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되어 있는데..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진정하고 치열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경외하는 것도,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되는 것도, 의롭게 되는 것도, 거룩하게 되는 것도, 경건하게 되는 것도, 영적으로 되는 것도, 진리 안에 거하는 것도 하나같이 모두 말씀, 말씀의 신앙과 직결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코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의와 거룩과 경건과 영과 진리 등의 근본이시고 핵심이시며 실체이시고 시작이시며 어떤 면에서는 전부라 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이신 분이기 때문인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오직 말씀만이 절대 의이자 거룩이며 경건이고 영이며 진리이고 하나님의 법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또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게다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으로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모든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실제와 경험들, 누림과 성취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인 것이고 애초에 그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하신 현실적인 힘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믿으며 행하고 누리며 증거할 수 있고 이뤄지게 하시는 경험적인 힘이신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래 본문 말씀의 후반 부문에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들을 아무리 사모하고 또 사모하며, 가까이하고 또 가까이하며, 전적으로 결단하고 몸부림친다고 한들 결코 과하거나 조금이라도 지나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렇게 그대로 하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최우선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 더, 진정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좋고 유익하며 복되고 강렬해 진다고 볼 수 있고, 실제로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생생하고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이 됨으로 인해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이 차고 넘치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백성된 자라면 그 누구든지 간에 그 있는 자리에서 단순히 말씀을 주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면서 읽고 들으며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생각 이상으로 놀라운 은혜들이 함께 한다고 볼 수 있고, 사실상 그렇게 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함이 크고 작은 모든 은혜와 능력들, 복과 역사들의 기반과 시작과 실제와 예비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손해보고 핍박당하며 위기가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면서 말씀을 실천하고 증거할 수 있을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장성하고 견고하며 복되고 강력한 믿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예배의 자리는, 다시 말해 잘 통찰해 보면 그 하나 하나가 본질적으로는 모두 다 다양한 방법의 말씀이거나 말씀의 신앙일 수 있게 하는 구성이 아닐 수 없는 설교와 교독과 기도와 찬미와 헌신과 교제 등의 순서와 함께 다양한 은사와 위치와 직분과 헌신의 사람들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전심으로 어우러져 나아가는 예배의 자리야 말로 최고의 말씀의 자리, 가장 복합적이고 집중적이며 헌신적이고 신실한 말씀의 자리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참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역사와 복들이 그 보다 더한 곳들이나 시도들은 있기 힘들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절실하고 치열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는 것 자체부터가 결코 사람의 힘이나 세상적 능력으로는 원론적인 면에 있어서는 불가인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 백성들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진정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고 하더라도 단 사람도 빠짐없이 반드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연약과 한계들, 문제와 위기들 등과 싸워야 하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제대로 나아가고 또 나아감과 함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그와 함께 말씀이신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에 온전하게 되고 합당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6:4~9)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8월 22일(목)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