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을 어어쿠; 폭스 시사실에서 관람했네요.
이렇게 좋은 기회 만들어 주신 익스트림 무비에 감사드립니다 :-)
사실 저는 링컨을 잘 모릅니다.
그냥 좀 못생긴 바람에 턱수염을 기를 것을 권유받은 빼빼마른 장신이고
노예해방에 기여했으며 극장에서 총에 맞아 숨진 비극의 대통령이란 거죠.
그래서 스필버그가 링컨을 만든단 소식을 들었을 때 좀 서운하기도 했어요.
스필버그를 사랑하는 저는 그가 만든 끝내주는 쾌락적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거든요.
엎어진 것 같단 소문이 도는 로보포칼립스와 동시에 제작이야기가 들리긴 했지만
어쨋든 그가 링컨을 만들며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낼테니 조바심이 난 거였죠.
뭐랄까요... 기우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링컨은 재선에 성공하고 재임기간이 시작하기 전에 수정헌법 13조를 하원에서
통과시켜 헌법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시켜 버리길 원합니다. 이미 링컨의 비젼에
동의하지 못한 남부는 연방을 탈퇴해 내전을 일으키고 있었고 전쟁이 길어지며
두 진영 모두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죠. 링컨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으며 남부의 반발감이 집중력을 잃은 지금이 수정헌법을
통과시킬 최적의 순간이란 걸 파악하고 밀어붙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을 끝내려는 움직임이 자신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단 현실에
직면하게 되죠.
네, 이건 본격 정치 드라마입니다.
나오는 무게감있는 실존인물만 해도 한트럭은 되죠.
영화는 오로지 수정헌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표결 직전의 몇 일만을 다루며
가장 치밀하던 그 순간의 링컨과 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합니다.
으악 저는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걸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영화는 예민한 정치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재미있게
말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스필버그의 손길을 거쳤으니까요.
(원작을 안 읽어보았기 때문에 애매하긴 하지만. )
링컨은 링컨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겪는 주변인들과의 에피소드에
계속해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던 국회의 모습,
그리고 필요한 표를 얻기 위해 민주당원을 매수하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렇게 세가지 이야기를 엮어서 영화적 재미를 더해줍니다.
특히 지금의 기준으론 뜨악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상대진영의 표를
매수하는 이야기나 국회에서 노골적으로 언쟁하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어요.
링컨이 나오는 장면이 무겁고 메세지를 만드는데 치중한다면 이런 시퀸스들은
가볍게 상황이나 연기를 즐길 수 있는, 이 영화의 쉼표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의 두 가지 장점 중 하나는 감독이 스필버그라는 것이죠.
아직까지 헐리웃에서 파워가 쎈 이 사람은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배역을
좋은 배우로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업영화감독입니다. 멋진 배우들이 아주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와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데
각자의 실존인물에 영화적 비중을 둬서 주의가 분산되는 걸 막는 대신에
그 사람들이 활약해야 하는 순간에는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이런식으로 영화를 찍고 싶겠지만 그 어느 배우가
그냥 그런 감독 영화의 딱 한 장면을 위해 스케쥴을 비우겠어요?
스필버그니까 가능한 일이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스필버그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아주 잘 다루는 감독입니다.
여러 차례 언급되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결과를 가진,
상업영화적으로 헛점이 아주 커다란 시퀸스입니다만 스필버그는 이 역사적 순간을
무게감과 동시에 스릴있게 관객들이 봐주길 원했던 거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내용의 장면이지만 연출과 연기, 그리고 영화 내내
쌓아올린 긴장감이 응집하면서 꽤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클라이막스를 만들어 냈어요.
이 건 정말 연출의 힘이죠.
그리고 마지막, 두 번 째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장점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입니다.
실존인물이라는 부담감, 그리고 링컨에 대한 확실한 인상이 없기에 배역을 여러차례
거절했다는 그는 정작 영화에선 정말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링컨을 보여줍니다.
사소한 말투부터 걸음걸이, 아주 작은 뉘앙스까지 이건 짧은 시간 집중해서 만들어낸
모조의 연기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한 때를 보는 기분이에요.
그를 둘러싼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순간을 가지고 있고 그 순간을 아주 잘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링컨과 같이 나오는 장면에선 링컨밖에 안 보이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신기하거든요. 영화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준다는 것은 분명
치명적인 단점이겠지만 그를 캐스팅한 건 그야말로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미국에서는 링컨과 스필버그의 만남이 시너지를 이뤄서 흥행에 성공을 했습니다만
이런 노골적인 정치 드라마가 한국에서 흥행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재미가 있는 좋은 상업영화입니다만 레 미제라블같은 애틋한 낭만과 웅장함도
7번방의 기적같은 신파적 순간도 없으니까요. 이게 단점은 아니지만 관객을 극장까지
가게 만드는 것도 영화의 중요한 흥행요소라고 봅니다. 분노의 윤리학이 흥행하고
라스트 스탠딩이 참패한 것 처럼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자칭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봐주었음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요즘 한국에도 표창원, 안철수 처럼 부끄럽지 않은 보수가 이슈이긴 하죠.
'지키는 것'자체가 보수는 아닐 겁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부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보수우파의 행동엔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근래의 정치판도를 억지로 끌어와 영화 감상에 섞는 건 현명한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수주의자 링컨에게 멋있다. 란 말을 하면서 드는 저 생각을
버릴 수는 없네요. 근현대사의 멋진 보수 정치인. 우리에겐 누가 있을까요?
이 바람이 불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실내 장면에서의 촬영은 정말 끝내주더군요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나와도 죽지 않은 유일한 토미 리 존스의 캐릭터도
굉장히 좋습니다. 그의 남우조연상 수상 실패가 아쉽네요.
첫댓글 개봉하면 달려가야겠군요 ! 루즈벨트도 영화로 나오면 재밌을텐데 말이죠
네 괜찮더군요. 아마 빨리 내리지 않을까 싶어요 올라가자마자 보세요 ㅎ
저도 스필버그사랑해요ㅜㅜ. 저번에 시지브이 해피뉴무비 특별하게 선개봉했는데 우디앨런 작품과 스필버그가 제일 빨리 매진 ㅜㅜ 그나마 우디앨런은 구해서 로마위드러브 봤어요, 로마도 재밌어요보세요. 링컨,,, 전 압구정 시지브이에 삼월초에 편성표있어서 가서 볼거예요 ㅎㅎ
우디 앨런 옹은 뉴욕시절 영화를 거의 안 봤는데 이번 유럽 투어 영화는 정말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
오 영화를 보고싶게 만드는 후기네요! 잘읽었어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영화 개봉하면 꼭 봐야겠어요~!!
에구 좋은글이라니요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전 예고도 안 봤는데 어떻게 나왔었을지 궁금하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인간적인 면이 참 많이 나오는데 인간적으로도 굉장히 호감이 가게 만들어놨습니다. 특히 말투 대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