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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중농담
part.5 가족사
by. 손톱독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어둠에 잠겨있었다. ‘영원히’라는 꿈같은 상상은 추호도 한 적이 없다.
잔잔하지 않은 관계는 미친듯이 불타오르고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나는 충분히 나의 미숙함을 알았고.
어쩌면 이상한 이 관계가 끝날 거라는 것 정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끝’이 언제인지에 대해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시간은-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되돌리는 것도. 계속하는 것도. 끝내버리는 것도 모두 내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승현이가….]
내 멍한 대답에 진성이가 오히려 더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해?]
가만히 진성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타들어간 담뱃재가 불씨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위로 뚝 떨어졌다.
그에 정신을 차린 듯 진성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들이마신 숨이 아주 깊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녀석 집에서 쫓겨난 것도 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성이는 말을 하고 나서 잘못 말했네, 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차, 하는 망설임이 일순간 스쳐지나갔다. 나는 무릎에 두 손을 대고 깍지를 꼈다. 벌써 바깥은 어둑어둑하다.
진성이가 무슨 얘길 하려는지 알 것만 같아서 낮게 뻗어 나오는 숨소리를 죽였다.
내 표정에 성이가 등을 탁탁 두드리면서 이거 왜이래 긴장 풀어 새꺄, 웃는다.
[승현이한테, 물어본 적 없냐?]
[어.]
[무심한 새끼.]
[미안하다.]
실은, 지금도 네 말을 듣지 말걸. 하고 후회하고 있어.
승현은 내게 있어 ‘비현실’ 그 자체 였다. 남들이 소설을 읽듯, 게임을 하듯 내게는 승현이 그런 존재다.
인간도 안 되는 가치냐고 묻는다면 부정할 순 있다. 남들도,
소설에 게임에 미친듯이 빠져드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 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굉장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게임은 게임이고 허구는 허구다. 승현도, 한 번도 그런 말 한적 없어.
그가 그렇다는 건 내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거다. 그가 나와 같은 감정이든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
내겐 아무 상관없다. 모르면 모르는 체 눈감는 거다.
[뭐, 녀석도 생각이 있으니까 말 안했겠지.]
성이가 시원스레 말했다. 하지만 목에 뭔가 걸린 느낌이다.
[너 말이다, 냉정한 인간이야.]
미묘하게 바뀐 말투는 원래의 성이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성이는 내 친구이기 이전에 승현의 친구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사이에 놓인 까슬한 벽이.
그게 또 내가 도망갈 길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쓸데없는 부분에서 약해빠졌지.]
원망하는 듯한 말투라서 깜짝 놀랐다. 그러나 성이의 손이 내 어깨에 가서 닿자.
아, 걱정해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의미로 가슴이 싸해졌다. 성이와 승현이 사이의 이질감은 이거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김승현 옆에, 있어주라. 어렵겠지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가장 중요한 곳에서 잇닿아 있지 않다.
어렸다고, 승현과 성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죄책감 때문이라고 수없이 많은 변명들을 덕지덕지 붙인다.
다급한 마음에 손을 놀리며 변명들을 채운다. 하늘을 채울 듯이,
그러나 그 조차 찰나의 시간이라 돌아오는 씁쓸한 웃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성이가 그랬어?]
승현이 평소처럼 웃으면서 외투를 벗었다. 전혀 아무렇지 않은 말투에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승현이 한 마디를 덧붙였을 때야, 나는 뒷덜미가 오싹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 화가 나있는 것이다. 결코 본적 없는 모습인데도, 표정은 언제나와 똑같은데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에겐지 성이에겐 지는 몰라도 화가난거다.
[…왜 화를 내.]
[화 낸 적 없어.]
[지금 화내고 있잖아.]
이렇게 말꼬리를 잡는 유치한 말장난도, 그는 즐겨하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에 혼란이 더해졌다. 여긴 ‘비현실’이다. 한창 게임에 몰두하다 철이 든 아이 처럼.
그러나 그 것 보다 훨씬 요란하게- 경보가 울렸다. 발을 잘 못 들여놓은 거야.
[다른 생각하지마, 박민재. 집이 답답해서 그랬어.]
그리고 미안. 하고 사과를 했다. 얼어붙은 내 머리를 토닥거리면서 승현은 완벽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나와 집안의 사정이야. 넌 상관없어.]
어쩌면 우리가 연인이었다면.
호모라고 해도 어찌됐든 연인이었다면.
지금 네 말들은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이 꽂히고 나는 아파서 울었겠지만.
나는 엄청난 안도감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상관없는 그의 사정에, 의도잖게 말려버렸다. 이렇게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리고 또 다시 그의 능력을 실감해버렸다.
완벽한 배수진. 앞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간 취직을 위해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내가 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진 세현의 옆에 붙어서 얌전히 집이나 지켜야했다.
불행 중 다행인건 최근엔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거다. 또 한 번 시끄럽게 굴면 내 쫓아버린다는 집주인의 말에
나름대로 전전긍긍하면서 녀석의 비위를 살폈다.
그렇다고 애교 떨기에는 기술도 부족하고 나이도 너무 들었다.
나이 얘길 할 때마다, 엄청나게 씁쓸한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안녕하세요. 박민재입니다.”
청년 실업자들이 넘치고 넘치는 요즘인데, 아주 운 좋게도 일자리는 쉽게 들어왔다.
놀란 건 그 일자리가 규진을 통해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김세현을 통해서 연결된 자리라는 거다.
그 녀석 성격상 인간관계가 넓을 리는 결코 없으니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도 성질만 바락바락 낸다.
“오늘, 면접 보러 왔는데요.”
좋은 표정은 아니다.
내 어느 곳에도 상대의 맘에 들 만한 곳은 없다. 파릇파릇한 열정으로 승부하는 새내기도 아니고,
시들시들한 노총각이 굴러들어왔다고 생각하겠지.
“네. 반갑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하고는 남자는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면접관은 그 남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리에 앉았다. 몇 년 만에 입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색한 양복위로 손을 올렸다.
며칠 전, 규진이 말한 대로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규진과 전화통화를 한지 정확히 일주일 후였다. 그녀는 몇 년이고 이 집을 들락거린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누구세요.”
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말이야,
승현 형 어머니께서…세현이 형 찾으시는 것 같더라.
걷다가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발밑을 내려다 봤을 때 사라진 그림자다.
내 머리 위를 넘어서 길게 그어져야할 그림자가 온데간데없고, 발밑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을 때 나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내 중심에는 내 뒤에는 내가 서있어야 하는데 나는 없다. 발밑을 내려다보면,
역시나-
그 녀석이 있다.
정말 그녀는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그 때와 변함이 없이. 그녀는 언제나 한결같다면 한결같은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좋아 보이시네요.”
“넌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네.
형식적인 차례가 지나가고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세현이 돌려줘야겠다.”
돌려달라니, 이제껏 가진 적도 없으면서. 그러나 나또한 녀석을 가진 적은 없다.
“내 아들이야.”
옛날부터 그랬지만 참 뜬금없는 분이다. 이렇게 갑자기. 웃었다. 내게서 뭘 가져가려는 거예요.
나는 한 눈에 간파해냈다. 사람은 아주 독특한 생물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어렵다.
참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이건 별로 좋은 예가 아니었나.
어쨌든 사람의 집착이 머무는 곳은 어디든지 미묘하게 뒤틀려있어 손쓸 새도 없이 먹혀버린다. 기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이다.
“…아들 받으시러 오셨나요, 세현일 받으시러 오신 건가요?”
실은 그다지 여유만만하지 않다. 나는 그녀 앞에서 죄인이 아닌 죄인이다.
내 건방진 물음에 그녀가 웃는다. 그 웃음 속에는 위협이 담겨있다. 네가 잘도 그런 말을 지껄이는 구나.
나는 그녀가 부럽다.
“둘 다 같은 사람이야.”
“승현이는 죽었어요.”
내가 그 말을 입 밖에 낸 순간 사방이 가시 돋친 숲으로 탈바꿈한다.
푹푹 찔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승현이가 아니라 세현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저토록 태연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 하지만 그녀도 가시 돋친 숲에 들어 와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그녀가 어째서 7년이나 내버려둔 자신의 쓸모없는 아들을 되찾으려는 건지 알고 있다.
그녀의 입버릇조차 똑똑히 기억한다. 내 아들은 승현이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또 다시 빼앗고 싶은 것이다.
그 때 빼앗아 가지 못한 이승현을 다시금.
“세현이는, 승현이가 아닙니다.”
“그래. 승현이는 네 말대로 죽었으니까.”
“데려가 봤자 승현이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말하고 나서 나도 세현이의 웃음처럼 쓰게 웃었을 것이다. 이게, 내 7년 동안의 결론.
그 시간과 아픔을 모두 소비해 얻은 단 하나의 의미 없는 진리.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해. 나는 그 애에게서 승현이를 찾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누구처럼.”
“그럼 어째서 갑자기 저를 찾아오셨죠?”
“내가 데려가려는 건, 그 애에게서 남은 승현이가 아니야. 너에게 남은 승현이지.”
그녀가 엄마처럼 푸근하게 웃었다. 그녀의 말투는 생각보다 상냥하고 사근사근하다.
그 안에 숨겨진 유리조각이 다 비쳐도 깜빡 속을 만큼.
“그 애는 당연히 승현이가 아니지만, 넌 그 애를 통해서 승현이를 보고 있지?”
“전….”
“알아. 네가 하고 있는 짓은 완전히 엉터리지. 옛날처럼.”
“…….”
갑자기 그녀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떻게든, 너에게서 승현이를 뿌리 채 뽑아낼 거야.”
아주 그녀다운 말이어서, 나는 웃었다. 그녀야 말로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그녀는 이 7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와 세현이를 보지 않았음에도.
이곳에도 여전히 김승현은 존재한다. 그녀와 나 사이, 나와 세현이 사이, 그녀와 세현이 사이. 그리고 숨겨진 관계.
발걸음을 내 딛는 곳마다 김승현이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김승현이 과거에만 존재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자기 말을 마치고 사라져버렸다. 저런 점은 승현이와 똑같다고 생각해버렸다.
“김승현.”
순진한 척 모두를 기만했다고 생각했다. 일말의 죄책감을 눌러 삼키고 승현의 곁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게 산산 조각났을 때 난 무슨 생각을 했었지.
“지독한 놈.”
하나하나 꿰어지는 과거의 흔적들은, 모두다 그 녀석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녀석의 어머니도 세현도 나도 진성도 규진도 그 모두가 너의 것이었어.
결국에,
네가 사라진 지금도 네 그림자만을 밟고 걸어간다.
일어서는 그녀의 뒤에서 말했다. 고개를 손안에 파묻은 채로. 머리가 아팠다.
“승현이 어머님”
“어떻게 김승현 같은 자식을 낳으셨어요?”
복도 지지리도 없지, 말하고선 웃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오점이야.”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달칵거리는 문소리가 내 회상을 깨뜨렸다. 역시 우리 집 문이랑은 소리부터 다르구나.
머릿속은 허튼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제대로 얼굴을 보지 않았다. 스쳐지나가듯 마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흔하게 생긴 얼굴인가, 고개를 숙이면서 악수를 했다. 아까 했던 그 말을 앵무새처럼 또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박민재입니다.”
자잘한 상처가 많은 손이었다. 그 손의 주인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진성입니다.”
Talk:D
.....털썩. 우리 세현이 좀 살려주세요!!
세현이는 이대로 사라져 가는건가요.
아무튼 소설이 갈길을 잊어버리고 발광하는 군요.
비축분이 떨어진 관계로 다음편은 언제 나올지 미궁속으로 스스슥
첫댓글 잘봣슴니댜@@@@ 흐흫흐 지금승현이얘기로 세현이가잊쳐젓네욤 그래두 어서 빨리 또 수위가높은장명들이나왓으면조켓습니댜1
제가 미궁속에서 쏙 빼드릴께요 ㅋㅋ
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