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성령
에베소서 1:13-14
2023년 7월 9일 주일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하나님은 우리 신자들이 은혜받는 수단으로 말씀과 기도와 성례를 주셨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 성령께서 함께 하실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열매는 사랑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을 "옥중서신"이라 한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네 권은 로마의 옥중에서 제1차
수감 중인 주후 61년-63년 어간에 기록되었다(이순한, 옥중서신, 서울:한국 기독교 교육원, 1991, 13).
사도 바울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였다.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지역이다. 에베소는 많은 인구를 가진 큰 도시였고, 동, 서
로마의 교통 중심지였다. 소아시아는 헬라 제국의 식민지였고, 이후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에베소는 절반은 헬라인, 절반은
아시아인이었다(이순한, 21).
사도행전 기록에 에베소 안에 유대인 회당이 있었다고 하니 상당수 유대인이 거기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에베소는 동, 서 로마 제국 교통의
중심이었다. 에베소 항구에 동, 서의 수많은 선박과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에베소는 잡다한 민족이 모여 거주했다(이순한, 21).
종교적으로 로마의 주신 제우스, 그리고 아데미 여신 곧 속칭 다이애나를 숭배했다. 또 여러 잡다한 우상과 미신이 유행했다(사도행전 19장;
이순한, 21).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처음 에베소를 방문했다(행 18:19-21). 그곳 회당에서 복음을 변론하고 전했다(이순한, 21).
사람들이 머물기를 원했지만 "하나님 뜻이면 내가 돌아오리라"고 말하고 가이사랴를 거쳐, 파송교회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이순한, 22).
3차 전도 여행시 바울이 다시 에베소를 방문했다. 2년3개월 이상 에베소에 머물며 선교 활동을 했다(행 19:8,10, 22). 밀레도에서
에베소 지방 장로들을 모아서 마지막 권면을 했다. "3년이나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고 했다(이순한,
22).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서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들이 답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1-2)."
바울이 묻기를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라." 바울이 말하길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했다. 이는 곧 예수라(행 19:3-4)."
그들이 듣고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사람이 열 두
사람쯤 되었다(행 19:5-7).
오늘 본문은 에베소서 1:13이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13 KRV
그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 구원 얻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이다(Calvin, Ephesians, Grand Rapids: Wm. B. Eerdmans
, 1974, 130-31).
주님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있음 같다(요한복음 15:4-8 KRV). 신자가
맺는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요 15:12).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말한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갈라디아서 5:22-23 KRV).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고린도전서 13:13 KRV).
사탄은 끊임없이 복음에 대한 의심과 경멸의 마음을 우리 마음 속에 심으려고 한다. 복음 즉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의심과 경멸의 마음이
사라진다. 진리의 말씀은 신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진리의 말씀', 복음은 구원의 도구이다(Calvin, 131).
인침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능이다. 성령의 인침으로 신자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다. 사탄의 유혹 즉 복음에 대한 의심과 경멸을
이기는 것은 성령의 인침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침은 육체의 감정, 철학적 논쟁과 다르다. 믿음의 기초가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면 흔들리고
불안정해진다. 설교는 믿음의 도구이다. 성령께서 설교를 효력있게 하신다(Calvin, 131).
복음은 영적 죽음, 하나님의 진노, 악의 권세, 죄와 육체의 매임에서 건짐받게 한다(엡 2:1-3; Andrew T. Lincoln,
Ephesians, Dallas: Word books, 1990, 39).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21-22 KRV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께서 우리가 구속받아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성령께서 우리가 구속받게 하신다. 성령의 역사로
믿음을 갖는다.
(Lloyd Jones, God's Ultimate Purpose,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3,
243)
구속이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속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다. 구속은 대속 혹은 속죄와 같은 의미이다.
모든 사람은 구속 (救贖, 죄를 대속하여 구원함)이 필요하다. 우리의 자연 상태는 죄아래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를 죄책(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로마서 3:24) 가 되게 하셨다.
구속의 유익에는 영생 (요한계시록 5:9-10), 죄 사함 (에베소서 1:7), 의 (로마서 5:17),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자유
(갈라디아서 3:13),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됨 (갈라디아서 4:5),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출 (디도서 2:14; 베드로전서
1:14-18), 하나님과의 평강 (골로새서 1:18-20), 성령의 내주하심 (고린도전서 6:19-20) 등이다. 그렇다면, 구속을 받는것은
용서를 받고, 거룩해지고, 의롭게 되고, 자유롭게 되고, 양자가 되고,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시편 130:7-8; 누가복음 2:38;
사도행전 20:28 참조).
구속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값을 치르고 사다" 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특별히 노예를 사서 자유를 주는 것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를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적용한다. 우리가 “구속”을 받았다면, 우리의 이전 상태는 죄의 노예 상태였다.
기독교의 구속 개념은 몸값이라는 단어와 관련된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기 위하여 대가를 치르셨다 (마태복음
20:28; 디모데전서 2:6). 성경은 구속이 “그분의 피,” 곧 그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골로새서 1:14;
참고 구글 gotquestions.org).
인침은 도장을 찍는 것 혹은 사인하는 것이다. 인침은 무엇인가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하는 것은 그 사람의
소유라는 것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친것이다(요한복음 3:33 KRV).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참된 분이라는 사실에 권위를 부여한 자, 인친 자, 도장을 찍은 자이다.
(D. M. 로이드 존스, 성령 하나님, 이순태 옮김,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364).
예수님이 빵 5개로 남자만 오천명을 배불리 먹게 하셨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루 한끼를 먹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요즘은
우리나라가 세 끼를 먹지만50여년 전까지 두끼를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루마니아 지방에 가보니 지금도 하루 두 끼를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그들이 하루 세끼 먹는 우리를 걱정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길 원했다. 예수님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된다면 먹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떠나서 혼자 산에 가셨다. 하나님 아버지와 조용한 교제와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다.
다음날 갈릴리 호수 건너편 가버나움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 예수님은 빵을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한복음 6:27 KRV
빵도 필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양식,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이다.
성령의 인침이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성령에 의해서만 예수를 주님이라 부를 수 있다(고전 12:3). 나의 죄를 깨닫게 하는 분이
성령님이다.(Lloyd Jones, God's Ultimate Purpose, Ephesians 1:1-23, 266).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KRV
부활하신 주님은 사도와 제자들에게 분부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다(사도행전 1:4-5 KRV).
오순절 성령 강림에 의해 사도들은 새포도주에 취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환각 상태였다. 그들은 즐거웠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들은
변화되었다(Lloyd Jones, the ultimate purpose, 269).
스데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났다. 신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전했다.
귀신들이 나가고 중풍병자가 걷게 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백성이 성령받기를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이 함께 합력하고
역사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햇빛보다 강한 빛을 보고 눈이 멀었다. 주님이 삼일 후 아나니아를 보내 안수하니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성령 충만을 받았다.
주님이 백부장 고넬료 집에 베드로를 보내사 말씀을 듣게 하니 말씀을 듣는 집안 모든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로마서 8:16 KRV).
우리가 자녀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갈라디아서 4:6 KRV).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6:7 KRV
하나님의 아들이 제자들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자신이 떠나는 것을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떠나는 것이 좋으니 그래야 보혜사
성령이 제자들에게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KRV
성령의 인침으로 우리 죄가 용서받은 것을 안다. 에베소 신자들은 복음의 진리를 믿음으로 받았고 성령의 인침으로 그 복음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성령은 우리 신자들의 기업 즉 하나님 나라의 보증이 되신다. 성령이 함께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땅에서 신자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러분과 저의 주어진 자리와 본분을 지키며 사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