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 이’
정 우 민
도쿄의 오케스트라 단원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첼리스트이다.
모처럼 얻은 직장을 위해 1억 8천만 원짜리 첼로를 집을 담보로 하여
구입하여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었으나 관객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어느 날 갑자기 오케스트라가 해체되고 실업자가 된다.
자신이 첼리스트로서 천재성은 없고 실력에 한계가 있음을 미리
깨달은 다이고는 과감하게 첼로를 팔고 도쿄를 떠나 고향인 야마가타로
내려가 새로운 직업을 찾는다. 아내인 미카(히로스에 료코)도 남편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카는 오로지 ‘천사표’ 아내로 나오는 데,
히로스에 료코는 웃는 모습이 제일 매력적이며 전형적인 일본여인의
모습이며 천황가의 부인들과 너무 닮았다.
고향에서 아버지는 조그만 카페(Bar)를 경영했었는데 카페 여급과
눈이 맞아 다이고가 6살 때 집을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질 않았다. 다이고의
어머니는 평생을 그 찻집에 혼자 살다 몇 해 전 돌아가시고 유일한 유산인
그 집에 다이고 부부는 살게 된다.
어느 날 구직 정보에서 “여행 도우미 ,고임금 보장 , 초보 환영”이란
정보를 보고 찾아간 곳은 ‘NK 에이젠트’라는 회사였다.
사장(야마자키 츠토무)은 단 한마디만 묻고 다이고를 바로 채용하는 데 그 질문인즉
“열심히 할 수 있겠냐?”는 단 한 마디 였다.
그곳은 영원으로의 여행 도우미 즉 염습을 하는 납관 회사였다. 죽은 이를
염하고 관에 넣는 ‘납관’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NK는 납관을 의미했다.
이 영화의 원제는 ‘보내는 사람’이다.
사람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고 남은 사람들은
그 돌아가는 사람을 보내 주어야만 한다.
돌려 보내주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직업이 '납관사' 이다.
어차피 화장하는 사람이지만 마지막에 좋은 옷을 고인에게 결례를
하지 않으면서 몸을 깨끗이 닦은 후 정갈하게 입히고 고인의 얼굴에
남녀에 따라 곱게 화장을 해준다.
하루 아침에 화려한 첼리스트에서 초보 납관도우미가 된 다이고.
모든 것이 낯설고, 거북하지만 차츰 베테랑 납관사인 사장 이쿠에이가 정성스럽게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모습에 찡한 감동을 배워간다.
자신의 일이 부끄러워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는 다이고는 이제 다양한 죽음의
모습을 목격해야 한다. 여자의 얼굴을 타고난 남자, 너무 늦게 발견되어 냄새를
참기 어려운 노인의 시신, 폭주족들과 어울려서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사고로 죽은 소녀
그리고 아내를 떠나보낸 중년의 분노한 남편. 사람들이
기피하고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던 일이 죽은 이와 산 사람에게
변화를 만들어내고, 다이고 또한 점차 진지하게 일에 임한다.
다이고는 집안에서 자신이 어릴 적 연주했던 첼로를 찾는 데 그 속에는
큰 참외만한 돌맹이가 있었다. 그 돌은 어릴 적 아버지(미네기시 도오루)가 냇가에서 건내준
것으로 아버지는 ‘돌 대화법’을 아들에게 얘기하였다.
자신의 마음과 꼭 맞는 돌을 골라 상대에게 주고 그래서 각자의 마음을 조용히 읽게 되는 대화법.
다이고는 메추리알만 큼 작은 흰 돌을 아버지에게 주었었다.
어느 날 한적한 어촌에서 십수 년 간 혼자 살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기별을 받은 다이고는
고뇌 끝에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아무렇게나 입관하려는 어촌 조합원들을
내치고 정성스럽게 아버지의 염을 하던 다이고는 자신이 준 작은 돌을 아버지가
쥐고 돌아가신 것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얼굴을 깨끗이 화장한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한 다이고는 자신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이던 아버지의 정을 느끼고
눈물짓는다.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절대 가볍거나 경망스럽지 않은 유머로 넘기는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연출력과 모도키 마사히로와 야마자키 츠토무의 절제된 연기가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인상 깊은 대화가 기억에 남는데
몇 가지를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내 미카를 붙잡기 위해 주인공 다이고가 일을 그만두려고 할 때, 사장이 복어정자주머니
소금구이를 주면서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살기위해 먹는 것들은 모두 죽은 생물의 몸이고 그것들은 미안하게도 맛있다”는 것이다
다이고는 마을 계곡의 강을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은 뒤 죽어가는 연어를 보고 죽을지 알면서 왜
구태여 강을 거슬러 오르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지나가던 화장장지기 노인이 이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아마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것이겠지.”
동네 목욕탕의 단골손님인 화장장지기 노인은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목욕탕 여주인 주검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문과도 같은 거야. 죽음의 문을 통과하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어.” 그러면서 자신은 그 문지기라고 말한다.
보통은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각자가
비로소 신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웰컴 투 동막골’, ‘기쿠지로의 여름’,‘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의 아름다운 영화음악을
만드어낸 ‘히사이시 조’와 NHK/도쿄도 교향악단의 수석 첼리스트 13인이 만들어낸
첼로의 선율이 아름답다.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의 아버지 역을 맡은 미네기시 도우루가 국내 영화 개봉에 앞서 실제로 사망했다.
미네기시는 극중 가족과 오랜 세월 떨어져 생활하던 중 죽음을 맞아, 아들 다이고로부터 마지막 배웅을
받는 역할로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실제 미네기시는 '굿바이' 촬영이 끝난 후, 폐암 판정을 받고도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보여왔다.
때문에 함께 영화작업을 한 배우 및 스태프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 영화에서 보면 일본의 전통 납관의식이 특이하다. 염을 해도 가족들이 모두 다 보는 데서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족 일부만 염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고인 얼굴을 곱게 화장하여
그 마지막 얼굴을 가족과 지인 모두가 보면서 이별의 의식을 치른다. 납관을 해도 얼굴 부분에
작은 문을 열어 그 얼굴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관한 뒤로는 아무도 다시는 그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죽은 이의 모습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근하고 경건하게 여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젠 우리나라 거의 모든 장례가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치러지는 것과 달리 영화에 나오는 납관의식은 모두 고인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추가; 이 영화는 지난 9월 1일 폐막한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첫댓글 나도 몇번 염을 해봤는데 망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꼭 자는 것 같은 모습이지..그걸 볼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은..숨을 부지런히 쉬면 금방이라도 살수 있을텐데..하고 중얼거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