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론은 “NBA 진출은 충분히 가능했고, 잘 풀리면 로테이션급 콤보가드까지는 갔을 것”이야. 다만 주전 에이스나 올스타급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벤치에서 흐름을 바꾸는 6~9번째 선수 정도가 가장 그럴듯해 보여 ㅋ
허재는 단순히 국내에서만 날아다닌 선수가 아니었어. 23세였던 1988 서울올림픽에서 평균 **17.1점, 야투 48.3%, 3점 39.1%**를 기록했고, 훗날 디박·쿠코치 등이 포함된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도 23점을 넣었어. 국제무대에서도 자기 공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거였지.
더 놀라운 건 이미 전성기가 조금 지난 1994 세계선수권에서도 평균 19.4점·3.9리바운드·4.5어시스트로 득점과 어시스트 모두 대회 최상위권이었다는 점이야. 실제로 허재 본인도 이 대회 뒤 몇몇 해외 팀으로부터 캠프 참가 제의를 받았지만, 당시 거의 서른이라 테스트받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어.
가장 이상적인 세계선
허재가 술을 멀리하고 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19881990년 무렵 2325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포인트가드 훈련까지 제대로 받았다면 대략 이런 그림이었을 것 같아.
평균 1522분, 710점, 2~4어시스트 정도의 공격형 벤치가드.
팀 공격이 막히면 들어와서 돌파하고, 미들슛과 3점을 넣고, 패스로 경기를 흔드는 타입이지. 승부욕과 클러치 능력까지 생각하면 감독이 플레이오프에서 은근히 믿고 쓰는 ‘벤치 해결사’가 됐을 가능성이 있어.
최고로 잘 풀리면 상위권 팀의 6~7맨, 평범하게 풀리면 10~12번째 로스터 선수, 적응에 실패하면 NBA와 유럽을 오가는 정도였겠지.
가장 큰 약점은 역시 체격
허재는 공식 신장이 약 188cm, 79kg이고 국내에서는 슈팅가드로 뛰었어. 당시 NBA 슈팅가드 기준으로는 상당히 작은 편이라, NBA에서는 사실상 1번과 2번을 오가는 콤보가드로 변신해야 했을 거야.
공격 기술과 배짱은 충분했지만, NBA의 더 크고 빠른 가드들을 매일 수비하면서 체력을 유지하는 게 최대 난관이었을 듯해. 특히 당시에는 지금보다 몸싸움과 핸드체킹이 강해서, 국내처럼 혼자 공을 오래 쥐고 돌파하는 플레이를 그대로 하기는 어려웠겠지.
그리고 허재는 흔히 생각하는 ‘연습 안 하고 술만 마신 천재’는 아니야. 어릴 때는 남몰래 개인훈련을 하고, 약점이던 슛을 보완하려고 하루 300~400개씩 던졌다고 직접 말했어. 술과 자기관리 문제가 선수 생활의 완성도를 깎은 것은 맞겠지만, NBA 진출을 가른 더 큰 변수는 너무 늦은 도전 시기, 해외 진출 경로 부족, 포지션과 체격 문제였다고 봐야 해.
그래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술 안 마신 허재가 20대 초중반부터 미국 농구에 적응했다면, NBA 올스타는 아니어도 5~8년 뛰는 공격형 로테이션 가드는 가능했을 것이다.
난 허재가 당시 한국 선수 중에서는 NBA에서 단순히 한번 출전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역할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컸던 가드라고 봐 ㅋ 국내에서 너무 잘해서 오히려 굳이 낯선 곳에서 밑바닥부터 도전할 이유가 없었던 것도 아쉽고.
첫댓글 어렸을때부터 가는거 아니었음 힘들었을것 같아요 대학을 미국으로 갔다면...
그랬으면 좋았을텐데요 ㅠㅠ
팻 스펜서 정도 활약 했을까….
전 상당히 잘했을 것 같기도 하고 ㅎㅎ
어려울 겁니다. 일단 허재한테 메인 볼핸들러를 주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이충희 선수가 더 가능성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충희 선수가 최고의 기량으로 끌어올리고 몸을 잘 관리한다면 불스의 스티븐 커 역할을 했을수도 있단 희망회로를 돌려봅니다.
정말 대박 운이 터지면 존팩슨
말씀대로 이충희 선수 잘했을 듯요 ㅎㅎ
절대 안됨. 신체능력 운동능력 안됨
앜ㅋㅋㅋㅋ
명암이 분명한 선수, 그 이름
허... 재...
-_-
공감합니다…
"술 안마신"부터 글렀음 ㅎㅎㅎㅎㅎ
앜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