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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상은 많이 변했고 더욱 변하려는 속도는 가속화 되고 있는 중입니다. 20세기 위대한 사회학자의 한 사람인 지그문트 바우만(Zyamunt Bauman)이 있습니다. 폴란드 출신 유태인으로서 서방으로 쫓겨난 인물입니다. 1971년 영국에서 자리를 잡은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퇴임후 강연과 저술활동을 하는 유명한 사회학자 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대사회의 유동성과 인간의 조건을 예리하게 분석한 학자입니다. 기존 근대사회의 작동 원리인 구조, 제도, 풍속, 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현실을 유동하는 근대 라고 말합니다.
현대의 모든 사실들은 과거의 견고하던 사회가 무너지고 유동적인 사회가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유동적인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전통의 문화, 축적의 문화는 사라지고 매이지 않는 문화와 연속성이 없는 문화가 있을 뿐이라 말 합니다. 유동적 사회에서는 동안 지탱해 주던 견고한 실체의 버팀목들이 약화 되었다고 합니다. 국가관, 관념과 관습, 가족, 직업등의 개념이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확고하거나 보장되는 것이 없고 소모품등 모든 것이 편리하게 바뀌고 변하여 인간관계 마저도 깊이가 없어져 사랑을 위해서나 우정을 위해서 변함없이 오래 기다려 주는 일은 이젠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는 모든 사람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며 요즘 사람들은 먼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기 보다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만족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하고 모험적인 시대에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만족을 찾습니다. 현재의 소비사회는 사람들에게 소유욕을 조장하고, 인공적인 생필품들을 만들어 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선택할 수 있고,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자기가 결정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통은 점점 더 무시되고, 심지어 기본적인 윤리마저 소홀히 여겨집니다. 개인의 행복과 성공, 개인의 욕구 성취가 정당화되고, 행동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 사회적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소속되기를 원하지 않고 무슨 일에든지 매이기를 싫어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무도 분명하게 어느 것에도 소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나 어떤 관습에 대한 관계는 깨어질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쉽게 저버리는 환경으로 전환되어 버렸습니다.
현재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삶의 형태입니다. 공동의 선이 절실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더 절망의 늪으로 빠지기 전에 함께 건져 올려야 합니다. 물질주의에서 인간 중심의 이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름대로 오늘 진행할 순교와 걸음 여행에서 화두로 정한 묵상의 주제입니다. 순례하며 걸으며 세상과 우리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걸으며 종종 쉬어가며 나눈 이야기들이서로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순례와 걸음 여행의 마지막 스케줄을 새벽 대기산 아래 사도직회 하느님의 자비 경당에서 맺는며 묵상을 정리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갖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실천의 의지와 지속적인 행위도 병행해 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럼 이어서 걸음 여행 속으로 다시 걸어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공동의 선!
우리들의 생활환경을 하루속히 개선하지 않으면
더 이상 북극의곰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차례는 인간될 수도 있습니다.
02월 걸음, 여행 이야기
늦은 밤, 오랜만에 전철을 탔습니다. 안면을 가린 얼굴들, 승차역으로 가는 길, 에스커레이터, 계단, 승차장, 그리고 전철 안, 의자
도시의 생활환경 곳곳은 공포스러웠습니다. 청결을 의미하고 순백색의 고귀함을 전해 오는 흰빛은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흡사 코로라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불사하는 듯한 보건 전사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조금은 경계하는 듯한 의식이 결국 준비 못하여 나 홀로 맨살로 앉아 있는 자신이 참 송구한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기분이 바로 가시방석이구나 하며 눈을 감고 내릴 때까지 유지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편안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가와 옆자리에 앉지 않으니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넉넉함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내리면서 소유적 판단에 의하여 생긴 욕심이 만든 병 폐지! 먹으면 좋다는 이 녀석 먹고 강장하여 든든하고 정열적인 몸을 만들어 써먹어야지 하는 혼자만의 소유의 판단에서 생긴 욕심! 이 놈이 만든 바이러스가 세상을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제2, 3, 4.... 바이러스는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수신(修身)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익혀 실천해야 할 덕이고 키워야 할 인성입니다. 외출할 때와 돌아올 때의 환경과 마음은 천지차이였습니다.
순례, 걸음 여행에 사용할 차를 인수하여 혼자 타고 강변의 심야 시간을 질주하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로는 고독이라는 공간이 좋은 친구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답니다. 도착하여 지하 3층 아래 공간에 세우고 다시 만난 시간은 새벽 4시 56분. 점검 후 올라타고 집중하며 달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나오신 형제들, 하나, 둘, 셋.... 일곱여덟, 끝~~~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입니다.
전통은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 단출하지만 참석을 결정하신 형제들이 계셔서 이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주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두미강을 건너자, 예상한 것과 같이 물안개가 세상을 덮어 놓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강변을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새 생명을 보여주기 위한 자연이 벌이는 신춘 물안개 축제입니다. 밀도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많은 양인지 한 치도 앞을 볼 수 없는 새벽 강가의 풍경입니다. 두물, 국수, 옥천, 양근, 용문 양덕원 천을 지나야 물안개 장막을 거둘 수 있습니다. 물안개를 누를 수 있는 것은 말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건조하게 하면 금세 사라집니다. 바람은 오히려 물안개를 춤추게 만듭니다. 유유작 적하며 흐르게 하는 멋을 가르치는 녀석이 바로 바람입니다. 그러나 흐르며 내놓는 틈 사이로 보여 주는 여백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멋진 산천 화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틈이 없는 겹겹 한 물안개 장막!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양 전조등과 비상등 안개등 등 모든 등을 켜고 운행하여 도착한 양덕원, 그리고 언덕 위 성당, 굳게 닫힌 성전, 밖에 모셔진 높으신 상과 성모님 상 앞에 모여 기도드렸습니다.
차량으로 다시 이동, 점심을 할 곳에 주차시켜 놓고 15분 걸어 다시 올라 선 며느리 고개 슬픈 전설, 전설 따라 삼천리에도
소개된 곳이지요. 이곳을 깃점으로 숲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안개의 속성상 햇살이 퍼지는 속도에 따라 사라져 갑니다. 그래도 아직은 남아 있는 숲 길, 고즈넉한 자세로 산을 찾아온 객들을 맞습니다. 언제나 같은 모습과 반기는 숲에 첫인사, 청정함! 오늘은 더욱더 청량감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입춘이 풀어놓은 초록의 기운이 감지되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걷기 시작하여 30분이 지날 무렵 열이 발산하여 덥게 느껴집니다. 허물 벗듯 겉옷을 벗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겉옷을 정리할 수납공간에 넣어 두었다가 다시 입기를 반복하는 것이 동절기나 간절기에 필요한 행장 정리 방법입니다. 이 문제를 고려하여 옷을 선택해야 하고 수납공간인 배낭도 준비되어야 비로소 행장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생수와 맑은 더운 차 종류와 행동식을 준비해 두면 에네지 보충에 좋은 결과를 주어 최상의 컨디션으로 숲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여백의 길~~ 칭칭 산을 동여맨 숲 길,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매화산 자락입니다. 까끈산과 새벽대기산도 붙어 있지만, 오늘 걷는 지역의 대부분은 매화산 자락이라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곳의 숲 길은 직선을 거부합니다.
곡선의 형태로 이어진 숲 길, 산책을 하며 명상과 묵상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입니다. 서두에서 밝힌 공동의 선을 지향하는 생각을 정리하며 직관은 뒤로 미루고 온유함과 정직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걷다 여백의 공간이 나오면 잠시 쉬어가며
숨을 고르다. 다시 점과 점을 이어 벽체를 만들듯이 걸어 나갔습니다.
점(點)은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냥 점입니다. 그러나 어느 무엇인가 소통하려 끈을 내밀면 다른 점과 끈이 이어져 비로소 연결선이 생깁니다. 점점이 모여들어 이어나가면 선이 만들어지고 필요에 따라 보편적 가치로 임의 방향으로 꺽어 나가면 공간(空間)이 만들어집니다.공간은 자연스럽게 공동의 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생각을 사유의 선으로 묶기 시작하면서 걸어 나가는 마음은 어느새 무위(無爲) 속으로 침잠되는 것을 얻기 마련입니다.
잠시 갈 길을 마주하고 서서 마음을 다스리는 일, 사유의 첫걸음입니다.
차를 달여 맑은 찻물을 마시듯 청정한 공기를 들여 깊게 마셔 마음에고요의 청정함을 불러옵니다.
거친 숨은 그새 진정되어 세파의 모순들을 거둬가기 시작합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백의 시선으로 먼산을 바라 보다 산능선에 서서 봄을 기다리며 서있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공동의 선을 발견하게 되지요.
웃자란 머리카락을 다듬어 놓은 상고머리처럼 정발된 가지런함을 산능선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면 촘촘한 그물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불평등은 근심을 불러 오지만 평등은 안식의 고요만 가득하게 됩니다. 자유로움을 생성하는 명약입니다.
주어진 환경이 같다면 성장의 의미를 지닌 속성은 같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무는 빛과 바람과 물의 그루터기가 있어야 존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터전인 흙은 존재의 시작을 증명하는 필수 여건이죠. 이러한 기초적 환경을 지닌 산능선에 서 있는 나무들은 폭과 크기가 같은 모양으로 정갈한 모습으로 봄을 기다립니다. 이와 달리
비탈지고 빛이 부족한 곳은 치열한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굽고 휘어지고.... 지독한 양육강식으로 강한 녀석만 존재성을 발휘합니다.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본색은 달라집니다. 공동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그러한 나무들의 환경에 형제들을 세워 보았습니다. 긴장감이.... 자리가 불편해 지면 방어적인 긴장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에서 얻는 순간의 쾌락적인 기쁨이 아니라, 인간의 삶 중에 다가 오는 무수한 위기를 함께 치열하게 대응하여 극복할 수 있을 때 얻는 기쁨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비탈을 벗어나 다시 길을 걸어 나갔습니다. 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잠시 멈춰 가기로 하였습니다.
골몰함,
힘겨루기~~
담소~~ 아니 혹시 뒤담화?
상대를 내 안에 담아 두어야 . 비로소 사람위치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상대도 상대에게 시선을 줍니다. 점과 점의 연결이지요.
공간, 그 안에 무수한 즐거움이 존재합니다.
행복은 잠시,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명멸함으로, 다시 새로운 번뇌와 고뇌가 찾아 옵니다.
다시 그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해야 하고
같은 생각을 모으고
다시 앞으로 나갑니다. 새봄에 얻은 새생명을 아름답게 키우기 위한 목적과 같이 길을 떠나야 합니다. 가는 길에 비바람과 천등번개도 만나고... 쉽지 않은 길은 결실까지 수많은 고행이 따릅니다.
그래도 경험으로 알기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점 하나를 이으려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가는 길에 만난 타우 십자가, 자연이 만든 조각품, 깊고 너르고 사유의 지평이 바르고 넓다면 어떤 위기라도 넘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동의 선을 통해 평화의 선을 이루어 나가는 사유의 결실입니다.
사유의 시간을 드렸더니 소유적 판단으로 존재성은 전부 잊고 별무리 숲 속마을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오시느냐 선두를 오래토록 호수가에 세워 놓은 사실을 고발합니다.!! 실명은 생략하고 증거 사진만 게재합니다. 하하하. 그래도 공동의 선은 희망이 있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매화마을 초입에 전부 도착하였습니다. 아침 출발하면서 예약해 놓은 장원으로 가 준비해 주신 태이블에 모여 앉았습니다. 순메밀로 현장에서 직접 뽑는 면발, 참 부드럽고 육수는 건성인듯하면서도 단백함이 일품인 집입니다. 그리고 곁드려 나오는 생채와 김치는 산소맛이지요. 참 고명도 다시 찾게하는 매력이 있는 집이랍니다. 이 집은 대를 이어가며 다니는 식당입니다. 저 역시 아주 오래전 부터 다니던 곳입니다. 설악권역을 다녀오다 꼭 들렀던 집이지요. 다들 만족하셔서 안내자로서 편안했습니다. 식 후 양지바른 곳에 몰려 앉아 커피와 더불어 주전부리를하다. 물구비길 깊은 상단 안부에 있는 성전을 찾았습니다. 가파른 길, 다들 탄성이~~
순례 이야기
물구비골 안부에는 천주교 여러 수도회가 상주하고 있는 곳입니다.
양덕원에서 산능선으로 올라 능선길 따라 걷다 새벽대기산 아래로 내려서면 바로 닺는 곳은 영원한 성모회(구속주회)경당입니다. 또한 물구비 골로 오르면 가파길 끝 좌측은 영원한 성모회, 우측은 사도직회(팔로티회) 하느님의 자비경당이 있습니다. 물구비길 초입 다리를 건너면 성빈센트 수녀회가 있고 바로 위에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와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가 길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오늘 순례는 영원한 성모님 경당에서 참례와 묵상을 한 후 사도직회(팔로티회) 하느님의 자비경당 3시 미사를 참례한 후 작은형제회 경당, 프란치스코 수녀회, 빈세트수녀원 묵상 탐방할 계획이었으나 시간관계상 미사참례를 끝으로 귀경길에 오르는 것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추후 5월에 다시 찾을 게획을 세우려 한다.
성 제라도 마엘는 (1725- 1755) 이탈리아 남부 무로지방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가난한 했던 가정,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습니다. 인내와 희생으로 십지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사랑을 충실히 살기 위해 구속주회에 입회하여 평수사로 5년간의
짧은 수도생활 내내 영혼의 구원을 위한 열정과 인내를 보여주셨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성 제라도는 가난한 이들을 깊이 사랑하셨고 특별히 아기를 가진 어머님들에게 지금까지도 많은 공경을 받고 계십니다. 1904년 성인품에 오르셨으며 축일은 10월 16일 입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 정화의 시간을 갖은 후 밖으로 나와 옥상으로 올라 가 주변을 조망하며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자비심에 감사드리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이 후 다시 자리를 팔로티회 하느님의 자비 경당으로 옮겼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의 사도직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자는 운동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미사참례 후 조용히 경당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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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이러스 때문 모든것이
정지된 느낌!!
주님과 함께하는 걸음성지 여행~*
정말 감사한 하루^^
새벽대기산 ...팔로티회 사도직 수도회 하느님의 자비경당에서
미사드릴수있는 은총을
주셨으니 ....감사드릴뿐
맑고 따뜻한 봄 기운을 듬뿍안고 쌤님의 며느리 고개 전설을 들으며 봄 마중 나온 푸른 나무가지 사이로
봄 햇살 맞으며.....
걷는 걸음님들 모두가 행복해 하는 모습.....★
좋은날 좋은하루 좋으신 걸음님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
리더님께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