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혼자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형벌을 받고 사는것과 같다.
무지한 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지성과 양심을 갖춘 사람은 늘 소수이고 늘 코너에 몰리게 되어있다.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한 영화다.
저 깊숙한 내면을 끄집어내는 힘. 음악이 절제되어 배우의 표정 하나하나 풀잎 소리 하나하나 날 것 그대로 밀려오고,
두 시간 동안 묵직하게 눌려오던 슬픔이 마지막 아네스의 노래가 나올때 기어이 터져버린다.
‘시’에서 그녀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다. 어찌 보면 제 3자의 입장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행태들을 바라본다.
영화에서 오히려 가해자 혹은 피해자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입장인 미자의 가슴에는 참을 수 없는 응어리가 맺힌다. 66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속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미자는 ‘시’를 통해 세상에 대한 외침을 감행한다.
이창동 감독은 진실을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의 냉철한 통찰력은 무감각해져 있거나 잊고 있었던 현실을 현실보다 잔인하게 묘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미자는 근처 문화센터에서 시를 쓰는 수업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강사인 시인 김용탁은 시를 쓰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라면서, 수강자들에게 마지막 수업 날까지 시를 한 편씩 써오라고 부탁한다.
부산에 있는 딸은 전화로 미자에게 꽃을 좋아하고, 엉뚱한 소리를 잘 하기 때문에 미자가 시인 같다고 말한다. 미자는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말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기 시작한다.
어느 날, 미자는 외손자 종욱이 친구 5명과 함께 몇 달에 걸쳐 같은 학교 여학생 성폭행에 가담했으며, 며칠 전 강에 투신자살한 여중생이 그 피해자였음을 알게 된다. 친구 다섯 명의 아버지들은 이 사건이 자신들과 선생 몇 명밖에 모르는 일이므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피해자의 홀어머니와 합의를 하고 이 사실을 묻어버리자고 회의를 하지만, 500만원씩을 부담해야 한다는 말에 미자는 딴청을 피운다.
미자는 피해자인 희진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외손자 종욱을 다그치려고 하지만, 종욱은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도피하려고만 하고 외할머니를 무시한다. 더군다나 스스로 몸도 씻지 못하는 강 노인이 미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하자, 화가 난 미자는 일을 그만둔다.
미자는 큰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딸과 통화하면서, 미자는 돈에 대한 것도 치매에 대한 것도 말을 못 한다. 학부모들이 미자에게 나이 든 어머니로서 희진 어머니와 합의를 보라고 떠맡겨지지만, 정작 희진 어머니와 만나자 그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농사에 관한 잡담만 하다가, 뒤돌아서서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두려워한다.
미자는 기범의 아버지에게 합의금으로 쓸 500만원을 빌려보려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절망한 미자는 비를 맞은 모습으로 강 노인의 집으로 가서 강 노인과 성관계를 가진다.
학부모들은 합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모인다. 돈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 미자는 희진 어머니의 얼굴과 다시 마주치자 자리에서 바로 나가서, 강 노인의 집에 들어가 강 노인의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글을 써서 500만원을 달라고 부탁한다. 받아낸 500만원을 기범 아버지에게 건내면서, 미자는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가해자 학생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미자는 종욱에게 비싼 음식을 사주고, 다음 날에 엄마가 오니까 용모를 단정히 해야 한다며 몸을 씻게 하고 손발톱을 깎아준다.
그날 밤 둘이 밖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경찰이 찾아와 종욱을 데려가고, 대신 시 낭송회에서 안면이 있는 다른 경찰이 미자의 배드민턴 상대가 되어 준다.
다음 날, 시 강좌 마지막 시간에 미자는 꽃다발과 시 한 편을 남겨놓고 사라진다.
시의 제목은 자살한 희진의 세례명을 딴 ‘아녜스의 노래’였다.
시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는 오히려 아름다움 보다 슬픔이나 아픔을 이야기 한다.
모든 문학 장르가 다 그래야 한다는 것은 나만의 억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