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난해 4분기 합계 출산율은 0.65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진 데 대해 영국 BBC가 그 배경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현지시간 27일 BBC는 한국 통계청의 출산율 발표에 맞춰 서울 특파원 발로 '한국 여성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BBC는 "저출산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청년들과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 지난 1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 여성을 인터뷰했다"며 취재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먼저 저출산의 원인으로 '남성육아 분담 부족'이 언급됐습니다. BBC가 만난 TV 프로듀서인 예진(30) 씨는 "한국에서 집안일과 육아를 동등하게 분담할 수 있는 남자를 찾기 힘들다"면서 "혼자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한 평가는 친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예진 씨는 "보통 저녁 8시에 퇴근하거나 야근해서 집에 오면 자기 전까지 집 안을 청소하거나 운동할 시간밖에 없다"며 아이를 키울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힘들게 한다"면서 "월요일에 출근할 힘을 얻기 위해 주말에 가끔 링거를 맞는다"고 전했습니다. 예진 씨는 '여성 경력 단절'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이 있다"면서 "여동생과 뉴스 진행자 2명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봤다"고 했습니다.
어린이 영어학원 강사인 스텔라(39)씨도 '남편이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느냐'는 물음에 "설거지를 시키면 항상 조금씩 빠뜨린다"면서 "의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근무 때문에 육아를 위한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비싼 집값과 과도한 교육비도 문제 삼았습니다. 스텔라 씨는 "일을 포기하고 싶거나 가정과 자기계발을 병행하고 싶어도 집값이 너무 비싸서 그럴 여유가 없다"면서 "서울에서 점점 더 멀리 밀려나고 있지만,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했다"고 토로했습니다.
4세부터 비싼 수업을 받게 하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도 '독톡하다'고 BBC는 평가했습니다. 아이들이 4세부터 수학, 영어, 음악 등의 비싼 수업을 받는데, 이를 거부하면 자녀를 실패하도록 방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BBC는 설명했다. 스텔라씨는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700파운드(약 120만원)까지 쓰는 걸 봤는데 대부분이 감당하기 버거워한다”면서도 “이런 걸 안 하면 아이들이 뒤처진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공부하고 경쟁하느라 지쳤다는 민지(32)씨는 “한국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 정자 기증을 통한 임신이나 동성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점을 모순으로 여긴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양성애자이면서 동성 파트너와 지내는 민성(27)씨는 “가능하면 아이를 10명이라도 갖겠다”고 했습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습니다.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입니다. 사상 첫 0.6명대 분기 출산율입니다. BBC는 “인구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합계출산율은 2.1명”이라며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100년에는 한국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이어 BBC는 윤 대통령이 저출산을 구조적 문제로 다루겠다고 밝혔지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