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을 각(覺 허공의 꽃)
심완 박전상환
1.
잡으려 하였으나
붙잡을(執着) 것 하나 없고
놓으려(放下着) 하였으나
놓을 것이 일체(一切) 없네
텅 비어 본래(本體) 없는데
그 무엇을 찾는가
2.
깨달음
무엇인가
깨달음은 왜 찾는가
허공(虛空)에
천변만화(千變萬化) 피어있는
한 송이 꽃(一花)
혹시나 그 것이 비록
있다해도
없는 것
3.
수불유 이불유야
(雖不有而不有也)
수불무 유유지야
(雖不無猶有之也)
그 것이 혹시(雖) 비록(猶)
없다해도 있는(有) 그 것
공(空)이란 무(無)가 아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깨쳐라.
ㅡ 마음그릇 心椀 ㅡ
:::
진공묘유(眞空妙有)
마음그릇 心椀 박 찬
진공묘유
(眞空妙有)란
무엇인가 ?
한자를 풀이해보면
* 진(眞 : 참 眞,
匕(化의 획줄임)+
거꾸로 된 首 字의
회의자(會意字)
* 공(空 : 빌 空,
穴(구멍 혈) +
工(만들다 공)의
형성자(形聲字)
* 묘(妙 : 묘할 妙,
女(여자 여) +
少(젊을 소)의
형성자(形聲字)
* 유(有 : 있을 有.
오른손 右) +
月(肉 : 고기 육)의
회의자(會意字)이다.
각각의 단어에
말과 뜻을 직역(直易)하면
"
참(眞)으로 비우면(空)
묘(妙)하게 있는(有) 것
또는
참(眞)으로 비워내면(空)
묘(妙)하게 존재(有)하는 것
"
이라고
해석(解釋)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진공묘유(眞空妙有)란
"
참(眞)되고
참 된 공(空)은
스스로 텅 비어있고
비워있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묘(妙)하게도 그 공(空) 속에는
분명하게 존재(有)하는 것이 있다.
"
라는 의미로써
진실(眞實)로
비어 있다(眞空)는 것은
한계가 없는
무한(無限)한 창조(創造)와
무한(無限)한 소멸(消滅)의
두 가지 가능성(妙有)을
무한(한계가 없이)하게 지니며,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 진공(眞空) ]이라는 명제(命題)
[ 묘유(妙有) ]라는 명제(命題)가
결코 따로 따로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아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보충해서 설명하면
《진공(眞空)》과
《묘유(妙有)》는
일체(一體)의 한 몸으로
동일(同一)한
하나의 연장선상(連長線上)에서
공(空 비움)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유(有 있음 존재)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공즉유 유즉공
(空卽有 有卽空)
일체의 우주만물(宇宙萬物)
모든 것(五蘊 = 色受想行識)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에 따라 일어나는
여러 가지(各各) 조건(12因緣)에
의존(因緣 倚支 存在)된 것이므로
그 실체(實體)와
존재(存在)조차 없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실상무상(實相無相)의
일체가 공무(空無)한 것임과
동시(同時)에
임시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가유(假有)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도 없고(無我)
너도 없으며(無人)
생(生)과 사(死)
있고 없고(有無存在)
고정(固定)된 것도 없으며
영원(永遠)한 것도 하나 없다.
연기緣起)의
법칙(法則) 속에 오직 하나
《진실(眞實)의 완성(完成)》
《궁극(窮極)의 완성(完成)》
마하반야바라밀
(摩訶般若波羅蜜) < = >
원만실성(圓滿實性) < = >
진공묘유(眞空妙有)만이
존재(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한국 불교사에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기신
퇴옹당 성철 대선사
(退翁堂 性徹 大禪師)
큰 스님께서 말씀하신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
《일여(一如)》로써
본래면목 돌아가는 것이요
부처님(佛 世尊)께서 말씀하신
《삼삼매(三三昧)》인 것이다.
삼매(三昧)는
고대
인도의 문장어(文章語)인 산스크리트어(梵語)로는
《샴마띠(Samādhi)》
라고 음사(音寫)하며
인도의 요가(yoga)
불교(佛敎) 등에서 말하는
고요함
즉, 적멸(寂滅)
적정(寂靜)의 명상(瞑想) 상태
내지 정신집중 상태를 말한다.
고도(高度)의
정신집중(精神集中)으로
매우 고요한 상태(寂靜 三昧)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이 것은
깨어있는 상태로 고요한 것이지
졸면서 고요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삼매(三昧)》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
삼매(三昧)는
모든 산란한 마음(散亂心)을
고요(淸淨)히 가라앉히고
정(精)과 신(身)이
고도(高度)로 집중(集中) 되어
일체(一切) 모든 것이 편안하고
안온(安穩)한 경지(境地)
"
이므로
《정(定)》
《지(止)》라고 하는
역어(譯語)가 주어진다.
ex)
삼매정(三昧 定) 삼매로 나아감
삼매지(三昧 止) 삼매를 멈춤
이렇듯
멈추고 나아감을 반복하면서
부처님 진리의 경지(境地)에
닿는 것이 깨달음이다.
방편품에서
깨달음(見性成佛 惺覺)이란
선정(禪定 생각을 쉬는 것)
해탈(解脫 Nirvana)
삼매(三昧 Samādhi)로
각각 나누어져 있는데
선정(禪定)과 <=> 삼매(三昧)는
의미가 거의 중첩되어 있다.
다만
선정(禪定)이
수행(修行)이라는 측면을
보다 강하게 갖는 것에 비해
삼매(三昧)는
얻어진 경지(得地)의 측면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매(三昧)는 다시
《삼삼매(三三昧)》라고 해서
공삼매(空三昧)
무상삼매(無相三昧)
무원삼매(無願三昧)
셋으로 나누어진다.
* 공삼매(空三昧)란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본래 고정적인 실체가 없고(無我)
일체
모두는 공(空)이라고
이해(理解)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고정되고 안온하게 되는 것이며
* 무상삼매(無相三昧)란
삼라만상은 공(空)함으로
본질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다(無相)라고
이해해서 마음이 정(淸淨)해지고 안온하게 되는 것이며
* 무원삼매(無願三昧)란
온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본질적(本質的)으로는
무상(無相)이기 때문에
집착해서 원(願)하고
구(求)하는 일이 없는(無願)
안온한 경지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삼삼매(三三昧)에서는
이상(理想)의
인격(人格)인 부처(佛)와
보살(菩薩)
그리고 번뇌(煩惱) 투성이
범부(凡夫)와의 사이에도
본질적으로는 차이(差異)가 없고
범부(凡夫)도
그대로 부처(自性卽佛)로
각지(覺知)가 되는 것이다.
원래 부처(佛)와 범부(凡夫)는
본질적으로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실체적 존재(實存)하는 모습은
차이(差異)가 많이 난다
범부(凡夫)로서는
그 차이를 고정적(固定的)
실체적(實體的)인 것으로
파악(把握)해서
체념해 버리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어떠한 상태이건
자신 속에
부처가 될 가능성(佛性 佛界)의
종자(佛種子)가 있다고 믿고
부처(佛 菩薩)를 목표로
도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 성품
불성(佛性)이 평등(平等)하게
있다는 것을 확신해서
만인(大衆)에게 스스로
존경(尊敬)하는 마음을 갖고
나(我)를 낮추어 하심(下心)으로
접해 가는 모습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삼삼매(三三昧)》라고
할 수 있다.
이 것은
곧 내 마음 속에 망령된 생각
번뇌(煩惱 妄想 雜念)가 없으면
그대로가《진공(眞空)》이고
그대로가《묘유(妙有)》이며
진공묘유(眞空妙有)가
그대로《삼삼매(三三昧)》
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공(眞空)이란
불교(佛敎)의 뿌리가 되는
근본 교리(敎理) 가운데 하나인
《공(空)》으로서
참되고 참(眞) 된 공(空)이란
스스로 각각(各各) 별도로 분리된
불변(永遠不變)의 실체(個體)가 아니라
사물(事物)
그 자체의 존재양상(存在樣相)
곧 다양한 우주만물(宇宙萬物)
그대로가
인연(因緣)의 조합(造合)인
연기(緣起)이며
《십이연기(十二緣起)》가
바로 공(空)의 뜻임을 바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아야만 알게되는
진공묘유(眞空妙有)
"
참(眞)되고 참 된 공(空)은
스스로 텅 비어있고 비워있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묘(妙)하게도 그 공(空) 속에는
분명하게 존재(有)하는 것이 있다.
"
라는 뜻과 의미로
진공묘유(眞空妙有)를
기억하고 이해(理解)하면
될 듯하다. - 心椀 -
강원도 정선 동강변
별빛 총총한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