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당당함 혹은 떳떳함
이승하(시인ㆍ중앙대 교수)
서양에서 시의 시초는 서정시가 아니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시작된 시의 모습은 전쟁과 모험을 다룬 서사시였고 장시였고 영웅담이었다. 그러면서도 운율이 있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극시였다. 시이면서 극이어서 디오니소스 제전 때 경연을 하였다. 아이스킬로스ㆍ소포클레스ㆍ에우리피데스의 극시는 내용은 처절한 비극이었고 형식은 무대에서 펼쳐진 음악극의 대본이었다. 일부 대사는 현대의 뮤지컬처럼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어지기도 했다. 이후 모더니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전통의 소나타 형식을 버리고 자유시를 쓰게 된다. 프랑스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는 산문시의 원조로 가름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시의 원류는 민요였다. 공자가 편한 시경 속의 305수 시가는 거의 다 노랫말이었다. 즉,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했지 거창한 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305편 중 ‘風’ 160편은 남녀상열지사를 위주로 한 연애시였다. 서양의 시도 서정시의 원류는 그리스의 시인 사포의 연애시였다.
서양의 시가 모방론을 중심으로 창작되었다면 동양의 시는 효용론을 근본으로 한다. 논어에 나오는 ‘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라는 말은 동양 최초의 시론이다. 시를 자꾸 읽다 보면 마음속의 삿된 생각이나 욕심이 사라져 평정심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인지 관리를 등용하는 과거제에 시 쓰기를 넣어, 선비는 누구나 시를 짓게 되었다. 논어에서 시의 효용은 이렇게 설명이 되고 있다.
詩可以興可以觀可以羣可以怨邇之事父遠之事君多識於鳥獸草木之名
시는 사람의 감흥을 자아내게 하고, 사물을 살피게 하며, 여럿이 어울릴 수 있게 하고, (위정자의) 잘못을 원망할 수 있게 하며,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기게 하고, 멀리는 임금 섬기는 도리를 배우게 하며, 또한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최혜옥 시인의 시를 읽다가 느낀 점은 서양의 자유시가 갖고 있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동양의 시가 지니고 있는 웅숭깊은 고전미학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해설문의 앞머리에 동ㆍ서양 시의 차이에 대해 잠시 언급해 보았던 것이다. 자 이제, 시집의 앞머리에 있는 몇 편의 시를 감상해 보도록 하자.
그대에게 가는 바닷길이 있다
안부를 묻는 엽서 한 장 배달되지 않는
방파제 끝,
망부석이 된 우체통 옆에서
심해로부터 울려오는 첩첩의
푸른 간절함 그 너머로
그대에게 가는 하얀 길을 본다
―「간절곶」 전반부
울산에 가면 서생면 대송리 일원에 돌출한 곶이 있다. 이 간절곶엔, 아이를 업고 서서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어부)을 기다리는 여인의 동상이 있다. (백제가요 「선운산가」 참조.) 화자는 이 간절곶의 방파제 끝에 가서 그대를 간절히 생각한다. 피치 못할 사유로 내게 도착하지 못하는 그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달아나는 너울이 그대인 듯
물길을 만들며 멀어진다
눈길로 재어보는
그대와 나의 거리
지울 수 없는 길이 파도로 떠다닌다
파랑波浪으로도 닿을 수 없는
그대만 간절한 곳에서
간절곶을 본다
―「간절곶」 후반부
사랑했다 이별하고, 이별한 후에 그리워하는 것은 이 땅에 시가 등장한 이후 줄기차게 노래로 불리어진 내용이다. 최초의 고대가요 「황조가」가 창작된 해는 기원전 17년, 유리왕 3년 시점이었다. 본국으로 가버린 치희를 그리워하며 부른 그 노래로부터 시작된 이 땅의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서정주의 「귀촉도」와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강」까지 연면히 이어져 흐르고 있다. “그대와 나의 거리”가, “지울 수 없는 길”이 파도로 떠다닌다는 안타까움은 “파랑으로도 닿을 수 없는/ 그대만 간절한 곶에서/ 간절곶을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대를 그리워만 할 뿐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시가 탄생하는 것이려니.
제주엔
애월이가 산다
사철 돌 바람 불고
파도 멎지 않는 그곳
눈도 귀도 입도 없어
한 가닥 애증도 없는
달빛만 교교한 애월이가 산다
푸른 파도에
짠 세월을 씻으며,
허벅으로 길어 나른 바다를 걸러서
맨발로 소금을 짓는,
정박을 잊은 그대를 위하여
밤이면 하염없이 등대를 밝히고
그리운 그대를 물질하다
제 넋이 나가버린 애월이가
간절히, 간절히,
산다
―「애월항」 전문
간절해서 간절곶이고 애절해서 애월항인가. 요즈음 효리네 민박집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곳이 제주도 애월항인데 ‘애월’은 실은 기생의 이름이다. 제주통판(濟州通判)으로 부임하는 전우성(全宇成)이란 선비가 제주기생 애월과의 사랑을 읊은 「금루사」라는 가사가 있었다. 전우성이 기생 애월을 잊지 못해 제주도로 다시 갔지만 아뿔싸, 애월은 장사꾼 남편과 결혼해 살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애월과 몰래 만나 정을 나누고, 마침내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야 할 귀국 상황에 이르러 자신의 애절한 심경을 한 편의 가사로 노래한다.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을 저승에 가서라도 나누자고 서약하는 사랑노래로서, 18세기 때의 작품치고는 아주 환상적인 작품이다. 「애월항」의 간절함은 「금루사」에 못지않지만, 독자로서는 ‘제 넋이 나가버린 애월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므로 감동이 약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자는 애월이 이야기를 빌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의 실상이 몹시 궁금하다.
새벽 발치 이불자락에
문득 도달한 그대의 기별
질펀하게 달궜던 여름날의 연애담과
잉크냄새 싱그러운 능금빛 신간 한 권 들고
얼굴 맞대고 싶다는 소식
가을 풀벌레들 노랫가락에 물빛도 서늘하고
넘실넘실 깊어가는 술잔에
우리의 시간은 또 얼마나 무르익을 것인가
길섶의 풀잎들 매무새 가다듬고
햇볕을 뒤집어쓴 벼이삭들도
일제히 고개 빼어 기다리는데
기어이
쓰르라미가 내 발등에 울음을 엎질렀네
―「입추」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여름날의 연애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능금빛 신간 한 권’은 본인의 시집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대로부터 기별은 없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마지막 연은 화자의 애타는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애절함, 안타까움, 하염없음의 정조는 다른 시를 읽을 때도 종종 느낄 수 있다.
퇴고 중인 가을 한 권
붉은 유서가 기록되는 허공이 어지럽다
―「가을 한 권」 마지막 연
텅 빈 벌판에 누워
자궁 깊숙이 잿불을 묻고
여자가 봄을 기다리는 동안
바람은 소리로 집을 지었다
―「겨울 들판」 끝 문장
겨울 우체국이
주소 없는 봉투에
애먼 우표만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겨울 우체국」 마지막 연
사실 이런 식의 이별 이후의 애틋한 정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다. 현대시사에 있어서는 소월과 영랑이 개척하였고 청마와 미당이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그리움」) 같은 절창을 토해낼 수는 없을지라도 연애시를 읽을 때 독자가 기대하는 것은 그 어떤 간절함이나 처절함이 아닐까. 소재와 주제가 비슷한 2편의 시를 비교해 볼까 한다.
촘촘히 엮인 입술 틈새로
밤과 낮의 눈물을 받아 마신다
시간이 흘러들어 그녀에게 시비를 거는
천 년 묵은 돌기를
쓰디쓴 눈물이 목 줄기를 타고 넘어
난데없이 방치된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그녀의 입은 정수리에 있다」 제 1, 2연
미끄러지듯 잠입하였지
네 입술을 열고
콸콸 솟구치는 나를 밀어 넣다가
곧 불이 날 거라는 걸 알아챘지
흰 거품을 물고 있는 목이 긴 글라스에
시치미를 떼고 마음을 숨겼어 달빛이 휘청거리고
뻐꾹새는 딸꾹질을 거듭했지
시큼한 밤꽃향이
온 들판에 번지고 있을 때
―「그 여름의 Beer, 칵테일」 제 1연
앞의 시는 추상적이고 애상적이다. 뒤의 시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이다. 해설자는 해설만 하면 되지만 뒤의 시가 훨씬 나으니 앞으로는 이런 유의 시를 써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시의 화자가 감상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독자는 영악하고 대개 센티멘털리스트가 아니다.
시란 무엇인가. 1930년대에는 소월의 「진달래꽃」이 최고의 연애시였겠지만 이제는 그런 산화공덕(散花功德)이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없다. 하염없는 기다림과 애절한 바람이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떨쳐버리려는 매서운 결기, 그리움에서 벗어나려는 끈질긴 노력이 훌륭한 시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외로움도 익숙하면 따뜻해지는 법.
찬비에 지워진 길이 몸을 움츠릴 때
나는 링크를 한다네
은밀한 문, 빗장을 풀고
나에게로 나를 전송한다네
―「외로운 날의 하이퍼링크」 마지막 연
외로움에 지쳐 간절곶을 찾아간 적도 있었지만 이제 시인은 외로운 날이면 특정 문자나 그림에 다른 문서를 연결한다. 특정 글자나 그림을 클릭하면 이와 연결된 다른 화면으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한 것이 하이퍼링크이니 이제는 “은밀한 문, 빗장을 풀고/ 나에게로 나를 전송”한다. 오늘날의 화자는 성경에 나오는 남자의 갈비뼈가 아니다. 그대에게 종속된 내가 아니라 나로서의 나, 나만의 나여야 한다. 즉, 주체성을 가진 완성된 인격체로서의 나를 정립하고자 한다. 아래의 시는 시어로 ‘그리움’ ‘기다림’ ‘목마름’을 사용하였기에 센티멘털리즘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모른다
밤도 낮도 없는
평생의 울렁증에 대하여 또는
새하얀 포말, 그
비통한 자각에 대하여
침묵 속 사유가
어떻게 푸른지
무엇에 어떻게
단 하나의 생을 걸고 있는지
아침을 낳는 산고라든가 또는
밤을 새워 품었던 새벽과의 거듭되는 작별,
생앓이만으로도 죄가 된
사랑에 대하여
끝나지 않은 그리움과
그칠 줄 모르는 기다림, 그 목마름에 대하여
멀고 가득한
그녀는,
낯선 시간을 만나고 돌아와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는다
―「그녀의 낯선 바다」 전문
당당하다고 할까 떳떳하다고 할까. 낯선 바다에 갔다 온 그녀는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는다. 사랑에 눈먼 괴테처럼,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처럼, 사랑을 쟁취한 마담 보바리처럼. 이런 일련의 시를 보면 최혜옥 시인의 시는 자기를 찾아가는 긴 여정에 오른 이가 쓴 내면일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 일기책을 혼자만 보고 서가에 꽂아두었는데 이제는 다소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알아요
전설 같은 아마란스
죽어서도 다시 피어날
덩어리 불꽃
내 간절한 불치병 같은
사랑,
―「사랑, 영원한」 끝 연
디딤목 한 개 없는
어둠이 가득한 빈 둥지
살아서 절명한 그것을 통째로 묻는다
깊이 162센티의 웅덩이에
―「고독」 끝 두 연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제목의 시를 누가 쓰는가. 하지만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고서 당당하게 쓰는 시인의 용기가 해설자는 부러울 따름이다. 고독을 이겨내기 위하여 화자는 사랑을 꿈꾸고 어떤 때는 그 사랑을 실천한다. 그 옛날 중국 시경의 작자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아마란스 꽃으로 만든 차는 붉은데 색깔이 무진장 곱다. 곡물 아마란스인지도 모르겠다. 페루 태생의 슈퍼 푸드 중 하나로 알려진 아마란스는 유럽과 미국에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밀가루 대신 주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사랑이 “죽어서도 다시 피어날 덩어리 불꽃”이라니 무시무시한 사랑이다. “내 간절한 불치병” 같은 사랑이라고도 하니 그런 사랑 한번 해보고 죽는다면 여한이 없겠다. 시인이 고독의 성채에 칩거한 것은 결국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소설은 세상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시는 나의 내면에 대한 치밀한 묘사여야 한다. 화자는 사랑의 완성(합일이라고 해도 좋다)을 통해 성숙한 영혼을 갖고 싶어한다. 짝사랑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사랑이 성숙하여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시를 쓰게 되었다면 이제는 사랑을 동경할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 펜을 들고 있기에 새로운 모험의 길로 떠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집의 제목이 된 시 「왼손의 애가」는 부제가 ‘남편에게 바치는 시’다. 남성 독자는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해설자는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의 용기에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그대 향한 부러움은 열등감이 되고
자포자기를 거쳐 달관된 왼손으로 거듭나기까지
그대는 아무것도 눈치도 채지 못했지
의젓하게 큰 손이 되어
자기 몸처럼 아껴줄 뿐이었지
나 그대만 한 군자를 본 적이 없다
친애하는 오른손이여
그대 서늘한 왼쪽에서 다소곳이
함께 잠들리라
한 날, 한 시
―「왼손의 애가」 후반부
이 시집에는 연애시가 상당수에 이르지만 사실상 이 시만큼 절절한 사랑노래는 없다. 그대와 한 날 한 시에 죽고 싶다고 말하기가 쉬운가. 그것도 그 대상이 남편이라면. 화자는 왼손이고 남편은 오른손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있어야지 박수를 칠 수 있다. 냄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사랑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존경심과 신뢰감이 함께 있어야만 가능한 연애감정이다. 아아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으면! “나 그대만 한 군자를 본 적이 없다”란 말을 내게 누가 해준다면 내 이 목숨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으리.
이제 방향을 좀 틀어, 전통적인 서정시풍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에 입각해 쓴 시를 보도록 하자.
눈꺼풀이 햇살에 감전되듯
아침을 켜면
빛의 속도로 도착하는 하루
밤새 포맷된 세포들이
일제히 눈을 뜬다
업그레이드 될 어제를 알집으로 꾸리고
짜고 맵고 달큰 쌉쌀한 하루치를
북 마크할수록 깜빡이는 하이퍼링크들
조그만 배너 속, 더 조그만 링크도
압축을 풀어내면 경계가 무너진다
그릇된 정보와 악성 코드는 조심할 것.
선한 싸움, 사랑 파일에 적극 액세스할 것.
오늘도 하루를 켜고 재부팅하면
꺼졌던 어제가 빛의 속도로 도착한다
―「굿모닝 부팅」 전문
현대인의 일상적 삶이 얼마나 기계에 얽매여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시다. 시에 동원된 시어가 정보통신시대의 총아인 컴퓨터의 용어들이기 때문에 이 시가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시가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이 구태의연하지 않아서이다. 눈꺼풀이 햇살에 감전되듯 아침을 켠다든가 밤새 포맷된 세포들이 일제히 눈을 뜬다든가 하는 표현은 무척 신선하다. 제 3연의 내용도 ‘낯설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소재와 주제와 표현의 삼위일체. 아래 시의 이런 멋진 표현도 시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한다.
눈치 빠르게 정확한
빅 데이터의 초음속 같은 분열로
부서지면서 눈빛을 지운 소용돌이
―「새 깃발을 든 별들은 제 눈빛을 지우고」 제 3연
가슴 깊숙이 기억을 꽂고
흔적 모두 찾아 모은 후
Delete키 딱 한 번 누르면 되겠지
―「그대를 지우다가」 제 3연
시인에게는 전통의 향기가 어른거리는 연애시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모험과 일탈이 최 시인의 시에서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시집을 읽으면서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기억’과 ‘일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독자에 따라 시인의 지난날을 궁금해 하기도 하고 요즈음 삶의 모습을 궁금해 할 수가 있는데 그런 시가 드물다. 아버지를 회상한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런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한 번 앓을 때마다 뼈가 자랐다
바람을 안을 때마다 뼈가 자랐다
가시를 삼키는 듯 당혹스런 살점마다
선홍빛으로 번식하던 아픔
연체軟體로 태어난 게 화근이었다
45년 간 어둠 속에서
고스란히 뼈가 된 아버지를 만나던 날
퇴적된 흙의 켜 속에서
올챙이처럼 꼬물거리는 나를 보았다
헤엄쳐 일어서느라 놓쳐버린 푸른 시절
살을 에는 시간을 보았다
슬픔이 뭉쳐 뼈가 되는구나
무덤 속에서도
끝까지 남은 것은
앓을 때마다 자라난 무른 뼈였다
―「무른 뼈」 전문
이장을 하기 위해 관을 꺼내기도 하고 화장을 하기 위해 관 뚜껑을 열기도 하는데 화자는 “45년 간 어둠 속에서/ 고스란히 뼈가 된 아버지를 만나던 날”을 기억해낸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다 가신 것일까, 아버지의 고통을 반추하는 화자의 마음이 독자를 슬픔에 잠기게 한다. 이런 시에 담겨 있는 간절함과 애절함도 사랑시에 못지않음에, 앞으로의 시에 더욱 기대를 갖게 된다.
지독한 목마름이었어
하늘은 저승처럼 아득하고
낙하만을 터득한 나비가 되어
자꾸 아래로 나풀대고
지난 시간들이 한 겹씩 벗겨져 내려
편지처럼 쌓인 기억은
가슴 한쪽에서 재가 되고
(중략)
꿈결처럼 아늑한
어머니의 자궁처럼
거침없는 자유로 갇혀 있었어
아버지가 손수 만든 은밀한 물길을 타고
햇살 걸터앉은 저 높은 곳으로 서서히 오르며
초록 잎눈 같은 사랑의 꿈을
뜨겁게 부풀리고 있었어
―「단풍구경 갔다가」 부분
뭇 생명의 생로병사에 대한 시인 나름의 사색이 전개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부모의 유전인자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 유전인자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생명체에서 입자가 된다. 놀라운 것은 식물이다. 씨앗 자체는 생명체가 아니라 물체인데 땅에 떨어지면 생명체로 둔갑한다. 단풍나무를 보고서 지금은 이승에 안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에 대한 다음과 같은 회상기가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장마가 계속됩니다
소리가 빗금을 긋습니다
아픔도 깊어지면 물이 되어 흐릅니다
이리 눅진한 날이면
애써 통증을 끌어안던 어머니
(중략)
오늘은 온통 어둠뿐입니다
먹장 하늘도 침통하기만 합니다
비에 젖을라 가는 길 막힐라
지금은 또 어느 골방에 숨어들어
눈물을 짓고 계시는지요
그 여린 몸을 단호히 쪼개고 계신 건지요
―「눈물을 쪼개서 비를 짓는다」 부분
가족사가 세세히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펼쳐지지는 않지만, 시인 자신은 이 시를 간절히 쓰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시를 더 많이 보여주기를 바란다. 공중목욕탕 탈의실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 시도 우수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빗장이 해제되는
낡은 회로들의 순식간의 에러
낡은 문을 재부팅하고
초기화된 그림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없을까
녹슨 저 몸
나사를 죄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괄약근」 부분
생명체의 몸이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다. “어깨에서 시작된 구부정한 시간이/ 주르르 흘러 하체에서 걸려 있었다” 같은 표현은 놀랍다. 공중목욕탕 탈의실에서 발견한 노파의 똥, 그 똥은 “먹고 먹이는 일에/ 불끈 쥐었던 방심이 풀려/ 몸이 자동으로 열렸던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최혜옥 시인으로 하여금 언어의 집을 세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이런 식의 구체적인 형상화가 앞으로는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시인이 늦깎이로 등단해 시 쓰기에 몰두하게 된 이유를 확실히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시를 보니 시인의 남다른 각오가 느껴진다.
빽빽한 숲에서 피를 말리는 밤
몸에서 종이 타는 냄새가 난다
한 장의 백지에
낯설고 모호한 생각의 무늬를 찍어야 하는데,
스쳐간다
초침처럼
이 초조함을 집중이라 부를까
문장을 파고드는 예리한 눈빛은
행간에서 뻗어 나온 덩굴손에 휘감겨 빠져들고
시에 대한 예언이 지나갈 때
메타포의 지문止門이 포개졌다
―「블랙홀 서재」 부분
시를 쓰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이 어려운 길에 들어서서 이제 첫 시집을 준비하는 최혜옥 시인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길을 어떻게 헤치고 나가 어떤 높이의 탑을 쌓을지는 시인 본인에게 달려 있다. “꼬리를 놓친 생각과 뒤엉킨 복선으로/ 백지는 자꾸 구겨지고” 있다. 쓰면 쓸수록 자신감도 잃게 될 것이다. “수직으로 오르지 못한 파지의 무더기들”, 즉 시인이 이룩한 서재가 언젠가는 블랙홀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지만 결코 운행을 멈추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거꾸러지고 더 굳건히 일어서서 자신의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기 바란다.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태양을 맴도는 이 지구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