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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부웅, 부우우웅, 끼이이이익....
따각, 따각, 따각
터벅, 터벅, 터벅
드르르르르르륵
제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아래는 커다란 바퀴달린 동물들이 쉬지 않고 달리고 위로는 발자국 소리가 납니다.
조금은 시끄럽지만 볼거리도 많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좋은 곳입니다.
처음 바깥을 내다봤을 때 그 감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동물들,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니는 것이 그저 신기해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다른 비둘기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고 어서 빨리 나도 날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우리들에게 금지된 곳이 있었습니다. 더 가까이서 풍경을 보고싶어 조금이라도 밖으로 나가려 하면 어른들은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막았습니다. 양 옆으로 트인 곳의 가장 끝 부분은 구경하기 가장 좋은 곳이지만 아직 날지 못하는 우리에겐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른들 몰래 그곳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바깥 구경을 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매우 소란스럽습니다.
친구들마다 날개를 퍼덕이며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경쟁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곳 저곳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펄쩍 뛰어 올라 두어번 날갯짓하고 내려오는 정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날개에 힘이 붙으면서 몸이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누가 더 늦게 발이 땅에 닿는지 겨루는 것은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여느 때와 같이 동생과 바깥풍경도 보고 나는 연습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서로 심하게 부딪쳤고 동생은 중심을 잃었습니다.
발톱으로 움키려 하였지만 딱딱하고 밋밋한 바닥에 걸리는 것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동생의 간절한 눈빛을 보았습니다.
날개를 퍼덕이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제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만 흘릴뿐이었습니다.
얼마 지났을까 따스한 온기가 저를 포근히 감싸 안았습니다. 엄마였습니다.
놀람과 당황스러움은 따스함 속에 모두 사라지고 저는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이 날의 기억도 모두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지기를 바랬습니다.
도움
이제는 해도 길어지고 밤이 되도 춥지 않습니다.
그리고 크고 아늑했던 보금자리가 이젠 비좁고 시끄럽고 깃털만 날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친구들은 모두 날갯짓하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에는 시커멓고 털도 별로 없어 병든 병아리 같았는데 어느 새 어엿한 어른 비둘기가 된 것입니다.
보기 흉한 검정색은 모두 사라지고 온통 선명한 잿빛으로 변하였고 날개와 꼬리 깃에는 누가 그려놓은 듯한 검정 줄무늬에 빨간 발과 목의 청록빛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들 펄럭펄럭, 펄럭펄럭
먼지와 깃털이 뒤섞여 저는 숨도 쉬지 못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저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또 있었습니다. 저 자신이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뾰족탑에 대한 동경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어른 비둘기들이 부럽지도 않았습니다.
동생과의 사고 이후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였고 친구들의 비행연습은 제게 그저 장난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 둘 친구들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까지 갔다왔다느니 누구는 어떤 건물을 돌고 왔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기 싫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이야기가 부럽기도 해서 밤에 아무도 몰래 둥지 밑을 내다보고 날갯짓을 해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친구들 중 하나가 제게 왔습니다.
“난 오늘 서쪽에 있는 큰 언덕에 갔다왔는데 넌 어디까지 가봤니?” 하였습니다.
순간 멍해지더니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피하고 싶었습니다.
“어, 그게, 음...”
그 때였습니다.
흰색 비둘기 하나가 제게 오더니
“얜 말이지 어젯밤에 뾰족탑을 돌고 왔어.”
“내가 어제 쫓아가다 포기하고 돌아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흰색 비둘기를 바라봤습니다.
그 비둘기는 저를 보며 윙크하였습니다.
“그렇구나~.”
친구 한 녀석은 잔뜩 자랑하려다 풀이 죽어 돌아갔고
흰색 비둘기와 저 둘이 남았습니다.
“넌 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거짓말을 하니?”
“넌 충분히 거기까지 갈 수 있으니까.”
“네가 어떻게 알아?” “난 아직도..”
“알아, 동생 때문에 그런 거 알아.” “그럼 계속 이렇게 지낼래?” “그만하고 날개를 쭉 늘어뜨려 봐?”
난 시키는 대로 날개를 펼쳤습니다. 깃 하나하나 가지런하면서도 촘촘히 줄지어 있었습니다.
흰비둘기는 날개로 툭치며 자신의 것과 비교하며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크고 멋진 날개를 가졌으면서 왜 못난다는 거야.”
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길 찰나
다시 동생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넌 네 동생 보고 싶지 않아?”
“비둘기가 날지도 못해서 언제 다니고 언제 동생 찾을래?”
“...”
“네 동생은 살아있어.”
“정말? 네가 어떻게 알아?”
“그날 일을 슬프지만 그렇게 슬퍼할 일도 아냐.”
“네 동생은 죽지않고 살아있다고. 동생은 북쪽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거야.”
“큰 동물 위에 떨어지는 걸 내가 봤거든.”
“그래? 그게 정말이야?”“왜 이제야 그걸 말하는 거야?”
“네가 말할 기회를 줬어야지.”
“하루 종일 멍하게 서서 신경질적으로 있는 네게 무서워서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이젠 됐고 아까 날개 한번 펴봤으니 준비운동은 한셈 치고 이제 뛰어 내려 함께 날아봐야지.”
“뭐?”
“이제 날자고. 내가 무슨 다른 얘기했어?”
동생이 살아있고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저의 마음은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 흰둥이 녀석이 저를 낭떠러지로 밀었습니다.
“으악, 안돼.”
나도 모르게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눈 뜨고 날개를 움직여!”
눈을 떴습니다. 둥지가 저만치 떨어져 있었고 저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날갯짓만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건 어렵지 않아 발을 떼는게 어렵지.”
저는 대꾸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메여있지 않고 떠있는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이젠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뾰족탑까지 갔다와야지. 날 거짓말쟁이로 만들 생각이야?”
“난 그게 어딨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냥 그대로 가면 돼.”
그 때였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저는 중심을 잃고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날갯짓을 할수록 더빨리 떨어졌습니다.
흰비둘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날개에 힘을 빼고 중심을 잡아.”
가만히 날개를 펼치자 빙글빙글 도는 것이 멈췄습니다.
“중심을 잡고 조금씩 날갯짓을 해보렴.”
바람을 타고 날갯짓을 하니 나는 것이 한결 수월했졌습니다.
누군가 했더니 엄마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뾰족탑를 한바퀴 돌고 둥지로 돌아왔습니다.
친구들
나는 것은 그냥 육교 밑에서 지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즐거움과 새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습니다.
전 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즐거운 만큼 더 멀리 더 빨리 날 수 있게되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 광장을 크게 돌거나 조금 지칠 때는 양지 바른 곳에서 햇빛을 쬐며 쉬는 것도 좋았습니다.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쉬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먹이라도 주면 미친듯이 달려가 쪼아먹었습니다.
배가 좀 부른다 싶으면 전 친구들과 도둑 고양이를 놀려댔습니다.
가만히 잠자고 있는 고양이 녀석을 부리로 콕콕 쪼아대고 도망가거나 깼을 때 날개가 다친 척 하며 콩콩 뛰어다니다 고양이가 가까이 오면 휙 날아올라 골탕 먹이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전 친구들과 떨어져 비행을 하곤하였습니다.
동생을 찾고 싶기도 하고 다른 곳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멧비둘기
보통은 개천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곤 하였습니다.
개천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새들도 물위에서 노는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한번은 방향을 좀 바꾸었습니다. 평소 가던 길 보다 다소 왼쪽으로 가면 짧은 시간에 더 멀리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힘찬 날갯짓으로 언덕을 넘을 때였습니다.
생긴건 저와 비슷한데 색깔이 암갈색인 한 비둘기가 갑자기 나무에서 튀어나와 제 앞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중심을 잃고 나무로 곤두박질 칠뻔하였습니다.
“야 거기, 너 거기 서!”
힐끔 저를 쳐다보더니 그냥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나서 쫓아갔습니다.
그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잘 빠져나갔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나뭇가지에 날개가 계속 부딪쳐 빨리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숲을 빠져나와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따라 붙기 시작했습니다. 전 다시 외쳤습니다.
“거기서!”
그러자 거무튀튀한 녀석이 멈춰 저를 향해 바라봤습니다.
저는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참고 말하려던 때, 그녀석이
“야 넌 눈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야!”
“저 위를 봐!” “안보여?”
전 제가 화를 내야할 상황인 것 같은데 되레 역정을 내는 검둥이 녀석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전 하늘을 올려다 봤고 저 높은 곳에서 무언가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습니다.
“넌 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새매의 먹이가 되었을 거야.”
‘저게 새매라고? 저렇게 작은데 어떻게 날 잡아먹어? 또 멀리 있는데 나 있는 곳까지는 한참 걸릴텐데 어떻게? 어떻게?’
전 계속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들은 물론 다른 작은 동물들도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새매는 한곳으로 그동안 제가 봐왔던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목표지점에는 한 마리 새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속력이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먹잇감은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왔고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왔습니다.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검둥이 녀석은 저를 수풀 깊숙한 곳으로 절 안내했습니다. 새매는 두어차례 공격을 하다 사냥을 멈추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봤지? 저게 새매야.” “너도 무사히 이곳을 다니려면 잘 기억해 둬야 할거야.”
“넌 어떻게 그렇게 잘 날지?”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느린 편이 아닌데 따라갈수도 없었는걸.”
“그건 말이야 네가 잘 날지 못하기 때문이야.”
“뭐라고!” 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잘 날지 못한다고?’
잘 날지 못하니 검둥이 녀석보다 느린 건 사실이지만 무언가 더 정확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매도 갔는데 다시 경주할까?” “이번엔 내가 이길 수 있어.”
큰소리를 쳤지만 자신은 없었습니다.
“좋아.”
“준비 시작하면 저기 보이는 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소나무를 돌아오는 거다.”
“그래.”
“그럼 준비, 시작!”
우리 둘은 있는 힘껏 발을 내딪고 날개를 펄럭였습니다.
출발은 제가 조금 빨랐지만 바로 장애물들을 만났습니다. 목표점까지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뭇가지들을 피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검둥이 녀석은 벌써 저만큼 앞서갔습니다. 그 뒤를 쫓았습니다. 그가 날개를 펼때 저도 폈고 날개를 접을 때 저도 접었습니다.
그가 하는대로 날자 전처럼 나뭇가지에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에서는 이렇게 나는 거였군.’
하지만 간격이 도무지 좁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속력을 더 내려고 하면 할수록 나뭇가지들로 인해 더 빨리 갈 수 없었습니다.
조금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반환점으로 곧장 가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덧 검둥이 녀석은 반환점을 돌아 저를 지나쳐 갔습니다.
절 보고 씩 웃는 모습이 기분 나빴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있었습니다.
반환점을 돌며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이번 경주에 승산이 있어보였습니다.
전 날개를 활짝 펴고 출발점을 향해 온힘을 다해 날아갔습니다.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다고!”
“그런 닭둘기 녀석한테 질 내가 아니지!”
검둥이가 출발점에 도착하였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좋아합니다.
저를 찾는 모양입니다.
“혹시 이겼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지?”
이 말과 함께 검둥이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지?” “난 너에게 추월당하지 않았는데.”
“나도 속으로 너보다 앞서 나갈 때 좋았지만 결승선까지 참았지.”
“반환점을 돌 때까지 한참이나 뒤쳐져있었는데 어떻게 나보다 빨리 왔지?”
“그건 너희들 특성상 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항상 다니는 길로만 다녀서 그래.”
“항상 다니는 길이니 너희들은 안보고도 다니겠지 하지만 그 길이 가장 짧은 길은 아니라는 거야 게다가 장애물들로 온 힘을 다 쓸 수도 없잖아.”
“하지만 날개를 접고 나는 것도 나름대로 긴장감 넘치는 일이었어.”
“이렇게 중요한 시합에 내기를 안했네.”
“다음에 내기 걸고 한판 하도록 하자.”
“좋아 그땐 이렇게 어이없이 지지 않을 거야.”
“그래 다음에 보자.”
“잘가.”
고양이
친구들과 저는 고양이를 놀려주고 있었습니다.
전처럼 잠자려는 고양이를 순서대로 옆에서 콕콕 쪼아 깨웠습니다.
더 장난끼 있는 친구들은 털을 뽑아와서 누가 더 많이 뽑았는지 자랑하였습니다.
고양이도 귀찮은지 외진 곳으로 사라졌고 우리들도 날이 저물어가서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둥지로 가려고 모두 날아오를 때 저만 발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발이 실에 묶여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부리로 계속 쪼고 뜯고 발버둥을 쳐봤지만 억세고 가늘어 풀리지 않았습니다.
계속 풀려고 할수록 조여왔습니다.
친구들도 도와주려고 하였지만 제 발을 쪼아대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달빛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무렵 먼 곳에서 시퍼런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제 몸은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고 제발 내게 오는 것이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가올수록 대상이 선명해졌습니다.
“네 놈이로구나.” “그동안 날 놀리느라 재미있었지.”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구나.”
서서히 나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소리없이 주위 모든 것이 조용했습니다.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내가 왜 낮에 잠만 자려고 하는지 알아?”
“...”
“난 밤에 사냥을 하기 때문이지.”
고양이 눈이 빛났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건 너희들 비둘기야.”
“잠자고 있는 녀석들, 잡기가 아주 쉽거든.”
가까이 올수록 저는 더욱 발버둥 쳤습니다. 실이 발가락을 파고 들어가 피가 났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고양이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저의 목을 물으려 할 때 저는 온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툭
나뭇가지가 부러졌습니다.
전 발에 실이 묶인 채로 그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도움
발가락의 실은 계속 저의 발을 파고들었습니다. 잘 걷지도 양발로 서있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나뭇가지 같은 곳에는 앉지도 못했습니다. 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그것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함께 했던 친구들이 저를 피하더니 이젠 제가 친구들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날지 못할 때도 너희는 그랬지.’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을 때 두 발로 서있기가 어려워 비둘기들 사이에서 밀려 튕겨나가기도 하였고 모두들 제 발을 보며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울쩍한 마음이 들때 전 하늘 위로 날았습니다.
발이 조금 불편했지만 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얘!” “어디가니?”
“...”
“이젠 내 마음 알겠지?”
“뭐라고?”
“너하고 친구들이 내 털색깔가지고 놀려댄 것 기억안나?”
뾰족탑을 같이 다녀온 후 흰비둘기와 함께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흰비둘기를 놀릴 때 그냥 함께 있긴 했었는데
그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정말 기억이 안났습니다.
“내가 그랬나?” “그렇다면 미안해.”
“그렇다면은 뭐니? 정말 기억이 안나?”
“미안해 그땐 정말 미안했어 사과할게.”
“그건 그렇고 실은 언제까지 매달고 다닐거야?”
“나도 풀고 싶어 이대로 있다간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거야 네가 좀 도와줄 수 있어?”
“나는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분을 알고 있지.”
“누군데?”
“알고 싶으면 내일 낮에 광장으로 나와보면 알 수 있어.”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전 광장 바닥에 햇빛을 쬐고 있었습니다.
흰비둘기가 다가왔습니다. 함께 있다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흰비둘기가 말했습니다.
“저기 가자.”
저는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배도 좀 고파 따라갔습니다.
이번에도 먹이를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비둘기들이 잔뜩 몰려들어 거의 외발로 서있어야 하는 저로서는 먹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들어갔다 튕기기를 몇 번
‘으악’
숨이 꽉 막혔습니다. 도망은 커녕 강한 힘에 날개를 펼 수 조차 없었습니다.
거꾸로 들어올려졌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난 이제 어떻게 되지.’
‘괜히 흰비둘기 말만 들었다 이게 뭐야.’
흰비둘기가 보였습니다.
제게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너무 놀라고 당황되어 들리진 않았지만 그 표정에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분’
싹둑싹둑
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발을 조이던 실이 하나씩 풀리자 살 것 같았습니다.
어떤 실은 살 깊이 박혀 있어 떨어질 때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제 발을 감고 있던 실들이 모두 풀렸고 제 상처난 발에 어떤 물방울이 닿았습니다.
‘앗 쓰라려’
저도 모르게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댔고 느스해진 틈을 타 후다닥 그곳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재회
발이 모두 나았습니다.
상처가 아문 후 발은 더 튼튼해졌습니다.
흰비둘기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못했던 고양이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전 다시 동생을 찾아 북쪽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검둥이 녀석을 만나 경주를 하곤하였습니다.
검둥이에게도 동생이야기를 하였고 검둥이는 동생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빠른 비둘기가 있다는 얘기는 해 주었습니다.
전 동생도 찾긴 해야하지만 그 굉장히 빠르다는 그 비둘기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큰 동물들이 오가는 큰 굴이 있는 밑에 동네에 그녀석이 있어 개천 다리에 있으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저는 다리 밑에서 붕어와 피라미가 헤어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쌩 비둘기 한 마리가 다리 밑을 지나갔습니다. 저는 뒤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따라갔습니다.
검둥이가 말한 대로 정말 빨랐습니다. 가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날아갔습니다. 높이 솟구쳐 올라가기도 하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따라가기가 벅찼습니다.
잠시 후 앉아서 쉬는 것을 본 저는 바로 옆에 다가 앉았습니다.
“네가 여기서 가장 빠르다며?”
“응.” “그런데 너도 느린진 않은 것 같던데.”
“내가 따라오는 걸 봤어?”
“봤지 죽기 살기로 따라와서 따돌릴려고 했는데 못했네.”
“왜 따돌리려고 했어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난 친구따위 필요없어.” “난 혼자 이렇게 마음대로 나는 것이 좋아.”
“그래도 친구들하고 넓은 광장을 함께 날고 장난도 하고 먹을 것도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은데.”
“난 그런거 필요없다니까!” “당장 가던 길 가지.”
“응 그래 알았어. 그럼 혹시 이런 애 알아?”
전 동생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지만 너무 오랜 일이라 생김새도 많이 달라져 만나도 알아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서려는 때
“그 애가 나라면 어쩔래?”
“뭐, 뭐라고?” 전 떨렸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생이 이렇게 내 앞에 있는데 현재 모습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인 것이었습니다.
“난 그 날 이후 밀어 떨어뜨린 형을 매일 저주 하며 하루하루 구차하게 살아왔어. 내가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데 찾아와 주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며 말이야.”
“그런데 이제와서 날 찾았다고 좋겠네.” “날 봐, 내가 지금 기분이 좋아보여?”
“당장 내 앞에서 사라져.”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절실할 때 형은 어디에 있었냔 말이야!”
“난 살기 위해 날아야 했어, 날지 못하면 죽어야 했으니까.” “빨리 날지 못하면 먹을 수 없었고, 오래 날아 여기저기 기웃거려야 그나마 부스러기라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고는 먼 곳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저는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만나고 싶은 동생이었는데 동생은 절 보고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때 일은 실수였는데 오해하고 있는 동생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전 아무 생각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무엇을 봤는지 전혀 기억에 없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동생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날도 동생이 자주 다니는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저를 봐도 아는 척하지 않고 그냥 가곤 하였습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인상을 찌푸리곤 했는데 모르는척 하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때 어디서 많이 보던 고양이 한 마리를 봤습니다. 다행히도 저를 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전에 많이 골려먹었고 한번은 잡아먹힐 뻔한 그 도둑 고양이였습니다.
‘저 녀석이 아직 살아있었네.’
날이 저물 무렵 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제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 고양이 모습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전 동생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어디 사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검둥이를 찾을 수도 없고 검둥이도 동생이 어디 자주 다니는지 정도만 알 수 정도입니다.
전 하는 수 없이 고양이 냄새를 쫓기로 하였습니다. 다리 밑으로 지나간 고양이 흔적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고양이는 다른 다리 밑에서 위를 올려보고 있었습니다. 비둘기들이 모여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무거워져서 사냥은 못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만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양이는 그곳을 떠나 외진 곳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전 이 고양이에 대해 동생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내일 하루 종일 다니면 적어도 자는 곳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다닐 것이 아니라 몰래 따라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동생에게서 겨우 보일만큼 거리를 두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날도 동생을 쫒는 것은 버거웠지만 놓치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동생이 다리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비둘기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전 그의 밤을 지켰습니다.
바스락 소리가 났습니다. 선잠을 자고 있던 제가 눈을 뜨고 보자 전에 봤던 푸른 빛이 다가왔습니다. 고양이였습니다. 저는 빨리 동생을 깨워야 했습니다. 소리를 치며 동생에게 다가갔습니다. 동생이 잠에서 깨어 날 바라보고 있을 때 고양이는 재빨리 동생을 낚아챘습니다. 동생이 낭떠러지로 떨어질 때의 눈빛으로 절 바라봅니다.
온몸이 얼어붙고 소리조차 낼 수 없었지만 동생을 찾기 위해 무슨 수를 써야했습니다.
무서움을 떨쳐버리고 고양이에게 돌진하였습니다. 머리를 쪼고 꼬리를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다른 비둘기들은 그 소리에 놀라 우왕좌왕하였고 그곳은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전 고양이가 싫어하는 걸 잘 아는 터라 몸통에 앉아 부리로 털을 뽑아냈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앞발에 맞아 저는 나뒹굴었습니다. 정신을 못차리고 엎어져 있을 때 고양이가 날 알아채고는 수풀 속으로 물고 들어갔습니다.
“너였구나, 너 때문에 거기서 비둘기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는데 여기서 널 잡게 될 줄이야.” “흐흐.”
앞발로 절 누르고 날카로운 이가 번뜩였습니다.
퍽
귀청을 찢는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옹.”
고양이가 곤두박질쳤습니다.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사랑
저는 새장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고양이로부터 입은 상처 때문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팠습니다.
동생도 옆에 있었습니다. 물린 상처가 꽤 깊은 것 같습니다. 몸 여기저기 털이 뜯기고 파인 흔적이 보였습니다.
동생이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았습니다. 저도 동생을 보았습니다.
우린 아무 말없이 서로 안았습니다. 따뜻하였습니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하였습니다.
문이 열리고
다시 저는 큰 힘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있는 힘껏 발버둥쳤지만 동생은 그리 놀란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에게 가려고 저는 있는 힘껏 닥치는 대로 쪼아댔습니다.
제가 부리로 쪼은 곳은 패이고 뜯기고 심지어는 핏방울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기를 잠깐 보드랍고 따뜻한 무언가가 제 볼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촉촉하고 뜨거운 눈물방울이 제 볼을 타고 흐를 때 전 잠잠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이 놀랐지, 전에 발을 다쳤을 때처럼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놓아 줄 수가 없구나 넌 지금 너무 많이 다쳤어.”
“조금만 참아 그러면 예전처럼 하늘을 날 수 있게 해 줄게.”
전 어찌할 줄은 몰랐지만 흰 비둘기가 알려 준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가 사고에서 다친 동생을 낳게 해주신 분이 이분이라는 것과 우리뿐 아니라 다른 비둘기들을 돌봐주시는 좋은 분이라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 흘러 저와 동생은 다시 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새장 문이 열리고 저와 동생은 도움을 받아 하늘로 높이 던져졌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한바퀴 크게 돌고 남쪽을 향했습니다.
흰비둘기도 어느 새 우리와 함께 하였습니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았고 따뜻한 햇살이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