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11. 기적소리 같은 인생의 의미를 곱씹다
기자명 구정민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5.25. 지면 20면
구불구불 오십천 따라 폐역에 깃든 옛 광부의 까만 추억
석탄시대 흥망성쇠 함께한 옛 역사들
길따라 삼척시민 생명수 오십천 흘러
첫 관문 영동선 석탄수송 핵심 도계역
1975년까지 파독 광부 훈련소 역할도
국내 유일 주민 직접 만든 하고사리역
목구조로 현재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 삼척 8길 = 간이역을 만나러 가는 길
아직도 검은 석탄가루를 날리는 도계역 까막동네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작은 역들이 있다. 삼척 도계와 신기를 잇는 운탄고도 8길에는 짧은 거리에 비해 많은 수의 기차역이 있다. 고작 17㎞ 정도에 불과한 이 구간에만 심포리역~흥전역~나한정역~도계역~하고사리역~마차리역~신기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 중에는 현재도 운영중인 역도 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아 옛사람들의 오래된 채취만 남아있다. 8길의 출발지인 도계역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8월 1일 보통역으로 운행을 시작한 영동선 석탄수송의 핵심 역사이다. 도계역이 위치한 도계리는 세 갈래 길의 분기점에 있다고 해 ‘길가말’이라 불리던 이름이 와전됐으며, 시외버스터미널과 철도역이 위치한 도계읍 중심 마을이다. 광복 이후 대한석탄공사로 이관된 인근 탄광 규모가 커지자 1951년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 운영됐다.
당시 도계는 강원도내 전체 석탄 생산량의 32%가 생산되는 중요한 석탄 산지였을 뿐 아니라 1975년까지 서독으로 파견되는 광부들의 훈련소 역할을 했다. 바로 이 곳 도계에서 생산된 무연탄을 묵호항과 국내 여러 도시로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역이 도계역이다. 근처 도계농협 건물 앞 도로변에 ‘석탄산업전사 안녕기념비’가 있다. 태백과 영월, 화순 등 다른 지역 석탄산업전사기념비 등은 모두 순직 광부들의 넋을 기리지만, 이 곳 도계 석탄산업전사 안녕기원비는 살아있는 광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8길은 석탄을 실어나르는 숱한 간이역을 품고 있으면서 지금도 깊은 갱 속에서 석탄을 캐고 있는 석탄산업 전사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색다르다.
구사리 백산골에서 발원한 오십천과 함께 길동무가 돼 걷는 길이기도 하다. 오십천은 삼척시민들의 생명수이다. 발원지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장장 50㎞가 이어진 하천이다. 오십천이라는 이름은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을 오십번 정도 건너야 한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하천의 곡류가 그 만큼 심하다. 도계 시내를 벗어나면 늑구리 삼마광업소 사택과 그 반대편 공설운동장이 보인다. 공설운동장 쪽으로 석공 도계광업소 점리항을 비롯해 대방, 삼마, 거마 등 몇 곳의 탄광이 자리했던 곳이라 지금도 폐갱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골짜기로 들어가면 ‘하늘아래 신주 빚는 마을’이라 불리는 점리 마을이 나온다. 이 곳에서는 주민들의 농가소득 등을 위해 전통주 체험이 가능하다.
운탄고도 8길에 위치한 간이역 가운데 고사리역은 1940년 7월 3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도계지역 석탄산업이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역사다. 2007년 6월 여객 취급이 중단되고 이듬해 12월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지금은 모든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고사리역은 수많은 화차들이 드나들었던 석탄수송 역사답게 경내가 무척 넓고 선로가 복잡하게 놓여있다. 여기까지가 석탄산업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사리역은 1966년 건립돼 1967년 영동선 간이역으로 운영된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정식역사다. 국내 등록된 간이역 가운데 팔당역과 함께 규모가 가장 작은 역으로, 건축면적 36㎡규모에 1동, 1층으로 이뤄져 있다. 목구조에 맞배지붕 형태로, 과거에는 황토로 마감한 지붕에 비닐판 벽체를 가지고 있어 다른 역들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주민들이 직접 지었기 때문이다. 또 승객이 역사를 거쳐 철로로 가는 다른 역들과는 다르게 철로를 따라 역사 옆면으로 출입하도록 돼 있다. 현재는 리모델링 후 나무 집 모양의 역사로 꾸며져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차리역은 1940년 7월 31일 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역 건너편에 석회석 광산이 있었다. 1967년 7월 1일 보통역으로 승격됐다가, 1997년 6월 1일 배치간이역으로 다시 격하됐다. 2004년 역사를 신축·이전했으나, 2008년부터 여객 취급이 중지됐다. 현재는 모든 열차가 통과하는 무배치 간이역이다. 이어서 신기면에서 가장 너른 들을 갖고 있다고 해 이름 붙여진 대평리를 지나 오십천의 아름다운 물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 새 신기역을 만나게 된다. 신기역은 1934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신기는 여산 송씨가 새로 개척한 터전이라 하여 ‘새터’라 했는데 이를 한자로 하면 신기가 된다. 무궁화호가 운행되는 곳으로, 예전에는 석회석 화물을 취급했으나 지금은 여객 업무만 하고 있다.
운탄고도 8길에 자리한 도계역과 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마차리역 등은 모두 사람들로 북적이며 옛날에는 흥했으나, 지금은 모두 폐역이 됐다. 이처럼 역에서 시작해 역에서 걸음을 멈추는 8길은 여행자들에게 기적소리 같은 인생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간이역은 말 그대로 잠깐 섰다 가는 역이다. 운탄고도 8길의 간이역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물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도 절실한 교통수단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의 상징이자 수탈의 공간이기도 했다. 또 근·현대 산업화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생활의 현장이기도 하다.
■ 8길 주변 명소
△하고사리역(下古士里驛)
고사리역에서 소달초교 쪽으로 가다보면 거의 끝자락에 하고사리역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7년 6월부터 여객 취급이 중단돼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하고사리역 건물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건축하는 등 그 특수성을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최근에 리모델링 과정을 거쳤다. 원래 고사리역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석탄 채굴과 운반을 쉽게 하겠다고 지금의 위치에 고사리역을 옮겨버리면서 고사리역과 고사리의 관계가 끊어지게 됐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은 이쪽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직접 역을 지었다. 수㎞ 떨어진 곳의 황토를 나르고, 산에서 목재를 벌목한 뒤 설계도도 없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여해 역사를 지었다. 이 역은 백양리역과 팔당역과 달리 1면 1선의 단선 승강장이다.
△삼척을 대표하는 명소, 환선굴과 대금굴
삼척하면 떠오르는 관광 명소는 단연 환선굴과 대금굴이다. 5억3000만년 전에 생성된 대이리동굴지대는 지난 1966년 6월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고 이듬해 환선굴이 개장했으니 벌써 56년이 지났다. 국내 최대 석회동굴이라는 명성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그 스케일도 웅장하다. 동굴 입구 폭이 14m, 높이가 10m이고 내부는 폭 20~100m 높이가 20~30m에 이른다. 주굴 길이만 3.3㎞(총길이 6.5㎞)이다. 내부에는 도깨비 방망이, 미인상, 거북이, 옥좌대, 꿈의 궁전 등 다양한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이 고대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굴은 대체로 북향으로 펼쳐져 있고 안쪽 80m 지점에서 둘레 20여m의 거대한 석주가 서 있으며, 그 곳에서 북굴과 북서굴, 중앙굴, 남굴 등 4갈래로 갈라진다. 지난 2010년부터 모노레일이 운행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오르기가 한결 나아졌다. 인근의 대금굴은 환선굴과 관음굴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동굴로, 동굴 조사 4년, 시설물 설치 3년 등 모두 7년간의 준비기간 끝에 지난 2007년 개방됐다. 대금굴은 동굴입구 140m 지점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들어가는 환상적인 체험과 에그프라이 석순, 곡석, 종유석, 동굴진주, 호수, 폭포, 동굴생성물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동굴 주변에 펼쳐진 덕항산과 생태공원, 전나무 숲의 아름다운 절경은 여행의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운탄고도 8길 [삼척 도계역 - 신기역]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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