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의 히메유리(1987 요나조 노부코) 11
● 제Ⅱ부 제1장 육군병원의 벙커
1945년 3월 24일, 히메유리 학도들은 육군 병원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내가 친구 야스코를 데리러 가니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족이 걱정돼 죽겠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우리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북쪽의 구니가미(国頭)로 피란가기를 거부하셨다. 일부 사람들은, 10•10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거리에 덩그러니 불타다 남은 집이든, 혹은 또 적이 나하로 쳐들어오든 상관않고, 요지부동으로 나하의 거리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가슴에 중압감을 느끼며 하에바루(南風原)의 육군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야스코의 손을 잡고 걸었다. 서늘한 밤이었지만 우리 손바닥은 촉촉하게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야스코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1분 간격으로 멀리서 폭탄의 작렬하는 소리를 들었다. 함포 사격 소리처럼 느껴졌지만 그다지 익숙한 소리는 아니었고,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멀리서 두드리는 북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저 소리가 정말 함포 사격인가요?” 나는 사거리 파출소에서 번을 서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래" 하면서 젊은 군인이 파출소에서 나왔다. "그런데 너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하에바루의 육군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간호사입니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종군 간호사예요" 라고 야스코가 말을 덧붙였다. "아, 그렇구나. 너희들은 지원 간호사구나. 가급적 사거리는 피해서 지나가라. 트럭이나 짐수레 등의 바퀴가 달린 것에는 접근하지 않도록 해요. 적은 강력한 금속 탐지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군인들이 줄을 지어 지나갔다. 하에바루로 향하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군인들은 보조를 맞춰 걸으니 신발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렸다. 우리 가슴도 신발 소리에 맞춰 뛰었다. 야스코도 나도 이상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멀리서 울리는 함포 소리, 리드미컬한 신발 소리, 가슴의 울림, 오키나와 온 섬이 울림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군인의 행진은 우리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빨랐다. 야스코도 나도 숨이 차서 뒤쳐지고 말았다. 하늘은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음침한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비가 올까?" 라고 야스코가 물었다. "공기가 건조해서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아"라고 나는 대답했다. 길이 사람과 차로 붐비기 시작했다. 트럭과 짐수레, 그리고 군인과 일반 시민들이 뒤섞여 길은 꽉 찼다.
하에바루에 가까워질수록 함포 소리는 또렷하게 크게 울려 퍼졌다. "무섭지 않아?" 나는 땀에 젖은 야스코의 손을 꽉 움켜쥐며 물었다. “아니, 별로... 우리는 하에바루의 벙커 속에 있을 거니까 분명 안전할 거야.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구니가미에 피란가주시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둘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달은 하늘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육군병원은 하에바루(南風原) 언덕 옆구리를 파내어 만든 벙커 속에 있었다. 나뭇잎으로 간단히 위장한 벙커 입구가 밤눈에도 잘 보였다. 야스코의 걸음이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들어가기 싫어. 나 집에 돌아가야겠어.”라고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는 없어."
"하지만 무서워. 이 벙커, 위험할 것 같지 않아. 1미터나 2미터밖에 안되는 곳도 있어. 만약 폭탄이 근처에 떨어지면 다 죽지 않을까?” “이 근처 벙커는 확실히 얕아. 하지만 더 크고 안전한 것도 있다고 생각해. 어느 쪽이든, 지금 집에 가봤자 어쩔 수 없잖아. 여기 머물러야 해. 나라를 위한 일이야."
우리는 T자 모양으로 파인 커다란 벙커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벙커는 T자 모양의 세로줄 끝이 입구로 되어 있었다. 세로 거리는 15미터 정도 되어 그곳을 어슬렁거리는 것은 절대 금지되어 있었다. "여기를 어슬렁거리다가 근처에 폭탄이 떨어지면 물고기처럼 배꼽을 내놓고 죽는다. 적의 폭탄 위력은 엄청나니까” 라는 군인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그렇게하여 히메유리 학도 297명은 T자 가로줄 안쪽 부분에 밀어 넣어져 있었다. 그날 밤 간호사로서의 일은 없었다. 벙커 안은 사람이 너무 많아 꼼짝 못했고,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불빛은 석유 램프뿐이었다. 인간의 몸은 냄새가 나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밖에 나가서 새로운 공기가 마시고 싶어졌다.
남의 발과 어깨를 밟으며 나아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평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가까스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벙커 입구에 다가가자 아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햇빛이 눈부시게 비쳤다. 많은 사람들이 벙커 벽에 기대거나 통로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규칙을 어긴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공기는 시원하고 신선한 초목 냄새가 났다. 하늘의 일각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만약 미군 정찰기 "돈보(잠자리)"가 날지 않았다면 정말 화창한 하늘이었을 것이다.
미군 정찰기는 진짜 잠자리처럼 기체가 파랗고 날개는 반짝였으며, 그 날카로운 눈은 지상을 기어다니는 그 누구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 잠자리를 자주 잡으러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잠자리에게 노려지는 처지가 되었다.
"오늘은 화창한 하늘이다" 입구의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마사코(政子)였다. 그녀는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마른 사탕수수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어디 가려고?" 라고 나는 물었다. 그리고 맞은편 언덕 상공을 날고 있는 돈보를 가리켰다.
"사실대로 말하면 하에바루는 위험하다고 생각해. 나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나라를 위한다면 좀 더 안전한 곳에서 그렇게 하고 싶은 거야" 라고 그녀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벙커 바로 밖에 대여섯 명이 앉아 수다를 떨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마사코와 나도 잠시 그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언덕 위에서 멀리 서쪽으로 푸른 아침 안개에 싸인 게라마열도(慶良間列島)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안개가 사라지자 군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20여 척의 군함이 섬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군일까. 적의 것일까, 아군의 군함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게라마열도를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 마사코는 눈을 감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면서, 마치 남자 같은 낮은 목소리로 격문을 읊었다.
"훌륭해! 봐봐. 철벽의 성이여. 일본 해군이 적을 전멸시키는 거야. 도고원수(東郷元帥)가 쓰시마 앞바다에서 러시아 해군을 멸망시킨 것처럼 말이야. 이기는 건 일본이 분명해. 만세! 만세!" 우리도 "만세! 만세!" 라고 마사코를 따라했다. 한참 뒤에야 우리는 사실을 알았다. 게라마 열도를 둘러싼 군함은 미국의 것이었다.
게라마 열도의 도카시키(渡嘉敷)섬에서는 육사 출신의 젊은 구로마쓰 대위가 섬 주민에게 포로가 되기보다는 자결을 강요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주민들은 가장 안전한 벙커를 군에 점거당해, 그곳에 들어 갈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은 온나(恩納)해안가로 내려가 제각기 바위밑에 숨어 있거나 자연의 동굴을 이용하거나 하며 주변을 헤매고 있었다.
1945년 3월 28일, 해안가로 피해 있던 주민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명령이 구로마쓰 대위로부터 내려졌다. 그것은 자결하라는 명령이었다. 주민들은 촌장의 결심을 들었다. "여러분, 들어보세요.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야 하지 앟겠습니까?"
수류탄이 나눠졌지만 모두가 자결하기에는 수가 부족했다. 수류탄을 든 가장(家長)이 “모두 웃고 죽자”며 비장한 결의를 밝히자 한 발의 수류탄에 스무 명에서 서른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여기저기서 섬뜩한 폭음이 울려 퍼졌고, 그것이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수류탄의 수가 부족한 데다 불발탄도 있어 도저히 모두의 즉사는 어려웠다.
죽지 못한 자 중에는, 도끼나 괭이 등으로 친한 자의 머리를 내리치는 자가 있었고, 근봉으로 때려 집안 사람들끼리 서로 죽였다. 면도날로 자신의 핏줄을 자르는 자도 있었다. 세상에도 무서운 지옥의 광경이 도카시키 섬에서 전개된 것이다. 자결 결과 39명의 인명이 손실된 것이다. 그러나 구로마쓰 자신은 1945년 7월 19일에 포로로 잡혀 있었던 것이 나중에 판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