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몽주 鄭夢周, 1337~1392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송언신 宋言愼, 1542~1612
조선 중기 문신. 명종 때 불교를 배척, 승려 보우를 죽이라고 건의했다. 알성문과에 급제, 검열과 정언 등을 지냈다. 전에 정여립과 가까이 지냈다는 죄목으로 기축옥사 때 부교리에서 파직되었다
이중로 李重老, 1597∼1624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계헤정사공신(癸亥靖社功臣)에 책록되고 이듬해 이괄의 난 때 전사한 무관이다
황성원 (?~1627)
1628년 유효립의 모반을 고변한 공으로 영사공신 2등에 봉해지다
박세채 朴世采, 1631~1695
영조·정조 때에 이르러 탕평책을 시행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 황극탕평설(皇極蕩平說)로 구체화한 조선 후기 문신 겸 성리학자. 주요 저서인《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를 통해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계보를 파악하였다.
이인엽 (1656~1710)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은 이조판서 홍문관 대제학에 이르렀다
유순정 柳順汀, 1459~1512
조선 전기의 문신.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 공을 세우고 정국공신 1등에, 이과의 옥사를 다스려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509년 좌의정에 오르고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직접 경상도도원수로 출정하여 난을 평정했다
오명항 吳命恒, 1673~1728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이조좌랑 ·승지 ·관찰사 등을 역임한 후 사직하였다가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등용되자 이조와 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웠고 우찬성에 이어 우의정에 올랐다
조영복 趙榮福
조영복은 1705년(숙종 31) 사마시에 합격하고 승정원 좌승지, 개성부유수,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유 수 柳洙, 1415~1481
조선 전기의 무신. 수양대군을 도와 황보인·김종서 등의 제거에 공을 세웠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인순부윤, 함길도 도순찰사 등을 지냈다
김중만 金重萬
김중만은 1712년(숙종 38) 3월 무과에 급제한 무신으로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2등공신에 책록되고, 후에 충청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가의대부(嘉義大夫)였다.
심환지 沈煥之, 1730~1802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언관직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노론계 인물로서 벽파의 영수였다
허 전 許傳, 1797~1886
조선 후기의 문신. 철종의 명을 받아 《사의(士儀)》라는 예기(禮記)를 편수했고 병조 ·형조 ·이조의 참판, 한성판윤 ·형조판서 ·성균관동지사 ·경연지사 ·홍문관제학을 역임,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문집에 《성재문집》, 저서로 《철명편》 등이 있다
황 희 黃喜, 1363~1452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했으나, 이성계의 간청으로 다시 벼슬길에 올라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면서 세종의 가장 신임받는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다.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시문에도 뛰어나 몇 수의 시조 작품도 전해진다.
문인 초상
무인 초상
경신공주 초상
<경기도 박물관 초상화 특별전>
첫댓글 경신공주 초상화 빼고 다 액박이에요;;
정준하달망ㅆ네
엑박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