은 팔에
力もつき果て 呼ぶ名は父母 힘도 다해 불러보는 부모님
恨みは深し 七里ヶ浜辺 원망은 깊어지네 시치리가 해변
3。
み雪はむせびぬ 風さえさわぎて 쌓인 눈은 흐느껴 울고 바람마저 휘몰아쳐
月も星も 影をひそめ 달도 별도 그림자를 감추네
み魂よいずこに 迷いておわすか 영혼이여 어디서 방황하시나요
帰れ早く 母の胸に 빨리 돌아가요 어머니의 품으로
4。
帰らぬ波路(なみじ)に 友よぶ千鳥に
돌아올 수 없는 뱃길에 친구를 부르는 물떼새에
我もこいし 失(う)せし人よ 나도 그리운 잃어버린 아이들이여
尽きせぬ恨に 泣くねは共(とも)ども 다할 수 없는 한에 우는 건 함께 해도
今日も明日(あす)も かくてとわに 오늘도 내일도 이어져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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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望歌에 대한 一考>
혹시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SBS 방송국의 드라마「야인시대」를 기억하십니까?
식민지 조선의 京城을 배경으로 청년 주먹꾼 김두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우리들에게 선사해주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자주 애창했던 노래, 기억하시는가?
(이 곡은 최근에는 영화 "청연'에서도 사용 되었다)
1.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2.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여
세상만사를 잊었으니 희망이 족할까
이 노래의 제목은 희망가라고 한다.
필자가 이 원고를 쓰게 된 것은,
이 우울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노래를 곧 개봉할 기대작
영화 '청연" 의 예고편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 노래를 부르는 남자에게 묻는다 : "조선 사람이세요?"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던 노래,
실제로 식민지 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이 노래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이 노래에 대한 정보를 찾던 도중 김은신 씨의
「한권으로 보는 한국 최초 101장면」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네이버로)
다음은 그 일부분의 발췌 내용이다.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
밉든 곱든 우리나라 대중가요에 미친 일본 노래의 영향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것은 문학이나 연극보다도 오히려 예민하다. 더구나 식민지 시절이나 보면
그런 현상은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대중가요로 불려지게 된 최초의 노래에서부터 그런 현상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우리 노래의 뿌리 깊은 병폐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그 노래가 아이로니컬하게도 <희망가>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었이냐…
(중략)…세상 만사가 춘풍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너무나 유명한 이 대중가요는 실은 외국곡이다.
단지 우리의 노래로 알고 있는 것은
그 곡과 가사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바뀌어 불려졌기 때문이다.
흔히 최초의 대중가요로는 1925년 발매된…(중략)…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희망가>는 이보다 수년 전부터 대중 속에 급속히 퍼져 불려지고 있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3.1 만세운동의 물결이 지나간 뒤인 1923년 무렵이었다.
당시 대중의 마음이란 허탈감과 좌절감, 바로 그것이었다.
민족의 염원은 수포로 돌아갔고,
일제는 문화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겉과 속을 달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애조띤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노래를 <희망가>라고 했다.
가사가 한국어로 되어 있으니까
그 작사자는 분명 있을 것이다.
곡조 역시 작곡자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지은 것인지도 알려지지 않은채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다.
신구 문화사에서 펴낸 「한국 현대사」제 6권 「신문화 100년」에 실려있는
'대중의 감상 따라'에서
필자 박용구는
이 노래가 1910년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새하얀 후지산 기슭>이라는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즉, 가마쿠라 앞바다에서 중학생 12명이 보트 전복사고로 익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장례식에서 가마쿠라 여학교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른 이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곡조는 메이지 창가집에 수록된 <꿈 밖에서>를 전용한 것이었고,
가사는 가마쿠라 여학교의 미스미라는 여선생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중략)……
김은신 씨는 희망가의 작사가는 알 수 없고
노래의 곡조는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의외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작사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역시 네이버는 위대하다.
다음은 작사자의 약력이다.
임학찬 [任學讚, 1890~1952]
호 추담(秋潭)·퇴관(退觀). 경상남도 김해(金海) 출생. 15세 때 부모를 따라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이듬해 대구 계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서울 중앙학교로 옮겨 1910년에 졸업하였다. 김해 합성학교와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갑성(李甲成)이 보낸 '독립선언서'를 받고 김필애(金弼愛)·박순천(朴順天) 등과 의논하여 부산·마산·김해 등지에 동지들을 보내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특히, 부산에서는 일신학교를 중심으로 만세호창단(萬歲呼唱團)을 조직하여 만세운동을 벌였다. 그는 이듬해 5월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5년 간도(間島)로 건너가 독립운동 단체에 협력하다가 1926년에 귀국, 새로운 결심으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34년에 졸업한 뒤 김해군 대저면의 대지교회(大地敎會) 목회 활동을 하다가 1945년 광복이 되자, 김해군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되어 혼란기의 질서유지에 힘썼다. 한편, 동주상업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을 역임한 후 동아대학교 강사·부학장 등을 지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로 시작되는 《희망가(希望歌)》는 그가 그리스도교적 신문화 계몽운동을 위하여 지은 많은 노래 가사 중 하나이다.
앞 뒤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일제시기 선각자였던 이 임학찬이 3.1 운동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 곡조에 가사를 붙였음을 알 수 있다.
가사의 비밀은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 곡의 정체는?
여기서 그만둘 필자가 아니다.
필자는 일본 넷의 문을 두드렸다.
일본 서치 엔진에 몇 가지 키워드를 쳐 보았다.
대략 앞 서 본 글의 이 부분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곡은 1910년에 일본에서 '七里ヶ浜の哀歌(시찌리가하마의 애가)',
일명 '眞白き富士の嶺(새하얀 후지산 봉우리)'라는 제목이 붙어
전국에서 크게 유행했으며,
이후 음반에 취입되기도 했다.
'眞白き富士の嶺'라는 제목은 노래 첫줄에서 따온 것인데,
6절로 된 가사는
1910년 1월23일(일)시찌리가하마 해변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逗子開成中学校학생11名과 小学生1名 등
여학생들 12명을 애도하는 내용으로서
미스미 스즈꼬(三角錫子, 1871-1921)라는 여교사가 지은 진혼가(鎭魂歌)다.
즉, 가마쿠라 앞바다에서 중학생 12명이 보트 전복사고로 익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장례식에서 가마쿠라 여학교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른 이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보트 전복사고는 실제로 존재했으며 노래도 실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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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白き富士の嶺과 "이 풍진 세월"
이 곡조는 본디 영국의 민요인데
Jeremiah Ingalls(1764~1828)가 편작곡하여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오시니'(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라는 찬송가로...
眞白き富士の嶺...
1910년 1월23일(일) 가마쿠라 앞바다
시치리카 해변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逗子開成中学校
학생 11名과 小学生1名 등 여학생12명을 애도하는
'七里ヶ浜の哀歌(시치리가 해변의 애가),
일명 '眞白き富士の嶺(새하얀 후지산 봉우리)'는
미스미 스즈코(三角錫子,1871-1921) 여교사가
작사한 진혼가(鎭魂歌)이다.
이 노래가 한반도에서는
일제강점기 억압에 시달리던 민초들 사이에
<희망가>란 노래로
1919년 3·1만세운동 물결이 지나간 뒤인
1923년 무렵부터 대중 속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1922년에 나온 노래집엔
<청년경계가>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어 전국적 유행에 힘입어
<일본축음기상회>에서 음반으로 발매했다.
음반이 처음 나왔을 때
다시 제목이 바뀌어
<이 풍진 세월>로...
음반으로 취입된 우리나라 유행가 중 가장 오랜 작품으로 기록된다.
문화재청의
대중가요 1호 찾기 목록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라 한다.
첫댓글
七里ケ浜の 哀歌 / 歌 :鮫島 有美子 (사메지마 유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