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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5-10
신 5:16-21
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19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20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신 5:16-21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 네가 그대로 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가 오래 살고 좋은 일을 많이 볼 것이다. 17) 살인하지 말라. 18) 간음하지 말라. 19) 도둑질하지 말라. 20) 네 이웃에게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다른 사람의 소유물은 그의 집이나 토지나 종이나 소나 나귀나 다른 어떤 것도 탐내지 말라.'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하나님 사랑의 계명에 연결됩니다(마 22:37-39).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성도들의 당연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16) 부모 공경은 단순한 효의 명령을 넘어섭니다. 부모를 통해 신앙의 전승이 이어지고, 그럴 때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서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진심을 담아 부모를 존경하고 섬기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열매 맺을 때에 생겨지는 첫 번째 열매입니다.
살인하지 말라(17) 개인적이며 고의적인 살인을 금지하십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약한 사람들이 강자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주십니다. 한 개인의 생명을 무엇보다 존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뜻을 받아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을 우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18) 남편과 아내가 충실한 결혼관계를 유지하여 가정을 보호하도록 당부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제도입니다. 결혼생활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부부 간에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간음의 문제는 부부의 신뢰 속에서 가정을 지켜 가는 데에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안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19) ‘도둑질’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가나브’는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애써 이루어 놓은 노력의 결과를 훔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내가 일군 보람, 내가 얻은 결실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동일하게 다른 이의 수고와 노력도 지켜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20) 거짓말로 우리의 명예나 위신이 떨어지지 않도록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도 누군가를 거짓으로 모함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성실하듯 타인에게도 성실해야 합니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21) 하나님은 타인으로부터 나의 소유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도 타인의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아내, 집, 밭, 남종, 여종, 소, 나귀, 모든 소유가 차례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탐욕이라도 용납되어선 안 됩니다.
적용: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은 이웃을 향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십계명을 삶 속에서 살아내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집안 사람이 혹시 눈에 거슬리는 허물이 있다고 하여도 몹시 성내지 말 것이며 또한 가볍게 버리지 말 것이니 그것을 말하기 어렵거든 다른 일을 빗대어 우회적으로 표현하라. 그렇게 하되 은근한 말로 하라. 오늘 깨닫지 못하거든 내일을 기다려 두 번 경계하라. 봄바람이 얼었던 땅을 풀고 생명을 돋아나게 하듯 부드러움과 인내심을 갖고 가정의 냉기를 녹이라. 이것은 가정의 규범이다.’-채근담 교훈
< 설 교 >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합시다
신 5:16 / 조재호 목사
1. 부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부모님은 나의 생명을 이 땅에 있게 하신 분이십니다. 부모님은 생명의 은인입니다. 낳아주실 뿐만 아니라 길러 주신 분이십니다. 부모님은 자기 생명을 태워서 우리를 키우신 분이십니다. 마음 졸이고 마음을 태우느라고 머리카락이 물이 다 빠져 희어 지신 분이십니다. 옷을 오래 입어서 물이 빠지는 것과 같이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머리카락이 흰 것은 힘이 다 빠져서 머리카락이 희어진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희어졌다는 것은 희생의 표시이자 가장 귀한 명예를 의미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 16:31)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잠 20:29)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 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 46:4)
하나님께서 교회의 어른들과 가정의 노부모님들을 평강으로 품어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높은 산과 같고 어머니는 넓은 바다와 같은 분이십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속시원하게 울 장소가 없어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는 매일 머리가 셋 달린 괴물과 싸우러 나간다.
그 괴물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사회와 직장에게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이나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이나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높은 산과 같습니다. 흔들리면 안되는 분이십니다. 약해지면 안되는 분이십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처럼 가산을 다 탕진하고, 아버지의 마음에 못을 박았더라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언제나 돌아올까 밤낮 바깥문을 열어놓고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넓은 바다와 같습니다. 퍼내도 퍼내도 다 퍼 낼 수 없는 바다와 같습니다.
병원에 아침 일찍 어느 모녀가 찾아 왔습니다. 25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아가씨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가 두 손을 꼭 잡고 왔습니다. 그들은 모녀였습니다. 잠시 후 그 모녀는 원장실로 안내됐습니다. 그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전, 외가에 놀러갔다가 농기구에 다쳐서 왼 손가락을 모두 잘렸습니다. 다행이 네 손가락은 접합수술에 성공했지만 네 번째 손가락만은 없는 채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달에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신랑이 결혼 반지를 끼워줄 넷째 손가락이 없어서 엄마가 찾아온 것입니다. “딸의 손에 결혼반지를 낄 수 있는 손가락을 주고 싶은 것이 이 못난 어미의 소원이에요” 어머니는 늙고 못생긴 손이지만 자기 손가락을 딸의 손에 접합수술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딸의 손에 결혼 반지를 끼워 주고 싶어서 자신의 손가락이라도 잘라서 주기를 원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세상을 온통 물로 뒤덮고 있는 바다와 같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바다와 같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전남 광주에 사는 101세 된 박옥랑이라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68세 된 딸 조의순씨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할머니가 중학교 교사로 일할 때 출근한 사이에 가정부가 업고 키우다가 4살되던 해에 그만 딸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 후로 딸은 불구가 되었습니다. 불구가 된 딸은 평생 방에 누워 천정만 쳐다보며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딸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엄마에게서 글을 배우고 엄마가 들려주는 문학서적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 딸이 지은 시가 있습니다.
≪얄미운 행복≫
어느 곳에 숨었는지
저 산너머 숨었을까
저 바다 건너 숨었을까
저마다 너를 찾아 헤매어도
얄미운 행복은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할머니는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어 30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100살이 넘도록 딸을 수발했습니다. 딸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느라 늙기도 힘들다고 말합니다. “내가 세상 떠나면 딸이 어떻게 살지 캄캄하다. 안될 일이지만 내가 세상 등질 때, 딸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 68세 된 딸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힘보다도 강합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위대합니다. 우리 가정은 그런 희생과 사랑에 힘입어 살아왔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너를 낳아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인륜의 기본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을 향한 공경과 사랑의 계명이 끝나면 가장 먼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은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공경은 믿음 생활의 근본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곧 믿음생활입니다. 어떻게 부모님을 섬겨야 합니까? 어떻게 효도해야 합니까?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어머니)를 기쁘게 하라”(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라” 노부모님들의 여생이 행복해야 합니다. 노인 전문가들은 노인의 행복은 3가지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육체적으로 편안하고 건강해야 한다. 둘째는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외롭지 않게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사회나 단체나 국가가 아니라 가족과 자녀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부모님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아픈 서러움, 외로운 서러움, 궁한 서러움이 그것입니다.
부모 효도 십계명은 우리들이 효도하는데 있어서 아주 유용한 지침이 됩니다.
①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라
② 부모님에게 일할 것을 드려라
③ 취미를 갖도록 도와드리라
④ 여행의 기회를 드리라
⑤ 나이 듦을 이해하라(마음 소심, 기억감퇴, 괜한 고집, 잔소리 등)
⑥ 외출할 때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라
⑦ 집에 온 손님이 부모님께 먼저 인사드리도록 해라
⑧ 사소한 병도 병원에 모시고 가라
⑨ 매월 일정한 용돈을 드리라
⑩ 천국 소망을 갖도록 믿음생활을 도와드리라
살아계실 때, 옆에 계실 때 잘 해 드려야 합니다. 효도와 공경은 인륜의 기본이자 하나님의 첫째가는 명령입니다. 효도와 공경은 부모님이 행복해 지는 길이고, 가정과 가문의 축복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신 5:16 / 이삼규 목사
오늘은 어버이날이면서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가운데 다섯 번째 계명을 중심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모든 율법은 열 가지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대신계명’과 ‘대인계명’으로 분류합니다.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를 ‘대신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나아가서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의 계명을 ‘대인계명’이라고 하는데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인계명의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은 대인계명의 첫째 계명일 뿐 아니라 축복의 약속이 붙은 계명입니다. 대인계명 중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이 계명에만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1.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
1)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어떤 이유를 붙여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성경에서는 말세가 되면 여러 가지 죄악이 번성하는데 그 중에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에게 야단맞았어."하던 아이가, 중, 고등학생이 되면 "엄마하고 싸웠어"하고, 청년이 되면 "엄마 좀 혼내줬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세상에서 성인이 되기까지는 부모님의 말할 수 없는 희생과 수고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의 빚을 진분이 있다면 부모님입니다.
그래서
딤전5:8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경고하며 부모 공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부모 공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 부모공경에 관한 것을 쭉 뽑아 보았는데 열 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 뽑아 정리를 해보니 "하라"는 것 세 가지이고 "마라"는 것이 일곱 가지였습니다.
먼저 "마라"는 것을 말씀드려보면,
1. 부모님을 경홀히 여기지 말라.(신27:16,잠23:22)
2.부모님을 훼방하지 마라.(마15:4)
3.부모님을 치지 마라.(출21:15 딤전1:9)
4.부모님을 저주하지 마라.(출21:17, 레20:9, 잠20:20)
5.부모님을 업신여기지 마라.(잠15:20)
6.부모님을 구박하거나 쫒아내지 마라.(잠19:26)
7.부모님을 조롱하지 마라.(잠30:17)
만약 이것을 어겼을 때는,
1.반드시 죽으리라-너 죽을 줄 알아!(출21:15,17, 레20:9, 잠28:24, 마15:14, 신21:18-21-돌로 쳐 죽이라)
2.등불이 흑암 중에 꺼진다(잠20:20).
3.눈을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새끼에게 먹힌다(잠30:17).
4.살인죄에 해당한다(딤전1:9).
그 다음은 "하라"는 것입니다.
1.주안에서 공경하라(마15:4, 막10:19, 출20:12, 레19:3, 신5:16).
2.즐겁게 하며 기쁘게 하라(잠15:20, 23:25).
3.주안에서 순종하라(신21:18-21, 엡6:1, 골4:30, 잠4:1, 6:20, 13:1, 15:5).
2)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라는 말은 "네가 주님 안에 있다면", "네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네 삶이 예수를 믿고 달라졌다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만약 네가 이러하다면 너는 더욱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골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에베소서의 말씀은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골로새서에서는 표현이 약간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를 순종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부모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시키는 일이 나쁜 일이라도 순종해야 합니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라는 말은 부모에 대한 순종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3)인간으로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옳으니라."는 표현이 신약성경에만 183번 나옵니다. 이 말은 주로 절대적 가치를 강조할 때 쓰입니다. 즉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당위의 일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중세 신학에서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의 행위를 가리켜서 “이것은 '자연적인 정의'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자연에 따르는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4)축복받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에베소서 6장 3절에도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여기에서 '잘 되고'라는 말은 폭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은 사실입니다. 구약에서는 대부분 물질적인 축복을 의미하였습니다. 축복을 말할 때 구약은 주로 물질적인 축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오면 축복의 개념은 달라집니다. 특히 에베소서에서는 신령한 복, 영적인 축복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는 네가 잘 되고'라는 말은 무엇이든지 잘 풀릴 것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잘 되고 우리의 질적인 삶에 축복이 임하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또한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은 계산적으로 오래 산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삶을 더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가운데 축복의 약속이 들어 있는 첫 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부산 부전교회의 교회당을 지어서 헌당한 고 백남조 장로님은 하나님 공경과 부모 공경의 본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사업적으로 교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간 귀한 분입니다.
6. 25직후 부산의 부전교회가 미군이 세워 놓은 조그마한 천막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피난 온 사람들이 천막으로 모여들어 장소가 협소하므로 예배당을 건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땅 주인과 교섭하여 미군에 의해 징용되었던 그 땅을 싼 값에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재정난으로는 교회당 건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6년 동안 폐결핵으로 병석에 누워있던 백남조 집사가 자기 집을 팔아 그것의 반을 건축 헌금으로 바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백남조 집사의 부인은 동네 집에 다니면서 빨래품을 팔아 됫박 쌀을 구해다가 그 날 그 날을 연명하다시피 했습니다. 백집사는 집을 다 바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노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그럴 수는 없고 집을 반만 바치고 반으로는 판잣집이라도 사서 노부모님을 모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백집사는 어린 아들을 시켜서 집의 반을 바치겠다는 쪽지를 써서 강대상에 올려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광고를 듣는 순간 전 교인들의 마음에 큰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몇 달 후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군 부대의 출입증을 받아 세탁업을 하려고 하던 어떤 사람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백집사의 집을 와서 보고 그 집의 방과 마당을 12년간 사용하기로 하고 임대료를 지불하게 되었는데 1년간의 임대료는 그 당시 시세로 그 집을 살 수 있는 금액의 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백집사는 그 임대료를 받아서 하나님께 바치게 되니 집을 반 바치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백집사의 부인도 자기 집 울안에서 빨래품을 팔게 되었고 늙은 어머니도 함께 빨래품을 팔게 되니 1년 동안 걱정 없이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백남조 집사의 정성 어린 헌금을 시작으로 부전교회당은 아름답고 멋지게 지어져서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백남조 집사는 하나님 경외와 부모 공경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삶을 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시간 관계로 다 하지 못합니다. 백남조 장로님은 한 평생 부모 공경과 하나님 경외의 신앙으로 살면서 가정적으로 사업적으로 교계 적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백 장로님은 사당동에 있는 총신대학교 부지를 기증했습니다. 신학교 건축을 준비할 때도 그는 앞장서서 물질을 쏟아 바쳤습니다. 총신 이사회가 모여 건축비 마련에 고심하며 회의를 거듭했으나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백남조 장로님은 이사장을 밖으로 조용히 불러내어 “노령의 어머니를 초라한 집에서 돌아가시게 할 수가 없어서 새 집을 지어 드리려고 얼마간 준비해 둔 돈이 있는데 우리 집보다 신학교 건축이 급하니 그것을 바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사들은 모두 눈물로 감격했고 지금도 그 때를 회상하면 목이 메인다고 말합니다. 백남조 장로는 고향에 교회와 학교를 설립했고 수입이 생길 때마다 불우한 고아와 양로원의 어른들을 먼저 돌아보았으며 누구든지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하면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백남조 장로님은(1913-1988) 부모공경과 하나님 공경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 아름답고 멋지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2.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할까요?
1)어린 아이 때는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무엇보다도 순종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순종할 줄 모르면 커서도 부모에게 순종할 줄을 모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나 기타 죄짓는 일 외에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가 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19남매를 키우면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분인데, 그 분은 자녀들이 어려서 자기 고집을 꺾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는 부모는 그 자식을 마귀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부모가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교육시켜 주었기 때문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무질서하고 살벌하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된 것은 자식을 하나, 둘만 키우면서 과잉보호하고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체벌이 없어졌기 때문이고, 자유방임주의 교육철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2)청년 때에는 용납하고 감사함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자기 부모가 최고로 보이다가도 자라면서 사춘기가 되고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부모의 잘못과 결점을 보게 됩니다. 공부를 좀 해서 지식이 들어가면서 부모의 행실을 비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부모가 약점이 있고 실수가 있어도 이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감사하면서 공경해야 됩니다. 공경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부모를 통해서 먹고 입고 양육되었으며 많게 든 적게 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용납하고 감사하며 공경해야 합니다.
용납이란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지나친 것 같고 잘못하는 것 같아도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도덕이 땅에 떨어져서 학생이 선생을 구타하고 자식이 부모를 갖다버리고 구타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수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기도 합니다. 상상도 못할 죄악들입니다.
부모에게 죄가 있고 실수가 있고 결점이 있어도 용납하고 감사함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존경이 안 가고 감사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그런 부모를 공경하면 그 자식은 더 복을 받습니다.
3)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를 인정하고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사이 부모를 모시고 부모를 유기하는 자녀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주도나 해외여행 가서 늙은 부모를 버리고 오는 자식들이 많습니다. 자식을 어렸을 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었으니 성인이 되면 입장이 바뀌어서 늙은 부모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늙으면 자식이 부모의 희생과 노고를 알아주기 원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고,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가족이나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도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했는데 하물며 자기를 낳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키워 주신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죄겠습니까?
4)부모의 영혼을 구원하고 영혼이 잘되도록 돌보아 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어느 부흥 강사님은 부모가 안 믿으면 한 달만 금식하고 기도하면 믿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옥 갈 부모를 구원하여 천국에 가시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노력인들 아끼겠습니까? 육신이야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행복하게 해드려도 100년 미만에 끝나지만 영혼이 잘되는 것은 천 년 만 년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부모님이 계시다면 어찌하든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드리는 것이 세상에서 고대광실 높은 집을 사드리고 호의호식하게 해드리는 것보다 억만 배 더 큰 효도입니다.
만일에 믿는 자녀를 둔 부모가 이다음에 지옥 불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그 자식이 원망스럽겠습니까? “이런 고통의 장소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잡아끌어서 교회로 데려 갔어야지, 내가 싫단 다고 그대로 두었느냐, 못된 자식아!”라고 할 것입니다.
일본에 강도질하는 아버지에게 예수님을 잘 믿는 19세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아버지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하고 눈물로 호소도 해 보았으나 도무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히브야 공원으로 칼을 들고 강도질하러 나가는 것을 그 딸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입던 숙녀복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들고 다니던 핸드백을 들어 아버지의 뒤를 몰래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컴컴한 곳에서 살해할 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숙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기 딸인 줄 모르고 칼로 찌르고 핸드백을 빼앗아 도망갔습니다. 집으로 달려가 돈이 얼마나 들었나 보려고 불빛 아래서 자세히 보니 많이 보던 핸드백이었습니다. 그 백을 열어보니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바로 자기 딸의 편지였습니다. 읽어보니까 “아버님 전상서. 아버지, 이 불효한 여식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늘밤 아버지의 칼날에 죽어 쓰러지는 것이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잘못인 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모시는 길은 이 길밖에 없는 줄 알고, 저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최후로 이 길을 택하였으니 나를 자식으로 아시거든 불쌍하다 보시고 회개하고 예수님 믿으시다가 천국에서 하나님 보좌 앞에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불효 여식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편지를 읽고 통곡하며 가슴을 치다가 그 길로 달려가 자수하였다고 합니다.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여 모범수로 출감되어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고 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부모님을 전도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큰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요, 축복받은 계명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부모공경을 다짐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어 축복받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효도를 명하신 하나님의 의도
신 5:!6 / 이동아 목사
68세 전신마비 장애 딸 50년 돌본 '101살 엄마' 란 제하의 기사에서 이 세상의 어머니의 모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01세의 박옥랑(朴玉郞.광주시 북구 우산동 주공아파트) 할머니-는 자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 된 딸을 돌보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 상태로 누워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모녀는 현재 광주시내 13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서로를 거울삼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朴씨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朴씨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 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 뒤 딸은 불구가 된 것입니다. 朴씨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업고 '용하다'는 병원.한의원.침술원 등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그 뒤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60년을 살아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朴할머니는 딸을 언니 집에 맡기고 학교에 계속 나갔으나 1953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여중에서 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습니다.
"딸의 상태가 악화된 데다, 생업이라는 핑계로'아픈 딸'을 혼자 방에 방치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거죠." 교직을 그만 둔 뒤 朴씨는 딸에게 글공부를 시켰습니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습니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습니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쳐 갔습니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습니다.
'얄미운 행복/어느 곳에 숨었는지/저 산 넘어 숨었을까/저 바다 건너 숨었을까//저마다 너를 찾아 헤매어도/얄미운 행복은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딸이 몇 년 전에 지은 '얄미운 행복'이란 시의 일부입니다. 어렵게 한 마디씩 뱉어내는 시구를 어머니가 공책에 받아 적은 것입니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朴할머니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웃었습니다. 박할머니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딸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朴씨는 정부에서 매달 52만원씩 나오는 돈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꼭 저축을 합니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趙씨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나의 어머니"라며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朴씨가 사는 아파트에 간병 봉사를 하러 다니는 유상엽(44.여)씨는 "할머니는 딸을 돌봐야 한다는 정신력 때문에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다"며 "이들 모녀를 볼 때마다 모정(母情)은 위대하고 지고(至高)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시대의 어머니의 대명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감동을 주는 모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모님의 헌신이요 사랑인 것입니다. 이 어머님의 은혜를 그 사랑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으며 무엇으로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 모두는 이 숭고한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 앞에 엄숙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녀 때문에 청춘도, 행복도, 직장도 반납하고 오직 장애자인 병신 자식을 위하여 소망 없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온 박할 머니의 일생에서 끝없이 사랑하시고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박할머니의 모습이 이 땅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대리권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직적인 사랑을 공급받아 수평적인 사랑의 공급을 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모든 삶의 표준을 삼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4계명까지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고 다섯째 계명부터 열째 계명까지는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인 것입니다.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할 것인가의 실제가 이 땅에 속한 부모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익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어버이의 자식 사랑에 대한 비유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는 선험적인 체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으로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은 (잠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는 말과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되 마치 하나님을 공경하듯 섬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존재론적인 면에서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부모를 마치 하나님을 공경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고 부모에게 불효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가운데서 구원하여 내신 구속자로서 애굽 백성들과 구별된 삶을 규정하는 십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란 말입니다. (요일4:19-21)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는 하나님께 순종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부모님께 하듯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순종하게 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구체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부모님에게 사랑의 매를 맞아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징계하여도 공경하였다면 모든 영의 아버지의 징계를 받으면 더욱 복종하지 않겠느냐는 히브리서 기자의 지적입니다. (히12:8-10)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 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예표입니다.
교육학자인 쿠주마 박사가 젊은 엄마로서 직접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통계로 내어보았는데, 한 살, 세 살, 다섯 살 난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 한 일은 32회의 기저귀를 갈았고, 71회의 숟가락을 아기의 입으로 날랐으며, 화장실 변기에서 노는 아이들을 13회 밖으로 끌어냈고, 옷에 음식물을 흘리거나 똥을 싸서 18회 옷을 갈아 입혔으며, 그네를 밀어준 것만도 623회였으며, 세 아이를 18세까지 키우는데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은 1만 8천시간이었다. 고 합니다. 우리를 지키는 하나님은 졸지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낳은 부모님은 우리를 혹 버릴 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신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십니다.
부모님의 희생은 하나님의 희생의 예표인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한 아들이 교통사고로 눈을 다쳤는데 결국 실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아들의 성격이 삐뚤어져가고 거칠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얘야, 오늘 내가 안과에 다녀왔는데 사형수들이 죽을 때 기증한 눈으로 이식수술을 하면 네 눈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더구나, 수술할까?”하고 물었습니다. 안과에 와보니 과장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식 수술 후에 퇴원할 무렵이 되니 사람의 모습이 기둥같이 눈사람 같이 보이더니 온전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한쪽 눈에 붕대가 감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왜 붕대를 감으셨습니까?” “응, 너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몇일 동안 잠을 못 자고 간호를 했더니 눈병이 났구나” 예감이 이상한 이 아들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붕대를 풀어보니 글쎄 어머니의 오른쪽 눈을 빼서 아들 눈에 이식 시켜주고 어머니는 대신 실명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영원히 죄악 속에서 멸망 받을 죄인들을 위하여 아들을 내어주신 생명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예표한 것입니다. 아들을 내어 주신이가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효도를 통하여 복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장로님은 20여 년 간 거의 식물인간처럼 병치레를 하시면서 거의 100세에 가깝게 수를 누리느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효도를 통한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렇습니다. 그 부모를 모신 장로님은 범사에 형통하여 모든 자녀들이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종수 박사 간증을 들으니까 그는 부모로부터 노인을 잘 공경하는 효를 배웠습니다. 길거리에 거지도 집으로 모시고 와서 씻겨 재우고 거리에서 갈 곳 없는 노숙자에게 자기가 가진 수중의 모든 돈을 구제하는 데 쓴 그는 이 땅에 주님으로 원종수 박사에게 복을 주시려고 나타나신 성육신 하신 주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노인 부모님을 모신 분들은 땅에 육신의 모습을 하고 사시는 하나님이 부모라고 생각하고 늘 공경하고 잘 모시기를 바랍니다.
효도에 대한 많은 가르침과 교훈이 있습니다.
명심보감/그 사람을 알려고 한다면 먼저 그 벗을 보고, 그 아비를 알려고 한다면 먼저 그 자식을 보라. 아비가 인자하면 자식이 효행 하느니라.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면 자식도 또한 내게 효도를 할 것이니 자신이 이미 효도를 하지 않으면 자식이 어찌 효도하게 되겠는가?
중용/인(仁)이란 사람다움이니 어버이를 친근히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의(義)란 마땅함이니 현명한 이를 존경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논어/자식이 능히 부모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을 것 같으면 효도할 것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인)을 이룩하는 근본인 것이다. 효성스럽고 자애로우면 충성스러워진다.
불경/부모를 잘 섬기고 처자를 잘 보살펴라. 지극한 도는 효순심(孝順心)이다.
효경/효도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이 없고 효도하고서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효도하고서 예의가 없고 지혜가 없고 신용이 없는 자가 있을수 없는 것이다. 무릇 효도는 덕의 근본이다.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 가운데 효도보다도 큰 것이 없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은 그를 하나님 옆에 모시는 것 보다 큰 것이 없다.
성경적 효도가 세상적 효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 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엡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성경적 효도는 윤리나 도덕적인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누가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말합니까? 이것은 기독교에 대하여 너무 무지하여 말한 것ㅇ비니다.
[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세상 적인 효도 사상은 단순히 사람의 사상이요 윤리관이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날 낳으시고 기르셨기에 그 보답으로 하는 효도가 아닙니다. 비록 부모의 자격이 없어 보여도 공부도 잘 시켜주지 못하고 잘 입혀주지는 못할지라도 부모님은 나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세운 권위자로 믿고 순종하고 공경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② 주안에서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심청이와 같이 자기 몸을 팔아 아버지를 봉양한다든가 또는 창녀 노릇을 하여 부모를 섬기고 동생을 학교에 보낸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효도도 사랑도 아닌 것입니다. 또 주일을 범해 가면서 성묘를 한다든가 부모의 시체 앞에서 무덤 앞에서 절하거나 제삿상을 차려 놓는 것은 성경적인 효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십계명 중 제l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에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절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이라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가증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생명이 떠나간 시체 앞에서 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효도하라는 것은 세상 적인 효도와 다른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서 그 뜻 안에서 효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③효도에는 상벌이 있습니다.]
인간이 당연히 실천해야 할 효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보상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만큼 효도는 중요한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과 같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부모님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급
1.장수하는 복을 누리리라.(신5:16)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 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2.땅에서 복을 누리리라.(엡6:3)
(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3.하나님을 기쁘시게 함(딤전5:4)
(딤전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벌
1.부모님을 경홀히 여기지 말라.(신27:16)
(신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 멘 할찌니라"2.부모님을 훼방하지 마라.(마15:4)
(마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 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3.부모님을 치지 마라.(출21:15 딤전1:9)
(출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4.부모님을 저주하지 마라.(출21:17)
(출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5.부모님을 조롱하지 마라.(잠30:17)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신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 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19) 그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정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20) 그 정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찌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학대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까리따스 노인학대상담센터는 7일 “올 1~4월 사이 전국 11개 지역 상담전화를 통해 신고된 노인학대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4건에 비해 5.25배 증가한 598건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상담센터측은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노인학대에 대한 자각이 증가, 그동안 신고를 꺼렸던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관련기관에 도움을 청했기 때문에 신고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또한 최근 경제불황속에 상속과 부양 등 금전문제로 인한 가족 간 갈등이 늘어난 것도 노인학대가 증가한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노인학대의 유형은 폭언과 냉대 등 언어·심리적 학대가 224건(37.5%)으로 가장 많았으며, 장기간 밥을 주지 않거나 부양을 거부하는 방임형 학대 162건(27.1%), 폭행 등 신체학대 116건(19.4%), 용돈을 주지 않는 등 경제적 학대 75건(12.5%)이 뒤를 이었습니다..
상담센터는 “최근 미리 유산을 상속해 주었는데도 부양을 거부하는 자녀들에 대해 재산을 돌려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노인학대 가해자의 절반 가량은 아들(42.9%)이었으며 이어 며느리(25.8%), 딸과 사위, 손자 등을 포함한 가족(14.1%), 배우자(9.1%) 등의 순이었습니다. 노인학대 신고는 본인(38.6%)이나 가족(34.7%)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웃이 신고하는 경우는 8.9%였습니다..
손옥경 상담원은 “노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이 해체되고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심리적, 경제적으로 학대받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며 “자신이 학대를 받더라도 자식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참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을 고려할 때 잠재된 노인학대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부모님께 어떻게 효도해야 할 것인가?
[① 육신을 편안케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로 봉양해야 하는데 재력이 없으면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부드러운 옷과 좋은 음식과 편한 잠자리를 마련해 드림으로 효도해야 할 것입니다.
신문을 보니 가출 노인이 날로 늘어간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점점 핵가족화 되어 감에 따라 노부모님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박대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② 마음(혼)을 편하고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해야 됩니다. 성경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서 죄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부모님의 뜻에 순종해 부모님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피난가서 기르던 아주 영리한 개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이 영리한 개는 심부름도 혼자 잘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직후 주인과 함께 시장 엘 갔는데 그만 너무 복잡해서 주인과 개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며칠이 지나도 개가 돌아오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개가 시장 바구니에 썩은 생선을 담아 가지고 돌아온 것입니다. 발에는 피가 나고 몸은 먼지로 덮여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개가 시장을 모르니까 전에 피난가서 살던 그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 가지고 왔답니다. 수백리 길을 걸었기에 몸은 지치고 발은 부르터서 얼마 후 죽고 말았습니다.
영리한 개도 주인께 순종할 줄 아는데, 인간된 우리들이 부모님께 불순종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전답 팔아서 학교 보냈더니 부모는 무식해서 모른다 하며 대들기나 하는 학생은 없습니까? 우리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또 형제간에 화목하고 사랑으로 돌보는 것을 부모님은 기뻐하십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그것을 쓰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어렵게 사는 자식에게 갖다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형제끼리 화목하여 부모님께 기쁨을 안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나 좋아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고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③ 영혼이 구원받고 잘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육신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린다 해도 그것은 모두 100년 미만 육신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뿐인 것입니다.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 채 영원히 돌이킬 수 없고 빠져 나올 수 없는 지옥불에 던지워 진다면 무슨 효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육신은 평안케 해 드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죽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모든 죄가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사함 받은 확신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부모 살아생전 효도해야 복이 됩니다.
효도야말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주님의 축복을 누리는 기회입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고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이해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축복하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과 영광을 받게 되며, 만사에 형통하여 물심 양면으로 번성을 하도록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자식이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당연한 일을 잘하는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심신의 건강과 평안과 행복 속에서 장수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형제와 화목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어떤 여고의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오해"라는 시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파마 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생선 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배가 빨리 불러 와 좋은 음식 앞에서 먼저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안주머니에는 늘 돈이 얼마쯤은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 시인처럼 오해가 풀렸다면 이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느라고 일생을 다 소비하신 그분들을 위하여 그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모시며 자녀의 도리를 다하는 복있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 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부모를 공경하라
신 5:16 / 조재호 목사
어느 교회의 주일학교에 다니는 한 어린아이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무언가를 열심히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궁금해서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제 5계명을 외우기는 외우는데, “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아이에게 “이놈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이라고 수정해주자, 아이는 “아빠, 공격하라와 공경하라는 어떻게 달라요?”라고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공경은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듣는 거고, 공격은 엄마 아빠한테 덤비면서 엄마 아빠 말씀을 안 듣는 것이지”라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대뜸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왜 할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 공격해!" 저는 이 시간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발음을 잘 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격하라"가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다같이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왜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까요?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주위에서 우리 기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에는 효(孝)가 없다고 말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기독교를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는 효가 없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만큼 효를 강조하는 종교도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불교나 도교나 유교, 등의 세상의 그 어떠한 종교들보다도 더 부모공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만큼 효를 가르치는 말씀도 없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을 보면,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신명기 21장 18절 이하를 보면,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에베소서 6장 2절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는데, 이 십계명은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1계명부터 4계명까지의 하나님께 대한 ‘대신(對神)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의 인간에 대한 ‘대인(對人)계명’입니다. ‘대인(對人)계명’ 중에 제일 첫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공경은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보다,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보다, 8계명인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보다 앞서는 계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유추해서 해석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는 살인죄나 간음죄나 도적질하는 죄 보다도 더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부모공경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을 제외하고는 가장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공경의 대상을 오직 하나님과 부모님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대인계명들은 다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계명이지만 부모공경 계명은 “하라!”는 적극적인 계명입니다. 이것은 다른 계명들과 달리 부모공경은 적극적으로 해야 할 명령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모공경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부모를 공경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둘째로,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부모님 없이 태어나신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고아로 자라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분이라 할지라도,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 무통분만이나 제왕절개수술을 통해서 출산하기도 하지만, 보통 어머니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가운데 자녀를 출산합니다. 저는 출산의 경험이 없지만, 출산한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에 의하면 출산할 때의 고통은 모든 뼈 마디마디가 다 벌어지고 부을 만큼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산 후에 산모들을 보면 보통 얼굴과 몸이 상당히 부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산하신 분들에 의하면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하늘이 노랗고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질 만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너무 고통스럽다보니, 출산을 하다가 옆에 있는 남편에게 욕을 하고 남편에게 발길질을 했다는 산모도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산모는 출산을 돕고 있는 의사를 발로 차기도 하고, 간호사의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출산의 고통은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 정도로 심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부모님들은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 속에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우리 부모는 나를 낳아서 고아원에 갔다가 맡겼습니다. 나를 낳아서 그냥 다리 밑에 버려 버렸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만약 부모님이 낳지 않으셨다면 그 분은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났던지 못 났던지, 우리가 병원에서 태어났던지 다리 밑에 던져졌던지, 우리는 부모님들의 고통과 역경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 뿐입니까? 우리의 부모님들은 피 흘리며 우리를 낳아주셨을 뿐 아니라, 눈물로 가르치시고, 땀 흘려 교육시켜 주셨습니다. 당신들은 굶으시면서 우리들은 먹이셨습니다. 당신들은 허리띠 졸라매시면서 우리들을 공부시키셨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 자신의 부모는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 부모는 나에게 짐만 되어 나의 앞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내 가슴에 깊은 상처밖에 준 것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래도 부모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물질이 부족하여, 여러가지 형편 때문에, 부부간의 갈등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상처를 주셨는지는 모르지만,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하늘 아래에 있는 어떠한 사랑보다 귀한 사랑입니다. 아무리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귀하다 할지라도, 부모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세상에 보내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세상을 두루 다니다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 세 가지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꽃과 어린 아기의 웃음과 부모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왔을 때에는 세월이 너무 오래 걸려서 꽃은 이미 시들어 추하게 되었고, 어린 아기는 자라서 아름답지 않게 되었으나, 부모님의 사랑만은 여전히 아름답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아래 부모님의 사랑만큼이나 아름답고, 부모님의 은혜만큼이나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눈물로 우리를 기르셨고,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면 이미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3) 축복된 삶의 비결이기 때문에
셋째로, 우리는 축복된 삶의 비결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공경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자, 축복된 삶의 비결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님을 공경하면 보너스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다같이 오늘 본문인 신명기 5장 16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명령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야훼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말씀은 잠언 20장 17절의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는 말씀과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부모에게 불효를 하면 등불이 꺼지는 것 같은 징벌과 저주를 받는데 반해, 부모를 공경하면 반드시 축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 후에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때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던데 반해,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은 반면,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또한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인 다윗왕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가슴에 못질을 했던 불효자식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말을 타고 달리다가 그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뒤 따라오던 적에 의해 심장을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룻은 모압 여인으로써 남편이 죽은 후에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결과, 보아스와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와 사이에서 오벳을 났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극진히 섬긴 결과, 그 자손 중에 다윗 왕이 태어나고 메시야의 계보에까지 그녀의 이름이 오르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던 자식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들에서 양을 치는 형들이 잘 있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요셉은 그 말씀에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형들이 세겜에 있다고 해서 거기 갔지만, 형들이 이미 머나먼 도단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쯤 되면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데도, 요셉은 맹수가 들끓는 광야 길을 걸어서 도단에 있는 형들한테로 갈 정도로 부모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을 했습니다. 그의 순종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창세기 47장 30절에 나옵니다.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씀이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는 부분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죽기 전에 말씀하신 유언을 따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50장 12절과 13절을 보면, 그 약속대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입니까? 요셉은 말로만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부모님께 약속한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뿐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부모님 곁에서 집안일을 도왔을 때뿐 아니라 총리대신에 올랐을 때에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뿐 아니라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부모공경에 탁월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애굽의 총리대신에 오르게 된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그가 인신매매범에게 팔려 종으로 끌려가서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오르게 된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했던 결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부모공경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 복 받는 방법이 별 것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모님을 잘 공경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하는 행동을 보시고, 그에 따라 복을 주시기도 하고 저주도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면 분명히 약속하신 복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면 어떤 축복이 따릅니까? 다시 한번 신명기 5장 16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명령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야훼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면 첫째로 이 땅에서 잘 되는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둘째로 이 땅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우리가 형통의 복 없이 장수의 복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됩니다. 반대로 장수의 복 없이 형통의 복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많은 형통한 복을 받았다 할지라도 일찍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 이 두 가지를 다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습니까? 부모를 공경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할 때, 장수의 복과 형통의 복을 함께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삼중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셋째로 자녀가 잘되고 나중에 늙어서 자녀들로부터 더 큰 효도를 받게 됩니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보면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효도한다. 내가 불효하면 그들이 배나 더 불효한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하반절에 보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효를 뿌린 자는 효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효를 심은 자는 불효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 초나라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초나라에 ‘원곡’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원곡의 아버지는 원곡에게 늙고 병든 할아버지를 수레에 태워다가 깊은 산중에 버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원곡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할아버지를 버리고 그 빈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수레를 보고 할아버지와 함께 버리지 않고 무엇에 쓰려고 끌고 왔느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때 원곡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늙으면 그때 다시 쓰기 위해 끌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원곡의 아버지는 크게 뉘우치고 산중으로 달려가서 버렸던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아침저녁으로 극진히 봉양하는 효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 늙습니다. 지금은 팔팔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늙어서 힘이 빠질 때가 옵니다. 지금 우리가 불효하면 나중에 우리가 늙었을 때 우리 자녀들로부터 똑같이 불효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잘 공경하여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삼중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님을 잘 공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잘 되는 형통한 복과 장수의 복과 자녀가 잘되고 나중에 늙어서 자녀들로부터 더 큰 효도를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 공경 방법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부모를 공경할 수 있을까요? 부모공경의 방법이 많이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과 존경함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가장 서러워하는 것은 내 몸으로 낳은 자식으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나이 많아 늙어서도 자식들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공부를 많이 하고 인격이 훌륭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셨기 때문에 존경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쁘게 해드림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옛날 어느 도시에 사는 효자가 어느 시골에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습니다. 시골 효자의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까 옷을 누추하게 입은 청년이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부엌에서 일하던 늙은 어머니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아들의 나무 짐을 받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대야에 물을 떠 왔습니다.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마루에 앉히고는 열심히 아들의 발을 씻기면서 아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도시 효자는 시골 효자에게 이렇게 충고를 했습니다. "여보게, 어떻게 기력도 없으신 어머니께 발을 씻게 하는가? 효자라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자 시골 효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효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기쁘게 해 드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도시 효자는 자기가 지금까지 효도를 잘못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대로만 부모를 공경했습니다. 그는 좋은 잠자리, 맛있는 음식, 많은 용돈을 드리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줄 알았지만, 자기 부모님의 얼굴에는 시골 어머니와 같은 환한 웃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골 청년은 가난한 집에 살았지만, 변변한 돈을 드리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효도는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집에서 날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많은 용돈을 드린다 할지라도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부모공경입니다. 효도는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복음을 전함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효도는 먼저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매끼니 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수성찬으로 대접하고, 값비싼 고급승용차를 사드리고, 세계일주 여행을 시켜 드렸다 할지라도, 부모님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결코 효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부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구원받을 수 있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사망과 고통과 저주와 눈물이 없는 천국에 가실 수 있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효도요, 가장 위대한 부모 공경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위에 보면 부모님 살아생전에는 공경하지 않다가 부모님이 죽고 나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부모님을 놀리는 행동입니다. 한번 세상을 떠난 부모님은 절대로 다시 이 땅에 오시지 않지만, 가정하여 만약 돌아가신 부모님이 이 세상에 다시 와서 그 제사상을 돈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야, 내가 살아 있을 때 잘 하지. 내가 죽고 나서 제사상 차리면 뭐하니? 너 헛수고하는구나?”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시고 나서는 부모공경을 할 수 없습니다. 부모 돌아가시고 난 후에, "그 때 좀 더 효도 할 껄"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살아생전에 효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셨을 때 좀 더 공경 할 껄"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부모님을 공경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일본에서 전해오는 한 전설을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홀어머니와 아들만 사는 행복한 집에 예쁜 며느리가 시집왔습니다. 모두가 외로웠던 차에 새로 맞이한 며느리로 인해 가정엔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꿈같은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얼마 후부터 며느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아내의 약을 구했으나 헛수고였습니다. 체념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한 비극적이고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반가운 소식과 그 간은 반드시 시어머니의 간이어야 한다는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아들은 드디어 어머니의 간으로 아내를 구할 결심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산에 올랐습니다. 휘영청 달빛이 비추이는 산에 오른 아들은 칼을 빼어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간을 도려내 산비탈을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책감과 두려움 속에서 쏜살같이 뛰는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이때 뒤에서 어머니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렴. 이 애미는 오래 전부터 네 아내를 고치기 위해 내 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위해 희생을 각오했었지. 애민 모든 걸 다 알고도 너를 따라왔던 게야. 그러니 죄의식을 느끼거나 두려움에 빠질 것 없다. 뛰지 말고 천천히 가렴. 그렇게 급하게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너도 다치고 간도 못쓰게 될 것 아니겠니? 그러면 예쁜 내 며느리 병도 못 고칠 것 아니니? 그러니 제발 천천히 가렴."
우리의 부모님들은 늙어가면서도 오직 하나 자식 생각만을 생각하십니다. 부모님들은 항상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십니다. 2007년 어버이주일을 맞이한 오늘, 이러한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축복의 보증수표가 됩니다. 그리고 부모공경은 개인이 잘 되고, 가정이 잘 되고, 교회가 잘 되고, 사회가 잘 되고, 나라가 잘 사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모님을 잘 공경하여 이 땅에서 잘 되는 형통한 복과 장수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모님을 잘 공경하여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삼중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
신 5:16 / 임덕순 목사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었음에도 직접적인 어린이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간접적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고, 또 요즈음에는 누구나 자식사랑이 지나쳐서 문제이지 자식을 사랑 하지 않는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공경은 사람들이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필요하고, 또한 이 말씀은 십계명에 들어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명령을 말씀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문제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누구라도 다 하는 일이지만,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기본이 안 된 사람은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오늘은 십계명의 제 5 계명을 배우겠습니다.
첫째,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 자체가 명령입니다. 그런데 여기 다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한대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앞부분에서 명령하신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에 관한 직접적인 문제이므로 두려움으로 지키려고 하겠지만,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에 자기들도 세상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지 않고 자기가 하던 대로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섯째 계명도 당신의 명령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명령이고, 이것은 천륜입니다.
또한 십계명의 1-4계명 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고, 5-10은 사람들에 관한 계명인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그 중간에 들어 있어서 연결고리가 되어 있습니다.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착한 이웃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명령은 계명 전체를 지킬 수 있나 없나를 보는 시금석입니다.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도 잘 섬기고, 신앙의 지조도 있고, 목사님도 잘 섬기고, 이웃과의 관계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불효자식은 조금만 수가 틀려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교회와 주의 종을 배신하고 사람들에게 가시노릇을 합니다. 어떻게 보이는 자기 부모도 잘 못 섬기면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부모를 대하는 일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려고 하지 않고 세상에서 배운 대로 하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를 제 집에 모시고 살면서 노후를 보살펴 드리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데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핵가족을 택하고 제 부모를 버리고 살아가니까 믿는 사람들도 다 따라갑니다. 성경말씀대로 부모를 모시고 살려고 하는 신자는 별로 없습니다. 부모를 무시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제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 떼어놓고 사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 믿어도 제 부모를 떼어놓습니다.
오래전 일입입니다마는, 박한상이라는 사람은 부모가 낳아서 길러주고 해외 유학까지 보내주었더니 돌아와서 제 부모를 찔러 죽였습니다. 자신을 꾸짖는다는 이유로 흉기로 제 어머니의 배를 네 군데나 찌른 아들도 있는데, 어머니는 그 못된 아들이 잡히지 않게 하려고 허위로 강도신고를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자식들은 너무나 세상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오늘 세상은 수평문화로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모든 권위의 출처이십니다. 옛날에는 군사부일체라고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가장 존경해야 하는 분이라고 배웠는데, 요즘에는 선생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수평문화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부모도 부모라는 이유 때문에 존경하는 사람들이 사라져갑니다.
요즘에 짓는 아파트들은 이름들이 모두 서양식이어서 영어를배우지 않은 어른들이 발음하기에는 무리입니다. 왜 그렇게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짓는 줄 아십니까? 누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보기 싫은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젊은 여자들이 발음하기 아주 어려운 아파트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는 부모를 귀찮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 부모를 하나님께 하듯 공경하라고 십계명에 못 박아 놓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의 말씀입니다. 엡 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옳으니라.” 라는 말씀은 참 무게 있는 말씀입니다. 효도하면 상 주니까 하고, 자기에게 유산이 많이 돌아올 것 같으니까 부모한테 효도하고 효도해야 사람들이 인정하고 다음 선거에 당선될 것 같으니까 할 것이 아니라 자식의 도리니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으니까 한다.” 이것이 진짜 신자의 행동 원리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의 행동원리는, 자기에게 얼마나 유익이 오느냐로 결정됩니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몰리지만, 정승이 죽으면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 때문에 행동한다는 사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동의 원리는 유익해서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 자체가 옳은 것이고, 옳은 일을 함으로 옳은 사람이 되었기에 이미 상을 받은 것입니다. 옳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큰 상이 어디 있습니까?
성도는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옳기 때문에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행동으로 당장에 유익이 아니라 손해가 올지라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처럼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에 하는 사람들이 참 신자입니다. 부모공경도 그 차원에서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옳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서 거역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하나님은 두루뭉실하게 말씀하지 않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21:15“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명확합니다.
레 20: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무섭습니다.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정말 두렵습니다.
신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이 명령에 누구도 토를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 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일벌백계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옳은 사람입니다. 옳은 사람이 된 것으로 이미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할 옳은 일을 하지 않고 거역하면 악인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대신 징계가 따르고 세상에서도 실패하게 됩니다.
둘째, 약속이 달려 있는 계명입니다.
이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고,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축복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일을 장려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벌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1).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땅을 주신다는 약속이 이 말씀 속에 가장 큰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남의 땅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었고, 지금은 해방은 받았지만 사막을 여행 중입니다. 그들에게는 땅이 필요했습니다. 땅은 그들에게 필요한 삶의 터전이고 그들이 번성해갈 영역입니다. 땅을 주신다는 말씀은 네가 살아갈 터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직장을 주신다는 말씀이고,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장사할 상권을 주신다는 말씀이고, 목회하는 사람에게는 목회의 자리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일감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상계동에 한일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제 고향친구가 개척해서 목회하는 교회인데, 그 교회 장로님이 목사님을 얼마나 부모같이 모시고 섬기는지 모른답니다. 설날이 되면 이 장로님은 자기보다 훨씬 젊은 목사님을 찾아와 세배를 합니다. 장로님이 그렇게 하니까 집사님들도 다 세배하러오고, 초대 장로님이 그렇게 하니까 뒤에 임직된 모든 장로님들에게도 그게 전통이 되었습니다. 세배만 하겠습니까? 목사님을 자기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받들어 순종한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자랑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우리교회는 노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IMF 때고 언제고 우리교회 성도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모두 일이 바빠서 주일날을 제외한 엿새 동안은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아하,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게 정확하구나.” 하고 감탄했고, 이 말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라면 도리를 아는 사람이고, 도리를 아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장이 이런 사람에게 일을 믿고 맡기지 않겠습니까? 효도하는 사람에게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2). “네 생명이 길고”
이 말씀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에게 장수의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관계는 천륜입니다. 부모가 그 자식을 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니고, 자식이 그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은 생명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러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천륜이고, 천륜에 거스르는 사람을 살려두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륜을 짓밟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장수한다는 약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건강하지 않고는 장수할 수가 없습니다. 병원 응급실에서 오래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장수를 말씀하셨겠습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생명이 길다는 말씀은 건강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생활을 하셔서 영육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또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인간의 수명은 꽤 길어졌지만 다른 것은 단명하는 시대입니다. 수 십년 배워서 겨우 십여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명퇴하라고 압력이 옵니다. 그래서 사오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십 오세가 정년이라는 말입니다. 등산길에는 젊고 건강하지만 할 일없는 사람들도 채워지고 있습니다. 직장도 단명하고 인기도 단명합니다. 일찍 명퇴당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시대에, 생명이 길다는 말씀은 오래 일하게 하신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상계동 한일교회는 젊은이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도 다 바쁘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네가 복을 누리리라.”
복을 보기만 하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천지의 반입니다. 물질이 복이라고 합시다. 물질을 모으는데 평생과 건강을 다 바쳐서 그것을 모으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모은 것이 복입니까? 옛 말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값있게 사용함으로 정승처럼 사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애써 벌기는 했는데 그것을 모아놓고 보니 너무 아까워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수 백 억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밖에 나가서 점심을 사먹을 때 오 천원짜리 이상은 사먹지 못합니다. 모아놓은 재산에서 이자만도 하루에 몇 백 만원이 생기는데, 오천원을 쓰고는 그 오천원 빠져 나간 것이 아까워서 그것을 다시 채워 넣기 까지는 안절부절하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답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보지 못해서 이해가 안 되지만 실제 그렇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복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돈을 버는 것은 그것으로 정승같이 쓰려고 번 것인데, 모아만 놓고 있으면 도리어 해롭게 됩니다. 자기도모르게 좀먹고 녹슬고 도둑이 구멍 뚫고 도적질해 가고, 그렇게 되면 죽도록 고생하며 모으고는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잃은 것이 분해서 병이 들어 죽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누린 사람이 아니라 저주를 누린 사람입니다. 불쌍합니다.
자기 부모를 공경할 줄도 모르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미련한 마음을 꽉 채워 주셔서, 그렇게 어리석게 살다가 지옥 가도록 놔두십니다. 그러나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수고하여 얻은 결과를 즐겁게 누리게 해 주시고, 그가 수고하지 아니한 천국의 영광까지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니 부모공경 하는 일은 정말로 복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효도의 방법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효도할까요?
엡 6:에 보면,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신 뒤에,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공경은 순종입니다. 부모의 말씀에 무시하거나 거역하지 않는 것이고, 존경하며 사랑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힘이 세고 키가 크고 돈이 많아야만 아버지가 아닙니다. 힘없고 늙었어도 나를 낳은 분이면 아버지입니다. 자식이 아버지보다 실력이 나아야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돈을 버니까 이제부터 내가 아버지 하겠다고 한다면 그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4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어른의 생각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습니까? 저는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부모는 인생대학에서 수 십 년 배웠습니다. 부모와 어른을 무시하면 어른들이 쌓은 인생경험과 깨달은 진리를 다 팽개치고 제가 다시 맨땅에서부터 경험을 쌓아가야 합니다. 효율성으로 보아도 그런 비효율이 어디 있습니까? 얄팍한 제 생각 앞세워 부모님 말씀을 무시하지 말고 순종하는 것이 공경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보시면 기뻐하시고 남들이 갖지 않은 지혜를 그에게 주어 복되게 하십니다.
이 복된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실천해 볼까요?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형편이 어렵다고 미루지 마시고 지금 해야 합니다. 내년, 명년으로 미루지 마세요. 언제 가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어버이 섬기고자 하나 살아 계시지 않는 법입니다. 돌아가시면 단 5초 후에 태산 같은 후회가 밀려오는데, 그때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지금 해야 합니다.
부모님 서로 모시려고 해야 합니다. 자식이 여럿이면 서로 핑계하지 말고 서로 모시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뭘 기뻐하시는지 그것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행동이 부모님께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금년 어버이날에 참 행복했습니다. 우리 딸들이 아침에 꽃을 사다가 달아주고, 저녁때 아빠 시간 있어요? 하면서 저녁을 사주겠다는 것입니다. 제 주머니 열지 않고 저녁 잘 얻어먹었습니다. 수 십 년 투자한 것을 저녁 한 끼에 다 뽑은 기분이었습니다.
부모님께 복음을 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천국 가시게 하는 것보다 귀한 효도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곳에 여행도 자주 보내드리고, 천국은 그보다 천배 더 좋아서 거기도 꼭 보내드리고 싶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 믿자는 권고를 들으십니다.
3. 이 계명은 질서를 위한 계명입니다.
제 5계명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연세가 많은 성도에게는 해당하지 않은 명령일까요?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해당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의 핵심은 존경해야 할 사람을 존경하라. 위아래를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인데, 이것은 질서가 있는 세상을 만들고 거기서 살게 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이 명령에는 사회와 교회에서도 지도자를 존경하여 질서를 지키라는 말씀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아십니까? 무정부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법과 질서가 무너져버린 사회에는 주먹이 최고입니다. 아무리 수고하여 돈을 벌어도 칼 가진 사람이 빼앗아 가면 호소할 데가 없고, 수 십년 수고하여 집을 사서 살다가도 힘센 사람이 나가라고 하면 그냥 빼앗깁니다. 내 상점에 쌓아놓은 물건도 아무나 총 가지고 와서 쓸어가도 말 못합니다. 딸을 곱게 길렀어도 깡패가 와서 달라고 하면 내어주어야 살아남습니다. 이런 무정부상태는 지옥과 방불한 것이고, 이런 무정부상태보다는 아주 악독한 사람이 독재를 하는 나라가 나은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을 무시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나를 무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정신적 무정부상태가 되어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의 사회는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질서를 위해서 사회와 교회에도 어른을 세우시고 그들을 존경하고 순종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히 13:17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라는 말은 점잖게 유익이 없다고 되어있지만 국물도 없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당신이 세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나이가 아무리 젊어도 늙을 노자를 써서 장로라고 합니다.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그분들의 나이가 어른이 아니라 직분이 어른입니다. 장로님은 성도들의 형이고 오빠이며, 권사님들은 언니고 누나이며, 목사는 성도들의 어버이입니다. 나를 보호하고 양육하고 인도하기 위해서 직분을 세워주시면서 너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공경하고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을 적대시하면 하나님이 가만히 보고 계신답니까? 너무 무식하거나 개인적 감정 때문에 성직을 모독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인입니다. 미리암은 그러다가 문둥병에 걸렸고, 다단과 아비람의 경우는 저주를 받아서 산채로 땅에 매몰되었습니다. 제 아무리 자랑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 순간에 박살나고 맙니다. 하나님을 조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 37:22에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끊으면 누구도 세우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돈과 계급과 권력과 나이가 질서가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세상과는 다른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이 그것입니다.
장로는 젊어도 어른이고, 교역자는 어려도 선생님입니다. 하나님의 가문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법을 따라야 자기가 보호를 받습니다.
마10:40-41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름으로” 라는 말은 이름 때문에, 라는 말입니다. 부모라는 이름, 목사라는 이름, 스승이라는 이름, 장로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존경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목사이고 장로이기 때문에, 나를 가르치고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직분이니까 그분들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해야 마땅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 가문의 법도입니다.
세상에서 배운 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생명과 복을 택하는 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지도자를 공경하여 질서와 보호 안에서 살아서 자녀들이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모두를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징계를 내리십니다. 단 마음으로 5계명을 지키는 성도가 됩시다.
복과 장수를 누리는 가정(어버이주일)
신 5:16 / 이상호 목사
미국의 남북전쟁이 치열하던 1863년 봄 남군과 북군은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양 진영은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힘차게 군가를 불렀습니다. 북군 군악대가 힘차게 군가를 연주하고 나면 남군은 그에 뒤질세라 더욱 큰 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맞서곤 했습니다. 잠시 후 벌어질 격전을 앞두고 양 진영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북군의 군악대가 '홈 스위트홈'(즐거운 나의 집)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양 진영이 모두 조용해졌고 남군의 군악대도 이 노래를 함께 연주했습니다. 남군과 북군이 부르는 장엄한 대합창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울려 퍼지고 말았습니다. 병사들은 그 시간 전의를 잃고 오직 고향에 있는 가정을 생각했습니다. 양 군대는 서로 합의하에 24시간 휴전을 선언했고 고향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합창을 타고 벌써 고향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맞습니다. 행복한 가정만큼 인간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소중한 가정에서 혹은 가정 밖에서 여러 가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질과의 전쟁을 합니다. 입시와 전쟁을 치릅니다. 죄의 유혹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또 한 편으로는 악한 영과의 전쟁을 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가정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인 가정의 행복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손해를 입고서야 세상의 모든 전쟁들이 참으로 필요 없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그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인간에게 가정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생활의 원리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과 건강한 인생을 사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신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즉 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땅에서 장수하고 복을 누리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이 땅에서 건강하게 장수하며 축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면 건강하게 살고 복되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불효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복 받는 일이요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고 하니까 형식으로라도 효도하기 위해서 함부로 아무렇게나 대하면 그것은 오히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불효입니다. 힘 있고 젊으셨을 때는 오로지 자식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온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시고 다 쏟아버리신 관계로 이제는 육체가 늙고 심지어는 병까지 얻으시고 어떤 분들은 불구의 몸이 되어버리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부모님을 함부로 대하고 가볍게 대우해 드리는 일은 불효일 뿐만 아니라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부모를 공경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잠23:25]“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골3:20]“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잠15:20]“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잠19:26]“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잠23:22]“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23:25]“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한자에는 묘한 뜻들이 있습니다. 시골에는 닷새 만에 열리는 5일장이 있습니다. 장이 서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뜰 안의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어찌할까?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넘어가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듯 말듯 합니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어버이 친(親)이라 합니다. 어버이 친자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보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리려고 화장품 한 곽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아들은 자신을 기다리시는 어머님이 너무나 반가워서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지게 위에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효자입니다. 즉 노인을 업고 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자의 모습, 친자와 효자가 가정에 있을 때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40가지
나이가 들면 신체적 활동이 부자유스럽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사랑이 꽃피는 집에서는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어른을 돌봐드립니다.
내가 효도하면 자식도 그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효도 가문을 만들게 되는 법입니다.
어버이날만 부모를 생각하는 날이 아닙니다.
1년 365일이 어버이 날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립시다.
1. 부모님이 부르시면 바로 달려와 귀 기울여라.
2. 아무리 바빠도 끝까지 말씀을 들어라.
3. 부모님과 생각이 다르다고 말대꾸 하지 말라.
4. 힘든 세상이지만 밝은 표정을 짓는 것도 효도다.
. 궁금한 일이 있으면 정중하게 여쭈어라.
6. 무엇이건 소일거리를 만들어 드려라.
7. 부모님을 이해하려면 부모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8. 부모님 앞에서 절대 다투지 말라.
9. 따로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
10. 70 먹은 자식도 부모에게는 애들이다. 걱정끼치지 말라.
11. 대화의 상대가 되어드려라. 벽보고 혼자 중얼거리는 노인도 많다.
12. 노인들은 귀가 어둡다. 열 번 물으면 열 번 대답하라.
13. 외출이나 귀가시 꼭 보고 드린다.
14. 가끔 안아드려라. 그것이 진정한 애정표현이다.
15. 늙으면 온몸이 가렵다. 효자손 대신 직접 긁어 드려라.
16. 노인이 되면 외로움이 늘어난다. 친구를 만들어 드려라.
17. 나이에 비례하여 실수가 많다. 이것이 장래 나의 모습이다.
18. 부모님 외출시 부축을 해드려라.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19. 나의 몸은 부모님이 주신 것이다.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라.
20. 일주일에 하루는‘부모님 말씀 듣는 날’로 정하라.
21. 친구가 집에 방문하면 부모님께 먼저 인사시켜라.
22. “늙으면 죽어야지”도 죽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위로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23. 입장 바꿔 생각한 다음 말하라. 그래야 이해된다.24.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따지지 말라.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25. 가끔 효도관광을 시켜드려라.
자식 자랑거리에 목마른 사람이 부모다.
26. 손자와 많은 시간을 갖도록 해드려라.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은게 손자다.
27. “애 시험때문에 바빠요”하지 말라. 시험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이다.
28. 자녀에게 언제나 어른이 우선됨을 가르켜라. 자녀가 우선되면 어미아비도 몰라본다.
29. 쓰는 돈을 절약하여 가끔 용돈을 드려라.
30. 집에 들어 올 때 군것질 거리를 사다 드려라. 부모는 작은 것에 감격한다.
31. 가끔 노래방에 모시고 가라. 부모는 흘러간 노래를 하며 흥겨워 하신다.
32. 용돈은 몰래 드려라. 삥땅치려고 눈독드리는 사람도 있다.
33. 부모님을 칭찬해 드려라.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은 나이와는 상관없다.
34. 옛날 얘기를 들려 달라고 졸라 보라. 추억여행에 젖게 해드리는 것도 효도다.
35. 따로 계시면 하루에 3번 이상 연락 드려라. 부모는 자식걱정으로 평생 살아온 분이다.
36. 자식만 끼고 돌지 말라. 부모님께 역할을 맡겨 드려라.
37. 부모님의 친구를 부모처럼 대하라. 그래야 뿌듯해진다.
38.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고민하라.
39.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라. 형제는 수족이요 처자는 의복이라는 말도 있다.
40. 부모님 중에 세상을 떠난 분의 자리에 정성을 다하자.
세상의 남아 있는 한 분(아버지, 혹은 어머니)을 위해서 세상을 떠난 한 분의 마지막 자리(매장, 납골장, 수목장)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래야 큰 위로가 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님을 통해서 주셨으니 부모를 공경하시므로 장수의 복과 건강의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신 5:16, 엡 :1-3 / 송수천 목사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성경은 가정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창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을 위해 에덴동산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으로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가정을 중요한 자리에 두셨을까요? 인간이 가정 안에서 천국의 행복을 미리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해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곳 가정이 없으면 그것은 기쁨일 수 없습니다. 또한 실패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아무리 큰 실패를 겪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겪어도 가정이 있으면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중요합니다. 먼 곳을 볼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정을 먼저 천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별을 연구한다고 별만 보고 걷다가 웅덩이에 빠진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앞에 주어진 가정을 복되고 행복한 가정을 잘 세워가야 합니다. /아멘!/
■ 일제시대에 이흥렬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필요해요' 그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솔방울을 모아 팔아서 400원을 송금해 주었습니다.
결국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너무 감격이 되어 눈물로 지은 첫 곡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입니다. /할/ 제가 이 노래가사를 읽어보겠습니다.
⑴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어머니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⑵어려서 안고 업고 길러 주시며/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⑶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어머님의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어머니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할/ ◀제목소개▶
■ 2006년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나이는 92세, 아들 나이는 42세. 50세의 차이가 나고, 아들 이름은 이군익.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 둔 평범한 가장입니다. 한해 전 어머니가 세상 떠나서 쓸쓸한 아버지 모시고 독립기념관엘 갔다오는데 아버지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금강산에 가면, 1만 2천 봉이 있다던디...' 사람들은 이 말을 귀로 들었지만 아들은 가슴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이 말을 듣고 아버님을 모시고 금강산에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사실 그는 충청남도 서산 빈농에서 7남매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7남매 막내까지 대학까지 보내느라 평생 허리한번 못 펴고 사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콧등이 뭉클해져서,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혼자 다짐하기를 '네, 아버지! 금강산 아니라 금강산 할아버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아버님 생신 날 모여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산악을 타야하는 산행이니 휠체어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며칠 밤 고민을 했습니다. '만일 업고 간다면?' 그런데 그것도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를 업을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꼭 붙잡아야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꼭 붙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지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지게 위에 아버지 의자를 만들면 되겠구나!' 그러나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니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게 자체도 무거운데 의자까지, 거기다 아버지를 업으면? 아이쿠...
그래서 또 연구에 연구를 시작하여 최고로 가벼운 지게를 만들기로 생각합니다. 가볍고도 강한 그래서 낸 결론은 알루미늄 지게를 만들기로 하고 설계자를 찾아 나섰지만 모두들 못 만든다며 손사래를 치거나 터무니없는 제작비를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지게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술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특수 용접한 지게가 탄생하게 되어, 이름을 이렇게 붙이게 됩니다. '금강산 유람을 위한 아버님 전용 지게' /할/
이렇게 하여 만든 지게를 휴전선을 통과할 때 북측 안내원이 보고는 정색하며 뭐냐 물었고, 그래서 아버님 모실 지게라고 대답했더니 아버님 연세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흔 둘에 아들 등에 업혀 금강산 가신다 했더니 북측 안내원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하하 통과하시라요'
이렇게 해서 금강산 여행은 시작되었고, 아버지를 모신 덕분에 여행 내내 스타가 되었습니다. 계절은 초여름, 혼자 걷기도 험한 산길을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 여행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아버지도 처음에는 아들이 고생한다며 한사코 말리고 그 지게에 타고 갈 것을 거부했지만 점점 여행에 익숙해지면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저기가면 뭐가 있다냐? 아이고, 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이러면서 좋아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게 무게가 줄잡아 15kg. 아버지가 올라앉으시면 60kg이 넘었기에, 산행을 하면 할수록 어깨와 팔은 뻣뻣하게 굳고 허리는 끊어질듯 아팠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잘 견디었습니다.
마지막에 금강산 온천엘 갔는데 몸을 보니 상반신의 온 몸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좋았답니다. 이렇게 아버님을 지게에 업고 금강산 유람을 시켜드리는 지식이 있는가 하면, 아버님을 지게에 업고 귀찮다고 내다 버리는 자식도 있었습니다. /할/
■ 이런 유머 한 토막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우연히 아들과 며느리가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답니다. '자기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그야 물론 당신이지! 당신은 영원한 나의 1번이야!' '그럼 그 다음은 누가 좋아?' '우리 멋진 아들이지!' '그럼 세 번째는 누가 좋아?' '우리 예쁜 딸이지!' '그럼 네 번째는 누구야?' '당신 낳아주신 장모님이지!' '그럼 다섯 번째는 누구야?' '음... 우리 강아지!' '그럼 여섯 번째는 누구야?' '그... 그것은 우리 엄마!'
시어머니가 너무 기가 막혀서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새벽 같이 일어나 집을 나가면서 냉장고에 메모하나를 남겼습니다. '아들과 1번 보아라! 6번 밖에 나간다. 잘 먹고 잘 살라'
그리고 집을 나갔답니다. 참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이 유모 속에 오늘의 세태 풍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자식들의 마음속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자리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바쁘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에 쫓기다 보니 점점 부모님을 잊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 최근 주목할 만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정재기 교수의 '한국의 가족 및 친족간의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의 양상'이란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부모 자식간의 유대관계가 부모의 재산에 좌우된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OECD 15개국을 함께 조사했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14개국이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와의 접촉빈도가 반비례하고 있는데 비해, 유독 우리나라만 정비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가 재산이 많을 경우 상대적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져서 자녀와의 만남의 빈도수가 그 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재산이 적을 경우 시간적 여유가 많아 자녀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부모가 소득이 많을수록 자식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부모와의 만남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소득이 적을수록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만남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부모를 필요할 때 부모를 찾지만, 부모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 부모를 잘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표적인 불효입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우리나라만 이렇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동방예의지국'이 '동방불효지국'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할/
①행복한 가정의 원리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⑴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원리입니다. 옛 말에 경천자(敬天者)는 복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인생의 모든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128:1-2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아멘!/
⑵가정의 화목의 원리입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처럼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힘을 쓰십시오. 잠17:1절에서 솔로몬은 '마른 떡 한 조각 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물질이 풍성한 것보다 화목이 중요하고, 일이 잘 되는 것보다 화목이 중요합니다. 부모와 화목, 형제들과의 화목, 이웃과의 화목이 바로 천국입니다. /아멘!/
⑶섬김과 헌신의 원리입니다. 가족 서로간에 헌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회적인 봉사활동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가정에서 가족들을 위한 봉사가 없으면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보다 가족 전체의 유익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것, 나 보다 서로의 행복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헌신입니다. /아멘!/
■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세계적인 팝 가수 '셀린 디온'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맑은 음색을 지닌 '세계 최고의 여가수'입니다. 인기 정상을 달리던 그가 돌연 부와 명예를 거절하고 평범한 가정 주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기자 회견장에서 말하기를 '남편이 지금 후두암에 걸려 투병중입니다. 지금은 남편에게 내가 가장 필요한 시간입니다. 남편 곁에서 병간호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가수로서의 영광과 명예가 결코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가정다우려면 서로의 헌신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위해 헌신해야 하고 부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헌신하는 가운데서 가정이 가정다워지는 것입니다. /믿/
■ 오래 전에 일본에서 동경 올림픽이 열리기 전해의 일이었습니다. 올림픽 때문에 스타디움을 확장하기 위해서 인부들이 지붕을 헐었습니다. 그런데 지붕을 헐어보니 벽에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채 살아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전에 공사했던 사람들에게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3년 전에 박은 못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인부들은 어떻게 3년 동안 도마뱀이 그런 상태에서 살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사를 중단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한참 지켜보니까 한 구석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나오더니, 그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3년 동안 그 도마뱀 친구를 위해서 하루에도 서너 차례 먹이를 물어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부들은 그 도마뱀의 사랑과 헌신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아멘!/
⑷서로 용납하고 이해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특히 부부는 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부부가 함께 살면서 서로 보완하여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치려고만 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몸의 상태가 다릅니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바라보는 것이 다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자신과 똑같기를 강요한다면 어찌 가정이 화목할 수 있겠습니까? 부부간에도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가정이 평안하고 가정생활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 오래 전에 TV 프로그램 한 장면에서 나온 말입니다. 70대 노인 부부가 단어 알아맞히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할머니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당신이 늘 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말' 그러자 할머니가 다짜고짜 대답합니다. '웬수!'
할아버지는 당황하면서도 끝까지 답을 이끌어내려고 설명을 이어갑니다. '아니 네 글자!' 할머니 답이 걸작입니다. '평생 웬수!' 그렇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웬수' 그것도 '평생 웬수'라 생각한다면 그 가정이 행복할까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의 만남을 잘못된 만남이요, 잘못 낀 첫 단추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정은 결코 행복의 보금자리일 수 없습니다. /할/
②기독교는 효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와 조국의 은혜, 이 3대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아갑니다, 뿌리 없이 자란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주제가 효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단순한 인륜의 차원에서 마땅한 도리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와 사랑의 차원에서 전하는 권고사항도 아닙니다. 지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몰라서 무식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기독교는 살아생전에 부모님을 잘 섬기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아멘!/
기독교가 불효하는 종교가 아닌 증거는 먼저, 십계명을 보아서 기독교는 불효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약 600여 가지의 계명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계명이 십계명입니다. 이 10계명은 또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으로 1에서 4계명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으로 5에서 10계명입니다.
출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리고 오늘 본문인 신5:16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이 말씀들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의 말씀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10계명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이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 엡6:2절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할/
이 계명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 몇 가지 있습니다.
⑴효도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다움의 우선적 요건이 효도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오늘의 자기를 있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인간다움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⑵효도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에 유일하게 적극적 계명이라는 점입니다.
십계명 중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계명들은 다 '...하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효도에 대한 계명만은 '...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효도는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효도는 잘하면 잘 할수록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⑶효도만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다른 계명과 달리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들은 '...하지 말라'고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 계명들을 지키지 않으면...' 하고 경고가 붙어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효도라는 계명만은 하나님께서 잘 지킬 경우 장수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인센티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서라도 꼭 지키게 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 외에도 효도에 대한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레19:3절을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23:25절에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잠16:31절에서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또 잠30:17절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여 어미를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도 하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효도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효도는 반드시 해야 하고, 만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아멘!/
③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이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것이 옳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의로운 말이다'라는 뜻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합당하다는 의미라고 했고, '칼 바르트'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라고 했습니다.
또 '옳으니라'는 말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봄이 오면 눈이 녹고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합니다. 5월이 되었는데 싹이 나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가 틀림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⑴생명을 부모를 통해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
⑵부모님이 나의 스승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높은 학위를 얻었다는 이유로 교수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학위는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학문적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에게 생명의 기본 원리를 가르친 분들은 우리의 부모님이십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나에게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어린 시절 인간의 기본 됨에 대하여 부모에게 배웠습니다. /믿/
⑶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나에게 아낌없이 주려는 분이 있습니까? 오직 부모님만이 자녀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주고 떠납니다.
⑷부모는 사랑의 원천입니다. 에로스 사랑은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거짓이 있습니다. 친구의 사랑에는 배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은 진실이요, 순수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네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먼저사랑입니다. 사랑도 값이 있습니다. 먼저사랑이 더 고급사랑입니다. 부모사랑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먼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한 몸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자식이 팔을 다치면 내 팔을 다친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불변한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은 부모들에게 인터뷰를 해 보면 마지막 한마디씩은 남깁니다. '그놈들 잘 살면 내가 보람을 느끼지요' 버림을 받았는데도 사랑이 변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합니다.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이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사랑해도 부모사랑에는 비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하고 잘되면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들이 아프고 실패를 하면 그들의 불행을 안고 또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할/
④어떻게 효도해야 하는가?(엡6:1-2)
⑴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그렇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순순히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순종은 계속 진행의 의미가 있는데 한 번만 순종함이 아니고 계속해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틴 루터'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입니다.
골3: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휘파쿠오'입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귀 기울여 듣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순종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납득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도저히 그 말씀을 납득할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무시해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납득할 만할 때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납득하기 힘들 때는 왜 그렇게 말씀하였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정 따를 수 없을 때는, 당장 판단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할/
▶창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나이 127세이고, 아들 이삭의 나이가 27살 되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뜻밖의 지시를 합니다. 함께 모리아 산에 가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도록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었고, 두 사람의 종이 불과 칼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볼 때,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번제에 쓸 제물인 양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삭은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대해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기가 막힌 일이 생겼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가 번제단을 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아무런 말씀도 없이 자기를 결박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기를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려 하신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무런 말이 없이 선선히 결박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지금 피 끓는 청년입니다. 이에 비해 아버지는 127세의 힘없는 노인입니다. 살려고 한다면, 아버지를 뿌리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아버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할/
■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저명한 문학가인 '사무엘 존슨'의 일화입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장터 한 쪽에서 이 분이 홀로 몇 시간을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냥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반나절이 지났을까, 그의 낯선 행동에 걱정이 되었던 제자가 다가가 스승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 때 이분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실은 50년 전,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서 헌책장사를 하였다네. 그 날도 장사를 위해 일어나셨지만 몸이 몹시 안 좋으셨는지, 나에게 대신 하루만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 줄 수 있냐고 물으셨었지…'
'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우리 집이 헌책장사 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냐며 거절했지. 그런데 너무 무리를 했던 탓인지, 아버지는 그 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오늘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네'
사무엘 존슨은 50년이 지난 후에도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자신의 행동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도 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큰 아픔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깨닫고 나면 때늦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할/
참 행복한 성도 여러분! 부모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아멘!/
⑵부모님을 바르게 공경해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렇습니다. 효도란 구체적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은 원어로는 '티마'입니다. 이 말은 구약의 히브리 '카베드'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카베드라는 말은 원래가 '무겁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공경이라는 말의 원 뜻은 '중하게 여긴다, 존중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우선 부모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 작가 조연경씨가 쓴 '효도별곡' 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서울에서 만두집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부는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두가게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들은 늘 따로따로 가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두를 시켜놓고는 마치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애틋하게 서로에게 먹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두집 주인은 이 두 노인이 아마도 젊은 시절 사랑했던 사이였다가 말년에 그 사랑을 잊지 못해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그날따라 할머니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두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권했지만,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을 뿐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할머니는 자주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먹이곤 했습니다.
한참 뒤에 일어나 만두 값을 치른 할아버지는 그 날만큼은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만두집을 나섰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마치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왠지 가슴 아프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만두집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어느 수요일 정각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만두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만두집 부부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몹시 초췌해 보였고,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부부를 향해 할아버지가 답례로 보인 웃음은 울음보다 더 슬퍼 보였습니다.
만두집 여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마치 독백하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첫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어엿한 부부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큰아들의 집에서,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의 집에서 각각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식들끼리 싸운 결과였습니다. 큰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자기 혼자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서는 바람에, 아들들이 공평하게 한 분씩을 모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서울과 수원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3시만 되면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그 만두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온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서는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할/
오늘 자식들이 부모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큰 부담이요 짐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경은 부모님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시고, 존중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아멘!/
⑶다음으로 공경이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때로 자식 생각에, 할 말씀도 하지 못하실 때가 많습니다. 또 때로는 속마음과 다른 말씀을 하실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공경은 부모님의 속마음을 헤아려서, 그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믿/
■ 심순덕님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를 때가 많습니다. 효도를 한다고 해도 다 자기 좋으라고 효도할 때가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효도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⑷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잠17: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렇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상의 효도입니다. /아멘!/
⑸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자식에게 효도를 받는 비결입니다.
■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부간에 갈등이 심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기세 등등하던 시어머니도 나이는 속일수가 없는지 기력이 쇠하여 식사 때마다 손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숟가락도 놓치고 밥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국을 쏟고 그릇도 깨뜨리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침 방구석에서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습니다. 고양이 밥그릇은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밟아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다시 제자리에 놓으면 그 뿐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고양이 밥그릇에 시어머니 밥을 담아 드렸습니다. 나무 그릇을 더 구하여 국도 퍼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릇을 깨뜨리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아들도 참 머리가 좋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부부가 시장에 다녀와서 보니 초등학교 3학년 된 아들이 옆 집 친구와 함께 통나무 속을 부엌칼로 파내고 있었습니다. 방안이 온통 난장판이었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뭐 하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이 다음에 엄마 아빠 사용할 밥그릇 만들고 있어요' 꼭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할/
■ 중국 한 나라에 '곽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가난했습니다. 노 어머니와 세 살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노모는 자라나는 손자에게 맛있는 것을 다 먹였습니다. 배고플까 몹시 신경을 썼습니다. 손자에게 주느라고 자신은 굶을 때가 많아 여위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본 곽거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아들을 죽여 구덩이에 파묻자!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다시 얻을 수가 없지 않느냐?'
그는 뒷뜰로 가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두어 자 가량 팠을 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조심스럽게 파보았더니 큰 금 그릇이었습니다. /할/ 그리고 그 속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효자에게 내리는 하늘의 복이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리라' 이같이 효도에는 형통의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아멘!/
⑹성경에는 이런 사실들을 많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 왕을 내쫓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의 후궁들을 육체적으로 범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새를 타고 도망하는 데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리고 노새는 빠져나갔습니다. 요압이 가서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부모에게 거역한 자의 말로였습니다. /할/
또 한번 이삭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아들 이삭은 순순히 잡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아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이삭을 성경 삼대 거부 중에 하나로 삼아 주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압살롬은 일찍 죽었지만 이삭은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압살롬은 청년일 때에 죽었지만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습니다.(창35;28) /할/
■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밥상에 닭고기가 올라 왔습니다. 잡수려던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이 닭고기 어디에서 났니?' 아들이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 잡수시기만 하세요' 이런 때 탈무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아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할/
⑺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효도는 부모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를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효도는 구체적으로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멘!/
■ 옛날 비엔나에서는 죄수를 일정기간 동안 시내 거리 청소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수상이 한가로이 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옷을 말끔히 입은 청년이 눈을 쓸고 있는 죄수에게 다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꾀죄죄한 죄수의 때묻은 손을 잡고 입을 대더니 키스를 합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수상은 그 죄수는 정치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청년은 그의 추종자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궁금하여 그 청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자네가 손에 키스한 그 죄수가 누구인가?'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각하. 그 사람은 저의 아버지입니다.'
그 청년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뜻밖의 사실을 알고 할 말을 잃은 수상은 죄수가 존경스러워졌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한 아들을 두었을 가하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수상은 국왕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렇게 자식을 잘 기른 아버지는 나쁜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석방되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효도의 방법은 순종과 공경입니다. 여기 '순종하라'는 것과 '공경하라'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중국속담에는 '존경보다 더 나은 것은 순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종과 공경은 늘 함께 하는 단어입니다. 순종하면 공경하고, 공경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공경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까요? 아마 그런 경우는 가짜 공경이고 가짜 순종입니다. /할/
⑤효도하는 자식은 어떤 축복을 받는가?(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십계명을 해석한 말입니다. 출20:12절에 십계명을 기록하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십계명의 말씀을 바울이 약간 변형한 것입니다.
부모 순종의 결과가 '형통과 장수'입니다. /할/ 잘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통입니다. 언제 잘되고 형통합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내 모든 규례와 법도를 행하면 형통하리라, 부모를 순종하면 형통하리라' /할/
장수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자를 장수하게 하십니다. 창15:15절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결론으로 읽겠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첫 계명
신 5:16 / 성경환 목사
할렐루야! 우리에게 섬길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심에 감사합시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모두를 담고 있었던 주간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모두가 자녀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었으며, 부모님께는 정성을 다한 효도를 하고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자녀로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그 자녀들이 어버이의 사랑을 깨달을 때쯤 되면 부모님들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고 만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이제는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어도 아버님, 어머님이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은 계실 때 더 효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옆에 계실 때 한 번 더 찾아뵙고 인사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대한 예화입니다. 1988년 12월7일, 강도 6.8-7의 지진이 터키 북동쪽의 아르메니아에서 일어나 인구 45,0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그 때 14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 된 모녀가 있는데 26살의 젊은 엄마 수산나 페트로시안과 4살 된 딸 가야니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젊은 엄마의 10손가락이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딸에게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찌르고 상처를 내서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고 어머니의 참 모습입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이 어머니라는 여인의 모습이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세상의 어머니들이요 부모님들입니다.
1. 성경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이유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성경은 우리들이 자녀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엡 6:1)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부부는 선택하여 맺은 관계이지만 자녀는 선택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어준 관계가 바로 부모와 자녀 지간이고, 형제와 자매 지간입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은 부모님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왔고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먹고 자라며 배우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라면 이같은 사실 한 가지만 가지고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음을 예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부모님의 사람은 동서를 불문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동양의 이 관계는 더욱 간절한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님은 낳으실 뿐만 아니라 업어주시고, 안아주시고, 젖을 먹여주시고, 길러주시고, 따뜻한 손길로 돌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눈물을 머금고 채찍질해 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참아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힘을 실어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의 부모님이라 하면 모두가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에게 만이라도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스승이셨고, 영웅이셨고, 사랑이셨습니다. 내가 부탁했을 때 거절하지 않으시고, 도와주시며, 내편이 되어주시며,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게 해 주시길 원하시던 나의 부모님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들이 자녀라면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신 5:16)
구약 성경의 핵심을 말한다면, 십계명으로 요약 됩니다. 다시 십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 것과 인간관계에서의 지켜야할 계명, 곧 우리 인간들을 위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할 계명 중 첫째가는 계명인 제 5계명을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효에 관한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이같이 인간관계의 첫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으니 당연히 부모공경을 해야 함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만일 부모공경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되며, 그 역시 큰 죄를 범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인간이 범한 죄 가운데 가장 무겁게 심판받을 죄 중의 하나가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불효 죄라는 사실입니다.(출 21:15-17, 신 21:18-21) 우리들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면 이 시간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경은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척도가 된다고 했습니다.(요일 4:20)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님을 왜 잘 섬기고 공경할 것을 명령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보이는 육신의 부모님을 잘 섬김으로서 영적인 부모님이신 하나님을 잘 섬길 수가 있으며, 또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만이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잘 공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이는 부모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면서 영적인 부모님이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결코 더 잘 섬길 수가 없으며, 더 순종할 수가 없고, 더 공경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잘하는 성도라면 반드시 효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효도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더욱더 사회생활을 잘하고, 모범적이라 해도 먼저 가정에서 부모공경 하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하면 잘못된 것이요, 위선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지금의 시대는 전통적인 효도관이 무너지고 있는 타락한 이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부모님을 더 잘 섬기고, 더 공경해서 참된 효도의 본을 보이는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성경은 믿음의 사람이 복을 받아 누리는 특권이라고 했습니다.(신 5:16, 엡 6:2-3)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서의 말씀에 보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말씀하시고 있는데 첫 계명이라는 것은 십계명에서 사람을 위한 계명에서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마땅히 할 자식 된 도리이지만 잘 감당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식으로 부모님께 효도함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될 당연한 일이지만 잘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복을 약속하셨으니 이것이야말로 복의 복을 더하심이요 은혜위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수라는 개념은? 오래 산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모든 일과 삶에서 형통하고 풍요로움을 누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대로 부모님에게 공경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자녀들과 사업장에서의 삶이 풍요로워 지고, 그의 인생길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룻이 그랬습니다. 그녀는 며느리이면서도 시어머님을 위하여 자신에게 며느리로서 맡겨준 일을 최선을 다하여 기쁘게 감당하고, 효도를 했더니 불행한 과부로서의 삶으로 또한 이방여인으로서의 멸시로 끝을 맺어야 할 인생이 보아스를 만나는 축복과 다윗의 가문의 할머니가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자신도 잘되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다가게 된 것입니다. 이 룻의 축복이 우리 하늘꿈의 가정에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부모님께 대한 구체적인 효도는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1) 부모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잠 23:22)
부모님이 많이 배우고, 유명한 분이고, 좋은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많이 배우지 못해도, 유명하지 못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부모님, 이 세상에서 유일하신 나의 부모님이시기 때문에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공경하다.’ 는 히브리어는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인생을 살아온 무게를 존중’ 하라는 뜻으로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루터나, 루터 킹 목사님은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부모님을 그와 같이 깊이 소중하게 모시며, 부모님의 말씀을 잘 청종하고,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더 부모님을 가볍게 여기며, 폭언을 하며, 무시하는 자녀들은 부모님의 부끄러움이며, 능욕거리가 된 다고 하였습니다.(잠 19:26)
2) 부모님께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엡 6:1)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는 말은, 부모의 말씀이 신앙적이면 순종하고, 불신앙을 강요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라도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 는 말을 다시 고쳐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부모를 순종하라.” 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부모님에 대하여 생각할 때, 당연히 효도해야 한다는 의식은하고 있지만, 깊은 곳에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쓴 뿌리가 되어 있은 분들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한편 원망하고 미워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에서 이런 분이 계시다면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기에 앞서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부모님과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상처는 부모님이 주었어도, 풀기는 자녀가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처를 준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모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신의 자녀가 부모님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놀랍니다. 심지어 섭섭해 하기도 하고, 오히려 노여워하기도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이 준 조그만 상처도 기억하지만, 그러나 부모님은 자녀들이 준 큰 상처도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부모님과 자녀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님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부모님이 계셨다는 것 자체가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모님에게 효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오늘 이후로 진정으로 우리들의 부모님을 용서하십시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내가 먼저 화해의 용서를 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3) 부모님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딤전 5:4, 8)
어느 치매가 들은 아들이 아버지와 산책을 합니다. 아버지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새를 보고 자꾸만 묻는 것입니다. “얘야, 저것은 무엇이니...” 아들은 짜증을 내면서 대답을 하다가 그만 화를 내면서 “참새라고요. 얼마나 말해야 알아듣겠습니까?” 그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일기장을 보는 순간 아들은 오열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3살 된 아들이 참새를 보면서 신기하듯이 13번이나 “아버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 주었다. “참새”라고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효자는 부모님께 효를 행하며, 잘 돌보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같이 자녀로서 우리들이 이 땅에서 잘되려면 내가 효의 본이 되고, 잘 섬겨드리고 돌보아 드려서 효를 갚아야 하고, 효를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늘꿈 가족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이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계명을 지키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되는 복까지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께 성경적인 바른 효도를 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모든 복을 누리는 아름다운 하늘꿈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의 복
신 5:16 / 김성광 목사
A. 부모 공경에 대하여
1. 부모 공경 / 효
2. 본문 배경 설명
B. 부모를 공경하는 자의 복
1. 네 부모를 공경하라 - 부모 공경, 효(신 5:16a)
2.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 건강, 장수(신 5:16b)
3. 복을 누리리라 - 복(신 5:16c)
C.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부모를 공경하여서 장수하며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A. 부모 공경에 대하여
1. 부모 공경 / 효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유명한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 1737~1794)은 『로마제국의 멸망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수많은 학자와 학생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학자들은 강력하고 완벽했던 로마제국이 어떻게 해서 멸망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원인을 다각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하여 발표를 했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의 멸망원인이 젊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로마제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도 한 원인이고, 외적의 침입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젊은이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젊은이들은 대(大)로마제국이라는 자부심과 부와 힘에 도취되어 지나온 역사와 로마제국을 이끌어온 어른들의 지혜와 판단력을 거부했습니다. 다시 말해 노인들, 어른들의 경력과 지식을 거부하고 멸시했습니다.
실질적인 예로 그 당시 로마의 젊은이들은 로마의 원로원, 즉 로마를 이끌어가는 국회의원들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60세 이상의 노인들은 다리 밑으로 떠밀어 버려라’ 하는 구호를 외치고 다녔다고 합니다. 에드워즈 기번은 이렇게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부모의 말도 듣지 않고 원로원도 무시한 채 시행착오를 겪다가 결국은 멸망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예부터 부모님을 잘 섬기고 어른들을 존경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왔던 최초의 의료선교사 앨런(Horace Newton Allen ; 1858~ 1932)은 우리나라에 대해 “조선은 늙음과 죽음이 두렵지 않은 노인들의 천국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외국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한국에서 살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존경하고 인정하는 사회인지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니세프라는 유엔아동기금 아태지역 사무소(태국 소재)에서 중국, 홍콩, 오스트레일리아 등 태평양 지역의 17개국 가운데서 9세부터 17세까지의 청소년 1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어른들을 존경하는지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이 질문에 존경한다고 답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13%로 그중 최하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른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는 학생은 20%로 다른 나라들의 2%에 비해 10배라고 했습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신세대, 젊은 학생들은 부모의 말씀이나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이 최고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고, 그러한 가치관에 빠져있습니다.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들은 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정치 분야나 경제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학자 브린튼(Crane Brinton ; 1898~1968)은 “노인을 대접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을 잃어버린 사회, 병든 사회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교훈으로 따르는 교과서 탈무드에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하신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게 됩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잘 공경하는 학생들이 마음도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듣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어른들을 잘 공경하여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부터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않는 자녀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똑같이 반복하여 고생과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본문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그 열 가지 계명 중에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형제간에 우애도 있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친구관계도 잘되고 다른 모든 관계가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복을 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B. 부모를 공경하는 자의 복
1. 네 부모를 공경하라 - 부모 공경, 효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신 5:16a)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좋든 싫든 무조건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공경하라’는 것은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를 귀하게 여겨 잘 보살피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권위의 상징,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모는 눈에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1483~1546)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도 잘 섬기고, 부모를 공경함을 통해서 가정의 질서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회에 적응을 잘하면 그 사람의 생활에는 행복과 성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25절 말씀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아 슬픔을 드리지 말고, 기쁘고 즐겁게 해드리라는 것입니다. 효도라는 것은 바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효도라고 강조하지만, 기독교는 돌아가신 부모보다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살아 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살아 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중요합니다.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상을 차리고 밥, 국, 음식을 잔뜩 가져다 놓는다고 해서 돌아가신 부모가 그것을 먹을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술도 부어주고, 어떤 사람은 담배까지 꽂아줍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부모가 그것을 어떻게 마시며, 어떻게 피우겠습니까? 돌아가신 부모보다 살아 계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 1902~1994)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대해 순종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 좋은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 됩니다. 대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자녀치고 마음씨 나쁜 사람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놀랄만한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상속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농약을 마시게 한 아들이 붙잡혔습니다. 손자가 할머니의 돈과 패물을 빼앗기 위해 친구들과 논의한 뒤 할머니의 눈과 입을 가리고 500만원 상당의 패물을 훔쳐 달아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또 어머니가 카드 빚 2000만원을 갚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돌로 친 아들도 검거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잠언 30장 17절 말씀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어릴 때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니까 고(故) 최자실 목사님께서 읽어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까마귀일까요?
실제 까마귀에게는 겉모습과는 달리 아주 좋은 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미새와 새끼새 간의 질서가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까마귀들은 하늘을 날다가 어미새가 나뭇가지에 내려 앉으면 모두 따라서 앉는데, 절대로 어미새보다 높은 가지에 앉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항상 한 단계 밑에 앉아 있기 때문에, 앉아 있는 모습만 보아도 어느 새가 어미새이고, 어느 새가 새끼새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또 어릴 때는 어미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가 새끼 까마귀의 입에 넣어줍니다. 그것은 모든 새들이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반대로 어미 까마귀가 늙어서 제대로 날지 못하게 되면 장성한 새끼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물어다가 어미 까마귀의 입에 조금씩 넣어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까마귀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이 까마귀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모가 살아 계시다면 부모를 잘 공경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생전에 부모를 공경하고 위로는 하나님을 섬겨 공경하는 자의 축복을 모두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 건강, 장수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신 5:16b)
생명이 길다는 것은 장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장수의 축복을 주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야 장수할 수 있습니다.
장수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건강과 평안입니다. 병든 사람은 결코 오래 살지 못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말씀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땅도 주시고 장수의 축복도 주십니다.
잠언 3장 1~2절에도 솔로몬 왕이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워야 합니다. 딸은 어머니에게 성공도 배우고, 실패도 배워야 합니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욱 훌륭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은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마음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내가 싫다고 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하는 것은 무조건 ‘예’ 하고 따르는 것이 기본이고, 그것이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 병에 걸린 자녀들이 많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 사업에도 실패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 오래 사는 것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모를 잘 섬겨서 장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고(창 25:7~8), 이삭은 180세(창 35:28~29), 야곱은 147세(창 47:28), 요셉도 110세(창 50:26), 모세도 120세까지 살았습니다(신 34:7).
여러분,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잘 섬긴 사람들은 이렇게 장수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황성주 박사가 얘기하는 ‘성서건강학’은 ‘효’에 대해 강조합니다. 효자는 부모에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생체기능이 활성화되고, 또 감동의 샘인 엔도르핀이 생산되고, 면역기능이 증대되고,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나게 되어 건강해 집니다.
그러나 반면 부모와의 관계가 불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원망하며 사는 사람들은 쉽게 병들고 몸이 아프고 나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박상철(朴相哲)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체력과학노화연구소를 차리고 조선일보와 같이 전국을 다니며 취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100세 이상 되는 사람이 150명이나 되는데, 이 150명의 백세인(百歲人)을 전부 인터뷰한 결과, 장수의 요인은 유전이 아니라 생활양식이나 환경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00세가 넘어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성경을 읽고 신문도 읽고 전혀 불편함 없이 활동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가족관계가 좋았고, 특히 며느리나 자식들에게 공경 받는 부모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부간의 관계가 좋은 사람, 착한 며느리가 있는 사람이 더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를 잘 공경하여 여러분의 부모가 장수하고, 또 여러분 자신도 장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김주승 성도님의 어머니는 그에게 끊임없이 “얘야, 교회 나가서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자.”라고 늘 전도를 하셨지만, 그는 자신은 바쁘니까 어머니부터 믿으라며 나중에 믿겠다고 했습니다. 또 그 어머니가 간절하게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에 가자”고 하면 회사 특근이라 못나간다며 항상 거절을 했습니다.
그날도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하고 회사에 나가 일을 하는데 일이 잘 되지 않자 스트레스를 받아 퇴근 후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만 사고가 났습니다. 오토바이가 점복되면서 그는 머리를 다쳐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누군가가 그를 업고 병원에 데려다 놓았을 때였습니다. 그 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맸습니다.
그렇게 40일 동안 병원에 있었지만 그는 기억력 상실, 오른쪽 마비, 시력 상실로 병원에서도 포기하고 치료해도 소용이 없다며 퇴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시 “얘야,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맨 마당에 더 이상 거절을 할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교회에 끌려갔고, 또 어머니와 함께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3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면서 그동안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은 것,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자꾸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3일 금식기도를 하고 나서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눈에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이면서, 안경을 쓰니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해 보았지만 시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했었는데, 기도원에서 3일을 금식하고 시력이 회복된 것이 너무너무 감사해서 또 다시 기도원에 가서 7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오른쪽 마비 증상이 모두 풀리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작 어머니의 말을 들을 걸’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뒤늦게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건강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겠습니다.” 하고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장수하고 건강합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다가 병들고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복을 누리리라 - 복
“복을 누리리라”(신 5:16c)
오늘 본문의 복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이 성공하지, 부모를 떠나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 성공하는 것이 쉬운 일이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멀리 떠난 자녀들은 성공하기가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복은 어떤 복입니까? 형통하게 만들어 주시고, 사업도, 가정도, 번영하게 해주시고, 성공하게 만들어 주시고, 행복한 인생으로 살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결혼해서 자신과 꼭 같은 자녀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잘 공경하여 착한 자녀를 낳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9장 말씀을 보면 노아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을 때,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왔습니다. 셈과 야벳은 노아의 실수를 덮어주었지만, 함은 부모를 욕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실수, 부모의 실수를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고, 비난했던 함은 저주를 받았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모를 축복할 때 자신도 축복을 받지, 부모를 비난한다든지 부모를 저주하면 결국 그 저주가 자신에게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녀들이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합니다. 부모의 말도 듣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는 애들은 성적이 떨어지고 좋은 학교에도 가지 못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잘되고 장수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그의 인생도 잘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도 주시고(창 28:7 ; 32:10), 형통하게 만들어 주시고(왕상 2:1, 3), 장수의 축복도 주시고(엡 6:2~3), 자손들도 번창하게 하십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자신도 저주를 받습니다(신 27:16). 멸망을 당합니다(잠 28:24). 자녀들도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 ; 1703~1758)는 “그대를 낳고 그대를 돌보고 양육한, 그대를 교육시켰던 그대의 부모를 공경하라. 그렇게 함으로 부모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는 사람들을 형통케 하시고 그들의 인생을 더 잘되도록 인도하십니다.
부모 공경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부모의 사랑을 받아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부모의 도움도 받게 됩니다.
한국도자기 그룹 김동수(金東洙 ; 1936~ ) 회장은 한국도자기의 경영철학 중 제1을 ‘행복경영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경영철학으로 한국 도자기를 세계적인 도자기로 발전시키고 세계적인 기업이 되게 하였습니다.
김동수 회장의 행복경영론은 모든 행복의 시작은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孝)’를 강조하는 기업이 되어 일년에 한번씩 효도비를 주고 효도관광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효도비를 주고 효도관광을 하도록 한 후부터 직원들의 이직률이 6%에서 3%로 떨어지고 노사간에 갈등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어른을 존경하고 스승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노사간에 갈등이 없습니다. 어른을 존경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쟁과 싸움과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도자기가 오늘날 세계적인 도자기 회사로 발전하는 데에는 부모공경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영철학의 첫 번째, 행복경영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부모를 공경하여서 장수하며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부모를 공경함을 통해 건강과 장수를 누리고, 또 재물의 축복도 받고, 자손도 번창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여 하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간증입니다. 오영환 성도님의 집안은 원래 불교집안으로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신자였습니다. 그는 군대를 갔다 온 후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상대가 아주 착실하고 착한 예수님을 잘 믿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그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여자들 같으면 직장이 없는 남편을 무시하고 날마다 잔소리를 할 텐데, 예수님을 잘 믿고 겸손한 그의 아내는 그가 직장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돈을 벌어 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똑같이 그를 위로하며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우리 함께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 하나님 앞에 기도드립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너무나 착한 아내에게 감동하여 함께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도 함께 가서 3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직장을 잃었으니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저에게 직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며느리의 행실을 보고 감동하여 불러 앉혀놓고 “얘야, 너처럼 착한 며느리가 어디에 또 있겠니? 네가 남편에게도 착하게 잘하고, 나에게도 효도를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네가 믿는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가야겠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로 인해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조차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온 가족이 함께 교회를 다니며 기도해서 그에게 직장도 생기고 그 가정이 행복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 때문에 복된 가정을 이루게 되고, 부모님들도 다 전도하게 되었습니다.’하고 간증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분위기를 행복하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은 며느리에게 달려 있고, 아내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더 나아가서 어른을 잘 받들어 섬기는 사람에게 평강과 기쁨과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에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건강하고 장수하고 재물의 축복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를 잘 공경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직한 삶, 정의로운 사회
신 5:16-22 / 이수영 목사
오늘 본문의 20절 말씀은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입니다. 즉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여기에서 "거짓 증거"라고 하는 것은 원래는 법정에서 근거 없는 증언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이 제9계명을 보다 넓게 일체의 악의적 거짓말과 속임수를 금하는 계명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거짓말, 특히 거짓 증언은 아주 악한 죄입니다. 첫 인간 아담과 하와를 죄 짓게 만들고 타락시킨 것이 사탄의 거짓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에 사용된 것도 거짓 증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데에 쓰인 것도 거짓 증언이었습니다.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데에 동원된 것도 거짓증언이었습니다. 이 거짓말, 거짓 증언은 바로 사탄이 가장 즐겨 쓰는 악랄한 계교입니다. 사탄을 헬라어로는 "디아볼로스"라고 하는데 그 말 자체가 "중상자" 곧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음해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요8:44에 보면 예수님 자신이 마귀를 가리켜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했습니다. 사탄이 거짓의 아비라면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다 뭡니까? 사탄의 자식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정면으로 맞서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가장 무서운 것이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나 거짓 증거는 어마어마한 폭력이요, 아주 무서운 가해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나 공동체에 대단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짓 증거는 애꿎은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고, 타인의 재산에 엄청난 손실을 입힐 수 있으며, 무죄한 사람의 생명에 위해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거짓 증거나 거짓말은 불신사회를 조장하며 냉소주의를 고착시키고 국민의 도덕적 불감증을 심화시킵니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사회 전체를 악하게 만듦으로써 더 크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 거짓 증거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듯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거짓말은 국민 전체의 도덕적 불감증을 일반화시키고 심화시키기 쉽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왜 이렇게 부패했습니까? 정치지도자들이 거짓말을 하도 잘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 앞에서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수없이 해 놓고도 반듯한 사과 한 마디도 성실한 해명도 하지 않을 만큼 뻔뻔스러운 것이 우리 정치판입니다. 서로 다 거짓말하면서 남보고만 거짓말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우리 정치인들의 현주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TV프로 중에 개그콘서트라는 것이 있던데, 그 개그콘서트 뺨치는 개그콘서트를 요즘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사람들과 여당이 출연하여 웃음이 아니라 실망과 분노를 넘어서서 우리 자신의 참담함을 느끼게 하는 콘서트입니다. 여당의 대선자금신고내역이 순 엉터리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대통령이 나서서 해명하라는 여론이 일자 대통령이 정직한 대선자금공개를 혼자 하기는 싫고 야당도 다같이 하자고 물귀신작전을 쓴 것입니다. 남이 정직하지 않으면 나도 정직하기 싫다는 것은 썩고 몰염치한 정치인들이나 할 말이지 일국의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개혁을 그토록 부르짖는 지도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의 이해와 용서를 받으려면 남이야 어떻게 하든 솔선수범해야지 꼭같이 썩은 자들이 함께 공개하면 그 틈에 껴서 물타기로 면죄부를 받아보겠다는 꼼수를 쓰는 대통령을 보아야 하니 우리 자신이 참담해지는 것입니다. 여론에 밀려 여당이 먼저 선거자금내역이랍시고 공개를 했지만 몇 번 씩이나 고무줄처럼 제멋대로 늘어났다 줄었다 하다가 나온 그 공개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희망돼지저금통으로 모금했다는 액수는 지난 3월부터 당의 공식 대선백서를 위시해서 여당의 대표, 사무총장, 대변인의 입으로 번갈아 가며 줄기차게 80억원이다 50억원이다 주장하며 선전해놓고는 이제 와서는 그 10분의 1도 되지 않음을 슬며시 밝혔습니다. 열 배 이상 뻥튀기해서 국민을 우롱하는 사기극을 벌이고도 진지하게 사죄하지 않는 철면피 대통령과 여당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더 이상 밝힐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야당의 뱃장도 가관이긴 합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부정직함과 비겁함을 드러내면서 던진 또 한 마디의 말은 정말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혼자는 공개를 안 하겠다고 하면서 혼자라도 정직하게 처신하는 일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와 대통령후보경선에 나섰던 같은 당의 한 다른 지도자가 경선과정에서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고 양심선언을 한 것을 웃음거리라고 폄하해버린 것입니다. 부패한 다수가 웃음거리로 여기고 천하가 다 비웃는다 하드라도 적어도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수의 양심과 용기를 인정하고 격려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개혁이 무엇입니까? 정치인들이 보다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직하고자 하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여기는 사람들 편에 서는 대통령이 무슨 개혁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대통령은 정직한 것과 웃음거리가 안 되는 것 사이에서 내놓고 웃음거리가 안 되는 것을 선택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웃음거리이고 대통령 자신에게는 비극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스스로 정직하기를 공개적으로 거부했으니 이제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받을 것이며,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대통령이 개혁은 고사하고 어떻게 국정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입니다. 여당의 선거자금내역공개는 이제 철저히 검증을 받아야 하며, 거기에 한 치의 거짓이라도 드러나면 대통령은 스스로 사임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그것 하나만은 정치개혁을 이루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정치개혁이 무엇입니까? 국민을 속인 사람은 정계에서 떠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거짓말 잘 하고 국민을 잘 속이는 자들이 정치에서 설 자리가 없게 만드는 일에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개혁입니다. 국민이 해야 하고 국민만이 할 수 있는 정치개혁입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특정정치인이나 특정정당을 돕기 위해서 낙선운동을 펼치고 그들이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입 닫고 지내는 사이비 NGO들이 아니라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대통령 되면 부정하게 해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니 불편해서 싫고 또 부정하게 해먹었던 일이 들통날까봐 두려워서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안 뽑아주는 국민이나 정직하지도 않고 국민을 기만하기를 밥먹듯 하는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우상숭배 하듯 떠받드는 국민이라면 저질국가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신인도를 떨어뜨려 경제력의 쇠퇴를 가져오게 되고 국력과 안보의 약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개인에게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나라 전체에다가 엄청난 피해를 끼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법정에 나가서 거짓 증언을 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진리를 밝히며 정의를 지키라는 것이 본래 제9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짓 증거 안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진실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편하게 복되게 살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제9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겠습니까? 일차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각자 평소에 거짓말 안하는 습성을 길러야 합니다. 거짓말처럼 습관화되기 쉽고 중독성 강한 것도 없습니다. 한두 번 거짓말하기 시작하고 또 거짓말하고도 그것 때문에 별 일이 생기지 않으면 쉽게 거짓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금방 버릇이 됩니다. 거짓말은 한 번 습관 되면 별 의식이나 양심의 가책 없이 술술 잘하게 됩니다. 또 한 번의 거짓말은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거짓말을 감추기 위하여 또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작은 거짓말 버릇이 큰 거짓말 습관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 때나 여차하면, 자기가 조금만 곤란한 상황이나 불리한 처지에 놓이면 쉽게 거짓말이 튀어나옵니다. 우선 거짓말부터 하고 봅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꼭 그래요. 나중에 검찰에 불려가 가지고 한 2-3일 취조 받고 나면 다 불 것을 곧 죽어도 아니라고 펄펄 뛰고 고소하겠다느니 난리를 칩니다. 평소에 진실만을 말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언제든지 바른 말이 나오지, 평소에 거짓말 쉽게 하는 버릇 가진 사람은 여차하면 거짓말부터 툭 튀어나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9계명을 잘 지키려면 일단 우리 스스로가 먼저 평소에 작은 일에 있어서든 큰 일에 있어서든 거짓말 안하는 습관을 길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배려할 줄 아는 마음씨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거짓 증거는 남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편하기만 하면 자기의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는 데에서 쉽게 나오는 것이 거짓 증언입니다. 남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마음 평소에 있다면 그렇게 쉽게 거짓 증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에 대해서 배려할 줄 아는, 특히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손해를 끼치고 어떤 피해를 입힐 것인가를 늘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거짓 증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인데, 안타까운 얘기지만 그 마음이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서 아주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저 소극적으로 거짓 증거 안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주위의 불의와 거짓을 고발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증인이 될 용기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거짓 증거는 안 해. 그 대신 법정에 가지도 않아" 하며 입 딱 닫고만 있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더 바람직한 것은 남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남이 어쩔 수 없이 거짓말하도록 몰고 가는 고약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악취미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타자나 공익에 불이익이 되는 것이 아닌 한 남이 말하기 싫고 밝히기를 원치 않는 일을 굳이 캐어묻는 일을 삼갈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언행의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보면 누가 조금 안 좋은 일, 부끄러운 일, 말하기 곤란한 일이 있는 것을 알면 기어이 가서 꼬치꼬치 말해서 그 사람 입으로 말하기 싫은 그 말을 하게 만들고 거기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 안하려니까 할 수 없이 거짓말 둘러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이 거짓말하도록 몰고 가는 그런 고약한 심보를 버려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거짓말 못해" 라는 명분으로 남의 흉과 허물과 사생활에 관계된 일들을 막 떠벌이고 다니는 악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 거짓말 못해" 하면서 막 남의 얘기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도 있습니다. 그런 악취미는 버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당하는 사람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없는 말 둘러대거나 본의 아니게 거짓말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가능한 한 남의 얘기는 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더더군다나 누가 묻지도 않고 공익을 위해서 진술하도록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입이 근지러워 가지고 막 옮기고 다니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괜히 잠자고 있는 사람 전화로 깨워 가지고 "아무개가 이랬대 저랬대" 하며 하루종일 전화통에 붙어서 온 구역 식구들에게 다 전하곤 하는 짓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23:1-2에 보면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수를 좇아서 거짓 증거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기가 너무나 힘들어진 세상입니다. 이 거짓된 세상에서 승리하고 이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진실해져야 합니다. 거짓이 거짓으로 밝히 드러나기 위해서 우리가 더 진실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흰색이 많아야 검은색이 검은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흰색이 정말 희어야 검은색이 드러나지, 흰색이 흰색이 아니라 회색이 되어 버리면 그만큼 그 가운데 섞여 있는 검은색이 검은색처럼 보이기 힘들어집니다. 검은색이나 회색이나 다 비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하지 않으면 세상의 거짓됨이 드러나질 않습니다. 이 세상의 거짓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실해야 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들이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첫 절에서 이 계명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끝 절은 이 계명이 얼마나 엄숙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그 분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영원히 진리이시고 항상 진실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정직한 삶을 살도록 엄숙한 명령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악하고 불의한 이 세상에서 힘들고 외롭겠지만 그래도 정직한 삶을 삶으로써 이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어가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