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장편소설 [[황산강]]을 주 2회 정도로 연재할까 합니다.
1부 아수라장, 2부 코피, 3부 모순, 4부 내 속에 하나의 우주, 5부 더덕 냄새, 6부 한없이 가벼운 사랑
“책 빌리러 미뻔….”
“다른 일은 없었쟈?”
“야.”
“앞으론 책도 빌리지 말고 우짜뜬 만나지 마라. 질~때로 만나지 마라.”
“야.”
황산강 2부 코피(10회)
“책 빌리러 미뻔….”
“다른 일은 없었쟈?”
“야.”
“앞으론 책도 빌리지 말고 우짜뜬 만나지 마라. 질~때로 만나지 마라.”
“야.”
“동래 못 간다. 뭔 소문 날지 모린다.”
“…….”
“대답 안 하나?”
“야.”
원동 장날이다.
아직 땅속까지는 풀리지 않았다. 춘분은 훨씬 지나야 논갈이할 수 있다. 안골 일할 소는 날 잡았지만 머들 논 갈 소는 날 잡지 못했다. 아버지가 새동네로 소 빌리러 갔다. 엄마는 마실 엄마들과 토곡산에 봄나물 캐러 갔다.
부엌 가마솥에 물 데워 귀한 빨랫비누로 목욕하고 설에 입었던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걸치고 장에 간다고 나섰다.
할매가 온 마실이 다 훤해졌다며,
“동래는 안 된다. 니 애비 알만 내도 죽는다.”
신신당부했다.
“장터 가서 소학교 동무들 만난다니까. 할매, 걱정 마라.”
며칠 전, 마실 엄마들이랑 엄마가 쑥 캐어 왔다.
“후지코, 약혼했단다.”
부산포에서 무슨 상회하는 부잣집 아들이랑. 춘분 무렵에는 부산에서 혼인식하고 초행, 재행도 없이 곧바로 새신랑, 새신부가 내지(일본)로 유학 간다고 했다.
마실 잔치 때에도 신랑, 신부 모두 내지로 가고 없어서 신랑, 신부 없이 한다고 했다. 신랑 집에서 유학 비용을 다 댄다고 했다.
기차로, 목탄버스로 동래에 닿아 사흘을 이 잡듯이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 하숙집에서 나가 약혼자 집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닷새째, 거지꼴이 되어서 넓은 정원이 딸린 신랑 집을 찾았다. 멀대처럼 키만 커다란 신랑을 향해 흰 면사포를 걷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말았다. 그 웃음이 너무 눈부셨다.
닷새 동안 몇 끼를 굶어 허한 몸만치 허한 정신으로 터벅터벅 걸어, 깊은 밤을 건너, 새벽 무렵에 정신을 차리니 집 방안이었다.
내리 사흘을 앓았다.
아버지도, 할매도, 엄마도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일어나기는 했다. 방 안에만 있었다. 그냥 며칠이고 빈둥거렸다. 그러다가 머들 논이 있는 황산강 배후 습지에 대나무 통발을 넣고 한나절을 기다려 걷어 집에 왔다.
“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김 주사 댁에서 불러 저녁술도 들지 않고 갔다.”라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서 들려던 밥술을 놓았다.
짚신을 찾아 꿰고 아랫말 김 주사 댁으로 냅다 뛰었다. 아직 뛰기에는 어지러웠다.
불과 며칠 전에, 내가 누워있을 때, 후지코 아버지와 삼촌, 그 집 큰머슴, 이렇게 셋과 머들 논 소작 때문에 아버지 혼자서 3대 1로 한댓거리 했다고 들었다.
후지코 할배인 사음 김 주사 댁에 갔다면 아버지 성질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싶었다. 후지코 할배의 그 독새 눈빛이 떠올랐다. 어지럽기도 했지만 달리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김 주사 집 대문께에 들어섰다.
걱정했던 일이 기어코 터졌다. 아버지가 쓰러진 채 사음 김 주사 집 높은 사랑마루 끝으로 끌려 나왔다. 후지코 아버지가 아버지를 풋볼 차듯 축 밑에 차 내리었다.
“야, 이 더러번 놈들아. 울 아버지가 뭔 잘못을 했길래 이라노.”
뱃속에서부터 머리끝으로 열불이 치솟아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속이 메스꺼운데 누군가 걷어차인 턱을 건드리고 있다.
“아~씨. ~새끼! 찬 곳 또 차냐?”
“아쭈!
진작에 정신 돌아와 있었네. 고정식. 정신없는 척,
뭐? 쌤 보고 ‘아~ 씨, ~새끼!’ 한번 뒤져보실래요?”
체육관 안이었다.
“고정식. 이 곰새~야! 계속 연극하고 자빠져 있을래?”
“이거 뭐지?”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것 같은 이 상황.
콧속이 서늘해지면서 코피가 주르르 쏟아졌다.
[황산강 2부 코피 끝. 다음 3부 모순]