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앉자, 엉치가 불에 덴 듯 아프다.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서성이다 다시 살며시 앉으려니 기다렸다는 듯 매몰차게 나를 뱉어내는 소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긴 이 소파는 처음부터 나와 맞지 않았다. 바닥은 너무 딱딱했고, 기대면 허리가 아팠다. "아, 정말! 이 소파는 최악이야!" 투덜대는 내게 또 까탈 부린다는 남편의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나도 내가 예민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기에 소파에 폭신한 방석을 놓아도 보고, 견디다 못해 두툼한 겨울 이불을 깔아두기도 했다. 이러저러 해봐도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제는 소파 곁에만 가도 몸이 반응한다.
다른 의자들은 견딜 만한데 유독 소파가 말썽이었다. 어느 날 친구들에게 내 증세를 하소연하자. 넌 걸을 때 허리가 삐딱해 보여 이구동성이다. 나만 모르던 내 뒷모습이라니. 민망함을 감추려고 소파를 좋은거로 바꾸면 괜찮을까? 너스레를 떨었다. 듣고 있던 이웃사촌이 나를 불렀다. 조카가 한의원을 하고 있다며 진료을 권했다.
한의사는 혀를 끌끌 찼다. 의사가 손으로 누르는 몸의 곳곳이 자지러지게 아팠다. 그간 잊고 있던 통점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어깨 인대가 늘어났고, 허리 디스크가 있고, 협착증 또한 심하단다. 다리가 저리지요? 종아리도 화끈거리지요? 하며 대략 난감이란다. 그의 진단에 지난날의 우여곡절이 떠올랐다 사실, 허리가 삐딱하게 틀어져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증세는 연례 행사처럼 찾아들곤 했다. 울며불며 찜질한다, 파스를 붙인다, 며칠 법석을 떨다 보면 수그러들기도 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고개를 드는 통증, 그런 상태로 십여 년을 견뎠다. 쩔쩔매던 차에 마침내 임자를 만난 셈이었다.
"저랑 약속하세요. 암말 말고 스무 번 정도 침을 맞아봅시다. 반드시 좋아질 거예요. 믿고 꾸준히 오실 거지요?" 나를 '이모'라고 부르며 살갑게 구는 훈남 한의사의 말에 통증이 단박에 줄어든 듯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묻자, 무엇보다 너무 오래 않아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자나 바닥에 장시간 않아 있지 말아요."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 몸을 풀어주란다. 소파 이야기도 꺼냈다. "소파가 경고를 보냈네요. 정말 고마운 소파네." 하며 웃는다
침을 맞는 시간은 고작 10여 분, 평소 같으면 훅 지나갔을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뭉친 근육이 풀어지면 틀어진 부분들이 제자리를 찾아 간단다. 병증을 잡겠다는 침의 의지는 결연하기만 하다. 나는 눈을 감고 즐기기(?)로 했다. 침을 처음 맞고 온 날, 소파 위 잡동사니들을 다 치워버렸다. 구질구질 하게 끌고 다니던 걱정이 신기하게 말끔해졌다. 아프면 적극적으로 치료 받으면 될 일이었다. 그 간단한 진리를 왜 외면했던 걸까! 아플 때마다. 허리가 굽어 고생하던 말년의 엄마가 어른거렸다 자꾸 노쇠해지려는 마음을 자책하다가. 때론 자포자기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케케묵은 금언이 나이 들어 무슨 소용일까 했는데 새록새록 되새겨졌다. 통증이 잠잠해졌는데도 소파에 앉으면 여전히 아팠다. 몸이 기억하는 아픔이라니! 이제 이 소파와는 영영 이별의 강을 건너야겠다. 묵묵히 거실을 지키고 있는 녀석에게 눈길이 머문다. 나를 들여다볼 염은 않고 애먼 소파 탓만 해댓으니 . .. 까닭 없는 핑계를 대며 나를 방치해 온 꼴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늘 마음을 다독이는 데만 급급했다. 참고 잘 견뎌왔다고 여겼는데 정작 몸은 아니었나 보다. '생각만으로 살아지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순간, 숨비 소리가 휘파람처럼 귀를 스쳤다. 환청을 따라 숨을 내쉬어 본다. 이제라도 길을 찾았으면 되었다. 자질구레한 상념이 바람결에 흩어졌다.
침을 맞을수록 두루뭉술 온몸을 감싸고 있던 통증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여기가 많이 아팠구나, 쓰다듬어본다. '병은 있는데, 통증이 없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볼 일이다. 내 곁에는 든든한 건강의 후원자들이 있지 않은가. 가슴이 활짝 열린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봄볕이 내리기 시작한 내 몸을 기꺼이 보듬어본다.
한의사가 침을 놓는다. 찌릿~! 따끔! 그는 침을 놓기 전에 연신 신호음을 넣는다. 그의 음성에 따라 침의 강도를 가능해 본다. 그간 익숙해졌으니 덜 아프겠지 했는데 에쿵, 신음을 내놓고야 만다. 예상치를 넘어서는 대침의 통감! 의사는 회를 거듭할수록 침의 강도를 알기에 더 아플 수 있다고 했다. 아는 아픔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의사의 예고음은 순간순간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바라건대 늘 허둥지둥하는 내 여정에도 어디선가 '이번 놈은 세답니다!' 하는 친절한 경고음이 들려온다 고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