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가요 교실을 진행하다가 전화를 받고 그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들려주며 파이팅을 외치는 열정적인 사람. 나영진은 현장성이 강한 가수이다. 영통에서 벌어지고 있는 후배가수 신곡 발표회에서 축하 노래와 메세지를 전해 주고 곧바로 만남의 장소로 달려왔다. 예의 겸손함이 묻어나는 자세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은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시조창을 잘 하는 부친의 10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노래자랑에서 <떠날 때는 말없이>를 불러 1등을 했다. 푸짐하게 받은 상품을 들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짐을 받아 준 신사가 노래자랑에서 상을 탔다는 것을 알고 노래하고 싶으면 찾아 오라며 명함을 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작곡가 한동훈을 만났다. 이 때 같이 음악 수업을 받은 사람이 남진, 정원 이상열 등이다.
피나는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기량이 되었지만, 레코드 취입을 하기 위해서는 수 십 만원의 돈이 필요하지만, 농사를 짓는 부모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밤업소를 전전하며 무명 가수로 노래를 부르다 군악대에서 작곡가 김현우(계은숙의 노래하며 춤추며 작곡)를 만나게 되었다.
제대 후 북극성 그룹을 결성 마스터로 활동하며 드럼을 치며 싱어가 되었다. 1978년 대도레코드에서 <그리운 고향>을 출시했으나, 무명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계에서 발붙이기가 참으로 지난한 길임을 느끼게 한다.
나영진이 수원에 정착한 것은 1980년대 초이다. 이 때부터 생활 속에 파고들어 각종 행사에 다니거나, 봉사활동을 통해 꾸준히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던 차에 1996-7년 무렵 수원시가 월드컵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기사를 읽고 <월드컵은 수원에서>라는 노래 말을 가사공모에 1착으로 접수했으나, 탈락을 했다. 오기가 생긴 그는 월드컵 유치에 대한 일념으로 김성한이 작곡한 이 노래를 음반으로 발표하며 부르고 다녔다. 전파를 통해 이 노래가 알려지면서 신문사를 비롯한 언론매체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MBC 라디오 한선교의 초대석에서 출연제의가 왔고, 이 기회를 통해 노래가 전국 방송을 타게 되었으니 나영진을 진정한 가수로 키워 준 것은 월드컵이었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피땀 어린 노력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행운도 없었을 것이다. 수원월드컵 유치가 확정되기 직전 <강원도 아줌마> <비바 월드컵 수원 코리아>를 사비로 제작 방송 심의에 합격하면서 메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리하여 2002 수원시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1999년 8월 17일 수원시 694호 수원 월드컵 공식 홍보 가수로 인증을 받고, 송봉수 신현태 금사향 안중현 등과 유럽 5개국 홍보공연을 다녀왔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월드컵에서 꿈의 4강 신화를 이루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 일상으로 돌아 온 그는 라이브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미화원 위안잔치, 경로잔치를 통해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한 편 양로원 수녀원 교도소 나자로 마을 등을 돌며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한 위문 공연에 힘쓰고 있다. 17년째 MC로서 노래와 재담을 보여주며 이제는 제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태성★ 에게 <동수원 부르스>를 작사해 주었고,★ 전동연 ★(성남시 공무원)에게 <남한산성>을 ★ 김무상 ★ 에게는 <착각 하지마> <서글픈 사랑> <될거야>라는 노래를 주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나영진의 노래는 시대성을 반영함과 동시에 어려운 이웃에게 힘을 주는 노래를 만드는 소박한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스턴트 사랑 시대에 맞는 현실성이 가미된 노래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노래로 <내 사랑 당신> <영심이>가 방송을 타고 있다.
앞으로 제자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싶다는 가수 나영진은 척추 혈관 종양이라는 불치의 병을 딛고 월드컵을 주제로 수원을 홍보한 가수로서 자랑스러운 수원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수원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지만, 월드컵 경기장 개장식에 참석을 못하는 등 때로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지만, 자신과 수원을 위해 최선을 다한 만큼 서운한 감정도 사그라졌다고 한다. 지금도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며 열정적인 삶을 이어가는 그에게 오래도록 건강하게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그 동안의 활약으로 수많은 상을 타기도 했지만,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은 수원 시민의 사랑이라며 소박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더없이 밝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