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빨리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최선이라네."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희곡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나오는 대사다.
"잠이 들면 좋지, 죽으면 더 좋고. 물론 가장 좋은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하인리히 하이네의 '모르핀'에 나오는 문장이다.
마광수도 '마광수의 뇌생각'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양을 쫓는 모험'에서 비슷하며, 통념과 사뭇 거리가 있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런 생각을 반(反)출생주의(anti-natalism)라고 한다. 출산(procreation)을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로 간주하는 윤리학 관점이다. 삶이 고통이라면 왜 당장 자살하지 않느냐고 반출생주의자에게 되묻거나 반출생주의가 학살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반출생주의를 극단적인 친죽음주의(pro-mortalism)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릇된 신념을 테러 행위로 연결한 사건이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여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의 난임 클리닉 건물 뒤쪽에 주차돼 있던 차량이 폭발해 클리닉 일부가 파손되고 4명이 다친 일이 일어났다. 테러 용의자 가이 에드워드 바트쿠스(25)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토요일이라 클리닉이 문을 열지 않아 직원이나 환자 피해는 없었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바트쿠스에게 폭발물 제조에 사용된 화학 물질을 제공한 테러 용의자로 워싱턴주 켄트에 거주하는 다니엘 종연(jongyon) 박(32)을 지난 3일 체포했다고 밝혔다. 한국 성인 'park'을 쓰는 데다 가운뎃 이름을 한국 식으로 쓴다는 점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박이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있는 연방 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지난 13일이었는데 열하루 만인 24일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구치소 측은 아침 7시 30분쯤 의식을 잃은 박을 발견해 소생술을 실시하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다만 사망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다.
검찰은 박이 보통 비료로 쓰이는 질산 암모늄 81㎏을 바트쿠스에게 전달했고, 또 그에게 제공하기 위해 질산 암모늄 40㎏을 추가 구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1월 말에 처음 만나 다음달 초까지 2주간 함께 한 농장에서 지내며 질산 암모늄과 연료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박이 집에서 인공지능 챗봇을 이용해 폭발물 만드는 방법을 검색한 기록이 포착됐고, 바트쿠스의 방과 차고에서는 수제 폭탄 제조에 사용되는 상당량의 화학물질이 발견됐다.
난임 클리닉 테러 발생 나흘 뒤 박은 덴마크를 거쳐 폴란드로 출국했다. 팸 본디 미국 법무부 장관이 폴란드 정부에 박의 송환을 요청해 그는 지난달 30일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는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둘이 반출생주의 신념을 공유하며 범행을 꾸민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간 뉴욕 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박은 2016년에 반출생주의를 긍정적으로 소개하며 동조자를 모집하는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박의 가족은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반출생주의뿐 아니라 친죽음주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수사당국에 진술했다.
현지 언론은 박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바트쿠스의 부친이 박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제 둘 다 세상을 떠난 상태인데 검찰이 어떻게 사건을 결론지을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유죄가 선고됐더라면 박은 최고 15년 징역형을 언도 받을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 행위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4일 조선일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죽음이 좋은 것이고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지만 현실에서의 죽음은 우리가 쌓아 온 관계와 지식, 지혜를 빼앗아 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