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일시 : 2014년 12월 3일(수)
◈ 등산코스 : 독립문역~서대문구의회~너와집쉼터~무악정~봉수대~서대문형무소 (산행시간 : 3시간)
◈ 등산시간 : 독립문역→ 서대문구의회(10분)→ 안산자락길 입구(10분)→ 북카페(5분)→ 전망대(10분)→ 너와집쉼터(10분)→ 메타세콰어어길(20분)→ 무악정(15분)→ 봉수대(5분)→ 안산천약수터(5분)→ 봉원사(10분)→ 능안정(15분)→ 전망대(15분)→ 독립문파크빌(25분)→ 안산자락길 입구(10분)→ 서대문형무소(10분)→ 독립문역(5분)
◈ 독립문역 가는 길 :
① 네비게이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47 . 독립문역(02-6110-3261) [주차장 / 없음]
② 대중교통 -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나와 3분정도 도보, 왼쪽 서대문구의회 입구로 진입한다.
706
7025, 7737
종로05, 서대문02(독립문)
◈ 안산자락길 :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은 7㎞ 길이의 전국 최초의 순환형 무장애 자락길로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보행약자는 물론 휠체어, 유모차도 쉽게 숲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안산 자락길은 구간별로 아까시숲, 메타세콰이아숲, 가문비나무숲 등 다양한 숲을 즐길 수 있으며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한강, 인왕산, 북한산, 청와대 등 다양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안산 자락길 주변에는 서대문독립공원과 형무소, 그리고 조선시대 세종때 만들어진 봉수대, 신라 진성여왕 시기에 창건된 봉원사 등 역사적인 명소가 가득하다. 안산 자락길은 안산을 둘러싼 순환형 자락길로 2호선 신촌역과 3호선 홍제역, 무악재역, 독립문역과 가까워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이곳 안산자락길 전망대는 인왕산과 북한산을 훤희 볼 수 있는 안산자락길의 명소 중 하나이다. 산책 중 발길을 잡는 곳으로 한번은 쉬어갈만한 곳이다.
너와집은 기와대신 참나무껍질 또는 붉은소나무 조각을 이용하여 지붕을 이은 한국전통가옥이다. 강원도에서는 느에집 또는 능에집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화전민이 사용했던 집으로 맑은 날은 지붕재료가 수축하여 통풍이 잘되고, 비오는 날에는 습기를 빨아들여 빗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화전민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다.
귀틀집이나 셋집처럼 화전민이나 산간지대 주민들이 짓고 사는 너와집은 붉은소나무가 거의 사라지면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강원도 삼척군 도계리에 3채가 남아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
메타세콰이아숲(숲속 무대)
신라 진성여왕(서기 889년)에 창건된 고사찰 봉원사는 한국불교태고종의 총본산으로 ‘영산재’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1년 ‘전통사찰’로 등록되어 많은 신도가 찾고 있는 규모가 제법 큰 절로 삼천불전 내에 삼천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봉수체재가 확립되었던 세종24년에 무악산(안산의 옛 명칭)에 만들어진 두 군데의 봉수대 중 하나로 휏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이었으나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44년에 복원되었다. 봉화불이 두 개 켜지면 적병이 나타났다는 신호이고 세 개가 켜지면 적병이 내습한다는 신호였다. 봉수대가 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듯이 이곳에 오르면 서울의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의 서대문구 현저동(峴低洞)에서 홍제동(弘濟洞)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일컫는다. 무악재 지명은 무악재를 끼고 있는 안산을 무악이라고 하는데 이 산 이름 무악에서 비롯되었다. 무악재는 여러 별칭이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삼각산 인수봉이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가려는 형세를 하고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무악산을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산, 즉 모악(母岳)이라 했고, 그 고개를 모악현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무악이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두 봉우리 사이가 잘룩하여 마치 말안장 같이 생겼기 때문에 길마재라고도 한다. 또한, 고개 북쪽 지금의 홍제동 언저리에 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현사라는 절이 있어서 모래재라고도 한다. 영조 45년에 영조가 부왕 숙종의 명릉 역사를 마치고 한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에서 명릉 쪽을 바라보면서 부왕의 생전 모습을 그리워하며 추모했다 해서 추모현이라고도 한다. 그 밖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도읍 터를 물색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서울의 남쪽 일대를 답사할 때 무학대사가 이 고개를 자주 넘나들었다 해서 무학재, 봉수대가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봉화재, 봉화재에서 음이 변한 봉우재, 예전에 이 고개길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이 고개를 넘으려면 사람을 모아서 건너갔다 하여 모아재, 홍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홍제동고개라고 불린다.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여 년간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수형시설이었던 ‘서대문형무소’의 옥사 및 사형장 등을 보존․관리하고 관련 유물 및 자료 등을 전시하여 국민들에게 역사체험의 현장으로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세워졌던 경성감옥(京城監獄)은 서대문감옥(1912년), 서대문형무소(1923년)로 명칭이 몇 차례 바뀌었고 일반적으로 서대문형무소로 통칭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했던 현장으로 식민지 권력의 대중통제 시설로 이용되었으며, 독립운동이 치열해 지면서 1920년대 초반 그 규모와 시설이 대규모로 확장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형무소(1945년), 서울교도소(1961년), 서울구치소(1967년)로 명칭이 바뀌었고,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에 저항하였던 수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한 현장이었다.
서대문형무소를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 체험의 현장으로 조성하고자 서대문구의 주도로 박물관 조성사업이 추진되어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사적 제324호)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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