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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희는 전 세계에서 약 5천 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구약 다니엘서와 스가랴서 추구를 하고 있습니다. 참석한 성도들은 일주일 동안 하루 오후와 밤 두번 집회가 있고, 오전 내내 전날 것을 복습하고 그날 것을 예습합니다. 총0회처럼 저희도 휴일만 있으면 모여서 말씀을 듣고 추구합니다(일년 두 차례 여름 겨울 일주일씩 성경말씀 추구집회, 구정연휴, 현충일 연휴 , 노동절 연휴(미국기준), 추석 (추수감사절) 집회, 그외에 인도하는 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두 번 더 모임). 주의 회복의 초기부터 세상 명절 때 세간의 조류와 분별되어 말씀과 기도와 한 몸 안의 섞임을 추구해 왔습니다. 조금 바쁜 일정 중에 잠시 짬을 내어 답변을 드립니다.
기존에 쓰신 내용 중에서 쟁점이 될만한 부분만 살리고, 그 밑에 해명의 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지방교회 내의 분열
쟁점또는 질문1)
“(3395글을 읽으며 '주님사랑'님께서는 지방교회나 일반교파나 대동소이라고 설명을 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3332번의 '형제'님은 지방교회 안에서 오래 계셨던 분입니다. 지금도 지방교회의 운영체계를 긍정적으로 보시고요. 여기서도 지방교회의 장점을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다만 위트니스 리 한 분에 막혀 있다는 것만 반대합니다. 이것은 지방교회의 운영 방법론에만 이견이 계신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야 서로 자기에게 은혜되는 주관적 체험이기 때문에 '형제'님의 체험이나 반론이 틀렸다 할 수는 없겠지요? 제 눈에는 3332번의 '형제'님이 과거 출석하던 주거지 주변의 지방교회나 '형제'님이 지금 몇 가정 따로 모이는 교회나 꼭같다고 보입니다.”
해명1) ‘지방교회나 일반 교파나 대동소이하다’ 라는 말씀은 우리가 거듭알 때 얻은 생명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그 생명의 목적은 믿는 사람들 안에서 그 생명 만으로 충만되는 것입니다. 이와 다른 타락의 산물들은 이미 십자가에서 끝났고, 또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 안의 씻는 물로 씻겨지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구속받은 저희들 안에서 영과 혼과 몸까지 충만됨으로 한 새사람과 한 몸을 이루는 것만을 자나 깨나 소망하는 정도에 있어서는 다른 단체들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위트니스리나 워치만니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인 새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갔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의 타는 불을 늘 마음에 품고 산 주 안에 신실한 형제님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이 본 것들을 함께 보고, 그분들이 살았던 그 세계를 함께 공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속에서 (워치만니나) 위트니스리가 걸림돌이 되었다면, 아마도 본 것이 다르거나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저희와 같은 길을 가기를 소원하지만, 각자가 자기가 본 그 길을 갈뿐입니다. 본 만큼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몸입니다. 몸 자체는 서로 서로를 향하여 열려 있어야 합니다. 몸 안에는 질서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에 수 많은 가정 모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예루살렘이라는 한 도시 안에 두 교회, 세 교회..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님이 가정에서 몇분과 모이더라도 여전히 자신들을 <그 지방 안에 있는 교회의 일원> 으로 여기는지, 아닌지가 그 모임의 성격을 결정할 것입니다.
쟁점 또는 질문2)
“궁금한 것은 3332번 '형제'님이 과거 XX시 CC구 DD동에서 지방교회를 다니셨는데 지금은 DD동에 있는 '형제'님 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 가정이 예배를 드린다면 XX시 CC구 DD동의 지방교회는 2개가 되었다고 보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해명 2) 우선 한 지역에 두 개 세 개…의 지방 교회들이 있는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신약의 서신서들을 서로 자기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지방에는 늘 하나의 교회만 있었습니다(행14:23, 딛1:5). 그러나 여전히 그들 모두가 한 몸의 일부 임으로 그 지방만이 아니라 그 지방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서신도 다른 지방에 있는 교회들과도 돌려 읽었고(골4:16), 특정 지방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서신도 다른 몸 안의 지체들(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도 함께 수신인으로 삼기도 했습니다(고전1:2). 이것이 몸이요, 교회입니다. 따라서 한 지방에 여러 모임이 있을 경우 어느 모임이 더 정당한가 하는 것은 어떤 태도와 동기로 그렇게 모이는가에 따라 평가될 일입니다. 만일 분열의 영 안에서 모였다면, 그 지방 안에 있는 교회가 분열된 것일 뿐, 한 개의 교회가 두 개 또는 세 개의 교회가 된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여전히 한 지방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태도와 영만 있다면 실제적인 모임은 둘, 셋이 아니라 천개가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수 많은 가정 집에서 모여 떡을 떼고 말씀을 나누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교회간증을 유지했던 초기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 (행8:1)의 모습이었습니다.
쟁점 또는 질문3)
“박0수라는 분이 지방교회 내부인이 아니어서 그분의 말씀은 모두 무시를 한다쳐도 저로서는 그분이 언급했던 '중국의 집교회운동' '스테판 0' '왕0생' 'LA이주후의 변형' '위트니스 리 체제로 가는 것에 대해 워치만 니 교훈이 변질'이라는 이러한 주장들은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수가 있고 이런 주장들은 지방교회에서 나온분들이나 현재 지방교회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며 워치만 니의 원래 입장을 유지하자는 입장을 가진 분들이 제기하는데 지방교회측에서 이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글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해명3) 저희는 진리에 대한 왜곡은 반드시 바로 잡거나 해명합니다. 그러나 ‘사실관계’에 대한 왜곡은 경중을 보아가며 다룹니다. 위 열거하신 항목들은 거의 대부분 (매우 죄송하지만)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수준 정도의 말’로 평가합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간의 이간질은 음부로부터 올라온 말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특히 지방 입장을 워치만니는 유연하게 주장했는데, 위트니스리가 강하게 주장하고 고집하여 변질되었다는 말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시킨 것입니다. 오히려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가 보고 말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실천하려고 함으로 위에서 언급된 이름과 일부 이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 점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구, 사역의 재고)(한국복음서원) 제 5장 ‘사도들이 세운 교회들’, 제6장 ‘합일과 분열의 근거’ (143-225쪽)만 읽어 보아도 금방 알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저 하기 좋은 말을 임의로 지어내어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총0회 내부에도 백0희 목사님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 실행하려는 분들과 현실에 맞게 수정하려는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주의 회복 안에도 이런 차이가 일부 있었지만, 결국 몸 안에 고운가루와 기름과 유향과 소금 이외에 다른 것들은 다 이물질들이요, 몸 안의 본성을 변질시킬 수 있는 누룩일 뿐입니다. 점과 주름과 흠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시려는 주님의 표준을 사람이 임의로 낮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쟁점 또는 질문 4)
“그런데 지방교회는 세계의 모든교단의 분열을 다 비판을 해놓고 내부에서 분열이 나올 때는 타교단보다 설명할 수있는 입지가 훨씬 없을듯합니다. 설명과정에서 지방교회의 발전과정을 곳곳에서 설명을 하셨는데 1950년의 지방교회가 자신들의 그시대 기준으로 타교파들을 정죄하고 그리고 1950년대의 지방교회가 1980년대가 되면서 변화된 기준으로 가지고 1980년대 타교파들을 정죄할 때는 1950년대의 지방교회 자신들도 비판을 해보셨을까요? “
해명4) 저희는 스스로를 높은 곳에 두지 않고, 성경의 표준 앞에 저희를 포함한 모두를 가져 갑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가지신 기준에 부합한가 아닌가 만을 살핍니다.
2. 다른 지방교회 자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말씀들
쟁점 또는 질문1)
“'주님사랑'님께서 제 글을 설명해 주시면서 다른 교회들도 긍정한다는 말씀이 유독 많았습니다. 성경해석도 한쪽만 절대로 주장하지 않으시고 반대편의 해석 가능성도 곳곳에서 열어두셨습니다. 이렇게 타교회의 존재나 타교회의 성경해석이 다를수 있다고 인정을 하신다면 그동안 지방교회가 왜 따로 모이고 교류는 없고 타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 지방교회 외의 교회들은 다 잘못되었으니 지방교회로 다니라고 그토록 매어달리는지 지방교회를 다니는 분들의 인식이나 언행이 타교단은 거의 무조건 비판하고 자신들의 교회는 교인들이 모이면 모두 은혜만 되고 다 형제가 되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만 변호했는지 다른 분들에게서는 '주님사랑'님과 같은 그런 설명이나 그런 자세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명1) 아마도 거의 대부분 인터넷 안에서 떠 돌아다니는 2차 자료들을 접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주의 회복을 어떤 형태로든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쓴 것들이라 어찌하건 ‘사실전달’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이는 주의회복을 비판하는 책을 내면서 9쪽이나 떨어진 별개의 내용을 서로 짜집기하여 펴내기도 하고, ‘..있다’라고 한 내용을 ‘…없다’ 라고 왜곡시켰다가 저희 측의 항의를 받고 정정 광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진리 문제에 대한 이견은 두 부류로 다룹니다. 우리의 신앙을 구성하는 핵심진리들에 대한 이견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나 타협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예수님을 창조주이자 피조물이시라고 했다고 이단이라는 소릴 듣습니다. 예수님이 참 인간이신데도 피조물이 아니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따라서 그런 비판은 들어도 개의치 않고 우리의 신앙을 고수합니다. 그러나 지엽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우리 것만 옳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총공회측 표현대로 ‘연구과제’로 남겨 놓고, 그로 인하여 분열되어 주님의 몸을 헤치는 일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울러 총공회 측에도 그 안에서 누리시는 특별한 은혜와 분깃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희 또한 그러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나되는 입장 위에 서 있을 때, 누리는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있기에 아마도 일부 성도들의 언행에서 지적하신 그런 태도가 나타났을 수 있습니다.
3. 성경해석
쟁점과 질문1)
“지방교회의 성경해석도 저는 지방교회의 근거만이 성경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원어나 신학 자체를 부인해버리는 정도라면 몰라도 지방교회는 원어논쟁도 하시고 신학도 공부로서는 다하고 계시는데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만 성경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것도 신학의 분파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해명1) 성경은 많이 읽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영적 양식입니다. 그런데 물질 세계는 물질 세계로 통하고, 영적인 세계는 사람의 머리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지, 성경 많이 읽어서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성경도 하나의 책임으로 그 안에 주제도 있을 것이고 중점도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성경의 주제를 하나님의 경륜(딤전1:4)으로 보고 그 관점에서 풉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에게 생명으로 ‘분배’하시고 더 많이 분배해 주셔서(요10:10하), 사람이 맏아들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온전한 ‘표현’이 되는 것(계3:12)을 말합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구원이요, 몸이요,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것은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기는 자 이마에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새겼다고 말합니다(계3:12). 물론 그렇더라도 그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모든 구절 구절들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이 중심만 붙들고 있으면 크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핵심진리에 대한 이견은 목숨을 걸고 다툽니다. 그러나 지엽적인 성경진리에 대한 해석은 서로 간에 ‘여지’를 남기고 그 대신 하나됨을 추구합니다.
쟁점과 질문2)
“성경 전체를 다 연구하며 하나씩 맞추어봐야 할 터인데 지방 교회의 한 지방교회론은 헛점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 어쨌든 지방 공회의 주장은 그출발부터 타교회를 인정하게 되면 지방교회는 왜 따로 출발해야했던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요? 타교회를 인정하지 않을때가 사실 지방교회는 지방교회다웠다고 느꼈습니다. “
해명1) ‘(1) 성경을 볼 때 한 지방 안에는 하나의 교회가 있었다. (2) 그 하나의 교회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을 포함한다. (3) 그 각각의 지방 교회들은 행정은 독립이지만, 한 몸의 일부임으로 한 머리와 한 생명과 한 교제를 가진다.’ 이것이 소위 ‘한지방교회론’입니다. 이 교회는 ‘타 교회’가 없고, 거듭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 주님의 ‘내 교회’ 뿐입니다. 거듭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은,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교회임으로 교회로 인정하는 것이요, 지방적인 교회를 말함은 그것이 저희가 성경에서 발견한 가장 성경에 근접한 교회론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보다 더 성경적인 교회론이 있다면 귀를 열고 듣고 배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비밀이 교회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교회가 교회로 다가오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교회는 여전히 풀수 없는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본 자도 주님의 긍휼이요, 보지 못한 자도 같은 한 몸 안의 지체입니다.
시간적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할 말만 간략하게 쓰다보니, 저 역시 저의 투박함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첫댓글 때로는 이러한 문답식 대화가 상황 파악에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주님의 몸을 세우는 것을 최종목표로 하기 원합니다.
대적 또는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허는 것은 단호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는 이들과의 열린 대화는 언제나 필요하고 또 열려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가는 길은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이 길을 감에 있어서 신실하고 깨어있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