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덜컥 설날이 다가온다. 설날은 뭐니뭐니해도 가족 친지들과 정다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셈인데, 요번엔 어찌된 일인지 선물 준비도 못했는데 설날이란다.
예년보다 이른 설날을 맞이해서인지 갑자기 바빠졌다. 그러나 설날이 다가오면 내 몸은 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다 마친 듯 적당히 휴식하고 날짜에 맞춰 적절히 가동되니, 그야말로 이 분야 베테랑답게 스스로 시스템화 되어버린 듯하다. 최근까지 푹 쉬며 책이나 읽으면서도 짬짬이 이불 빨래를 하거나 냉장고를 정리하는 등 한가할 때 미리미리 해야 할 일들을 해 둔 것도 이 몸의 명절 시스템화에 있는 듯하다.
오늘은 날씨마저 설핏 봄날씨에 다가가 겨우내 집안에서 빨래를 건조시키던 것도 햇살맛을 보게 하였다. 삶을 빨래들을 모아 빨래를 하고나서 이불 담요도 뜯어 새로 장만 하였으니 오늘하루는 충분히 설날맞이 대청소를 한 셈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오늘 일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두부 만들기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명절 즈음이면 우리집 가마솥은 아예 공장이 된다. 대문입구에 가마솥 자리가 있어서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분주한 인상을 풍기는 곳이 우리집이다.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우리 어머니 특징이기도 하다.
두부 만드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큰 일 중 하나이다. 나는 겨울 묵은지 김치를 충분히 넣은 우리집표 만두와 고소한 우리집표 두부를 특별히 좋아하는데 이 두부를 말할 것 같으면 마트나 시장에서 사 먹는 그런 두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시간 아까울 지경이다. 나는 어머니가 청국장 하는 일이 한가해지면 두부 만들어 먹자고 미리 말해 두었다. 좋아하는 친구를 불러 김치에 싸서 먹고싶다는 단순한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점심 설거지를 끝내고 마당에 나가니 가마솥엔 뜨거운 물이 한 솥 끓고 있고 방앗간에서 빻아온 콩물이 옆에 준비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동작이 빠르다.
그런데 시어머니나 며느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건망증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두부를 하든 묵을 하든 이런 일에는 마춤한 보자기가 두 종류 있어야 하는데 어찌된 셈인지 할 때마다 이 보자기 둔 곳을 찾느라 헤매는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어머니 책임이라며 나는 이 분야에서만큼은 발을 빼는데 순전히 나도 어디 두었는지 모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고도 오히려 어머니께 "할 때마다 찾느냐?"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데 어머니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거라서" 모르는 게 정상이란 듯 찾으러 다니신다.
결국 큰 천으로 재봉틀에 드르륵 박아오시는데 그동안 나는 밖에서 시장 보고있는 남편에게 SOS를 친다. 낮고도 빠른 말로 "두부 만든다"고 하면, 느리게 보던 장도 빨리 보고 오는지 남편은 얼른 대문간에 들어선다. 가족의 단합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어머니가 촘촘한 보자기를 재봉틀에 박는 동안 나는 첫번째 보자기에 콩물을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열심히 콩물 빼는 작업을 했다. 노랗게 물드는 콩물은 벌써부터 너무 먹음직스러웠다. 너무 뜨거워 입고 있던 겉옷도 벗고 아예 반팔로 작업했다. 하나도 춥지 않았다.
보자기에 든 콩물은 어느덧 진누런 액체를 쏟아내고 서서히 찌꺼기만 남아간다. 흘러나온 콩물은 다시 미지근하게 데워진 가마솥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보자기에 걸러진 찌꺼기는 촘촘한 보자기에서 다시 한 번 걸러지게 된다. 찌꺼기는 그러니까 더 보드라운 콩물을 빼내며 마지막 한 찌꺼기까지도 아낌없이 바치는데 내 근육은 장난아니게 팽창하게 된다.
가마솥에 한가득 콩물이 끓어오른다. 저 거품 보글거리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군침을 고이게 한다. 고향의 맛이란 이런 정서 아니겠나.
보자기에서 막 나온 콩비지. 짚을 깐 바구니에 하얀 천을 깔고 그대로 덮어 아랫목에 사흘을 두면 발효된 콩비지가 탄생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들고 계신 하얀 색 콩비지는 두번째 보자기에서 나온 것으로 좀 더 보드랍고 우윳빛이었다. 둥글게 공글려 콩비지 찌개를 해 먹을 때면 친구들을 부를 예감이 들었다.
가마솥 안에서 두부가 차츰 덩어리를 이루어간다. 이것은 오로지 간수를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이 간수라는 것이 참 신기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소금 가마니를 세워놓을 때 항상 약간 높직한 곳에 얹어 놓으시는데 그 아래로 새어나오는 소금물을 따로 받아내시는 것이었다. 그 기나긴 시간을 스미듯이 베어 나와 한 병 담기는 긴 기다림의 작업. 이렇게 만들어지는 간수는 두부를 응고시키는데 가장 필수품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아 냈을까.
뭉게뭉게 뭉쳐지는 연두부는 구름덩어리를 보는 것 같다. 하얗게 걷히는 거품은 구름이 걷히는 것을 연상시킨다.
어머니는 적당히 덩어리진 것을 준비된 판대기에 차근차근 부으신다. 간이 알맞게 밴 순두부 덩어리를 건져 먹는 재미는 옆에서 배우는 시종 차지다.
네모난 틀에 넣어진 두부는 하얀 천을 덮고 그 위를 지긋이 눌러 약간의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약 30~40분? 마지막으로 두부 자르는 일만 남는데 어머니는 이것만은 언제나 내게 맡기신다. 칼을 들었다가도 똑바로 그을 자신이 없는듯 항상 같은 동작으로 곰곰 재시다가 안되겠다는듯 나에게 건네신다. 아무래도 당신보다야 내가 차분하단 것이겠지만 며느리에게 임무를 넘기시는 어른의 미덕이라 생각하며 나는 재미나게 두부를 자른다.
이 날 저녁, 두부는 저녁 식사에 맞춰 제발로 이웃을 찾아가고 겨우 세 모 남았다. 나는 어머니께 내일 다시 한 판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어머니는 얼른 콩을 또 불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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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 람 풍 경 원문보기 글쓴이: ㅋi 스
첫댓글 설날 전에 두부 만들었던 이야기를 올립니다. 카페가 너무 횡해서.
그 두부 맛 본 사람 자수 합니다. 아끼다 똥 된게 아니라 남의 편 입으로 다 들어갔는데, 콩 비지 맛도 좀 뵈 줄려나???
언니야 이런 곳에서는 쫌...ㅋㅋ
두부 맛있것다. 막걸리 한잔에 간장소스 우물우물 캬~
두부는 이제 없습니다요. 이 페이지는 약올리느라ㅋㅋㅋ.
여름에 반팔옷 입으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겨울에 반팔옷 입으니 섹시하군 - 팔뚝만
참 살다살다 팔뚝까지 뭐시기하다는 말은 첨 들어보는군요. 지금도 그래서 반팔인디.
고마 조푸도 쌕씨하다 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