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저편
이봉기
한 겨울인데도 날씨가 이상 기온으로 유난히 포근하다.
막내아들이 육군 사관학교에서 기초 군사훈련에 임해야 되니
이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입교 하루
전날 육사 근처에서 방을 얻어 하룻밤을 지내게 되자
오랜만에 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나를 졸졸 따라 다녔던 아이,
나는 아들에게 팔베개도 해 주고 밤늦도록 지난 옛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막내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막내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나는 대수술을 받았고, 몇 달
동안을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로 인해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참석 못해 늘 마음이
아팠었다. 유치원 앨범 사진을 찍을 때는 나의 친한 친구가
일일 엄마노릇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은 외할머니가
참석했고, 그날 막내는 하루종일 밥도 굶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없던 빈자리를 막내는 어떤
마음으로 채웠을까? 폭풍우가 지난 후 태양은 더욱
찬란하듯이 나의 마지막 퇴원후, 우리 가족의 기쁨과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육사에 가입교 시켰지만 막 젖을 뗀 강아지를
떼어놓는 것 같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방금
헤어졌지만 아들이 보고 싶어졌다. 요즈음 고생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군인의 길을 선뜻 선택한 아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자고 나면 아침에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본다. 그렇게도
포근했던 날씨가 영하 10도로 떨어지며 많은 눈이 내렸다.
두꺼운 외투를 입어도 추운 날씨다. 생도 생활에 초석이자
시금석이 될 기초 군사훈련은 혹독한 훈련이 따른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팬티만 입고 얼음 물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하얀 눈이 쌓인 눈 위에서 포복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들을 생각하니 안쓰럽고 걱정이 되었다. 전화 한 통화 할
수 없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기초 군사훈련은 무척 힘들고 고달프겠지만 모든 기합이나
훈련이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대처 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기르는 과정이니 참고 견뎌야 한다. 나는 너의 명석한
두뇌와 강인한 의지를 믿고 있다.”
라고 적으며 헤어짐이 길었던 만큼 만남은 더욱 뜨거워 질
것이라 믿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답장이 왔고, 아들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겉봉을 급히 뜯었다.
“평생 부모 밑에서 보호받는 자녀보다는 자기일 에 책임을
지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자녀를 부모님께서는 바라실
것입니다.” 라는 대목에서는 기특하게 생각되었고 “군가를
부를 때 어머니란 단어만 나와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라는 대목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나의 볼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흔히 세월은 빠르다고 말들 하지만 시간은 왜그리 더디
가는지. 아들과 만날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는 것이 무척이나
지루했다.
해어진 지 7주가 되는 날, 입학식에 참석하라는 안내문을
받았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에 때때옷 준비해 놓고 명절날을
기다린 것과 같이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입학식날 아침 새벽바람을 가르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들과의 만남을 상상하며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띄워 본다.
아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그
이상만큼이나 잔잔한 떨림이 있었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변해 있을까?”
귀여운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입학식이 시작되고 넓은 잔디밭이 융단처럼 깔려 있는 화랑
연병장에 멋진 예복을 차려입은 생도들이 입장했다.
생도들의 퍼레이드는 가히 장관을 이루었고, 그 기상과
패기에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사열대가 본부석을
지날 때 한시라도 빨리 보고픈 마음에서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았으나 생도들 속에서 아들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아들과의 상면이 있겠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국기 게양대 밑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정복으로
갈아입고 오는 10분의 시간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2학년 기수 생도를 선두로 1학년 생도들이 도착하자, 그리던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씩씩함 외침들, 절도 있는 몸동작,
전혀 다른 아들의 모습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함이 있었다.
육사 입교했을 때부터 다짐했던 꿈과 열정을 가지고 조금의
후회도 없이 그곳 화랑 대 에서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길 바랄 뿐이다. 4년후 육사기념관
외벽의 58기에는 아들의 이름이 새겨질 것을 생각하니
자랑스럽고 가슴이 뿌듯해졌다. 맥아더 장군 어머니의 아들을
위한 기도문이 생각났다.
“위대한 은 소박한데 있고, 참된 은 너그러움에 있다.”
라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정진해 나갈 것을 바라며 나는 항상
아들을 위해 기도하련다.
1998.
첫댓글 위대한 은 소박한데 있고, 참된 은 너그러움에 있다.”
라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정진해 나갈 것을 바라며 나는 항상
아들을 위해 기도하련다.
“위대한 은 소박한데 있고, 참된 은 너그러움에 있다.”라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정진해 나갈 것을 바라며 나는 항상 아들을 위해 기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