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만약 제가 리만 가설을 풀었다고 한다면 매스컴이고 대중이고 심지어 이 페이지 구독자 여러분들 역시 딱히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이 새끼가 대학원 갔다더니 드디어 정신줄을 놨구나 하겠죠. 그러니 우리는 마이클 아티야 경이 적어도 대단한 수학자라는 추론을 해낼 수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라도 걸 수 있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마이클 아티야 경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했을까요? 이 글에서는 아티야 경의 굵직한 업적들에 대해서 간단히 (그리고 급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메인 레퍼런스는 제 뇌와 동료들의 조언 그리고 위키피디아입니다.
0. Sir Micheal Atiyah는 영국의 수학자로 현재 에딘버러 대학에 명예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그는 대수기하학, 미분기하학, 대수적 위상수학, 수리물리학 등 기하학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큰 족적을 남겼으며, 교육자로서 Donaldson을 비롯한 여러 수학자들을 지도하였고 가환대수와 K-이론 등의 분야에서 귀중한 교과서를 집필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1966년에는 가장 뛰어난 젊은 수학자들에게 주어지는 필즈상을, 2004년에는 수학계의 공로상과도 같은 아벨 상을 받았습니다.
1. Atiyah-Singer Index Theorem
수학도들에게 아티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Commutative Algebra 교과서...개극혐...이 아닌 Atiyah-Singer index theorem일 것입니다. 이 정리는 현대 수학의 정수이자 가장 귀중한 결과 중 하나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이는 1963년에 발표되었고 아티야는 이를 포함한 다른 업적들로 필즈상을 받게 됩니다. 찾아보니 싱어 역시 이 공로로 인해 아티야와 함께 아벨상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기하학에 관심있는 수학도라면 정확한 statement는 몰라도 (혹은 들었지만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이 정리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정리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유명하고, 이를 증명한 아티야와 싱어에게 큰 명예를 가져다준 것일까요?
이 정리의 쉬운 버전으로 Gauss-Bonnet의 정리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 다룬 적이 있을 텐데 찾기가 귀찮네요... 아마 미분위상수학을 다루던 시기 후반부로 가시면 발견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 정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닫힌 곡면의 곡률을 곡면 전체에서 적분한 것은 그 곡면의 오일러 표수에 비례한다.]
아주 대충 설명해서 곡률은 곡면이 휘어진 정도를 의미하고, 오일러 표수는 곡면의 구멍의 개수를 설명해주는 정수값을 갖는 위상불변량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우스-보네 정리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정보의 관계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local한 정보와 global한 정보, 또는 해석적인 정보과 위상적인 정보이죠.
먼저 곡면은 local topology를 가지지 않습니다. 휘어진 곡면도 가까이에서 보면 유클리드 평면과 다를 바 없죠. (이것은 manifold의 정의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곡률은 철저히 local한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이건 간단히 말해 2계도함수를 보겠다는 것인데, 미분이야 뭐 한 점 근처의 아주 작은 근방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local하게는 위상 구조를 보존하면서 곡률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컨대 구면이 있다면 구면을 늘리고 줄이고 구겨도 위상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으니 한 점 근처에서 곡률을 마음껏 바꿀 수 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가우스-보네 정리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곡률을 마음껏 바꿔봤자 global한 곡률, 즉 곡률을 적분한 값은 위상불변량이라는 겁니다.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지요!
아티야-싱어 지표 정리는 이 정리의 거의 가장 높은 수준의 일반화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대충 말해서, 다양체 위의 벡터 번들들에 대하여 elliptic complex라는 chain complex를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de Rham complex 등의 일반화라고 합니다) 이로부터 정의되는 해석학적인 정보 (어떤 연산자들의 kernel와 image의 차원) 그리고 위상수학적인 정보 (특성류들을 적당히 짬뽕해서 적분한 것) 이 두가지가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정리입니다. 사실 저도 이 정리를 이해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는 힘듭니다. 어쨌든 이 정리의 따름정리로 앞서 말한 가우스-보네의 정리를 비롯하여 리만-로흐 정리 등 이 정리의 유사품들을 모두 얻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정리의 (아주 개략적인)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이 정리가 갖는 위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개의 가지가 높은 곳에서 만날 때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정리는 기하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적용되어 많은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만약 이 정리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덧글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여튼 아티야-싱어 지표 정리는 아티야라는 대 수학자의 거대한 족적 중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하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어울리는 아티야의 말이 남아있군요.
“내가 수학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조언 중 하나는, 굉장해 보이는 정리일지라도 그것이 ‘간단하고 자명하지 않은’ 특수한 경우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의심해 보라는 것이다.
The most useful piece of advice I would give to a mathematics student is always to suspect an impressive sounding theorem if it does not have a special case which is both simple and non-trivial.”
2. K-Theory
아티야 경의 또다른 업적은 위상 K-이론을 창시한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까지 소개하던 내용인데, 원고는 써져 있지만 여러 문제(ex.귀찮음, 어떻게 끝낼지 모르겠음)로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K-이론은 간단히 말해 어떤 공간 상의 벡터 번들을 분석함으로써 그 공간 자체의 성질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벡터 번들끼리는 더할 수 있고 (direct sum) 곱할 수도 있습니다. (tensor product) 그러므로 다양체 M 위의 (유한차원) 벡터 번들의 isomorphism class로 만들어지는 additive monoid를 Grothendieck completion 시켜주면 (자연수에서 정수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K-group을 얻습니다. 참 쉽죠? 왜 이걸 아무도 생각을 못했을까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K-이론의 정수는 ‘벡터 번들로 group을 만든다’는 것이 아닌, 그 다음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group을 만들어봤자 ‘와 신기해 근데 계산 어케함?’ 하면 할 말이 없거든요. 위에서 만든 group을 K^0(M)이라고 하면, 우리는 적당한 조작을 가해서 K^{-1}(M) 그리고 모든 정수 n에 대하여 K^n(M)을 정의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놀랍게도 M 위에 주어지는 코호몰로지 이론이 됩니다. 그런데 Bott periodicity에 따르면 이 코호몰로지들은 복소 벡터 번들의 경우 2, 실수나 사원수 벡터 번들의 경우 8을 주기로 갖게 됩니다! (Bott는 아티야의 주요한 coworker 중 하나였고, 이 공로로 필즈상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코호몰로지 이론으로부터 K-theory를 계산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어쨌든 어찌저찌 계산할 수도 있고 모든 K^n들이 기하학적으로 분명한 implication을 가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위상불변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아티야 경의 수많은 업적 중 하나입니다.
이 외에도 정말 잘 모르겠지만 K-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보디즘과 코보디즘을 포함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코호몰로지 이론을 새로 만들었고 이것이 지표 정리의 증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아 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지네요. 하여튼 기하학이란 기하학은 다 건드린 양반이군요.
3. Gauge Theory, Topological Quantum Field Theory
네. 여기는 제가 정말 아는게 없어서 쓸 말이 없네요. 인덱스 정리 시즌이 끝난 뒤 아티야는 게이지 이론과 위상 양자장론 등 수리물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고, 게이지의 모듈라이 공간에 대해 연구하고 TQFT의 axiom을 제안하는 등 여러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호나우딩요 다음으로 유명한 외계인 Edward Witten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들을 일 없는 대 기하학자인 Donaldson의 지도교수였다고 합니다. 저는 정말로 하나도 모르겠으니 기하학과 이론물리 사이의 스펙트럼에 계신 구독자 여러분들이 알아서 설명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용두사미인 느낌이 있지만 이건 다 제가 부족한 탓에 아티야 경의 업적을 이해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티야 경은 당연히 위에 서술한 것보다 훨씬 많고 넓은 업적을 세운 대 수학자이고, 저는 처음에도 말했듯 여러분께 아티야 경이 노년에 리만 가설 관련해서 삽질한 사람보다는 위의 업적들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학계에서는 당연히 그의 수많은 업적들로 기억될테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위치나 권위를 사용하지 않고 논문과 세미나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모습에 저는 오히려 감명을 받았습니다. 물론 컨텐츠가 무의미했던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자세한 내막도 저는 모르지만 말이죠.
단적으로 한국에 무슨 소리전문가는 한 것도 ㅈ도 없으면서 모래 위에 쌓아 올린 권위로 평생 먹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데 말이죠 ㅋㅋ... 아니 이렇게 시궁창까지 갈 것도 없이 본인이 편집장으로 있는 저널에 증명 실은 수학자도 있고, 남이 거의 다 증명한거 막타쳐서 빼앗으려 한 수학자도 있는데... 그 와중에 정정당당함을 나름대로 지키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애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멋있었습니다.
음...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까요? 아티야 맥도날드 가환대수 읽기 존나 힘들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