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가족
재욱씨 영숙씨 경자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이다
매 끼니 때마다 밥상은 영숙씨가 차려 두 사람은 그녀를 엄마라 부른다
재욱씨와 영숙씨는 나이가 같다, 생일도 같다
공부하느라 점심때서야 들어서는 경자씨는 배고프다며 엄마부터 찾는다
밥상을 차려놓은 엄마가 땡 땡 프라이팬을 울리면
두 사람은 달구새끼처럼 쪼르르 달려와 밥상머리에 앉는다
하지만 얼른 숟가락을 못 든다, 엄마가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미 숟가락을 들었는데 맨 늦게 앉아 기도를 하는 날도 있다
이럴 때 두 사람은 머쓱하다
모두 밥상머리에서 기도를 하는데 혼자 숟가락질을 하듯
주인이 숟가락을 들기 전 객이 먼저 숟가락을 든 것처럼…
그래서 먼저 기도를 끝낸 후 땡 땡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떤 날 엄마의 기도는 길다
혼자 밥해 먹이고 설거지 하는 일이 약 오르는 날이다
침묵이 숨 막힌 두 사람은 된밥을 먹듯 목이 멘다
어떤 날 엄마는 기도를 빼먹는다, 자기가 배고픈 날이다
세 사람 가운데 엉덩이가 제일 무거울 듯한,
막내인 경자씨가 밥은 제일 빨리 먹는데 틈만 나면 엔간한 산을 다람쥐처럼 타는 습성이다
경자씨는 막내답게 밥투정이며 반찬투정을 자주해 엄마의 눈총을 받는다
한 성깔 하는 엄마가 “야이 새끼야, 밥 이리내놔.” 하면 얼른 그릇을 감싸는 경자씨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을 뒤집어쓴 채 씩씩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여군처럼 씩씩한 경자씨도 밥 앞에서는 약하다
재욱씨는 늘 말이 없다, 장남인데 돈을 못 벌어 차린 쥐코밥상이 미안해서다
된밥을 좋아하는 엄마의 국물은 싱겁다, 싱거운 국물에다 된밥을 말면
달착지근하게 익은 깍두기 하나 있어도 성찬이다
간간한 국을 좋아하는 재욱씨가 가끔 하는 밥은 물밥이다
죽도 밥도 아니라며 투정하는 경자씨는 손이 제일 크다
손이 크다는 것은 가난을 안다는 것이다
경자씨의 손맛이 재욱씨에게는 맞다, 전라도 손맛이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한 냄비의 찌개를 숟가락 빨며 떠먹는 가족이다
서로 남긴 밥도 개의치 않고 먹는, 질펀한 아줌마 같은 가족이다
지천명을 넘어서, 불혹 중반을 넘어서 만나
가난하지만 찬란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늙다리 가족이다
영숙씨 외손자 하진이가 있어
총각이 할배 되고 경자씨가 할매 되는,
총각이 두 망구와 사는, 이상한 가족이다.
첫댓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두 총각이 한 할매와 살아도 이상하지 않다.
밥은 먹고 사는지 궁금했는데, 최소한 점심은 먹나 보다.
서로 더 먼저 더 많이 먹으려고 싸우지 않으니 넉넉한 살림이다.
영숙님의 기도는 세 사람의 몫이겠거니.
밥은 경자씨가 제일 빨리 먹습니다.^*^ 하도 산을 많이 타서... 그 이야기가 빠졌네요.^^
산을 많이 타서 밥을 빨리 먹는 게 아닙니다요, 심사가 시끄러울 때 그냥 둘러삼키는 게지요. 헉, 엄마 눈치 보일라.
그 밥상은 내 의식의 잠복근무
반찬 투정에 가끔 밥그릇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가끔 <그럼 먹지 마>라고 얼르거나 달랠 기색도 없이 공포?를 중간치기 찬으로 얹었다.
그래도 나는 반찬투정을 잊지 않겠다.
이즈음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
미운 놈 떡하나 더 준다더니 갈수록 밥이 많아진다.
그러네요, 반찬 투정하다가 밥그릇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이야기도 빠졌네요.ㅎㅎ
재미있는 글 잘 읽었나이다. 수필계를 따스하게 뎁혀주는 1등공신들의 밥상 이야기...이곳이 더 가깝게 끌리는 시간 *^^*
다행입니다. 재밌자고 한 번 올려봤습니다.^^
理想瀚 가족 맞아요. 이상이 넓고 큰.....^^
늘 해몽을 너무 잘해주신다는.
사무실 풍경을 미처 못 헤아리고 보낸 고추장 떨어졌겠다.
맛있게 잘 먹었답니다.^^
엄마~~ 훌찌럭 ㅠㅠ. 모두들 사랑합니다^^*
저희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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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님,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행복한 가족 맞습니다. 날마다 행복하면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가까이서 아파해줄 동료들이기도 하지요. 가난해서 서로 꿈꾸는 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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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어디다 흘려버리고 너스만 다니실까.^^ 그래도 사내라서 책임지는 짐이 젤로 무겁습니다.^^
호호호. 길손님이 하도 불러싸서 닳았다 안하요.
너스님 무섭당, 밥투정하면 두둘겨 패주라니... 아이고,,, 승훈선생님은 정말 말을 잘 안하시는데.., 철없는 겡자만 궁시렁궁시렁 대는데... 쩝
허벌나게 때리라구요. 그럴게요.
재욱씨와 영숙씨가 이란성 쌍둥이 아닐까요? 어쩔 수 없이 각각 다른 집에 입양(?)되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커왔는데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이상한 가족'의 엄마와 아들로 만나게 되었다는 TV 연속극 같은 실화로?
얼쑤님 덕분에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푸하하하하
오늘도 경자씨가 반찬투정을 했어요. 고등어자반조림에서 비린내가 난다고요. 재욱씨가 하는 말 '밥 다 먹은 다음에 투정해라 그렇지 않으면 밥그릇 빼길지 모른다.'라고 했지요. 가난해도 함께 밥먹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예요. 오늘 점심에는 요, 고등어자반조림, 뚝배기 불고기, 파래무침, 양배추쌈, 감자볶음 그리고 김치였어요. 왜이리 반찬이 많냐고 하더군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엄마가 맛있는 것 배불리 먹여놓고 도망가는 거... 그치만 도망은 안가요. 그동안 부실한 반찬 채우느라 그랬어요.
반찬이 너무 많지 않나요? 1식 3찬과 국이 표준인데~
투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면 될 걸요.
"그렇게 잘 해? 그럼 네가 해~! 아니면 굶든지~!"
이구, 써놨잖아요. 그동안 부실해서 그랬노라고...
부실했으면 어때요? 누가 그게 엄마 탓이래요? 누가 그랬는데요? 집히기만 해봐라.
부실한 원인이 경제적이거나 심리적이거나 다 큰 딸(?)과 아들(?)에게 책임질 거 없어요.저희들이 엄마를 잘 챙겨야지! 밥 시킬려고 엄마야? 엉?
곧 영숙님이 흔들리면 사무실이 흔들린다는 말씀. 굳세어라 엄마야~
그런데 저는 왜 비린내가 신경줄에 딱 걸리는 거 있죠. 거미줄에 잠자리 날개 붙는 것처럼. 잘 생긴 고등어 그놈이 왜 그 냄새를 풍기는지 이상하긴 해요.
언니 그래도 오늘은 밥도 괜찮았고 (히죽) 엄마는 질다고 혼잣말 했지만, 당면 넣은 국(뚝배기 불고기)도 나름 괜찮아서 밥을 한 그릇이나 먹고 또 끄덕끄덕 졸았어요.
얼쑤님, 제겐 하나의 규칙이 있는데요... 부엌 하나에 여자 한 명입니다.
식탁에서 까탈부리는 놈 하나 정도는 정상 아닌가요? 매번 괴기 반찬 달라고 투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