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8,90년대 영월에서 노총각시절 자주 보던 여인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레지라고 불렸던 시골다방에서
티켓비용받으면서 생활했던 여인들이다
그시절 회사 계약에서 낙찰받은 도급업체 사장들은
전직원에게 커피를 쏘는 관례가 있었다
동강가에 한적하게 자리잡은 조용한 사무실에 갑자기
여인들의 빼닥구두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리고
커피보드를 보자기로 감싼 쟁반을 들고 힘차게
젊은 여인들이 나타나면 그들이 따라주는 달달한 커피로
피로를 씻기도 했다
저녁에 회식을 할때도 그녀들이 사이사이에 끼어 앉아
술을 따르고 진한 농담을 함께 나누며 흥을 돋기도 했다
간혹 회식이 끝나고 2차를 할때도 그녀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친해진 여인도 있었고 산촌의 기나긴 밤 외로운 밤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루는 독신자 숙소 내방에서 후배와 둘이 맥주를 마시는데
내방문을 두두리는 소리가 있어 나가보니 예전에 함께 술먹었던
여인이었다. 오빠 나 피곤한데 잠시 쉬고 가면 안될까 하길래
들어 오라했더니 그녀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는데
같이 있던 후배놈이 그녀의 몸에 손을 대길래
크게 혼을 낸적이 있었다
나와 동갑인 한직원은 단골다방 레지와 친하여
술을 많이 마신날에는 그친구와 함께 그녀의 다방에 가서
라면으로 속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가보니 그녀가 양다리를 기부스하고 있어서
물어보니 술김에 신세한탄을 하고 동강다리위에서
뛰어내려 양다리가 골절이 되었다고 하였다
또 한여인은 20대 중반 아주 앳된 미모였는데
그녀의 사연도 기가 막혔다
여상을 졸업하고 농협에 취직하여 젊은 과장과 사귀게 됐는데
본처가 나타나 죽일년 살릴년 해서 결국 농협을 그만두고
산촌의 티켓다방까지 흘러 들어온것이었다
그밖에도 사연을 가진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이제 수많은 세월이 흘러 그녀들도
60대 초중반이 되었을것이다
그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첫댓글 저 멀리 보이는 동강다리의 사연이 모질고 안타깝군요..
혈기 왕성했던
되돌아 가고 싶지 않은
한 때의 추억입니다
저 동강다리에서 뚜이어 내렸는데 모진 생명을 다시 이어가더 군요
이제는 그녀들도 어디선가 잘살고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다들 사연 한두가지는 다 갖고,
사는것 같습니다.
다 가슴 아픈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녀들뿐아니라 살기위해 그때 탄광촌까지 찾아왔던
그들도 이젠 모두 초로를 넘어 노인이 되어 이땅에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이곳은 군사도시
한때 해군이 각 함대로 흩어지기전에는
정말 몸좋고 잘생긴 젊은남자들이 득시글댔어요
그리고 인구에 비해서 미인이 많다고도 했구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인구는 그때보다 더 늘었지만
부산과 접경지대인 신항만동네가 늘었기에 는 실감은 안납니다
그때는 다방레지들도 이뻤어요 그리고 오비베어
크라운킹 같은 맥주집장사하던 젊은여인들도 이뻤구요 그결과 예쁜다방 레지에게 코꿰인
남자도 더러있고 유부녀인 술집여자랑 도망간 남자들도 간혹있었어요
시골에 티켓다방을 상상으로 그려봅니다
착한애들도 있었지만 기둥서방과 동거하는 되바라진 나쁜애들도 많았지요
영월은 단종유배지인 그섬만 가보고 바로 영주로 갔어요 긴 동해안여행에 지치기도 했고
초여름 날씨가 너무 더웠어요
가기 힘든곳인데 아까워요^^
제가 영월에 살때 저와 동갑인 직원한명이 다방레지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사택에 살때 그부인은 다른 부인들앞에서 신랑을 마구 험담하기도 했지요
그후 그친구는 회사를 퇴사하고 평창에 있는 공사업체에 취직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영월에서 아산으로 이사온후 어느날 그친구가 제가 근무하는곳을
찾아와 돈을 잃어 버렸다고 30만원만 빌려달라고 해서 옛정도 있고 해서
빌려줬는데 평창으로 돌아간후 감감무소식이었고 몇번 전화했지만
그냥 준걸로 생각하고 말았었지요. 몸님의 글에 뜬금없이 그생각이 나네요
이제 제천에서 영월까지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겨 당일로도 다녀올수 있고
시내가 깨끗하여 하루 숙박하고 고씨굴 청령포 장릉 어라연 등 인근 관광해도 좋습니다 !^^
@그산 이글을 보니 청령포에서 나와서 동강변의 동굴
한군데를 더갔네요 그게 고씨굴인가봅니다
정말 무식하게 길고 추웠던 굴은 정선에서 갔어요 거긴 한국인을 착취한 나쁜넘 동상이 서있었던 기억입니다 그후 제주도에서도 굴에 갔었죠
이젠 어디가면 굴엔 안 가려구요 흥미가 없었어요 그좋은 직장 관두고 돈을 빌리고 떼먹다니
그 나까무라상 형편이 안타깝네요
저는 오늘 아픕니다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갈까 합니다
아름다운 동강에 그런 사연도 있었군요.
저도 3년 전 쯤에 충주에서 기거할때 드라이브 삼아서
영월을 한번씩 가 보고는 했는데,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입니다..
방장님도 충주에서 사신적이 있으시군요
제가 영월에 살때는 단양과 충주에 가려면 고씨굴아래서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건너 다시 영춘직전에 또 배타고 건너가야 했었습니다
이제는 영월에서 단양을 거쳐 충주까지 가는 4차선도로가 뚫려
가기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영월은 제가 30대 10년을 살았고 그곳에서 우리딸애가 태어났고
신혼을 보냈기에 아내와 지금도 몇달에 한번씩 찾아가는데
전보다 도로도 좋아졌고 시내도 깨끗하게 정비되었습니다
그시절
기억을 잊지 않고
글로
옮기셨네요 ~~ ^^
넵 일요일엔 항상 차를 몰고 멀리 구경다녔는데
오늘은 마님이 설날 먹을 빈대떡을 만든다고하여
안나가고 시간이 남기에 영월에서 30대 총각시절의
이야기를 반추해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