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라 물결 따라
신길수
한바탕 세찬 소나기가 소란을 피우더니 은은한 클래식
음악처럼 고요한 정적을 이룬다. 장마철에 수마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비온 뒤의 하늘은 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하기만 하다.
마음을 비우고 맑은 날에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온갖 모양의
구름이 마치 환상의 세계처럼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구름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그 세계를 연구해 보리라 수없이 다짐을
해 보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무슨 환상의 세계를 넘볼 수 있으랴 하는 생각에
세월만 보냈다.
구름은 예술, 그 자체다. 때론 무용수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용의 형상처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제멋대로 그림을 그려내곤 한다. 그러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물한 바가지 뿌려 놓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이라도 하듯 잠시 멈추어 생각에 잠긴다.
멀리 보이는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구름,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포근하게 감싸 젖을 먹이는 엄마처럼 넓은 가슴을
구름, 그 구름 속에 인생이 담겨져 있다.
구름은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알갱이가 몰려서 대기 중에
떠 있는 것이다. 구름은 습기를 가진 공기 덩어리가 높이
올라갔을 때 생긴다. 구름은 생긴 모양에 따라 권운(털구름)
권적운(털쌘구름) 권층운(털층구름) 고적운(높쌘구름)
고층운(높층구름) 난층운(비층구름) 층적운(층쌘구름)
층운(층구름) 적운(쌘구름) 적란운(쌘비구름)등으로 구분한다.
하늘을 바라다보면 구름이 한점 없을 때도, 온통 구름이
하늘을 뒤덮을 때도 있다. 구름은 마치 인생과 같다. 맑은
웃음을 띠며 반갑게 맞이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짜증스런
표정으로 찡그린 얼굴을 할 때도 있다. 그렇듯이 인생살이도
항상 즐겁고 기쁠 수만은 없다. 그래서 인생 지사 가진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맑은 하늘 아름다운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둥실둥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떠다니는 환상에 잠겨 본다.
온갖 대 자연 속에 어우러져 구름 타고 두둥실 떠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구름을 타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와 비슷한 환상의 세계가 떠오른다. 스릴 넘치고 생동감
있는 급류 타기. 그 묘미가 가히 구름을 타는 것과 비유할 수
있으리라.
얼마 전 강원도 평창으로 급류 타기를 다녀온 적이 있다.
남달리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는 남들이 하는 것은 다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다.
평창에서 영월 거운교까지 약 12㎞를 두시간 반 가량
급류타기를 하는 동안 말 그대로 환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평소 구름을 좋아하여 두둥실 구름 타기를 바랬던 나는
구름을 탄 듯한 기분으로 급류 타기를 즐기고 있었다.
조선조 6대왕인 단종이 그토록 믿고 따르던 숙부인 수양
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자살을 기도했다가 물고기들의 애원으로 죽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 어라연 계곡을 지날 때에는 그때 그
물고기들의 애원의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급류타기를 하는 동안 난 줄곧 주위 경관을 살펴보며
대자연의 위대함에 탄성을 멈추지 못했다. 하늘엔 환상적인
구름 모양이 영화의 한 장면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주위의 산과 섬의 경치는 깊은 산 속에서 도인이 부러울 것
없이 평온한 세상을 사는 것 같았다.
한참을 보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바로 옆에 있던
한 아가씨가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이것 좀 보세요. 제 팔에
솜털이 섰어요.” 그녀는 비가 오는 날씨와 다른 보트들과의
물싸움에 다소 추위를 느꼈던 모양이었다. 나는 생각없이
팔을 뻗어 그녀의 팔에 물기를 훔쳐내 주었다. 순간 그녀의
말 한마디가 걸작이다. “아저씨! 아저씨의 손길이 닿으니까
짜릿해요.” 잠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듯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안하기도 하고
조금은 쑥스럽기도 했다. 곧 이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듯 또
다른 환상의 세계가 다가왔다. 중간의 섬 한가운데로 여러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약 10여 미터의
높이에서 다이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등에 밀려
억지로 뛰어 내리는 모습도 눈에 보였다. 스릴과 박진감이
넘친다. 다음 기회가 또 온다면 나도 한번 해보리라는 생각을
했다.
물위에서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갔다. 이대로 가다간
재미있는 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을 것만 같아 나는 팀원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뒤에 앉아있는 안전요원의 찡그린 표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팀원들과 양쪽으로 균형을 잡아 시소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시소놀이를 시작하자마자 '풍덩하는 소리가
났다. 중심을 잡지 못한 팀원 한사람이 그만 물에 빠지고 만
것이다. 허우적거리는 그를 다시 태우고 막바지 급류가
흐르는 곳을 통과할 때쯤 넘실대는 물살 위를 마치 곡예를
하듯 휩쓸려 모두들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정신이 번쩍드는 사건이 생겼다. 바로 옆에 지나가던
보트에서도 청년 한사람이 떨어져 거센 물살에 휩싸여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팀원들에게 노를 빨리
저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정신없이 노를 저어 그 청년
가까이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잡으라고 소리쳤으나
청년은 정신을 잃은 듯 헤매기만 했다. 간신히 청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그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일어서서 한쪽으로 이동을 하는 바람에
중심을 잃은 데다 그 청년을 끌어당기는 순간 우리가 타고
있던 보트가 뒤집히고 만 것이다. 보트에 타고 있던 10여명은
사람살리라며 아우성을 쳤다. 마음을 가다듬고 보트를 바로
세우고는 한사람 한사람씩 구조를 시작했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없이 모두들 무사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감에 맥이 빠진다.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음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급류타기를 마쳤다.
12킬로미터의 급류타기가 마치 한평생 인생을 살아온
과정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마치 구름과도 같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의 형상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론 예상치 못한
·물결과도 같이 소리 없이 흘러가는 것이리라.
1998.
첫댓글 12킬로미터의 급류타기가 마치 한평생 인생을 살아온
과정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마치 구름과도 같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의 형상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론 예상치 못한
·물결과도 같이 소리 없이 흘러가는 것이리라.
한바탕 웃음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급류타기를 마쳤다.
12킬로미터의 급류타기가 마치 한평생 인생을 살아온 과정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마치 구름과도 같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의 형상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론 예상치 못한·물결과도 같이 소리 없이 흘러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