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
창근은 꿈속에서 앞동산을 거닐고 있었다.
며칠 전 소나무 밑에 무엇을 묻어 두었는데,
그것이 무엇이었으며, 어디쯤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힘을 다하여 그 무엇을 찾고 또 찾았다.
어느새,
삼례 댁도 합세하여 여기저기를 뒤지며
온 동산을 오락가락하였다.
결국,
삼례 댁은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소나무 아래 무성한 억새풀 위에 엎드려 외쳐댔다.
“당신 혼자 찾어 보랑게요. 여기는 없고 하늘나라에 있는 모양인디,
그곳으로 가보랑게요.”
창근은 하늘을 향하여 뛰어보았지만 허사였다.
아내가 신음 하던 중, 앞동산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동산 전체는 갑자기 빠른 회전 속에 몸살을 앓았다.
앞동산을 가득 메워 아름답던 소나무들은 뿌리 채 뽑힌 후,
공중분해 되어 검은 먼지기둥을 일으키며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는 잽싸게 먼지기둥을 부여안고 몸을 맡기며 두 눈을 꼭 감았다.
하늘로 오르던 일은 무시무시하고 가슴 조이는 과정이었다.
두 팔은 벌벌 떨리며 저려오고 머리는 멍멍하여
전신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였다.
저려오던 팔다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왔던 것이다.
두 손을 놓으면 저세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그는 “여보~ 영길이 어매~ 나 좀 살려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고대하던 아내 대신 그의 어머니가 잔뜩 화를 내며 나타났다.
“니 놈은 급헐 때는 마누라만 찾는구나.
내가 니 놈을 낳을 때 죽을 고생 다 혔는디,
이제 와서는 못 본 채 허다니 괘씸헌 놈!
지금도 남의 집에 마실 잠을 재우며 이 고생을 시키면서 무슨 염치로 어미를 모른 척 허는 거여? “
창근은 울며불며 속을 태우며 용서를 빌었다.
“어매! 진짜는 그것이 아니랑게요.
어매는 앞으로 걱정 안 혀도 된당게요.
이 못난 아들 창근이가 토담집을 지었승게 인자 떳떳헌 효자 랑게요.“
먼지기둥 주위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왔다.
어디가 어딘지는 고사하고,
손끝이 얼어붙어 더 이상 먼지기둥을 붙들며 씨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인정사정없이 하늘로 계속 치솟으며 올라갔다.
비바람이 몰아치다 눈보라가 닥쳐왔다.
어떤 때는 주먹만한 우박이 쏟아지며,
그의 온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천지신명께 빌어보고,
곧이어 고향 오봉산 산신령에게도 애원하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이제 그의 기력은 거의 소진되어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긴박한 순간이었다.
두 팔이 힘없이 먼지기둥으로부터 떨어져나가
탄력을 받으며 아래쪽으로 곤두박질쳐졌다.
결국 어떤 이상한 나라에 내동댕이쳐져 의식을 잃었다.
한참 후 정신을 가다듬어 겨우 일어나 앉았다.
영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주 댁이 산발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고 있던 삼베 적삼은 땀에 젖은 채 찢겨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젖가슴이 훤히 보였고,
왼쪽 발은 고무신을 벗은 채였다.
그녀는 취객이 횡설수설하듯 이야기의 중심을 잃고 있었다.
“영길 아빠 !
저는 지금 죽은 남편을 찾아 구천을 헤매다 오는 길이구만요.
그런디 여태 찾을 수 없어서, 인자는 천당을 찾어 가던 길이랑게요.
혹시 거기에 보고싶은 서방님이 살고 있는지 누가 알겄나요?
천당을 찾어 삼만 리 먼 길을 걸어오면서 이렇게 적삼도 찢어지고
고무신도 잃어버렸당게요.
하나님이 살고 계시는 천국이란 곳은 여기서도
십만 리는 더 가야 헌다는디,
인자는 힘이 없어 더 이상은 못 가겠구만요.
가고 싶은 천당도 못가고,
만나고 싶은 지아비도 못 보고 이제 꼼짝헐 수 없으니,
어떻게 허면 좋을까요?
저는 인자 모든 것을 다 잃고 세상을 살아 갈
희망조차도 잃었당게요.“
창근은 그녀를 일으켜 주려고 최선을 다 했으나 헛수고였다.
청주댁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남겨두고 어서 떠나라는 눈짓을 하였다.
창근은 어쩔 수 없이 청주 댁을 포기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앞쪽으로 곧장
걸어가기로 결심을 굳혔다.
이상하게도,
걷는 동안 단 한 사람의 그림자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이 장관을 이루었다.
이따금 처음 보는 들새들이 날아다녔다.
새들의 뾰족한 주둥이에서 시퍼런 바닷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기이하고 무서운 광경은 생전 처음 목격하는 일이었다.
어느새 수천 억 마리의 들새들이 바닷물을 토해내자,
모래사막은 금세 바다로 변해 버렸다.
그는 조그만 통통배를 홀로 타고 기약 없는 표류를 시작했다.
가야할 곳은 어렴풋하게 생각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확실한 방향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삼박사일 동안 죽을 고생을 다 하며 갖가지 추억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고향의 느티나무도 보였고,
절 동네의 담배 밭도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낙수골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과 유쾌하게 장구 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이 나타났다.
범석이가 백운스님을 강제로 끌고 가던 장면은,
눈뜨고는 바라 볼 수 없었다.
비단과 구슬로 만든 족두리를 점잖게 머리에 쓴 아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가 금방 멀어져갔다.
창근은 아내를 쫓아 온 힘을 다하여 뛰어갔으나,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폭풍과 함께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왔다.
창근이 타고 있던 통통배는 순식간에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는 사력을 다하여 헤엄쳐 나아갔다.
그러나 얼마 못가 기진하여 파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하였다.
그 순간,
파도는 그를 어느 이름모를 육지로 떠밀어냈다.
기절상태에서 깨어나 앞을 바라보았다.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모친과 아내가 절구통을 가운데 두고
열심히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호되게 나무랐다.
“여기는 달님나라 인디,
이 먼 곳까지 머 허러 왔냐?
어쩌서 넌 토담집도 다 못 짓고 술만 쳐먹고 싸다니냐?
그는 염치없이 용서를 빌며 저 아래 인간세계를 내려다보았다.
하늘에서도 눈 아래 선명하게 보이는 신기 마을 앞동산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열심히 자신의 토담집을 짓고 있었다.
창근은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꿈에서 깨어났다.
담배에 불을 붙인 후 토담집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달빛은 곤히 잠들고 있던 새로 생긴 토담집을 훤하게 비추었다.
그가 막 방으로 다시 들어가려 할 때,
사립문 앞에 두 사람의 남자가 들이닥쳤다.
자세히 보니,
상일 씨와 구장 익환 씨였다.
상일 씨가 사립문을 들어서며 다급한 숨소리와 함께 말을 꺼냈다.
“큰일 났네!
청주 댁이 쥐약을 먹었나봐.
방바닥에 쥐약 봉지가 널려 있드라고.
자네 리야까 좀 빌리러 왔네.
아직 숨은 쉬고 있다고 허니까,
일단 시내 병원에 데리고 가 봐야겠어.”
창근은 리어카를 끌며 뛰어가다시피 앞장섰다.
어쨌든 청주 댁을 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를 미워했던 지난 날들을 후회했다.
갑자기 그녀에 대한 미움의 고리가 풀리기 시작하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정신없이 앞동산을 넘어갔다.
그들이 청주 댁 방으로 들어서자,
동네 사람들이 같은 내용으로 연거푸 말했다.
“청주 댁 진즉 목숨 끊어졌당게.
숨소리가 안 나고 맥이 뛰지 않더라고.”
그녀의 영혼은 이미 육체와 분리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있었다.
절 동네 시절,
“지구상의 살아 있는 모든 생물체는 결국 끝이 있는 법’이라고
말하던 백운스님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랫목에 반듯하게 누워 있던 청주 댁의 시신은
마치 단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오로지 절대자만을 믿고 따랐던 그녀의 죽은 모습은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평소 온 몸에 환희가 넘치고,
매사를 조급하게 서두르던 고인의 생전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합심하여 고인의 장례 준비에 부산을 떨고 있었다.
살아생전 청주 댁과 함께 하던 모든 삶의 일체는 영원히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그곳이 천국이건 혹은 다른 어느 곳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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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
이런저런 꿈 이야기 ( 15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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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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